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62강, 서원(3)

윤주만목사 2019. 4. 10. 06:39


62, 서원(vow, 誓願)(3)

 

민수기 30:1-5절을 보겠습니다. (247)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서원

교회 안에서 이 서원을 오해하고 있고 또 서원을 하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서원 때문에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 서원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서원은 강요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서원을 너무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서원을 하게 한 후에 그것을 안 갚으면 마치 큰일이 날 것같이 이야기를 해서 교인들이 겁을 먹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서원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그 서원을 갚으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서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맹세하는 것을 말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서원에 대해서 철저하게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번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강요를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과연 인생이 맹세를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그 문제부터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맹세를 했을 때 그것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맹세를 한 것에 대해서 반드시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맹세를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그가 맹세를 한 것에 대해서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맹세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 해도 아니 마음에서 맹세를 지키지 않은 것을 죽을 만큼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에게서 능력이 사라지고 나면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맹세를 했을 때는 분명히 그까짓 것 하면서 지킬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환경과 처지가 변해서 자기가 한 맹세를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생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은 능력도 없는 인생이 서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인생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서원도 하나의 약속입니다

인생에게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만 나오면 서원을 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는 서원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실제 지켜지지 않은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지키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정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서원은 한 마디로 하면 공수표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서원을 강요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자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기가 서원한 것에 대해서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서원한 것을 지킨 사람은 그것을 교회 안에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서원한 것을 자랑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고 또 능력이 안 되는 인생들이 교회 안에서 함부로 서원을 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서원을 하는 것을 너무 좋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서원에 대한 율법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서원에 대한 법입니다.

이 법 역시도 폐해 졌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경에 있는 모든 율법이 폐해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에 대한 법이 폐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서원에 대한 법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면서 서원을 유도를 하고 있고 그 서원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법이라면 무조건 폐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교회 안에서 서원을 하게 만들고 있고 또 이 서원의 법에 따라 자기가 한번 서원한 것은 반드시 행해야 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서원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서원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내 안에 성전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고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십분의 일을 드린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창기와 개 같은 자의 서원은 받지를 않으신다고 그것은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과 서원이 이루어 졌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제입니다

지금 민수기 3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서원은 먼저 내가 하나님과의 서원을 갚았는가를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서원을 갚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서원을 한다 해도 그것은 창기와 개 같은 자의 서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먼저 내 하나님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자기의 하나님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하나님을 생각해서 서원을 했다 해도 그 기초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그것을 서원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그것을 기초로 해서 민수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서원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30:1절을 보겠습니다. (247)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기초가 되는 서원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갚아 졌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갚아 졌기 때문에 서원의 대한 법을 정하셨습니다. 만약에 서원을 갚지 않았다면 이 법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참으로 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도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보이는 문자를 보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성경을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마치 실제 우리가 문자로 보는 그 뜻을 보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이 세상의 책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 지식이 자기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구약의 율법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명령입니다

서원에 대한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구원과 직접 연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명령이라고 말씀을 할 때는 그냥 쉽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 명령대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민수기30:2절을 보겠습니다. (247)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이제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서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서원의 기초를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서원을 갚은 사람이 다른 서원을 할 때의 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서원을 갚아서 나의 하나님이 된 그 사람이 서원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을 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과 서원을 갚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민수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서원은 나의 하나님이 되었을 때의 서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입에서 한 말 그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자일 때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남자라고 할 때는 생리적인 남자가 있고 구원을 받은 사람을 남자라고 합니다. 지금 이 말씀에 남자라는 말씀은 실제 남자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서약

명세하고 약속을 하는 것을 말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서약을 했으면 그것을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늘 서약을 할 때 정말 조심을 해야 합니다.

 

함부로 서약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무엇에 대해서 서약을 하겠습니까? 아무 것에나 서약을 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미련하지 않기 때문에 서약에 대해서 지가기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이 서약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받은 남자가 서약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34절을 보겠습니다. (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사람이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약의 기초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서원을 하지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서원을 하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죄가 되어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서원도 하지 말고 서약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고 도무지 맹세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미련한 자들은 맹세를 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서원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서원을 했다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고 또 자기가 서원을 갚은 것에 대해서 아주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말씀을 보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도무지 서원이나 서약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함부로 서원이나 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과의 서원을 안 갚았기 때문에 그 안에 진리가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12절을 보겠습니다. (376)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왜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까?

우리가 서원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실제 우리가 욥의 역사를 보아서 알겠지만 그가 하루아침에 거지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죄를 받습니다.

실제 지금 교회 안에서 이렇게 정죄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에게 서원을 안 갚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서원을 갚은 성도가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서원을 해서 갚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이미 교만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민수기에서는 서원을 했으면 갚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맹세를 하면 안 되느냐면 반드시 그 맹세를 한 것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 자기 스스로를 제어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세를 할 때는 쉽게 했을지라도 막상 그것을 갚을 때는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신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맹세를 하고 땅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땅을 팔고 나니까 마음이 달라져서 그 땅 판 값의 얼마를 숨겨 두고 바치다가 두 사람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맹세를 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마음에 감동이 되는 대로 팔았다면 정죄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과의 서원을 갚은 사람이라 해도 서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감동을 받으면 그때 무슨 일이든지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맹세를 하게 되는 순간에 그것이 정죄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습니까?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서 서원을 겁없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는 자기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이 되고 충분히 능력이 된다 해도 사람은 어떻게 될지를 아무도 모릅니다. 또 사단이 미혹을 하면 그것을 이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맹세를 하는 것은 자기가 사단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그것이 성도라 할지라도 서원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서원을 갚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단이 갚게 해서 망하게 하는 길로 가는 것이지 우리 인생은 어떤 맹세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갚을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진심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서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교회 안에서 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구약에 율법에 있다고 해서 서원을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서원을 하면 정죄에 빠질 것을 너무도 잘 아시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하면 됩니다.

굳이 왜 하려고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거역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또 우리가 사단에 미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정죄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서원에 대한 말씀이 있다 해도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 가를 알면 서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서원을 함부로 하다가 결국에는 정죄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서원을 강요를 하고 있는데 결국에는 그 서원으로 자기가 정죄를 받아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서원을 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사단이 미혹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게 해서 정죄에 빠져 죽게 하기 위해서 서원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지금 내 형편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명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정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맹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맹세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맹세를 하시면 반드시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민수기 30:3-5절을 보겠습니다. (247)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의 집에 있습니다.

이 아비는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어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하고 그 안에 있는 뜻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하며 무엇을 예표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여자가 어립니다.

그런데 그 아비의 집에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비는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 어린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아직 구원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여자가 어리다고 말씀을 하지 않고 2절에 있는 말씀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3:1절을 보겠습니다. (365)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이 어린 여자 아이가 누구입니까?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영의 깊은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구원을 안 받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복음을 듣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남자와 같이 대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해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같이 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복음을 듣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 복음을 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민수기에서 아비 집에 있는 어린 여자 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아이가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서원을 갚았다고 할 수없는 여자 어린 아이인데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이렇게 서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직 남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서원을 해야 하는지 서원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비집입니다

구원이 있는 집입니다 전혀 구원이 없는 집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비가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다 육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짜 어린 여자 아이라 생각을 하고 있고 그냥 아비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자 어린아이만 있습니까?

남자 어린 아이도 있을 것 아닙니까? 성경을 기록을 했을 때는 그 의미를 잘 이해를 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꼭 가정을 말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아비가 있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서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자 어린 아이는 급 합니다.

아직 복음을 모르고 그저 복음을 잠깐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음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교회에 나오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고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디모데와 같이 구원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디모데도 처음에는 사도 바울이 가르쳤을 때 이 여자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계속해서 듣다보니까 하나님의 서원을 갚은 남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신령한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잘 돌보다 보면 그 아이가 자라서 신령한 것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신령한 것을 먹지도 못했는데 그가 복음을 듣고 덜컥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재물을 드리겠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구는 이제 세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서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 말을 구원을 받은 성도가 들은 것입니다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30:4절을 보겠습니다. (247)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서원을 들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것 같이 교회 안에서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아직 어린 여자가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없고 이제 복음을 듣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여자 어린 아이가 서원을 했습니다. 실제 여자 어린아이가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이제 듣기를 시작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린 여자 아이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 어린 여자 아이는 잘 몰라서 서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들어와 사도바울과 같은 아비에게서 복음을 듣다가 서원을 한 것입니다

 

아비가 들었습니다.

이 아비는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성도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영의 일을 분별을 할 수 있는 구원을 받은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서원이 바른 서원인가 해서는 안 되다는 서원인가를 바로 분별이 됩니다. 실제 누군가 서원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저에게 물어 본다면 저는 그 서원에 대해서 대답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복음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서원을 한다면 저는 그가 한 서원에 대해서 그것을 지켜도 괜찮은가 아니면 지키지 말아야 하는 가를 분별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민수기에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비와 어린 여자 아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이 있는 아비와 같은 사람과 이제 복음을 듣기 시작을 한 여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비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서원하는 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 아비는 그것이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가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서원이고 어린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듣고 아무 말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비가 분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이나 마음에 제어하기로 한 것을 보니까 이것이 바른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자 어린 아이가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비가 그것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서원은 지킬 수 있는 바른 서원이라는 말씀입니다

 

민수기 30:5절을 보겠습니다. (247)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아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듣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비 마음대로 아비가 기분에 내키는 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이 어린 여자 아이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서원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아비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것을 못하게 했다가는 이 아비가 죄를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만약에 그런 서원을 하고 마음을 제어하기로 했다면 그 아비는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서원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복음이 있는 아비 같으면 그 서원을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아비가 없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서원을 하라고 오히려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서원을 들었으면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비가 그냥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 어린 아이가 서원을 한 것은 분명히 정죄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서원에 대해서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비로 있는 사람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이 시대 교회가 이 서원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게 하고 있고 그것으로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초를 모릅니다.

서원에 대해서 그 기초를 모르다 보니까 이런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문자적으로 이 말씀을 해석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보다가는 모두가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부터가 소경이 되어 있는데 그 어린 여자 아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정죄를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있는 성도는 압니다.

사도 바울이 모르겠습니까? 누가 서원을 했을 때 이것을 갚아야 하는지 하지 말라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까? 아마 저와 아카데미를 듣고 있는 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서원을 듣고 또 마음을 제어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해서는 안 되고 또 해야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아직 신령한 영의 일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이제부터 평생의 모든 소득에서 십일조를 내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은 아비는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할 것이고 그러나 진리가 없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비는 아주 잘 했다고 할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아비는 그것을 들으면 압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구약을 보고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서원을 하며 마음에서 그것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서원을 들었을 때는 진리를 알고 있는 아비는 당연히 그것을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어린 여자 아이가 서원을 했을 지라도 사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가 중요합니다.

아비가 멍청하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아비는 지혜롭기 때문에 여자가 아무리 어려서 지혜가 없다 해도 아비가 그것을 판단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정하셨을 때 이렇게 우리 인생들을 생각하시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율법이 없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서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르고 또 서원을 한 것에 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있는 삯꾼들에 의해서 사망의 길로 갈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서원을 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가 서원을 했으면 아비가 반드시 들어야 하고 아비가 그것을 인정하면 서원을 갚는 것이고 아비가 서원한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서원을 한 것이 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안 지키면 꼭 벌을 받을 것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이라는 것은 남자면 그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도무지 맹세를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자인데 어립니다.

복음을 듣고 있지만 아직 신령한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서원은 반드시 아비가 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서원을 했다고 그것을 갚은 것이 아니라 아비가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갚고 아비가 그것을 못하게 하면 안 갚아도 하나님께서 사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신령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비가 듣고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해 줄 때 그대로 하면 서원에 대한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5:6절을 보겠습니다. (952)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서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실수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말소리에 진노를 하셔서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씀들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원을 하고 나서 겁을 먹고 있고 대부분이 정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서원을 했을 때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서원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아비를 우리 곁에 주셨습니다. 그 아비는 교회 안에서 진리를 가진 자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서원을 함부로 하다가 그것을 실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가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늘 배우는 자입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에게서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아비가 있어야 내가 설령 서원을 했어도 그것에 대해서 서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구원을 받은 사람은 말로 서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도무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서원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런데 서원을 합니까? 그것은 다 자기를 들어내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사람들은 그렇게 함부로 서원을 하고 있고 또 교회가 서원을 하라고 강요를 하면서 사람들을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들이 많아서 이 서원 문제가 사람들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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