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강, 종과 아들(6)
(갈4장 강해)
갈라디아서 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이스라엘 전체가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땅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도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기들이 기다리는 육적인 그리스도가 와서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자유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420쪽)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자유 하는 성도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약속을 따라 나아야 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종노릇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자유하게 해 주셔서 우리로 새 예루살렘에 유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이 성행을 했습니다. 실제 예루살렘에서는 율법에 의해서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율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에 의해서 자기들이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난 성도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여자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하갈이라는 여자를 비유로 하고 있고 사라라는 여자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하갈이라는 여자는 시내 산으로부터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하갈이 지금의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이 종노릇하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두 여자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갈이면 종을 낳게 되고 교회가 자유 하는 여자 사라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교회를 상징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은 다 하갈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예루살렘이 있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되었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만이 아들을 낳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땅의 예루살렘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에 속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영의 비밀을 모르면 절대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낳은 자녀만이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 자유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종으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은 자유 합니다.
자유 하는 성도만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미 종이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땅의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과 하늘의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에서 낳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하늘의 일이지 땅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율법으로 깊이 빠져 들어간 것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하늘의 예루살렘을 통해 낳은 아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종이냐 아들이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고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자유자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약속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교회가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하갈이 되어서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땅에 있는 교회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그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에 의해서 종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2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두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는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낳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낳고 아들은 하늘에 있는 자유자에게서 낳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계집종에서 나면 종이 되고 하늘에 있는 자유자에게서 나면 아들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야 54장1절에 기록되기를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탄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하가와 같이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고 있고 바다 모래 같이 많다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에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종은 많습니다.
그러나 자유 하는 아들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그것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율법주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아는 성도들은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자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남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남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자유 하는 여자는 남편이 안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론 하늘에 계시지만 남편이 없습니다. 지금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남편이 있어서 그 자녀가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에는 율법주의자가 많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마치 홀로 사는 것과 같이 때로는 고독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종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도 역시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바다 모래 같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부터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은 거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이 남편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욱 더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고 그 율법의 남편에 의해서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녀들이 많은데 그 자녀들이 종노릇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자녀는 적습니다.
그래서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자는 외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남편에게 속해 있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은 숫자가 많은 것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사람은 다수에 속해 있어야 안심을 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세상은 율법의 남편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자유자로부터 낳은 아들은 아주 적어서 마치 세상에서 홀로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자의 자녀가 더 많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가 더 많이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늘 율법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는 하가에게서 낳은 종의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많다는 것을 복음이 있는 성도들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자녀가 더 많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많다는 것이 아니라 종의 자녀들은 어차피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부터 낳은 자녀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28절을 보겠습니다. (ts 307쪽)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삭을 어떻게 낳았다는 것을 창세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낳을 수 없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셔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사실 종은 얼마든지 낳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종을 만들기는 아주 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많지만 다 종노릇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종과 아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면서 형제들아 너희는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하늘에 있는 자유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성도를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땅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낳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을 예표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낳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
이 말씀은 우리는 약속을 받은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을 받은 자녀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약속의 자녀인데 왜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그것을 따라 종노릇하려고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났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종노릇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약속을 받아 낳은 자유 하는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종이 되지 말고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두 사람이 있지만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 자녀는 반드시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 가를 에베소서 1장13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아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자기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약속으로 받고 있고 성령이 감동을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육체로 나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안 믿어집니다.
이것이 쉽게 믿어질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어렵게 비유를 해 가면서 말씀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에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과 같이 율법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참 좋은데 안 믿어집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이 믿어진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갈라디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너희는 이스마엘과 같은 종이 아니라 이삭과 같은 아들이라고 두 여자를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종이 누구인지 아들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두 아들입니다
똑같이 아브라함에게서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육체를 따라 났고 하나는 성령을 따라 약속에 의해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과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형입니까?
육적으로 하면 이스마엘이 형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약 15살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것은 예표고 비유입니다 당연히 육체를 따라 난 자가 더 힘이 세고 나이가 많다 보니까 이삭이 꼼짝을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9절을 보겠습니다. (구 26쪽)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창세기에서는 희롱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서는 핍박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더 크겠습니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육체를 따라 난 자가 더 큽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더 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당연히 이삭은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는 이스마엘과 같이 육체로 따라 난 자가 많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을 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많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세력이 크겠습니까? 지금도 역시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과 같이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이 아주 적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성령을 따라 난 자가 핍박을 받습니다.
율법주의가 있습니다.
사실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면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를 반대하고 주일을 반대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별로 제가 알려 지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하지 않지 만약에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이 알려지기 시작을 하면 아마도 이단 논쟁부터 일어날 것이 분명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의 세력이라고 공격을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교회도 거의 다 마찬가지라고 보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교회는 실제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 있어 진리를 가지고 있는 아주 적은 소수를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과 그리고 의롭고 선하게 보이는 모든 행위가 육체의 소욕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는 그 모든 일 내 육체를 통해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는 것을 성령의 소욕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한 마디로 율법주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내고 또 주일을 지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소욕이 있으면 성령의 소욕을 대적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핍박을 합니까?
당연히 육체의 소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고 있는 성도들을 핍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령의 소욕대로 행하고 있는 성도는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보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고 있는 사람은 십일조도 내고 있고 또 주일도 지키고 있고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을 통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성도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핍박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니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이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을 반대를 하다 보니까 당연히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 있는 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고 있는 자는 너무 적어서 싸움이 안 됩니다 그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이스마엘과 이삭의 나이 차가 15살 이상이 되어서 꼼짝을 못하는 것과 같이 이삭으로는 상대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종이 아들을 핍박을 합니다.
그 이유는 종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너무 적고 또 약하기 때문에 종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진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율법주의자들을 이기게 역사해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이미 진리에서 타락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때로는 모진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아야 하고 또 그러한 상황이 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4:3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실제 창세기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야기를 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어 쫓으라고 말씀을 해서 내어 쫓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은 반드시 그렇게 내어 쫓긴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업을 얻지 못 합니다.
아브라함을 같이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이스마엘은 이삭과 같이 유업을 얻지 못하고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계집종에게서 난 아들은 반드시 내어 쫓기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계집종에게서 난 아들이 누군가 하면 이 시대 율법주의자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이삭은 자유자에게서 난 아들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종은 반드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되어 있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아들은 하늘의 유업을 잇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에게서 난 아들은 반드시 종이 되어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던 이스라엘은 결국은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1쪽)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나라의 본 자손이 누구입니까?
바로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이 왜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되느냐면 하가와 같이 시내 산에서 나은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내어 쫓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에게만 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기가 나라의 본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정통이라고 하는 그곳이 율법주의에 빠져 스스로 종노릇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실 쫓겨난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씀들을 보고도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지가 않아서 누가 쫓겨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쫓겨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저 하지 않고 이스마엘을 쫓아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종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 쫓겨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쫓겨나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이스라엘과 똑같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유업입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종의 아들은 종노릇하다가 쫓겨납니다. 그러나 하늘에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하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과 같이 약속에 의해서 하늘의 생명을 얻은 자녀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종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종노릇하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행위들에 의해서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입니다
율법 전체를 지켜서 종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날을 얼마나 많이 지키고 있고 절기를 얼마나 많이 지키고 있고 또 해를 삼가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삼가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미 세속화 되었습니다.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구인가도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이끌러 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는 종입니다 그 종은 반드시 내어 쫓김을 당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약속을 받은 자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받은 이삭과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종과 아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의 일을 모르고 육체에 빠져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내 육체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 사람을 사도 바울은 종이라고 하고 있고 그 종은 반드시 내어 쫓김을 당한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을 예표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육체적인 행위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과 같은 아들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들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종이 되어서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그에게 임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이 무엇이고 성령의 소욕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의 소욕이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하늘에 있는 자유자에게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자는 삼가 지키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자유자는 삼가 지키고 있는 육체의 소욕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아니 한 가지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지각이 없어서 자기가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종은 아무리 아버지라고 부를지라도 반드시 쫓겨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예표로 보여 주셨고 종은 아들과 함께 유업을 잇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3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결론입니다
종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난 후에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이 아들이 아니요 자유 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종을 낳습니다. 그리고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아들을 낳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갈라디아교회의 다른 복음이 그대로 교회 안에 침투를 해서 스스로 계집종의 아들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미 계집종의 자녀들이 그곳에서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유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어서 다 같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만 계집종의 아들인 부자는 음부로 쫓겨 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아들이 누구인가를 사도 바울이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자유하지 못하고 있고 삼가 지키고 있는 것들로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아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 있지만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육적이 모습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행위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종노릇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아들은 모든 것에서 자유 해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유자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율법은 땅에 있는 것이고 자유는 그 땅 위에 있어야 자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땅에 있는 것에 소욕을 부리면서 스스로 종이 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아들이냐 종이냐 하는 것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기준을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가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하가가 낳은 아들이 시내 산에서 낳았다고 비유를 하면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으로 말씀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며 육체의 소욕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아들은 종과 같이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약속에 따라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이 세상에서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 약속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하늘의 유업 천국을 기업으로 얻어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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