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강, 두 짐승(2)
에스겔 22:6-7절을 보겠습니다. (구 1183쪽)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 있었도다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이스라엘의 방백들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권세를 부렸는가 하면 율법을 가지고 권세를 부렸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가지고 권세를 부리면서 나그네를 학대 했고 또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사단에게서 받은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고아의 아버지시고 과부의 재판장이시고 나그네에게 양식과 옷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단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요구를 따라오지 않으면 아니 따라 올 수 없는 나그네를 학대 했고 또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어떻게 했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고와와 과부를 보살폈고 나그네를 대접을 했습니다. 육적으로는 그렇게 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당시 나그네로 살아가던 성도들을 핍박을 했고 또 영적인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되어 버린 종교가 이렇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죽입니까?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그렇게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미 짐승이 되어서 지각이 없기 때문에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을 세상 사람이 죽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이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입니다
열 뿔과 일곱 머리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숫자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해서 꼭 열 뿔을 찾고 일곱 머리를 찾으려고 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르게 됩니다. 또 이상한 해석을 하고 억지로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구체적으로 어느 것이다 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상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다니엘에서 나오는 열 뿔과 같이 정확히 열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이것이 아홉이냐 여덟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는 가가 중요합니다.
이 짐승을 누구로 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열 뿔과 일곱 머리에 집착을 하기 보다는 이 짐승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이 짐승에게 절하지 않고 이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7:12절을 보겠습니다. (신 416쪽)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큰 음녀의 받을 심판입니다
이 음녀가 교회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합니다. 이 음녀를 천주교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음녀는 먼저 이스라엘이 음녀가 되었고 또 이 시대 교회들이 음녀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는 이 음녀를 천주교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해석이 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짐승을 천주교로 해석을 해서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타락을 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거의 다 타락을 했습니다. 음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이렇게 짐승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있으면 마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이 짐승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 안심을 하게 하게 하고 있습니다.
짐승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있지만 짐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을 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다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짐승에 속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다 보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3절을 보겠습니다. (신 411쪽)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일곱 머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 죽에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에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짐승은 머리 하나에 치명상을 입어서 거의 죽게 되었었지만 그 상처가 나았습니다. 이것을 본 온 세상 사람들은 놀랍게 여기며 그 짐승을 따라갔습니다.”
머리 하나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짐승이 되어서 성도들을 다 죽이고 있으니까 이스라엘을 상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정말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큰 상처를 입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낳게 해 주셨는데 이것을 본 온 세상 사람들이 놀랍게 여기며 그 짐승을 따라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포로로 가서 또 그 나라를 멸망을 시킨 메대와 바사에 포로로 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더욱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올 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율법을 잘못 지켜서 자기들이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더욱 율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실제 이 일이 있은 후에 주님이 오시기까지 이스라엘은 철저한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13:4절을 보겠습니다. (신 411쪽)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권세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도 권세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울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고 나니까 더욱 율법주의가 되어서 큰 권세를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이 이스라엘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권세를 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권세에 눌려서 그 짐승에게 꼼짝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짐승에게 절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얼마나 큰 권세를 부렸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공격을 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어긴다고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마음껏 사용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환상입니다
그리고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에 연연을 하다 보니까 억지로 성경을 풀려고 하다가 스스로 올무에 걸리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숫자는 거의 상징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일곱 머리에서 하나가 상했다고 하니까 그것을 찾으려고 하니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일곱 머리도 해석을 하기 힘이 드는데 또 그 중에 머리 하나가 상했다고 하니까 어느 머리가 상했는가를 바로 알 수 없게 되고 이런 것을 억지로 풀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3:5절을 보겠습니다. (신 411쪽)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았습니다.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흔 두 달이라는 숫자는 상징입니다 그것이 실제 마흔 두 달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또 이것을 일 년으로 계산을 해서도 안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난 후에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환상입니다
실제 되어질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환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서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지 이런 숫자에 연연을 해서 이 숫자에 대해서 자기가 알았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단한 해석을 한 것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5:21절을 보겠습니다. (신 97쪽)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하니까 참람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이 믿는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일입니다 참람된 말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참람한 말입니까?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그 말이 참람된 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실제 주님이 오셔서 자기를 들어내시면서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참람된 말로 거절을 했습니다.
세상이 참람된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요한이 보고 있는 환상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참람된 말을 했는가를 환상으로 보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참람된 말을 하고 있지만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이 무슨 말인 줄을 모르고 그저 짐승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6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누가 훼방을 합니까?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훼방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훼방을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훼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1절을 보겠습니다. (신 19쪽)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훼방에 대해서 강의를 드렸습니다. 훼방이 무엇인가는 성령 훼방이라는 강의를 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성령을 훼방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 민족들은 성령을 훼방을 했습니다.
이제 짐승이 누군가 더 자세히 보이고 있습니다.
누가 성령을 훼방을 했습니까?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성령 훼방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만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도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훼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을 훼방을 했고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실제 사도행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전파했는데 그들이 얼마나 훼방을 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성령을 훼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조차 막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시대도 역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훼방을 한 것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바로 첫째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첫째 짐승은 성령을 훼방하다가 결국에는 모두가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유대교를 믿고 있는 이스라엘은 성령을 훼방하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에 나오는 둘째 짐승도 역시 성령을 훼방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훼방에 대해서 경계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 보다 보니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성령을 훼방하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7쪽)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안다고 하면 절대로 훼방을 하지 않습니다.
짐승입니다
이성이 없는 짐승이 되어서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는 그것으로 멸망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짐승이 되어서 자기들이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그것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 것처럼 교회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이 짐승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부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짐승이 그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훼방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믿지를 않고 행위에 의지해서 부딪칠 돌에 부딪쳤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짐승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전반부에 말씀을 하고 있는 짐승은 이 세상 종말에 나타는 어떤 짐승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가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그 이름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고 있지만 이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짐승이 되어서 그 이름을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7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성도는 이 세상에 혈과 육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싸움입니다.
육의 이스라엘을 육으로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이스라엘 안에 있었던 성도들은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대로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는 행위를 했습니다.
성도는 집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겼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타락을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와 행위를 하는 자가 싸우면 반드시 믿음을 가진 자가 지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그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서 이길 것을 허락받고, 또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서 이길 것을 허락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이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짐승에게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미 구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에게 성도들이 육적으로 졌습니다. 또한 이 시대 성도들 역시 육적으로 진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질 때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모두가 이기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수많은 성도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에게 졌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그렇게 성도들은 교회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8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때부터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있었지만 그 교회는 짐승이 되었는데도 모두가 그 짐승에게 경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짐승에게 경배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또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작입니다
이미 에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들어오고 난 후에 범죄를 하고 나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이후에 선택을 받아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 일들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않은 모든 사람은 다 이 짐승에게 경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도들만이 이 짐승을 분별하고 경배를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4:8절을 보겠습니다. (신 4쪽)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사단은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있습니다.
이 짐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 세상에서 영광을 나타내고 있고 그 영광에 사람들이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경배를 한다는 말씀은 그 영광을 마음속에서 좋아하고 따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의 것 어느 한 가지라도 그것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일단 경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맞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오래 참으시고 또 그들의 상처가 낫게 해 주셨지만 역시 그들은 짐승을 경배를 했습니다. 사단은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보이고 있고 그것에 다 경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행했던 행위들을 통해서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자기들도 그 영광에 참여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경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비유가 바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은 사단이 주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부자가 되어서 그것을 얻고 싶어 하는 개들과 함께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사람들은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하면서 부자가 되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뭐라 말씀을 합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영광을 보면 자꾸 그것에 끌리게 되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경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짐승에게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에 끌려서 자기 정과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단이 주고 있는 영광을 자기들의 눈으로 보면서 다 부자가 되려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도는 이 짐승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단이 줍니다.
사단은 이렇게 짐승을 만들어서 그에게 이 세상의 영광을 주면서 그를 따라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짐승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 있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그 당시 이 세상의 영광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었고 또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를 하던 민족이었지만 늘 그들은 곁길로 갔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랬던 것을 우리라고 안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다면 사단을 너무 우습게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림자와 예표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사람들 역시 똑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잘못을 했을지라도 자기들은 잘 믿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이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모르면 그는 결국 짐승에게 경배를 하는 자가 되어 죽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경배하지 않습니다.
왜 경배를 하지 않는가 하면 사도바울과 같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이 세상의 영광을 보고 경배를 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13: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412쪽)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두 번 나오고 있습니다. 17절에 누구든지라는 말씀이 또 나오고 있습니다. 이 누구든지는 17절을 말씀을 드리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짐승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바로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9절의 말씀은 666을 말씀을 하면서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을 하겠습니다.
10절 새번역입니다.
“사로잡혀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짐승은 권세를 받았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육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이 도무지 깨달아 지지가 않습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도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또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그 안에 오시지 않아서 복음을 훼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1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67쪽)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을 1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인내를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이스라엘 전체가 짐승이 되어서 홀로 당시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허다한 증인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었고 또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116:15절을 보겠습니다. (구 888쪽)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이스라엘에 성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을 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사도요한의 환상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성도들이 있었고 그 성도들이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36-38절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허다한 증인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인내를 하면서 믿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성도들이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방에 의해서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에 의해서 핍박과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적습니다.
짐승에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구약의 그림자를 보면서 마치 성도는 모든 것을 이기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데 실제 성도들이 어떠한 일을 당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했지만 사단에 의해 그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종말에 인내를 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종말이 왔을 때는 인내를 하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에 인내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진들이 이렇게 인내를 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세가 아닙니다.
이것이 말세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11장에서 이미 마지막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마지막 나팔이 불면 이 세상에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3장은 11장 이후에 나타나는 말세라고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휴거가 두 번 휴거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미리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휴거론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휴거를 생각하면 이미 11장에서 휴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휴거 후에 13장이 있다고 한다면 또 다시 인내와 믿음을 지키고 있는 이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이 다시 휴거가 된다는 것이 되고 그것은 성경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두 번 휴거를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이해를 못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분명히 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13장에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하면서 마치 두 번 휴거가 될 것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본 13장의 환상은 11장에서 마지막 나팔이 불고 난 이후의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이 세상 짐승이 어떻게 나타나고 그 짐승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환상으로 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첫째 짐승은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어떻게 짐승이 되었는가를 아직까지 진행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유대교를 환상으로 보고 말세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에게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도는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누가 주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은 반드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실제 성도가 얼마나 적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짐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인내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어떤 모양으로든지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믿음을 어떻게 가졌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짐승의 영광을 보면 누구라도 다 거기에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짐승은 정말 우리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정과 욕심을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게 이 세상의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인내가 성도들에게 있어야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그럼 이 짐승의 훼방에 빠져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또 짐승에게 경배를 하는 일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과 욕심에서 인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이라는 것에 정욕이 불 일 듯이 일어나고 욕심을 내다가 결국에는 사단에 의해 짐승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짐승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짐승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다음에 나오는 짐승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짐승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바로 알아야 다음에 나오는 짐승을 우리가 분별하고 인내로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을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우리에게 경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된 이스라엘 성도들을 성경을 통해서 그들의 인내와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잘 분별하시고 우리를 미혹하는 다음 짐승이 누구인가를 바로 깨달아서 그 짐승에게서 벗어나 영혼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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