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사무엘하 13:7-14절을 보면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저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암논이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남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 가로되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라 하니 다 저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성경은 도덕책이 아닙니다.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면 과연 이것이 성경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창세기부터 보면 거의 모든 예표들은 도덕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도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도덕이라는 그림자를 걷어내면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닙니다.
물론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나 되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도덕책도 아니고 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도 아니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이 성경을 보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암논이 도덕적으로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일로 암논이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암논의 육적인 죽음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암논과 같이 하면 그 영혼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도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고 젖이나 먹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도덕이라는 젖을 먹고 있다면 그 영혼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들과 같이 도덕적으로 의롭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으니까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생명에 대해서 그것을 간구하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소경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면 뭐 합니까? 이미 소경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는 눈이 거의 감겨져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면을 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글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면을 보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은 진짜 알레고리 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해석이 아니라 이면을 보는 것은 자기 생각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 답을 찾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자기 마음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해석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성령을 받은 것처럼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답입니다.
그것은 내 이성의 생각과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의 답은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실 어느 말씀은 아무리 찾아도 성경에서 그 답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정말 몇 번을 거쳐야 성경에서 답이 나오는 말씀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말씀들은 쉽게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교회에는 모두가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그 부분까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알레고리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은 천국을 들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아론과 모세와 일부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분명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에서는 멸망을 당했다고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그런 성경을 보고 답을 내야 하는데 그저 자기 마음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자기 말이 맞으니까 성경도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짐승이 되었으면 왜 그들이 짐승이 되었고 무엇이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자기가 성령을 받아서 성경을 보니까 그렇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이런 황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반드시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왜 짐승이 되었는가를 성경을 통해 분명히 가르쳐 주어여 합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가 그저 자기가 성령을 받아서 성경을 보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무조건 자기 말을 믿으라고 한다면 그는 쉽게 말해서 환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베드로후서 3:16절을 보면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경입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러 있다고 하니까 몇 가지 정도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계속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만 정말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아직까지도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인가를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제가 구원에 대한 말씀을 모른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구원에 대한 말씀들은 거의 다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말씀들도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설교로 올린 말씀들을 보면 구원을 받는데 있어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러 있습니다.
아니 많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것을 알기를 늘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그 말씀들을 바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 믿음으로 더욱 굳세게 설 수 있습니다. 정말 이런 말씀들을 풀어질 때 마다 우리는 더욱 믿음에 서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에 대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늘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 안에 성령이 오셨다 해서 내가 하루아침에 이 성경의 모든 비밀이 다 풀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무속적인 도깨비 방망이를 맞은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그런 샤머니즘이 아니라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셨다고 해서 내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일시에 다 알아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만 늘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대할 때 마다 정말 이 말씀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은 분명히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성경이 오셔서 모든 성경의 비밀을 다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교회 안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모 집사가 간증을 하면서 자기가 기도를 하니까 일시에 성경이 다 보여 지기 시작을 했다고 하고 자기에게 지혜가 더해져서 의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다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또 여러 가지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이스라엘로 믿게 하시기 위한 역사이지 마치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 예표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또 주님께서 그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도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마치 이 시대도 똑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이 시대 목사들에게도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표라는 것을 알면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 모르면 죽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망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얼기 어려운 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우면 절대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굳세지 못한 자들이 이 성경을 풀면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비밀입니다.
반드시 굳세게 서 있는 사람만이 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굳세게 서 있는 성도만이 성경을 바로 풀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이 성경을 해석하다가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비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 합니까?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문자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그 교회 안에 있는 수만 명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지옥 불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보면 뭐 합니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그것이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이단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먼저 해석하는 자가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자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지식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그것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보면서 지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지식을 알고 있는 것으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짐승 안에 있으면서도 그리고 음녀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지식으로 부자가 되어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저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암논입니다.
다윗의 장자입니다. 다윗은 아들을 많이 낳았는데 그 중에서도 장자가 이 암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처음으로 왕이 있었고 왕에 대한 모든 규례가 아직까지 명확하게 자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런 중에서 암논은 다윗의 장자로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이스라엘의 왕의 장자라면 못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암논이 자기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사랑했습니다.
이복 여동생이라고 해도 형제이다 보니까 자주 보았고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취하기 위해서 꾀병을 앓고 있었고 다윗의 귀에 들리다 보니까 다말을 얻기 위해서 그녀에게 자기 집에 와서 음식을 만들어서 먹게 해 달라고 해서 다윗이 그 말을 듣고 다말을 암논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음식을 차리라 했습니다.
다윗 왕의 명령이다 보니까 다말도 거절을 하지 못하고 다윗이 시키는 대로 암논의 집으로 가고 음식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다를지라도 분명히 암논과 다말은 이복형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다말 보다 더 예쁜 여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장자라면 얼마든지 그런 여자를 구해서 자기 아내로 삼을 수 있는데 암논은 다말을 사모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또 율법에서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어미는 아닐 지라도 다윗이 낳은 딸입니다. 하지만 암논은 자기가 장자라는 그 권력을 이용해서 다말을 취하고자 꾀를 내고 있습니다.
“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암논이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남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 가로되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라 하니 다 저를 떠나 나가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말이 자기의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보니, 그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다말이 밀가루를 가져다가, 이겨서, 그가 보는 앞에서 맛있는 빵 몇 개를 빚어, 잘 구웠다. 그리고 다말이 냄비째 가져다가 암논 앞에서 그릇에 담아 주었으나, 암논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하고는,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뒤에,”
다말도 공주입니다.
사실 음식을 만들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그때 상황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혼인이 오가지도 않는 공주에게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쉽게 않았을 것이고 또한 다윗의 명령으로 그 오라비를 위해서 과자를 굽는 일은 자기 혼자서 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과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예표를 먼저 잘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저 아비의 딸이 아닙니다. 이 예표를 왜 성경에 기록하셨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암논이 누구고 또 다말이 누군가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다윗의 아들과 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암논은 왕자입니다.
그러니까 왕 같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이미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삼기로 약조를 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다윗의 위를 이을 왕자라서 그 어느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다음 왕을 솔로몬으로 정하셨지만 그 당시 관심은 분명히 장자는 암논 이었습니다.
여자는 교회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말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그녀가 교회가 되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이런 구약의 그림자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6절을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하던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선을 행하고, 아무리 무서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라의 딸이 된 것입니다.”
사라는 교회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라와 하갈을 말씀하면서 이 여지는 두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라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받은 자이고 하갈에서 난 자는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두 여자는 분명히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개역에서도 너희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새번역에서도 여러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딸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모여서 새로운 교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라의 딸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많은 교회들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들을 베드로는 너희가 딸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말이 누구입니까?
딸 중에 하나입니다. 한 아비에게서 났습니다. 물론 베드로전서에서는 사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다말도 역시 그를 통해서 아들을 낳는다면 그것을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늘의 아들들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두신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님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왕입니다, 물론 그의 아내 역시 교회를 상징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말이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 교회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그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암논이 누구고 다말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도덕적으로 해석을 해서 마땅히 그가 그 아비의 딸을 취했으니까 율법에 따라서 죽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암논이 그 율법을 범해서 죽어야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율법에 따라서 압논이 죽었다면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 역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도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을 바로 깨닫는 것인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의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말이 무엇을 만들었습니다.
과자입니다. 그 과자가 어디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만나를 먹었는데 그것이 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말은 자기의 오라비 암논이 병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고 이 과자를 구워서 암논에게 먹이려 했습니다.
무슨 병입니까?
영혼의 병입니다 실제 그는 육체의 꾀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말은 그가 영혼의 병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고 이스라엘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과자를 구어서 암논에서 먹여서 그 병을 낫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 안에서는 병든 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든 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병이 든 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교회는 만나라는 과자를 구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먹었던 만나가 아니라 이제 생명의 떡을 구워서 주어야 합니다, 무교병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말은 그것의 예표입니다.
다말이 왜 암논에게 과자를 구워 주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암논이 아프다고 해도 다말도 공주이기 때문에 거절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말에게 과자를 구워주라고 합니다. 자기 딸 교회에게 자기의 장자 암논이 병이 들었으니까 과자를 구워 주어서 그 병이 낫게 해 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병든 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들을 위해서 생명의 떡인 무교병을 구워서 주어야 합니다. 지금 다말이 하고 있는 일은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다말과 같은 교회가 없습니다.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새번역입니다.
“다말에게 말하였다. "그 빵을 이 침실로 가지고 들어와서, 네가 손수 나에게 먹여 다오." 그래서 다말은 손수 만든 빵을 들고, 자기의 오라버니 암논의 침실로 들어갔다.”
어디서 먹어야 합니까?
무교병입니다, 그런데 암논은 이미 다말을 욕을 보이려고 자기 침실에서 그 구운 과자를 먹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대 암논과 같은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데 그 교회를 침실로 끌어들여서 자기가 사랑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제가 늘 강조를 하지만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물론 지금 다말이 아직 처녀입니다. 그럴지라도 그녀를 통해서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 같이 그 이삭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됩니다. 사라는 이삭 하나를 낳았지만 그 이삭으로 하늘의 별과 같은 아들이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말이 비록 아직은 처녀지만 그러나 그가 교회로서 완전히 성숙해지면 그녀를 통해서 아들들이 낳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처녀인 그 다말을 암논이 자기가 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이고 또 자기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암논의 죽음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의 죽음은 영혼의 죽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사랑했습니다.
당연히 암논으로서는 자기가 장자이다 보니까 다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암논은 이 다말이 누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자기의 동생정도로 생각을 하고 그 동생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녀를 어떻게 하든지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20:1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여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 죄를 당하리라”
이 율법 때문에 암논이 죽었습니까?
만약에 이 율법이 문제가 되었다면 다윗은 암논을 죽였을 것입니다 이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았다면 당연히 다윗은 암논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은 바로 이스라엘에 대한 율법입니다.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대로 또 다른 율법에 가록이 되어 있는대로 마땅히 죽어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암논이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죽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암논이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이 율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는 교회를 강제로 취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말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법이 없습니다. 제발 나에게 욕을 보이지 마십시오. 제발 이런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아 주십시오.”
암논이 다말을 취하는 것이 죄입니까? 악입니까?
그것은 육적으로 하면 분명히 죄입니다. 그것은 악한 일이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어겼으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스라엘 중에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암논이 하는 행위는 악한 일입니다. 표면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죄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적으로 자기 생명을 망하게 하는 악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이렇게 교회를 억지로 취하고 있는 암논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사모해서도 안 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암논이 되어서 다말을 강제로 취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이지 않는 교회는 다말과 같이 말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암논이라는 교인들이 강제로 취하고 있지만 그대로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죄가 아닙니다.
죄 같으면 암논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령 육적으로 이러한 죄를 지었다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적인 죄를 짓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암논과 같이 압살롬에 의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죄와 악을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창세전부터 예정을 하셔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악을 행하면서도 너무도 기뻐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열심을 내면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교회에게 수치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아내입니다. 이렇게 수치를 당한 교회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다말이 말하고 있습니다. 왕께 말하면 이 교회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면 그 교회를 너에게 맡겨서 그 교회를 통해서 많은 아들들을 낳게 하실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수치입니다.
교회를 탐하여 범하는 자는 주님의 아내에게 수치를 주고 있는 자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교회에게 수치를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를 자기들 마음대로 취하고 있습니다. 왕이 주어서 그 교회를 사랑해서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교회를 세워 놓고 수치를 주고 있습니다.
다말은 저항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저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암논과 같은 자들이 교회를 끊임이 없이 강제로 욕을 보이고 있지만 당하고만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종교화가 되기 시작을 한 325년부터 시작을 해서 이제까지 암논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교회는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뭐하고 합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 왕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정욕을 위해서 교회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기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암논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다말이 거절을 하고 있는데 억지로 자기 정욕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로마서13:14절을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정욕입니다.
다말이 아름다우니까 정욕에 빠져 그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정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아무 저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자기들의 정욕에 따라 억지로 동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암논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교회 안에 성도라고 하는 악한 자들이 그렇게 교회를 강제로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보니까 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고 그 교회를 강제로 취하는데 열심을 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참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 암논입니다.
교회를 정말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하면 마치 저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단에게 미혹을 당한 자처럼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교화가 되어 있는 이 시대는 암논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그 처녀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성도라고 해도 또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해도 이 교회를 건드리는 순간 그는 악한 자이며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암논은 자기 정욕을 위해서 육체로 자기 힘으로 다말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말과 같은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행위가 암논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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