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42강,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윤주만목사 2018. 11. 8. 19:55


로마서 강해 142

로마서 14:5절을 보겠습니다. (258)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주의 깊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영생에 대한 말씀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영이 구원을 받는 그것입니다 그 외에는 우리는 자유하는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믿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가 되었고 더 이상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13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셨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우리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는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14장에서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것의 비유를 성경에서 명확하게 찾지를 못해서 가장 비슷한 말씀을 생각에 떠 올리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잘 이해를 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행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와 그리고 외식을 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어떤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는 일이 아니면서 나타날 때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고 저는 그것을 이 시대 문상을 하는 것을 예로 들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상을 갔습니다.

누구는 가볍게 목례만 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아예 아무 것도 안 하고 상주와 인사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 아니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것이 먹는 자가 될 수 있고 먹지 않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중요하지 않은가 하면 이미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만 도모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는 성도입니다 그가 성도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의 육체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절대로 판단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구원을 받았는데 누가 감히 그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받으셨는데 저를 판단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이런 일이 없지만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나서 그곳에 장로를 세우고 떠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가 죽고 나면 분명히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 인생들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소경이 되어서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서 믿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이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인하여 서로에게 거치는 것이 될까봐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런 사소한 말씀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이제 뒤에서 그것이 거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형제가 근심을 하게 되면 형제를 네 식물로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정말 친절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일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해도 성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면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타나는 행위를 볼 때는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가 세움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또 넘어지는 자와 같이 보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성도라면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세움을 받습니다.

저가 어떻게 세움을 받았습니까? 로마서13장까지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저가 어떻게 세움을 받았는가 하면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어서 세움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원을 받았는가를 고린도전서6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신 것과 같이 우리 육체가 아닌 영으로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권능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으로 다시 살리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권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들을 세워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나타나는 행위를 통해서 먹는다고 하고 먹지 않는다고 하면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4장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1-2절의 말씀은 13장과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두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저를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143절부터의 말씀입니다

제가 만약에 성경을 편찬한다면 제목을 성도의 삶이라고 붙이겠습니다. 제가 제목을 붙이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성경에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무리 복음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성경에 첨삭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붙이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사실 이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늘 깨닫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아니라도 구원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성경을 편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조심을 해야 하는가를 새삼 느끼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이 시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고 복음을 깨닫고 성경을 편찬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첨삭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모든 말씀을 완전하게 풀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열심이 도리어 복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18:4절을 보겠습니다. (218)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성도의 삶입니다.

분명히 제가 보기에는 143절부터의 말씀은 성도의 삶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복음을 말씀하고 나서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제목부터가 잘못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 왜 사람들이 율법주의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 출발이 바로 안식일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도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안식일의 문제이고 그것을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예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도는 예배를 해야 합니다. 제가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이 예배의 문제는 늘 걸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걸림이 되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예배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요일과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을 예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예배를 모르다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형식적인 행위를 보고 예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모르니까 더욱 그런 보이는 모습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대대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안식일을 잘 지켰는가를 성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참지를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갈 때 광야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처리를 할 줄 몰라서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반드시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안식에 대한 의미를 안다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말씀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이라는 날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 날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문자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갈 때 시장해서 밀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주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자 주님께서는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는 것을 너희가 성경에서 읽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또 히브리서에서 저의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곳은 유대인의 회당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도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강론을 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강론을 했습니다.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이야기를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일 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강론을 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말씀하고 있지 않은 주일에 대한 타당성을 억지로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이것의 타당성을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아침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주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줄기차게 주장을 하다보니까 이제는 그 주일이 안식일과 같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안식일을 지켰습니까?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이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삶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모임을 가졌고 그 회당에는 헬라인도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그들이 어디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는가 하면 미국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타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교회라는 곳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교회 안에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민 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고 사람들과 교제도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안식일마다 가서 강론을 했습니까?

평일에는 사람들이 다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회당을 중심으로 안식일에 유대인과 그리고 그 주변에서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헬라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교제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연스럽게 안식일마다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주일입니다 그런 날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 시대도 여호와증인과 그리고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교회들은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들이 맞는다고 서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해서 서로 자기들이 지키는 것이 맞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맞습니까?

주일이 맞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지키는 안식이라는 날을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을 낫게 여겨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6절을 보겠습니다. (32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주일이 낫습니까?

안식일이 더 낫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14장에서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긴다고 하니까 마치 이 시대 종파가 다른 기독교인들이 서로 이 날이 낫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다 해서 모든 사람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복음을 듣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처음에는 다 지식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듣는 것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듣는다 해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람은 그것을 듣는 것으로 자기 지식이 있다 해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뒤에서 17절에서 다시 말씀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날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더 낫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골로새서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에 대해서 타당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긴다는 말씀을 보고 자기들은 주님이 부활을 하신 주일이라는 날을 낫게 여기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를 봅니다.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절기도 안 지켰고 월삭도 안 지켰고 안식일도 안 지켰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고 너희를 깎아 내리거나 헐뜯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입니다.

그리고 월삭과 안식일입니다 그것을 지켰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그것을 안 지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맞느냐고 하면서 그런 것도 지키지 않는 너희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성도라고 하는 것을 깎아 내리거나 헐뜯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안 지켰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안 지켰다고 해서 당시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켰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주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안식일에 대한 문제만 있었던 것으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단지 안식일에 대한 문제입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의 말씀과 골로새서의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것을 서로 다르게 본다는 자체가 잘못 성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면서 이 시대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에 대해서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같습니다.

그것을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안식일과 주일이 같다고 하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우리는 안식일이나 주일이나 같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킵니까?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때는 주일이라는 날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절기와 월삭과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고 그것으로 폄론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 안 지킵니다.

그리고 월삭도 안 지킵니다. 또 주일이라는 날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누군가 우리를 깎아 내리거나 헐뜯는다 해도 그렇게 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시대는 월삭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이 월삭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기는 당연히 지키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하던 것과 초대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하던 것을 실상은 그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안 지킵니다.

이것을 기독교인들이 보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를 깎아 내리고 있고 헐뜯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주 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몰라서 가만히 있지 만약에 우리가 커지고 기독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아마도 이단이라고 심하게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절기입니다.

그리고 월삭과 안식일입니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그림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림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 보고 있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열심을 내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주일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날을 낫게 여깁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켜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골로새서를 통해서 이미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일요일에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목요일에도 했었고 수요일에도 했었습니다. 왜 그 날에 우리가 예배를 했습니까? 그때는 그 날에 모이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낫게 여깁니다.

우리는 지금 일요일에 예배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날에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예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요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일이라는 날이 아니라 단지 일주일 중에 하루고 그 날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 다수가 다른 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하기 원한다면 그 날로 바뀌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초대교회에 성도들도 안식일에 모이는 것이 편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주의 만찬을 나누지 않았는가를 생각합니다.

 

모든 날입니다

어느 사도는 거의 모든 날에 강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느 특정한 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수 있는 모든 날에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누구는 어느 날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는 모든 날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을 정해서 해도 되고 아니면 모든 날에 해도 된다는 뜻으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에로 듭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모든 날을 한다는 것은 조금은 어렵습니다. 아니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저는 잘 외우지를 못해서 모든 날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날을 정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 한 날을 정해서 하는 것도 저에게는 때로 버겁게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면서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1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옷을 입어서 구원을 받는 성도는 이제 세상에서 자기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할 때 누구는 어느 날을 낫게 여기고 누구는 모든 날을 같이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8절을 보겠습니다. (356)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예배이고 그 예배를 어느 날에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는 어느 날을 낫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쉬는 일요일을 낫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날에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모든 날을 같게 여깁니다. 그 사람은 모든 날에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로마서14장의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무슨 말씀인가를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일을 지키면서 나는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스스로 무식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안식일이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로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왜 정하셨습니까?

그 날을 지키라고 정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날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씀을 하기 위해서 민수기에서 안식일에 나무 하는 사람을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습니까? 유대인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안식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그럼 주일은 새로운 날입니까? 주일이라는 날도 역시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고 이 시대 기독교인이 주일을 지킨다 해서 그것에 대해서 타당성을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지켰던 것과 같이 주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그림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는가 하면 그것을 10절에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입니다

우리가 쉬어야 하는 날입니다 자기 일을 쉬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자기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을 쉬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쉬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는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킵니까?

그리고 주일을 지킵니까? 그들은 아직까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는 성도는 이미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느 날이 낫는가 아니면 같은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안식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느 날이 낫습니까? 아니면 모든 날이 같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날을 낫게 여기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모든 날이 같게 생각이 되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의 안식에 들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이 그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43절부터의 말씀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 예배를 하는 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날을 낫게 여기는 사람도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고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사람도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습니다.

로마서143절부터의 말씀에 나오고 있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를 받으셨기 때문에 그가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 그가 교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정해 놓은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어느 날을 낫게 여길 수 있고 누구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는 성도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정해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7:7절을 보겠습니다. (270)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종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가 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도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이방의 교회를 다른 짐승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짐승이 되어 있는 종교는 자기들이 왜 짐승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위해서 악한 일만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종교가 되는 순간에 율법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모든 교회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유대교로 바뀌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예전에는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통일된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통해서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주일이라는 날을 통해서 종교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종교라고 하면 아마도 기독교인들이 저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를 이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주일이라는 날이 얼마나 중요하게 세뇌가 되어 있는 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어느 날을 낫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주일을 낫게 여겨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는 참 잘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주일이라는 날이 율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해서 지킨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 날을 낫게 여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이라고 합니다.

왜 기념이라고 하는가 하면 삼가 지키면 율법이 되니까 그것을 피하려고 주일을 기념해서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해서 지키든 삼가 지키든 지금 이 시대 매 주일 날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해서 이 날을 낫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주일에 대해서 필요성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가장 먼저 내는 리포트가 무엇인가 하면 주일에 대한 타당성에 대해서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서 정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것과 지금의 기독교에서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가 이제 예배를 하는 것에 있어서 어느 날에 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입니다

그것은 각각 마음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가 시작이 되면서부터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교에 의해서 주일이라는 날이 정해진 것이지 각각 마음에서 정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일을 지킨다 해서 그것에 대해서 마치 자기 마음에서 정한 것으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서 확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곳은 안식일을 의무적으로 지키게 하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곳은 주일을 의무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그는 무조건 이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곳에 속해 있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절대로 반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일에 대한 문제는 아니더라도 역시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당시 복음을 전하는 별과 같은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장로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로를 남편이라고 하고 있고 아내를 교회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혼인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다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 안에서 이 다양성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혼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교회와 장로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고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본적으로 장로는 교회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권도라고 말씀합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깁니다.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하는데 있어서 누구는 어느 날을 낫게 여겨서 그 날에 예배를 했고 누구는 모든 날을 같게 여겨서 그 모든 날에 예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날을 낫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날이 주일이 될 수도 없고 안식일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날이 설령 안식일이라고 해도 이 날입니다 또 이 날이 주일이라고 해도 역시 이 날입니다 안식일이 변해서 주일을 기념해서 지킨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입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날이라고 하지 않고 혹은 주일을 안식일보다 낫게 여긴다고 말씀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기념해서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 역시도 안식일과 같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날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주일이라고 하지 않고 이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깁니다.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날이 안식일이 되어서도 안 되고 주일이라는 날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에 지금과 같이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교회가 있어서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이 되었다면 사도 바울은 분명히 어느 날이 낫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일요일입니다

저는 이 날이 모든 날보다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이 쉬기 때문에 예배를 하기에 편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이 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날이 같습니까?

사실 어느 날에 예배를 한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모임이 불편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직업의 군에서는 특별히 쉬는 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날에 예배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율법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주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을 만들어 놓고서 로마서14장을 보면서 이 날을 낫게 여긴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만약에 이 날이 주일이 될 수 있었으면 사도 바울은 주일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확정이라는 단어를 보고 주일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정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특별한 날을 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확정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켜서도 안 됩니다

 

로마서14:6절을 보겠습니다. (258)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안식일 안 됩니다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도 안 됩니다 이 시대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이 맞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주일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안식일은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이제 주님이 부활을 하신 날을 기념해서 주일이라는 날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이나 주일을 지킬 것 같았으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14장에서 주일이든지 안식일이든지 분명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긴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이 율법이고 또 주일이라는 날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의미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입니다

분명히 안식일에 대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 안식일로 폄론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폄론하지 말라고 말씀을 했는데 로마서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 자체를 뒤집어 버리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역시 주일이라는 날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같습니다.

 

지키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주일이라고 해도 우리 성도는 주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 주일이라는 날은 이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저 날보다 더 낫게 여겨서 그 날에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그것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주일을 누가 지킵니까?

다 자기 육신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해도 역시 그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대한 종교가 2000년 가까이 지켜오던 것이라서 감히 어느 누구도 이 주일에 대해서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날을 중히 여깁니다.

정말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을 중히 여긴다고 해서 그 날이 주일이라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날이 지키고 있는 의미나 가치가 커서 지금 중히 여긴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로마서의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주일이라는 날을 아주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일이라는 날을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들이 정한 주일이라는 날을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합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자기들에게 주일이라는 날이 얼마나 중한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성도로 살려면 주일이라는 날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면서 그 날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그리고 주일을 지키면서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말은 사실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을 했습니까?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하는 말씀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주일이라는 날을 중히 여기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11절을 보겠습니다. (356)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기13:7절을 보겠습니다. (101)

칠 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네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

 

날을 중히 여깁니다.

누가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있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날을 중히 여기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고 난 후에 뒤에 있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날을 중히 여긴다고 하니까 앞에 있는 말씀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이 정한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지금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져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억지로 해석을 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날을 중히 여깁니다.

왜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가 왜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왜 우리가 혹은 이 날을 낫게 여기고 있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면서 시간이 될 때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성도가 모이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 날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면서 모일 때마다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날을 중히 여깁니다.

성도가 모이는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왜 중히 여기고 있는가 하면 그 날에 우리는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무교병을 먹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성경에 있는 문자를 아는 정도의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들이 복음을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모이는 주일이라는 날을 너무도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느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날은 주일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성도가 모여서 예배하기에 좋은 날을 정해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어느 안식인가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면서 모여서 유월절을 먹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예배를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들은 후에도 예배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영상을 통해서 그리고 문서를 통해서 듣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분명히 예배가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고린도전서11장에서 주의 만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로마서14장에서 날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날에 대해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해서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도 이 인터넷을 통해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떤 날을 중히 여기고 있는가 하면 무교병을 먹는 날에 대해서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인터넷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다 해도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의 만찬을 인터넷으로 충분히 나눌 수 있다면 제가 굳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날을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여서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날을 중히 여기고 있는가 하면 그렇게 무교병을 먹음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날을 정하셨습니까?

그 날을 지키라고 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날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날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주일이라는 날을 자기들이 정해 놓고서 그 날을 중히 여긴다고 하면서 율법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육신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사람들이 그런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치 않고 인애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주일이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제사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모입니다.

이 모임이 헛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이 모임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와 날을 정해 놓으신 것은 그 날을 지킴으로 해서 그 날의 의미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날을 지키는 일에 빠져 유월절에도 무교병을 먹지를 못 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도들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는 분명히 안식일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쉬는 날인 일요일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한 것은 저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무교병을 먹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긴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자기들이 주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들이 무엇을 해서 주님을 위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하는 일은 주님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악이 된다는 것을 이미 7장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이 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특히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주를 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먼저 기초가 무엇인가를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기초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 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모든 구속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에 들어가시고 이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구속의 일을 믿을 수 있게 되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저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서 구원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그 날에 우리가 무교병을 먹기 위해서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 날에 우리가 무교병을 먹음으로 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를 위하여 날을 중히 여기면서 우리 성도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모든 말씀이 우리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날을 중히 여긴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종교에서 정한 주일이라는 날을 중히 여기면서 도리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주일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를 위하여 살았다고 해도 그것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그가 주를 위하여 산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구원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입니다

 

주를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4장은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말씀하고 있다고 3절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를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주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인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사람의 이성을 따라 자기들의 행위가 좋으면 주를 위하여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주를 위하여 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기초부터 다시 성경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말씀도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이해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저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를 위하여 산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달란트의 비유를 보았습니다. 누가 주를 위하여 산 사람입니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를 받는 사람은 주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지극히 적습니다.

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지극히 적습니다. 보이는 교회에 기독교인이 많은 것으로 주를 위하여 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의 이성을 따라 주님을 위하여 산 사람이라고 해도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했다면 그는 주를 위하여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6:57-58절을 보겠습니다. (154)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날을 중히 여깁니다.

왜 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그 날에 모여서 성도들이 무교병을 먹고 있기 때문에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왜 중히 여기면서 우리가 무교병을 먹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서 저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입니다.

어느 날인가에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성도는 이렇게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있다면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단정을 지어서 말씀을 드리지는 않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왜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가 하면 그 모임을 통해서 주의 만찬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먹어야 하는가 하면 그것을 먹지 않고는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자기들이 먹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누룩이 섞여 있는 유교병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문자로 보고 있는 성경은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도리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왜 저주를 받았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먹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더 많이 먹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먹었는가 하면 성경의 문자를 외울 정도로 먹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습니까?

나를 위하여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의 지식을 위하여 먹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듣고 있지만 그것이 다 누구를 위하여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의 육신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먹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먹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은 주님을 위해서 먹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서 그저 막연하게 문자를 아는 것으로 주를 위해서 자기들이 먹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 줄도 모르면서 먹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입니까?

사람의 이성에 따르는 지식입니까? 그것은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복음을 몰랐습니다. 아니 문자를 아는 지식은 뛰어났지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이 남겨 놓은 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문맹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보니까 누구나 쉽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먹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누구나 대학을 나오고 있는 이 시대는 한글개역성경을 보는 것은 마치 초보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히브리어에 헬라어를 배우고 있고 심지어는 영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먹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지식으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먹으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하여 먹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알고 있고 또 보이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먹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주의 만찬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감사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습니까?

주를 위하여 먹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가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 감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영원히 삽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이 영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그들에게서 역사를 하지 않으니까 감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생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들은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생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해서 이 영생에 대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 그것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나를 위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이루기 위해서 먹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이 탄생이 되고 있고 그 영이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습니다.

 

고린도전서8:8절을 보겠습니다. (272)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성도입니다

로마서143절부터의 말씀은 성도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13장까지 모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먹는 자도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있는가 하면 영생에 대한 말씀을 먹고 있습니다. 날을 중히 여기면서 이 영생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하고 있고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상의 제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자유하는 성도는 사실 우상의 집에 가 있는 다 해도 절대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도 됩니까?

말씀으로는 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이 지식이고 이것을 식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을 받는 성도가 우상의 집에 가서 앉아 있는 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이제는 우상의 집에 가 있지를 않습니다.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상의 집에 가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의 집에 가 앉아 있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상의 집에 가서 앉아 있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우상의 집이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상의 집에 가서 앉아 있을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있습니다.

정말 나를 위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의 집에 가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먹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먹지 않고 있는가 하면 혹시라도 내가 우상의 집에 가 앉아 있는 것을 누군가 보고 담력을 얻을까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그가 담력을 얻어서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상의 집에 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을 식물로 먹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에게는 필요할 수 있지만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