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31강, 남자답게

윤주만목사 2018. 10. 23. 14:08


31, 남자답게

고린도전서 16:13절을 보겠습니다. (285)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믿음에 굳게 서는데 방해를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가끔 이단이라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단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서 이단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편지를 보시면 잘 알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만 전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왜 이단이라고 합니까?

율법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라고 전하는 그리스도편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믿음을 굳세게 서서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늘 우리는 정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는 일보다는 이제까지 2000년 가까이 교회가 지켜오던 율법을 안 지키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쉽게 율법주의가 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도 율법이 들어오니까 속히 다른 복음에 빠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율법이 들어온 교회에서 오직 믿음으로 서 있는 다는 것은 정말 굳세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굳세게 서 있게 성령이 감동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습니다.

굳세게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순간 넘어집니다, 지금 이 시대 사단이 무엇으로 넘어뜨리고 있는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죄로만 넘어뜨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도 아는 초등학문입니다 이제 그 초등학문에서 벗어나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율법이 아무리 미혹을 해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자답게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남자답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자는 굳세게 서지 못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생리적인 남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를 남자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답게라고 하니까 마치 남자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같이 서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율법이 바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이성적으로 맞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키지 않습니다. 정말 남자답게 굳세게 서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3절을 보겠습니다. (335)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사도 바울은 악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모르다 보니까 그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됩니까?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보고도 아니 자기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감각이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래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마치 문둥병이 걸려 있는 것처럼 성령이 감동을 해도 감각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의 행위 저주 아래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주의 말씀이 달음질 하여 영광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주의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장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의 문자는 그저 이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주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내가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릅니다. 믿음은 성경에서 주의 말씀을 아는 것에 달음질 하여 주의 영광에 이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종교의 행위에 빠져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남자답게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굳게 서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러움에 참예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자기가 이 세상의 지적인 능력으로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주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악에서 내 스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은 악을 깨닫지도 못하고 악에서 나올 능력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주님의 기도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씀을 하셨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악에서 나와야 합니다.

내가 악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믿음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한 율법의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악에서 내 이성으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으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에서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악의 모양이 믿음이 있는 성도의 행위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을 많이 행하면 행할수록 사람들은 저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악을 가장 많이 행한 그 사람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사단이 그렇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하고 또한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음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키고 또 누구나 인정을 하는 욥이 바로 악한 자입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 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욥은 이 세상 이성으로 보이는 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인 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회개하게 하시고 구원을 하시는 가를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욥기의 말씀입니다. 욥은 율법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은 가장 악한 악인이었습니다.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는 욥이 이 세상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 모든 행위가 악한 일인데 그것을 오히려 나타내고 있고 심지어는 그 악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주는 미쁘십니다.

우리 성도를 이런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십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 할례를 받으라고 하니까 속히 다른 복음으로 떠나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은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주는 미쁘셔서 너희를 악한 자에게서 건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자는 늘 교회에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이성에 옳은 것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옳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입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악에서 건져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셔야 합니다. 내 스스로도 성경을 보면서 악에 빠질 수 있고 또 악한 자의 말에 미혹이 되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할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선지자가 있었을 때 그 당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이 몇이나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매지 않고 자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지극히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끊임이 없이 교회 안에 율법과 외식적인 행위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아주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보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직 못 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 주시고 또 악에서 건져 주셔서 지금 주의 만찬을 먹고 있으면서 믿음에 굳게 서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14절을 보겠습니다. (35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오직 예수라는 말씀을 해도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이 말씀을 감동 받아서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 압니다.

그러나 정작 루터 본인도 이 말씀을 몰랐습니다. 만약에 그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알았다면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을 어느 정도는 버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가 율법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의 루터 교회 역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알면 뭐 합니까? 그렇게 힘주어서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이 대제사장이라는 것도 거의 문자적으로만 알고 있지 대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다 라고 보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그저 아! 주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구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땅에 있는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서 단번에 드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속죄를 받았습니다.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의 제사로 깨끗한 백성으로 산다는 것을 구약의 율법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단번 속죄를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깨끗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믿는 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영혼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육적으로 지은 죄를 매일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어느 집회에서는 그것을 고백해서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적인 죄를 자기 입술로 고백하는 회개를 하는 그 한 가지만 보아도 믿는 도리를 굳게 잡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냉정하게 말씀을 드려서 믿음이 있는 성도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굳세게 서시기 바랍니다,

정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바로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에 빠지지 않고 또 악한 사람에게서 건짐을 받으려면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아닌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과 복음을 섞어서 듣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복음으로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믿음에 굳세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5:2절을 보겠습니다. (307)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그래도 처음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참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주로 복음이 들어왔지만 그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 저를 욕할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이데오르기 사상에 빠져 있어서 극단적인 친미주의자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반미를 외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미국에 대한 고마움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마움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고마움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고마움과 영적인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 교회의 모토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합니까?

신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학 박사라는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고 들어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환영을 하고 있고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왜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것은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추수감사절 한 가지만 해도 이미 다른 복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단 한 가지도 다른 복음인데 성경에도 없는 추수감사절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도 감각이 없어 그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를 통해서 감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아무 유익이 없는 절기를 지키면서도 그들은 감격해 하고 있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감각이 없는 병이 들어 있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입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올 때 수많은 율법이 함께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른 복음을 가지고 왔고 그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의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율법주의가 되어 있습니까?

하지만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자기들보다 더 많이 지킨다 해서 그들을 율법주의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안식일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율법주의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일 교회나 주일을 지키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나 똑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익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도 바울이 그것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할례를 받은 그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영생을 받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교회에서 살면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정말 누가 보아도 그리스도인과 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무 유익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할례 단 한 가지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너무 담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하고 있고 또 마땅히 성도가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들어올 때부터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이 율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주입니다.

그리고 지옥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한 그 지옥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 있게 우리 교회는 율법을 안 지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런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말로만 폐했다고 하지 실제로는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을 지키고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3:4-9절을 보겠습니다. (321)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을 이야기 합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 육체를 신뢰한다고 말을 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바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고 도리어 다른 복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를 신뢰할 만합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으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만 그랬습니까?

사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러 온 부자 청년도 주님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던 그것이 자기에게는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육체의 사람에게는 유익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육체를 위해서는 분명히 유익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육체적으로는 유익했습니까? 그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유익했는가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회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분명히 유익합니다. 유익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육체적으로 해가 된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지금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다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 목사들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분명히 유익을 얻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목사가 있습니다.

예전에 청계천 철거민들을 위해서 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약한 자들의 편에서 정말 투사와 같은 모습으로 싸워서 많은 사람들이 저 목사는 정말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그 육체적인 유익이 지금은 부자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육체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존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것이 유익이 되어서 지금은 대형교회를 아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은 분명히 자기 육체에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그 육체의 유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해로운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해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자기의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도리어 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지켰던 모든 율법의 의가 해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의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왜 배설물과 같이 버렸는가 하면 육체에는 유익을 주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해가 되기 때문에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하면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의가 유익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고 해가 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서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는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지키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유익이 없는데 무엇 하러 믿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싶으면 차라리 세상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도리어 조금이나마 유익이 되어 최소한 음부의 고통 중에는 들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종교에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속은 것 같이 이방의 교회가 기독교에 속고 있고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7:22-23절을 보겠습니다. (918)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할례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할례를 의무적으로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할례는 율법입니다, 모든 율법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할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익이 있으면 구원을 받고 유익이 없으면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죄인이 음부의 고통 중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게 되면 특별한 형벌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악한 일입니다. 세상의 이성적 상식으로도 죄인이 받을 벌과 악인이 받을 벌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는 두 남편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음녀라고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그리고 들어갔습니다. 이 소년은 그래도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고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해도 역시 소년입니다.

알지 못 합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이 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가는데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러 가는 길을 가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 까지 이르게 되고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계집 종의 교회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거대한 종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역시 이 소년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종교입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종교는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아무 유익이 되지 못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에 교회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게 돼서 이 소년과 같이 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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