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32강,생명과 사망

윤주만목사 2018. 10. 23. 18:11


32,생명과 사망

신명기 30:19절을 보겠습니다. (311)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광야입니다.

그곳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은 성막입니다. 그러면 사망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받았던 아니 그들이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던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생명의 복과 사망의 저주를 함께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보다는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사망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말씀들은 다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율법을 함께 주시면서 생명의 복과 사망의 화를 이스라엘 앞에 두었지만 이스라엘은 사망과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다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이 말씀은 지금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생명의 복과 사망의 저주를 같이 주시고 있는데 그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어느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느 것으로 살려고 했습니까?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살려고 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서 살려고 한 그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사망과 저주를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성막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생명과 복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택했습니다. 내가 어떤 이유에서 율법을 지키는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신명기에서 생명의 복과 사망의 저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서 생명과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면서 똑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말 합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십일조를 내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복을 누가 주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생명과 복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생명과 복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생명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면 분명히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명기에서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얻으라고 성막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막을 보고도 제사를 드리는 행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성경에는 복음과 율법이 있습니다. 물론 둘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모두가 한 결 같이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아무 생각이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율법의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복음과 율법이 다 생명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생명만 있고 율법에는 저주가 함께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 생명을 다 택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둘 중에 하나만 택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생명입니다.

복음도 생명이고 율법도 생명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둘을 다 택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을 택하면 율법은 사라집니다. 또 여러분이 율법을 택하는 순간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해도 복음은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6:24절을 보겠습니다. (9)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주인과 율법이라는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이라는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고 율법이라는 주인은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얻어지는 의입니다.

섬기지 못 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는 이 두 주인을 함께 섬기고 있는 것 같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두 주인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두 주인을 함께 섬기고 있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고 있는 것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이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라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망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두 주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두 주인을 아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겸하여 섬기지 못 합니다.

주님이 못한다고 하셨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안 믿고 율법을 지키는 것임을 바고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를 강해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순간 생명이냐 사망이냐가 따라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안 했습니다.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했을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생명을 얻느냐 아니면 사망을 당하느냐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를 미워하면 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이도 사랑하고 저도 사랑하는 절묘한 제안을 내 놓고 있고 거기에 모두가 빠져 사망에 이르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은 것입니까? 주님이 옳은 것입니까? 이도 사랑하고 저도 사랑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옳은 것입니까?

이 시대는 주님의 말씀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를 미워하면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둘 다 미워할 수 없고 또 둘 다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는 미워하고 어느 한 가지는 사랑을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뜨리고 둘 다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안 된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둘 다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뛰어 넘는 아주 놀라운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의 의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이 시대는 절묘하게 이 둘을 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압니까?

제가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율법의 주인을 섬기고 있는 사람은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거나 이 말을 듣는 것 자체를 아주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지 못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사랑하고 있는 그 율법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그런 모든 행위가 악하다고 하면 참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분명히 주님께서 미워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미워해야 합니다. 왜 미워해야 하는가 하면 그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내가 사망에 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망에 빠뜨리는 그것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미워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워하기 보다는 도리어 더욱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자기를 사망에 빠뜨리고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생명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사망에 빠뜨리고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은 당연히 미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율법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냥 원수가 아니라 나를 죽이는 원수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꼴이 되고 맙니다.

사도행전13:39절을 보겠습니다. (210)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복음과 율법입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의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역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왜 지키는지 그리고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성경을 얼마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이 자기 영혼을 저주 받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는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으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이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아니 성경에서 그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은 의로운 사람이 갑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육체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율법 외에 나타난 다른 한 의를 믿게 하셨습니다.

신앙은 감성이 아닙니다.

철저할 정도로 지식적이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도 감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감성에 빠지는 순간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평생을 읽어도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는 눈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결국 인생의 감성에 젖어 사망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입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에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입니다.

이것은 두 주인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시해 주는 두 주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인생의 감성에 젖어 율법을 보고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가 율법의 행위를 하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 의롭다 함이 함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누가 인정합니까?

지금은 교회 안에서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인생들의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을 자기들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죄만 더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순간 죄가 더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더해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율법의 행위에 취해 감각이 마비가 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세상에서 율법의 의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이제 주님을 영접하고 힘입어서 의롭다 함을 얻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성경에서 보면 뭐 합니까? 이 말씀을 보고도 그 의미를 모르고 그저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니 정말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나를 의롭다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만 더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서 죄만 더 나타나게 하는 그 율법을 이 시대는 도리어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환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몇 가지 지키는 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면 죄가 되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보고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몇 가지가 아니라 온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누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낼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자기들이 내고 있는 소득의 십일조를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율법이라고 하기 보다는 믿음이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내가 믿음으로 했더라도 율법은 율법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십일조를 냈더라도 그것은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믿음이 됩니까?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면서 그 의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계량에 따라 좋은 곳에 간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너희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해서 율법을 지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저주 받게 하는 원수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면 도리어 원수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2:13절을 보겠습니다. (241)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율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 때문에 모두가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마치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단어를 아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율법을 듣는 자가 의입이 아닙니다. 어느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지키신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말아야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의 말씀도 문자적으로 율법이라고 말씀하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613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는가를 성경은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의미를 모르고 그저 문자에 사로 잡혀서 도리어 이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의롭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이미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인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37:22절을 보겠습니다. (828)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단 하나의 율법입니다.

그것이 저주를 받게 했다는 것을 에덴에서 아담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에덴에서 많은 율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를 범함으로 해서 아담이 저주를 받아 땅에서 죽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그들이 실제로는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가 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그런데 교회 안에서 살인을 마음 놓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얼마나 살인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는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습니다.

누가 주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까? 교회 안에서 지혜가 없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가 주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가 성도로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인가 아니면 저주를 받아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갈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저주를 받는 일입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의롭다 함이 따라온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역시 의롭다 함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은 저주를 주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는 자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들을 때는 그가 오직 예수를 전하는 참 목사와 같을지라도 그가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내고 있다면 그는 오직 예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 것에 있어 복음과 율법은 분명히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동전을 보면 양면을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리니까 율법을 지키면 복음이 안 믿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동전의 면이 바뀌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대쪽의 동전의 면이 안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앞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뒷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을 함께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거울을 이용하면 볼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과 복음은 우리 인생들이 얻을 수 있는 생명의 두 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전체 율법을 말씀하는 것이고 그것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의 싸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는 성도는 자기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의롭게 되지 않고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자는 어떻게 합니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주를 받은 자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저주를 받은 자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3:24절을 보겠습니다. (24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은혜에서 떨어진 자입니다.

누가 은혜에서 떨어진 자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사람이 두 가지 의를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 두 가지 의를 함께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율법 외에 다른 한 의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의롭게 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의롭게 되려고 합니까? 의롭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거저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은혜로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쫓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혜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왜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빚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빚을 누군가 갚아 주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그것이 큰 은혜입니까? 그렇게 빚을 갚았으면 이제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빚을 갚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찾아가서 내가 빚을 갚겠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가서 내가 그것으로 빚을 갚고 싶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더구나 그를 너무도 사랑해서 내가 아무 조건이 없이 빚을 갚아 주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찾아가서 내가 빚을 갚게 도와 달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그는 빚을 갚아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아무 조건이 없이 주셨습니다. 더구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거저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쫓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계십니다.

두 남편입니다.

복음과 율법은 두 남편입니다. 여자가 있습니다. 한 남편이 값없이 모든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또 다른 남편에게 가서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한다면 값없이 준 남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럼 그것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 다른 의를 따라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질투를 하십니다, 아니 질투하시기 전에 그 율법이 저주를 받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킬 때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켰느냐고 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물을 때 어느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에 기록이 된 대로 이 모든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다른 핑계를 댄다 해도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더 이상 율법의 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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