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28강, 잠언의 비유

윤주만목사 2018. 10. 22. 18:23


28, 잠언의 비유(4가지 비유)

잠언 30:21-23절을 보겠습니다. (945)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 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세상을 진동시키며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참 성경의 비유는 오묘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잠언의 말씀을 보고도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저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계집종이 어디 있고 주모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이 시대 계집종이 없다고 해서 이 말씀이 우리와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계집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계집종이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분별이 안 되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계집종이 시집을 갔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도 시집을 갈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100여 년 전만 해도 계집종이 있었습니다. 이제 민주주의 사회가 되고 인권이 강화가 되다 보니까 그것이 사라졌지만 계집종이 근대에 이르기 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집을 갔습니다.

지금 성경이 그런 육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설령 계집종이 있어서 시집을 가면 어떻습니까? 그 계집종이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합니까? 절대 그렇지가 않고 계집종이 시집을 간다 해도 세상은 진동하지도 않고 아주 평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계집종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잠언에서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집종이 시집을 갔다는 것은 계집종의 교회가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교회가 생기면 세상을 진동하게 만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교회에서는 성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계집종이 시집을 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 계집종으로 해서 아들을 낳게 되면 다 종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교회가 하나 생기면 어떻게 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 안에는 모두가 종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계집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 계집종이 시집을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게 되고 모두가 진노를 받기 때문에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가 율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이 시대 과연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합니까? 그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뜻을 모르면 그는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계집종이 왜 시집을 가면 안 되고 계집종이 그 주모를 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모를 이으면 그 주모의 교회를 또 다 율법주의 교회로 만들기 때문에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갈이 사라를 이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삭은 절대로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삭이 태어나지 못하면 세상은 진동을 하고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할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이 잠언의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시집 간 계집종에서도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을 내서 잘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계집종에서 하나는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계집종과 자유 하는 여자는 교회를 예표하고 있고 두 아들은 그 안에 있는 가라지와 성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계집종의 교회는 수도 없이 많고 자유 하는 여자의 교회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4:23절을 보겠습니다. (307)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인간적인 육정의 소생이었고 본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계집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 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을 따라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계집종이 시집을 가거나 주모를 이으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가 하면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종과 아들입니다.

종은 육체를 따라 났고 아들은 약속을 따라 났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실제 창세기에서 예표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고 약속의 아들 이삭이 어떻게 태어나는 가를 보여 주셨고 사도 바울이 그것을 예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나면 안 됩니다

지금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따라 육체를 따라 난 자가 될 수 있고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하면 율법과 복음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서 났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고 자기는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나는 것이 무엇이고 약속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알면 뭐합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약속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약속의 자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교인들은 목사가 약속의 자녀라고 하면 마치 자기가 약속의 자녀가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은 육체를 따라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히브리서7:16절을 보겠습니다. (359)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그 자손이라고 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육체의 상관된 법을 쫓아 사는 사람을 계집종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체에 상관된 법을 좇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상관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습니다.

계집종에서는 육체를 따라 났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교회에서는 육체를 따라 난 자만 있습니다. 그 교회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과 복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도 그는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지만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지 않았습니다.

육체를 따라 났습니다.

그 말씀은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교회가 계집종의 교회인가 아니면 자유하는 여자의 교회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입니다, 그것은 그 교회가 육체에 상관된 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는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계집종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드시 레위 지파를 따라 난 사람이라야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고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주님은 레위 지파를 통해서 오셔야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지 않으셨지만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상관된 법으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따라 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행위의 표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체를 따라 났기 때문에 자기들의 대제사장은 인정을 했어도 주님께서 무궁한 능력을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세상을 진동시키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계집종의 교회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육체로 났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서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라는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면서도 약속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저 자기들에게 좋은 말로 해석을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조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 아닙니다.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교회 안에서 지키면서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성립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억지입니다.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계집 종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육체의 상관된 계명을 버리고 약속을 따라야 합니다.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백성이라면 마찬가지로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1:1절을 보겠습니다. (343)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입니다.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무궁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무궁한 생명의 약속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무궁한 생명을 약속 받았습니다. 아들과 종의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들이라고 해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아들이 누군가를 알아야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웃깁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아들이라고 하면 그냥 아들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가를 모르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아들이라고 하면 아들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누가 그것을 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계집 종의 교회도 보고 있고 자유하는 여자의 교회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집 종의 교회는 육체의 상관된 법을 좇아 지키면서도 성경에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계집 종은 육체를 따라 났습니다.

그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습니다. 그러면 육체를 따라 나는 것이 무엇이고 약속을 따라 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저 약속을 말미암아 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무조건 약속을 따라 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상관된 율법을 지키는 계집 종에게서 났습니다.

생명의 약속입니다.

율법이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이제까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의 행위 아래 속한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것인가 듣고 믿어서 의롭게 될 것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디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저주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약속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율법에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생명의 약속을 받았다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할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그는 계집 종에게서 난 종입니다,

육체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육체를 따라 난 사람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를 따라 난 아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체를 따라 난 자들도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나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무궁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를 해서 말씀할 때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육체를 따라 난 자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뭐 합니까?

주여 주여 하면 뭐 합니까? 창세기에서도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좇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다 해도 계집 종의 아들이 되어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주님께서 분명히 도무지 모른다고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에게만 생명이 있습니다,

율법은 생명과 저주가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주시고 이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율법을 지켜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아무리 그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한다 해도 그 교회에는 무궁한 생명이 없는 그저 종교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4:24절을 보겠습니다. (307)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은 시내 산에서 나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하갈과 사라는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구약을 볼 때는 그림자로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결국 비유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모든 예표들은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알아 가는데 있어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은 비유입니다,

그들의 육은 우리의 영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서 문자 그대로 본다는 것은 비유를 그냥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국어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림자라고 하면 그것은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비유로 보아야 성경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문자 그대로를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구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깨닫지를 못하다보니까 성경에서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인물과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그저 문자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절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백번 정도 읽고 해석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국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아니 성경을 읽는 사람은 먼저 국어를 공부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국어를 공부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국어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릅니다.

모르니까 비유라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비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것이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약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그림자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고 그것이 교회를 타락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입니다.

다시 강조를 하지만 이 성경만 바로 알아도 우리는 구원을 받는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성경이 얼마나 잘 번역이 되어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두 여자는 두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여자는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 두 여자는 어느 언약을 지키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 교회가 있습니다. 이 두 교회는 아브라함의 부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씀할 때는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갈입니다,

그녀를 사도 바울은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인데 그 중에서 하갈은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 산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를 우리가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출애굽기31:18절을 보겠습니다. (131)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언약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가 바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입니다 두 증거 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갈이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증거판이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첫 언약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율법을 첫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증거판의 십계명이 첫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하갈은 이 시내산에서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갈이 실제 시내산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났습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것도 가나안이고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도 가나안입니다. 그러나 이 두 여자는 두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하갈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가나안에서 낳았지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여자는 두 언약인데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은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문자적으로 지키는 율법을 히브리서에서는 첫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종인데 어떻게 사는가 하면 첫 언약을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같이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자기들이 약속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자유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하갈과 사라를 통해서 종과 아들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시내산에서 주신 첫 언약을 지키는 그들이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종입니다, 성경에서 시내산에서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종이라고 했으면 지금도 시내산에서 받은 첫 언약을 지키고 있으면 다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갈의 교회는 주여 주여 하면서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있으면 다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을 낳은 하갈입니다.

시내산으로 부터 낳았다는 말씀은 시내산에서 받은 첫 언약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갈에게서 낳은 자는 종이 된다는 말씀이며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서는 종만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첫 언약입니다.

아담도 이 첫 언약을 어겨서 정녕 죽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 언약에 속해 있다가 결국에는 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두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언약이기도 합니다. 두 교회가 똑같이 주님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의 종이 되었고 한 교회는 진리를 알아 자유하고 있습니다.

하갈의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반드시 종만 낳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교회가 있다면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으로 물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종과 아들로 말씀을 하고 있고 종을 낳는 교회가 어디고 아들을 낳는 교회가 어디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갈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시내산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산입니다.

갈라디아서4:25절을 보겠습니다. (307)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갈'이라 하는 것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입니다. 그런데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갈의 언약은 율법의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나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했습니다.

모세가 언약서를 낭독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우리가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한 첫 언약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언약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율법이 말하는 바를 말씀하시면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갈은 시내산을 뜻합니다.

그 시내산은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가는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너희가 진리를 모른다고 말씀을 하시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누구의 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시내산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시내산에서 첫 언약을 한 그 율법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율법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율법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예루살렘은 어느 언약에 속해 있는가 하면 시내산에서 반포 되었던 첫 언약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비유가 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교회가 시내산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갈의 교회입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다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의의 싸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종이 되어서 그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자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두 언약으로 비유를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신분입니다.

종과 아들은 전혀 다릅니다, 성경에서 종은 유업을 얻지 못하고 아들이 유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말씀을 보고 무조건 아들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들이면 아들로 살아야지 종으로 살면서 아들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그 말씀을 하시자 듣고 믿었습니다.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당연히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은 종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들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어려서는 같이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종과 아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에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은 율법을 지키고 아들은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율법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를 못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혈통으로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또 자기 조상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의 의미도 모르고 할례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린 것과 할례를 행한 것을 보면서 자기들도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키는 가만 알아도 육체의 사람이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율법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영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여자를 두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언약인데 하갈은 율법이 반포된 시내산에서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시내산은 지금의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종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여자를 비유로 해서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을 낳은 교회가 있고 진리를 알고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낳는 아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종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자기가 종인지 아들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반포된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다 종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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