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26강, 초등학문​​

윤주만목사 2018. 10. 22. 07:38


26, 초등학문​​

골로새서 2:8절을 보겠습니다. (326)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노략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짐승이 되어서 성도들을 노략하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을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철학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거의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철학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가치를 가장 높게 형성하는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철학에 빠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이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나중에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 사람들이 참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배웠습니까?

인생의 가치를 생각하고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배웠습니다, 그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너무도 불을 보듯 빤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면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도덕을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입니다.

거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결국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추구하고 있고 그런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실 불교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고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만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철학입니다.

불교의 경전이 철학이고 논어와 공자가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책들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최고의 지성에 이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아

나는 벌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렁이에게 무슨 철학이 있고 벌레에게 무슨 철학이 있습니까? 그저 이 세상에 나와서 자기 정욕대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철학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우리는 벌레입니다, 그리고 지렁이 같은 사람입니다,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렁이가 지식이 어디 있고 지렁이가 인격이 어디 있고 지렁이가 겸손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 철학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신앙은 나를 아는데서 부터 출발이 됩니다,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 거짓에 불과하고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를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철학이 들어와 인생의 가치와 존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이 세상의 철학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한 없이 낮아지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나를 높여 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종교가 되면서 이러한 철학이 들어와서 자기들의 가치를 높이고 존엄을 이야기 하다 보니까 그런 행위들이 교회 안에 만연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이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이 없이 연구를 해서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철학에 노략 당할까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누가 철학을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어떻게 하면 오를 수 있는가를 각자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합니까?

인생을 보고 지렁이 같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심한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다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딴에는 철학을 배워서 인생의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고 실제 그것을 위해서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지렁이 같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듣기가 싫겠습니까?

진토입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지고 맙니다, 철학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 그 가치가 있어서 났으니까 이제 사람답게 세상에서 산 흔적을 남기고 인류의 발전에 공헌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사람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도서에서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헛되면 전도서에서 계속해서 헛되다는 것을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인생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겉을 회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겉을 회칠해보아야 그 속은 죽은 시체가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철학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상에서 패러다임이 있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없습니다.

가식입니다.

그리고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이 세상 철학에 그대로 속고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철학을 추구하느라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철학을 더 고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논하는 자체가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국가, 사회, 종교가 다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신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이 지었으면 지렁이 같이 살아가는 것이 바른 모습입니다, 그 지렁이가 얼마나 고상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생각이 철학이라는 말씀입니다.

 

초등학문입니다.

그런 철학을 가지고 고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철학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얼마나 철학에 깊이 빠져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사람의 이성으로 이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철학을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50)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된 속임수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다툼입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은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다툼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율법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그 율법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세상 학문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배우는 것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배우고 있는 성경적 지식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배우는 것도 초등학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에 대한 다툼입니다, 그런 율법에 대한 다툼은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가지고 다툼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통과 이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단 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런 이단들과 정통과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바로 율법에 대한 다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안식일 교회를 이단이라고 합니까?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다툼을 하면서 서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율법에 빠져 있고 그 무익한 것을 쫓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예배 시간에 사도신경을 하고 안 하는 것으로 이단이라고까지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이단입니다,

율법의 다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이제 율법은 끝이 났습니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이 세상 초등학문적인 율법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다툼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 자체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물론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를 알면 절대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이것을 보고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해 주셨다는 것은 모릅니다. 아니 그 말씀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가 속량을 받아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이 성경을 보았을 때 그대로 아는 것은 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을 보았는데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래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구나 하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압니다. 아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도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아!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초등학문이 교회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도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초등학문을 교회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초등학문을 좇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정말 안타깝게도 율법을 너무 많이 지키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헛된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20절을 보겠습니다. (326)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육체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적으로는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저주에 빠지게 만들어서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정말 명확하게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다보니까 도리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더 율법을 잘 지키는가를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킨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서로 칭찬을 하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게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눈물로서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듣고 믿는다고 했다가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와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니까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할례를 주장하고 받는 것이 이 세상 천한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평생에 한번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사실 율법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 한 가지로 인하여 갈라디아서를 써서 서신을 보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고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강경합니까?

단 한 가지의 율법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를 받기 때문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의문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는데 자기가 이방에 복음을 전한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의문에 순종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다시 종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 종이 안 된 교회가 있습니까? 솔직히 제가 보는 한국교회에서 종이 안 되어 있는 교회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아니 한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종으로 만들고 있고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다시 종노릇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성도만이 느끼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저 성도의 삶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저주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오해할 사람이 있으니까 합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탁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 성도가 복음을 전하려면 이 세상 사람이 볼 때 그들의 기준으로 의롭게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의가 종교적인 의가 아니라 순전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로움입니다,

그래야 내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 이미 저주를 받은 사람은 다시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이고 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자가 다시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0-11절을 보겠습니다. (306)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숭상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분을 위한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지나 않았나 염려됩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삼가 지키는 것이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이 있습니다.

그것만 율법이 아니라 삼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율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삼가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가 다 율법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만 율법이 아니라 교회에서 새로 만든 법도 다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내 육체로 삼가 행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율법입니다.

갈라디아교회입니다,

먼저 할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이제 무엇이 들어옵니까?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도 타당한 할례라는 것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날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또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하나를 지키게 해서 그것이 타당하게 만들고 있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율법이 교회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날을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날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삼일예배를 드리고 있고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고 있고 금요 철야 예배를 드리고 있고 구역 예배를 드리고 있고 일주일 내내 날을 지키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주일입니다,

그 날을 통해서 수많은 율법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예배 시간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형식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 예배 안에는 다 형식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 삼가 지키고 있는 것들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가 시작할 때 기도를 하고 있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말씀이라고 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습니다. 또 예배가 끝나기 전에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헌금 중에는 십일조를 포함해서 수많은 삼가 내고 있는 헌금들이 있습니다. 날을 지키기 시작을 하니까 그것이 다 율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 법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에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날을 하나 지키기 시작을 하니까 그 안에 수많은 율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다 거론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 그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이 다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무섭게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지켜왔던 것이기 때문에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어느 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날이라는 하나를 지키니까 그 안에서 삼가 지키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감각이 없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저희는 감각이 없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것이 율법이라고 가르쳐 줘도 이제는 너무 오래 동안 익숙해져 있고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하고 있다 보니까 아예 감각도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주일을 누가 율법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그 날에 예배를 드리는 형식을 누가 율법이라고 합니까? 율법이라고 하는 제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사도신경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고 그 안에서 성경적이지 않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또 바알에게 기도를 하고 있고 수많은 헌금을 하면서도 감각이 없어서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면 유업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입으로 부르고 있고 믿는다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날을 지키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영혼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했는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7:18-19절을 보겠습니다. (359)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날을 지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그 날에 맞추어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무슨 절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제사 제도가 변역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절기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려면 모두를 지키든지 왜 유월절은 안 지키고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까?

얼마나 영악합니까?

자기 종교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유월절은 안 지키고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지키려면 다 지키고 그렇게 않으면 아무 것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절기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될까 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율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절기를 지키는 일도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정말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정욕에 빠져 방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추수감사절은 없습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것을 지키면서 스스로 타락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10절의 말씀을 모르는 목사가 있습니까?

다 압니다.

그런데 알면 뭐 합니까?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즐겁게 축제의 분위기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사람들이 만든 명절입니다 그 명절을 왜 교회가 지켜야 합니까? 물론 미국으로 이주를 했던 청교도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켰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하여 졌습니다, 전엣 계명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전케 되지 못하는 그 절기를 왜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 성경에도 없는 절기를 아무리 청교도들이 감사해서 지켰다고 해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바른 일입니까?

다른 복음입니다.

아니 율법의 저주를 받게 하는 종교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이 율법 아래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는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게 만들고 있고 그 거대한 종교 안에 있는 소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도살장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왜 지킵니까?

히브리서에서 분명히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누가 성탄절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까? 이것이 교회가 타락을 하기 시작한 313년 이후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사도가 성탄절을 지켰습니까?

성경에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시작한 날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태어난 날을 안다고 그 날을 정해서 성탄절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 어디서 왔는가 하면 종교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종교는 짐승이 되어서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절기를 지키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누가 가장 악한 자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탄절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람으로 격하시키기 위해서 종교가 만들어 놓은 절기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해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헛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들로서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종이 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서 별별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예배를 드리면서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종이에 써서 태우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무당이나 주술사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리고 그 날에 무엇을 합니까?

복을 빌고 있습니다. 바알에게 복을 빌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라는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니까 자연스럽게 바알이 같이 들어와서 그 날에 일 년의 복을 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해맞이를 하면서 복을 비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렇게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삼가 지키는 모든 것은 다 율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면 더 잘 지킬까를 고민하고 있고 잘 지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가증한 행위입니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복음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수고한 모든 것을 기독교라는 종교가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대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는데 교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39절을 보겠습니다, (364)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성도는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

이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 초등학문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아주 고상한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가지고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초등학문인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는 사람을 침륜에 빠질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영혼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침륜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가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영혼을 침륜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초등학문이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 초등학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가 아직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들로 인하여 영혼이 사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 안 됩니다,

절기도 안 됩니다, 송구영신예배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삼가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내가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설교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8강, 잠언의 비유  (0) 2018.10.22
제27강, 외모  (0) 2018.10.22
제25강,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0) 2018.10.22
제24강, 안식일  (0) 2018.10.21
제23강, 믿음 (하나님의 아들)  (0) 201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