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설교2

제25강,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윤주만목사 2018. 10. 22. 06:25


25,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24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아들의 영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아들의 영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아들의 영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있지 않다는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내 육신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육신에 있는 것인지 영에 있는 것인지도 분별이 안 되고 그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면 다 영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은 내 육신으로 지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내 마음으로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회에서 자기 육신으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의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 마음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믿음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그는 육신에 있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육신에 있는 자는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에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하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 찬양을 부르는 것 역시도 율법 아래 있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배라는 형식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시대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육체적으로 어떤 형식이나 모양을 내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육체의 모양입니다. 다 자기들의 육신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육신으로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면 뭐 합니까?

이 말씀을 모르는 목사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육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심각할 정도로 육신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육신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육신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아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말씀을 다 문자적으로 알고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하면 맹목적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내시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알고 믿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육신에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문자로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아들의 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이제까지 배웠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이 들어와서 성도들이 미혹을 당하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과 믿음을 비교하면서 3장까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육신에 있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신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 가를 알면 육신에 있는 자가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는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더욱 더 육신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표면적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면적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과 믿음 두 가지를 가지고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15절을 보겠습니다. (249)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의 영입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입니다, 양자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라고 하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종의 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으로 분명히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었지만 그런 유대인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종과 아들입니다,

갈라디아서4장의 주제는 종과 아들입니다,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하고 있고 아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산 욥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종은 무서워합니다.

율법주의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안 무서워한다고 해도 욥을 통해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도 무서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욥기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안 무서워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켰던 욥도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 사상은 늘 생각 속에서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다고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무섭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때문에 율법이 나를 저주한다 해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늘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영을 받았습니까?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까?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까?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육신을 따라 하는 모든 율법을 안 지켜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안 지켜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범죄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진 사람은 그가 아무리 강한 자라도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졌는데도 안 무서워합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이 세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무서워하고 있고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종의 영과 양자의 영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받고 있습니다.

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볼 때는 누구는 죄인과 같이 보이고 누구는 의인과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람을 보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히틀러가 진 죄와 내가 진 죄가 입김보다 더 경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율법을 바로 알고 있고 그 율법에서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김보다 더 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입김보다 더 경한 죄를 가지고 누구는 무서워하고 있고 누구는 담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담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죄를 적게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의 경량을 달아보면 입김보다 더 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율법 아래 있어서 죄를 진 나를 값을 주고 사서 이제 자유하게 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담대합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그렇게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늘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이렇게 믿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무서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 하시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율법에서 벗어나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교회 안에서 아무리 아버지라고 불러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 마음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렇게 마음 가운데 와 있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율법을 버리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4:7절을 보겠습니다. (306)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 성도는 이제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후입니까? 어렸을 때는 아들일지라도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종과 다름이 없는가 하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기 때문에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종노릇하였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여자에게 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 성도들을 속량 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는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진리를 알지 못해서 아니 진리의 영이 오시지 않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율법의 종이 되었는데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입니다,

3장까지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4장에 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며 그런 사람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36절을 보겠습니다, (159)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스라엘은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의 종이 되었는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다 율법에 의해서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종이 된 것을 주님께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종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종노릇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실제 어린 나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교회에 나왔거나 복음을 들은 사람을 어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을지라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이 자유케 했습니다.

어디서 자유하게 하셨는가 하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냥 자유 하라고 해서 자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자유케 하셨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입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으로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이제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을 해서 다시 종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종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그것을 지키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종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 종이 아니면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반드시 종으로 살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자기들이 종교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유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는 계속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결국에는 가장 무서워하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자유 하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 한다는 것은 말이 성립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들이 자유케 해도 종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경에 있는 말씀을 안다고 해서 자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아무리 자유 한다고 해도 종이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할례 단 한 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경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저주를 받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은 절대로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을 받아서 생명을 얻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그것은 성경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종이 아닙니까?

이제 저주 아래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었는데 주님이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명분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의 종이 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 하라고 하는데도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해 주셨는데도 믿지를 않는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실상은 율법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과 믿음입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이 율법 아래 있는 나를 속량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한 가지를 가지고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때문에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십일조가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날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가르친 갈라디아교회인데 왜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았던 할례를 가지고 온 거짓 형제가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할례는 율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 육체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할레는 일생이 단 한번 내 육체에 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 하는 할례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들어옴으로 해서 사도 바울이 그것이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할례를 행한다면 너희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할례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시작으로 해서 솔직히 양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들입니다.

반드시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은 유업을 받지 못하고 아들만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도 천국을 갈 수 있다면 좋은데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8-9절을 보겠습니다, (365)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이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유업을 어떻게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하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도 계속해서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갈바를 알지 못하나 믿음으로 간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믿음에 행위를 포함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가 어떻게 유업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는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의 실상을 보면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없으면 반드시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기들도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를 자주 빠지고 있고 또 십일조를 내지 않고 있고 찬양도 부르지 않고 기도도 별로 하지 않고 하면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무엇입니까?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할지 모르는 것이지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결국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뜻이 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행위가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믿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나 저가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거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함께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삭도 받고 야곱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유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업을 어떻게 받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이 있습니다. 이들이 동일한 약속으로 함께 유업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유업이나 이삭이 받은 유업이나 야곱이 받은 유업이나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각으로 천국을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다릅니까?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해서 천국을 믿고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일한 유업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보는 눈과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동일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동일한 유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을 가지고 천국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거짓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간증을 하는 사람도 거짓이고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책을 쓴 사람도 거짓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표현이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에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기록하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들이면 다 유업을 받습니다.

그 아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된 성도는 누구나 동일하게 약속을 유업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는 아니 언어로는 이것을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가 천국을 갔다 왔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갔다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상상하는 천국이지 실제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지면 사단이 그런 사람들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간증을 하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업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누구는 열 고을의 권세를 받고 누구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실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마치 천국에서 이 세상의 계량의 단위로 그렇게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습니다, 누가 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약속으로 유업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7절을 보겠습니다, (421)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유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반드시 유업을 받습니다. 이 유업은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들어갈 천국입니다, 이 유업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셔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은 못 들어갑니다.

교회 안에는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종은 율법을 지키는 자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성도입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율법 아래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속량 해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이것들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정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을 누가 받는가하면 이기는 자가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께 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니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믿음이 있는 성도가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가 이긴 것으로 믿는 성도가 이기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기신 것이 내가 이긴 것인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서 죄를 안 져서 이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되어야 유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자가 아들이고 그 아들은 오직 믿음으로 이겨서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이김을 믿는 성도는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 있지만 실제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사단에게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속량해 주신 성도만이 그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속량을 받았는가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아직까지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절대로 속량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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