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아가5:10-16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아가서입니다
아가서에 대해서는 몇 편의 설교를 올려서 이제는 누구와 누구와의 관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 아가서를 보고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비슷합니다.
사실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아가서를 성도와 예수 그리스와의 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보느냐에 따라서 성경 전체에서 말씀을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입니다
그는 왕입니다 그 왕을 예표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신부라고 하는 이 여자, 나의 사랑하는 자야 라고 하는 이 여자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가서는 이 여자와 솔로몬이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성도라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은 자이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는 것을 거의 부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가서의 설정 역시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교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교회는 거의 부정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 부정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가 하면 거의 모든 교회가 타락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얼마나 사랑을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난 후에 내가 비밀을 말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의인화를 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이 이 아가서에서 말씀을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교회가 타락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 주님과 교회가 어떤 관계인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이 아가서라고 보면 맞습니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관계가 정말 이 성경의 말씀과 같이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을 때 거기서 성도가 탄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교회를 사랑하고 있고 또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성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아가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야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구원론 적으로 볼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야라고는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자야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가서를 보면 자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면서도 자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장1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여자가 성도라면 이것은 조금 문제가 되는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부일 때만 가능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부부입니다
물론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 같이 실제 부부의 관계로 설정을 해서 비유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정말로 사랑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는 있어도 마치 내가 사랑을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사실 이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너무 타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거의 모든 말이 이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거기에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그 교회를 마치 주님의 아내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도 모릅니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주님과 어떤 관계라는 것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모르다보니까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가 되면 그것은 사실 우리 성도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합니다.
갈라디아에서 사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에서부터 잘못 배우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교회에 대한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뜻을 보고 신학을 정리를 하다보니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관을 배우고 있는 목사들에게서 교회에 대한 바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은 아내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성도가 탄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 9장에서도 이삭과 리브가의 비유를 통해서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라는 교회에서 에서도 태어나고 야곱도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학에서부터 잘못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정립이 안 되어 있어서 심지어는 이 시대는 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자기들이 붙이고 그 이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문제입니다
세상의 이치로라도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가 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어머니의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짓고 이름을 붙이고서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그 아버지가 아들을 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만이 사랑할 수 있는 교회를 자기들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교회를 세워놓고 그 건물을 짓고 그 교회를 얼마나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자) 나의 임은 깨끗한 살결에 혈색 좋은 미남이다. 만인 가운데 으뜸이다.”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이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을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장10절부터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사랑을 한다고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마치 연인과 같이 사랑을 하는 것을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런 성경 말씀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의 말씀을 보고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바로 정립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목사의 말 한 마디를 듣고서 마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 교회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교회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부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고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당연히 내 남편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내 아내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부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가서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아내가 되어 있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이 아가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면 교회에 대한 바른 정립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7:2절을 보면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베드로전서1:19절을 보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말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씀만 해야 그것이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희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것을 그리고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 마태복음에서 변화산에서 주님이 변화하시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희다는 말씀은 주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한 위의 성자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도 남편에 대해서 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흰색입니다
거룩함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니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에서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붉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붉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 교회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오직이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도 맞지만 너희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첨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조건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에 조건을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에서도 교회는 주님에 대해서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서 뛰어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에 대해서 바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148:13절을 보면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에베소서1:21절을 보면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 사람에 뛰어 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세상에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그가 영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이 되셔야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있는데 오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보다 더 뛰어 나게 되실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그냥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되시지 않으면 아니 성자가 되어서 한 위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실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라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분이 오는 세상에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교회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닫고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는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삼위일체의 성자라고 말을 한다 해도 저는 그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여러분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머리는 정금이고, 곱슬거리는 머리채는 까마귀같이 검다.”
잠언3:14절을 보면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고린도전서1:24절을 보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머리는 정금 같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사랑하는 자기 남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머리는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에서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그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못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털이 검다는 것은 지혜가 지금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지혜가 있는 것과 같이 그 머리털이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저도 정확하게 성경에서 이 비유에 대해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 있는 비유들을 생각해 보면 유추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신데 그 머리털이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가 넘치고 있다는 것을 마치 우리나라 말의 형용사 같이 표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의 두 눈은 흐르는 물 가에 앉은 비둘기. 젖으로 씻은 듯, 넘실거리는 못 가에 앉은 모습이다.”
베드로전서2:2절을 보면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시편149: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구원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어떻게 말씀을 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비유들이 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남편입니다
교회는 그 남편을 구원의 주로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 가를 전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교회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입니다
당연히 자기 남편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아닌 다른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주님의 아내가 아니라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의 두 볼은 향기 가득한 꽃밭, 향내음 풍기는 풀언덕이요, 그의 입술은 몰약의 즙이 뚝뚝 듣는 나리꽃이다.”
에베소서5: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마태복음6:28절을 보면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뺨입니다
주님의 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최상의 언어를 통해서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교회는 아가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향기로운 생축으로 드리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성도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마태복음6장에서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것을 교회는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의 손은 가지런하고, 보석 박은 반지를 끼었다. 그의 허리는 청옥 입힌 상아처럼 미끈하다.”
다니엘10:6절을 보면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출애굽기24:10절을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도 주님에 대해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비유를 해서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까?
성경 어디에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신학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해서 그것을 교회에서 고상한 말로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들은 교인들은 자기들이 마치 지혜가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성자로 폄하를 하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에서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말씀을 찾아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기를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고 있고 모든 기준은 성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의 번역에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번역 자체도 의심을 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에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의 두 다리는 순금 받침대 위에 선 대리석 기둥이다. 그는 레바논처럼 늠름하고, 백향목처럼 훤칠하다.”
디모데전서3:15절을 보면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히브리서1:3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주님께서도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는 이 진리의 기둥이 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이 진리가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다고 말씀합니다.
아가서는 그러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교회는 이것에 대해서 바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미혹을 당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의 입 속은 달콤하고, 그에게 있는 것은 모두 사랑스럽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이 사람이 바로 나의 임, 나의 친구이다.”
시편19:10절을 보면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요한일서4: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그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주님이 오셔서 자기에 대해서 증거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입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게 진리에 대해서 전하셨고 그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에 주시는가에 대해서 주님에 대해서 바로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막연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는 율법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고 겨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한 마디를 하는 것으로 진리를 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아가서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하지를 않고 있다면 그 교회는 분명히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교회는 주님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내 사랑하는 자요 친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가서의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말씀이라도 율법을 지키라고 전하고 있습니까? 자기 영혼의 구원을 사모하는 성도라면 성경말씀을 상고를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사모하면서 성경을 사모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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