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강,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6:1-11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적습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6장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누가 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부터가 잘못 되어서 그 제목을 보고 마치 교회 밖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제목입니다
아마도 누군가 제목을 붙이기 시작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제목은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이 제목을 보고 성경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으로 인하여 성경이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고 있지만 누구하나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니 교회와 음행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음행이 세상의 음행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영적인 음행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마치면서 너희 중에 송사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마치 세상의 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일은 당연히 세상에서 송사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을 성도들 앞에서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성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배우면서 스스로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일은 세상의 방식으로 해결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 일과 세상의 일에 대해서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를 시작부터 해서 보고 또 6장 이상을 계속해서 보았다면 성경의 제목을 이렇게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제목을 세상 법정에서 송사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붙여 놓았고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이 제목 때문에 세상의 일이 발생이 되었는데도 송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송사를 하려고 하면 교회 안에 일은 교회에서 해결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인하여 교회는 더욱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 세상의 이성에 따라 잘못을 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세상 법이 있으면 세상 법정에 송사를 해야 합니다. 만약에 세상의 법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할 수 있다면 송사를 해서 세상의 법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송할 일이 있을 경우에, 성도들 앞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려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뚝딱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일에 대해서 이미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입니다
영적으로 이미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로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를 1장부터 해서 말씀을 깨닫고 난 후에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제목을 붙여 놓은 신학자들조차 그것을 모르고 성경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입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너희 중에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아직 신약 성경이 다 기록이 되지 않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오직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그때에 벌써 이러한 일을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은 다 율법주의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러한 일이 있는데 그 일에 대해서 송사를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복음에 대한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던 그때에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교회 안에서 서로 송사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가 들어왔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송사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법정에서 송사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송사를 하는데 있어 불의한 자들 앞에서 하고 성도들 앞에서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29:27절을 보면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정직한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잠언12:12절을 보면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고린도교회입니다
그 안에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일을 보고 송사를 하는데 있어서 그러니까 그런 일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성도 앞에서 하지 않고 불의한 자 앞에서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 불의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의 이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불의한 자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있어서 그것을 송사를 하는데 불의한 자 앞에서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송사가 있는데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역시 율법을 지키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가지고 송사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송사는 해 보나마나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한 자입니다
의인에게서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있어서 송사를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에서의 성도의 교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율법을 지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송사를 하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 앞에서 송사를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 앞에서 하지 말고 성도 앞에서 해야 그 송사가 제대로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고 그는 그들과 똑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가지고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를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입니다
성경은 이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목사들은 이 불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은 불의하고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은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불의한 자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보고 있습니다.
불의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불의한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서 송사를 하는데 불의한 자 앞에서 한다면 그 송사는 해보나마나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서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불의한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자기의 이를 탐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도가 누군지 그리고 불의한 자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만 있으면 성도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일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불의한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면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한 자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겠거늘, 여러분이 아주 작은 사건 하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겠습니까?”
성도입니다
이 시대는 성도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만 나오면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성도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불의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불의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 불의의 이를 탐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성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 진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의의 이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을 성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불의의 이를 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성도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의한 이를 탐하는 불의한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이 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의 진심을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힘주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불의한 자가 있고 성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아니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불의한 자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상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의 모든 목사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도 세상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2:6절을 보면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세상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교의 사상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에서 말하는 속세와 세상을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교회 밖에 있는 세상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세상이 어느 세상 인가 하면 이스라엘을 세상으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역시 고린도전서에서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세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속세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바로 아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세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세가 아닙니다.
그 세상을 판단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과 같이 율법주의에 있는 사람들을 세상이라고 하면서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세상은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그리고 불의한 일이라는 것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는 이제까지 복음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불의를 행하는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보니까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왜 불의한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세상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판단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설왕설래한다는 것은 아직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제 그런 것쯤은 아주 작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불의의 이를 탐하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성도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영의 일도 믿음으로서 역사를 하고 있는데 세상의 일, 율법을 지키는 일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깊은 비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세의 일이고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영이다보니까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고 성경은 믿음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비하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는 세상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천사들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이 세상 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말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천사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지금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 구원을 받아서 천사를 판단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실제 천사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세상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긍심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너희가 천사도 판단을 하는데 그깟 세상 일을 판단치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 천사를 판단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불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세상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세상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상 일에 성도들에게는 지극히 작은 일이라고 하면서 너희가 충분히 판단을 하고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판단합니다.
그런 성도라면 당연히 세상 일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천사도 판단할 수 있다 그런 너희가 세상 일을 판단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일상의 일과 관련해서 송사가 있을 경우에, 교회에서 멸시하는 바깥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앉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1:7절을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교회 안입니다
거기에는 경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있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불의한 자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를 불의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제는 교회 안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히 여김을 받는 사람을 교회 안에서 재판관으로 세우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를 세워서 교회 안에서 영의 일에 대해서 있는 일을 판단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건입니다
이 세상 사건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에 대해서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에 관한 것에 대해서 사건이 있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것을 실제 세상의 사건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그와 같은 사건이 있을 때 교회 안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우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다툼이 있는데 율법주의자를 세워서 그것을 판단하게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지혜가 있는 성도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도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여 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마태복음24:45절을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지혜 있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주의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교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교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주의에 대해서 판단도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주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지혜가 없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지혜가 없어서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어떻게 자기들에게 영향을 주는 줄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지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신도가 신도와 맞서 소송을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한다는 말입니까?”
고린도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이 전하고 난 후에 그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벌써 율법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없다보니까 누구 앞에서 송사를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믿지 않는 자 앞에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세상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불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을 사도 바울이 믿지 않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를 행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송사가 어떤 송사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송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송사를 하는데 있어서 불의를 행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송사의 판단자가 불의를 행하고 있는 믿지 않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모든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를 믿는 자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를 행하는 자를 믿지 않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믿지 않는 자입니다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송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교회 안에서 이런 송사를 하는 것 자체가 허물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아직 지혜가 없어서 그런 송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송사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허물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교회는 아직 율법주의에 대해서 정확한 저의가 서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이 율법주의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송사가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송사가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너희에게는 허물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입니다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교회 안에서 이런 송사가 있는데 그것을 더구나 믿지 않는 자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송사를 하는 자도 모르고 있고 송사를 당하는 자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이런 송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이 고린도전서를 보면 지금 이 시대 교회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고린도교회보다 더 부끄러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입니다.
이 말씀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한 자를 말씀하고 있는 거의 모든 비유는 율법주의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불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불의한 자입니다
너희 중에 이 같은 자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있으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세상 일을 가지고 교히 안에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일을 가지고 송사를 하는데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믿지 않는 자 앞에서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가지고 송사를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믿지 않는 자 앞에서 송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도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있다고 하는 교회도 이렇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이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만 불의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불의를 행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이 시대 교회가 어떠한가를 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이 환전한 사람으로부터 복음을 들은 교회도 사도 바울이 가고 나니까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서신을 보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불의를 행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입니다
이 불의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다 믿는 자가 아닙니다. 반드시 불의가 없어야 합니다. 이 불의한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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