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강,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이사야2:12-22절을 보면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우리 인생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지렁이 같다고 벌레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적인 이성을 생각하면서 인격을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과 인경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교만자 거만자 자고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단 이스라엘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이방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그 인생들의 행위가 교회 안에서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상이 되고 있는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교만자라고 거만자라고 자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최대한 겸손의 모양의 내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사람의 이성에 따라 겸손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비록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겸손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인간의 이성에 따라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고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인생이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따라가는 순간에 여러분은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교만하다고 거만하다고 자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똑같이 율법을 지키는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과 말씀에 어느 한 가지라도 따랐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습니다. 지금 이 시사야 선지자가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목사가 인간적으로 겸손한 것을 보면서 우리 목사는 겸손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면에서 겸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상은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는 교만한 자요 거만한 자요 자고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 인생을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과 자기들을 별도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날은 만군의 주님께서 준비하셨다.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 모든 오만한 자들이 낮아지는 날이다.”
그 날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교만해지고 거만해지고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자고하고 있는 그때에 주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고 낮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교만해졌습니까? 그들은 부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만해 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했고 그것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입니다
우리의 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의를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가 쌓이는 사람은 반드시 교만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교만하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가 하면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고 그것을 보고 겸손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가 마치 교만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세상 책이 아닙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보고 있는 그들이 영적으로는 더욱 더 교만해 지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마치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사사건건 반대를 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들은 교만해져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대적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날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다 교만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교만해졌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 때문에 교만해졌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셔도 그것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잠언14:3절을 보면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잠언18:6절을 보면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디도서3: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교만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이 교만자가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국어를 아는 것으로 사람의 이성을 따라 생각하면서 교만하다고 하면 그것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경에서 이 교만자가 누군가를 알아서 교만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성을 따라 판단을 하면서 교만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만자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교만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교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미련한 자가 누군가를 또 우리는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역시 잠언에서 미련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다툼인가를 이제 또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디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이 미련한 자요 교만한 자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바로 교만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만합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 교만합니까? 돈이 없는 사람이 교만합니까? 우리가 세상의 이치로 생각을 해도 돈이 많으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역시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돈을 성경은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 안에서 교만해 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내가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헌금을 정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그런 것을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교만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였다는 것을 성경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주님이 오셨을 때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그들은 심지어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로 취급을 하고 마주치는 것까지도 피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율법의 의로 인하여 교만해지고 있지만 도리어 율법을 잘 지키면서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자기들이 교만하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렇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교만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20:1절을 보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거만자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예표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이 경계를 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런 단어를 보면서 사람들은 성경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포도주에 취해서 거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왜 포도주에 취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니 이 시대 역시 이런 말씀을 보고 포도주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일으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유로 해서 그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있고 거만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거만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교회 역시 모두가 거만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지금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잠언의 말씀과 같이 모두가 포도주에 취해서 거만해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시편66:7절을 보면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 (셀라)”
자고하다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높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에서는 오만하다고 번역이 되어 잇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교만하고 거만하여져서 오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역을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거역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거역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면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런 율법의 행위를 보고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입니다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을 낮아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더욱 교만해지고 거만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선정에 와서 기도를 하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은 낮아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금식과 십일조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의로 높아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주님께서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반드시 자기를 높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높이고 싶다고 해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사야 섬지자를 통해서 주님이 오시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낮아지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또 그 날은, 높이 치솟은 레바논의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언덕과,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튼튼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탐스러운 모든 조각물이 다 낮아지는 날이다.”
높는 것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가를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은 도리어 자기들이 겸손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높아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우리를 높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미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이 교만자가 되고 거만자가 되고 자고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많이 지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 한 가지만 지켜도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10:6절을 보면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전도서10:2절을 보면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우매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매자는 크게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전도서에서 우매자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세상의 오매자를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높아집니다.
교회 안에서 높아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높아지는가는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높아진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높아지고 있는 사람을 우매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우매자입니다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당시 높은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높아진 자를 우매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전도서에서는 그 우매자의 마음에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경에서는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의 마음이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왼편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높아지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높아지고 있는 사람은 우매자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비유로 다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서 교만자가 되고 거만자가 되고 자고한 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인간의 거만이 꺾이고, 사람의 거드름은 풀이 죽을 것이다. 오직 주님만 홀로 높임을 받으시고,”
자고한 자입니다
오만한 자라고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자고한가 하면 이제까지 말씀을 드린 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주님을 대적을 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이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자고한 자가 굴복이 되고 교만한 자가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이 오심으로 영의 일로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낮아졌습니다. 그들이 굴복을 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해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고한 자들이 굴복을 하고 교만한 자들이 낮아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상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율법의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리 열렸습니다.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상들이 다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 우상들이 다 사라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교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상들이 다 없어지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땅을 뒤흔들며 일어나시는 주님의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동굴과 땅굴로 들어갈 것이다.”
베드로후서1:16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무수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고한 자를 굴복시키고 미련한 자를 낮게 하시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해서 우상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심판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렇게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면서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경배하려고 만든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 버릴 것이다.”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뼛속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때에 이스라엘이 전부 우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우상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은 우상입니다
자기 믿음을 보이려고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금 우상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 성경에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그런 우상으로 생각을 하면서 이스라엘은 우상을 만들었어도 자기들은 우상을 만들이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그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성경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우상의 의미를 모르다보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이 되어서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서 우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이제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그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성도들에게는 이제 섬기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쥐에 박쥐에게 던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은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고 금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 그들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땅을 뒤흔들며 일어나시는 주님의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구멍과 바위 틈으로 들어갈 것이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을 피함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암혈과 바위 틈입니다.
주님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으로 피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너희는 주님 안으로 피해서 그의 은혜를 받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상을 던져버리고 그 우상에게 나태내시는 위엄과 광대하심을 피하여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의 숨이 코에 달려 있으니, 수에 셈할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앞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람이 우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행위라고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그 사람을 보면 마치 구원을 받을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행위가 다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성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는 꼭 구원을 받을 사람과 같이 보입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의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우상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없애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그 어떤 우상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체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는 성도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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