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22강,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윤주만목사 2018. 9. 29. 20:37


22강,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에스겔 37:11-14절을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거의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독교는 더욱더 문자 그대로 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들이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가 하면 신학이라는 곳에서 히브리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단순하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어를 안다고 해서 그리고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은사가 있는 사람만이 성경을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입니다

그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한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 성경은 잘못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어의 단어의 뜻만을 보고 성경을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어의 뜻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원어의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성경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아무리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안에서 복음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세상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적인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 시대는 신학을 공부를 하면 누구나 히브리어를 배우고 또 헬라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는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원어의 뜻을 안다고 해서 성경이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그들이 히브리어를 몰라서 그것에 서툴러서 성경을 볼 때 도무지 그 원어의 뜻을 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했고 누구보다도 그 원어의 뜻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경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저 역시도 가끔 가다가 히브리어 원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찾아봄으로 해서 그것을 앎으로 해서 성경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꼭 필요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성령의 감동으로 은사를 받아 한글로 번역한 성경만 보아도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구약입니다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유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런데 원어의 뜻을 안다고 해서 이것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로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은 아무리 원어를 보아도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성경은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의 비유에 대해서 우리말로 잘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원어의 뜻만 알고 있다고 해서 성경이 풀리겠습니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제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이스라엘 화 되어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실 성전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에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이 행했던 모든 일을 그대로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 말고는 거의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어떻습니까? 제사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이 이해하기 힘든 시민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덕법은 율법의 제3용도를 이야기를 하면서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뭐가 다릅니까?

그들이 안식일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시대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실제 율법에 정해진 대로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마음대로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청년이 주님 앞에 와서 십계명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시대 역시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면서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그것을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

다릅니까?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은 이레에 이틀을 금식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의무적으로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자기들이 바리새인과 다르다고 말을 하고 있다면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거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열심을 내서 성경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히브리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우면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기독교인이 보고 있는 성경이나 이스라엘이 보고 있는 성경이나 거의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입니다

특히 구약은 그림자라는 것을 먼저 알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을 볼 때는 그림자라는 것을 먼저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을 실체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실체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니까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입니다 그런데 실체를 보니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였습니다. 그러면 사람으로 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지식이 있다고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어의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입니다.

이것이 실제 상황입니까? 이것을 실제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37장을 시작하면서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입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목사들은 마치 이것을 실제와 같이 성경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못하실 것이 없으니까 이렇게 골짜기에 뼈가 가득해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리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다

저 역시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에서나 전지전능하다고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신 이유는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그 안에서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하게 위해서 주셨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바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 한다.”

실제가 아닙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다 죽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 일을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71절입니다.

그것만 보아도 이 말씀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해서 환상을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이 죽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현재 영적인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비유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에스겔 37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해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에스겔 선지자가 보고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마치 실제 뼈가 가득한 골짜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이 뼈들을 살게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11절에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면서 탄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인 상태를 이 뼈들로 해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며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17:22절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의 뼈들이 말랐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뼈들이 말랐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잠언에서는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의 뼈가 말랐는가 하면 그들이 심령의 근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뼈가 말랐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심령의 근심으로 해서 뼈가 말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방인을 위한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심령의 근심으로 해서 뼈가 말랐다면 우리 이방인들 역시 뼈가 말랐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심령의 근심으로 뼈가 말라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마음에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심령의 근심으로 뼈가 말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서는 근심을 하고 뼈가 마르는 것과 같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지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이 영생을 생각하면 분명히 그들은 근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자기를 가르치고 있는 목사도 속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심령이 근심을 하고 뼈가 마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까?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 있게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영생에 대해서 도무지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모두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그리고 내세가 어떤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목사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뼈가 마를 수박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에서도 어느 누구도 해결을 해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서는 이렇게 뼈가 마르고 있지만 종교라는 외식에 빠져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과장을 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6:10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어떻게 뼈를 마르게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어떻게 심령의 근심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한다고 하니까 세상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입니다

율법의 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를 더 잘하고자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성가대에 서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 권사, 또는 여러 가지 직분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들이 부자가 되어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사모는 아니더라도 이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돈이 될 수 있는 자기의 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돈입니다.

이 미혹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을 보고도 이것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고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잠언에서는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를 하고 나서 보니까 자기는 구원의 확신을 얻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뼈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역시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바리새인들에게 저희는 돈을 좋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돈이 실제 돈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행합니다.

그럼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심령은 점점 더 근심을 하고 뼈를 마르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상태도 역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서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에서 떠나 율법주의로 갔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아무리 율법을 지키더라고 그들의 심령은 근심을 해서 뼈가 마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도서 1:2절을 보면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히브리서 6:19절을 보면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소망입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가 하면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솔직하게 자기들의 소망이 없어졌다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외식에 가득 차 있어서 이렇게 표현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 말을 듣기 싫어서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소망이 없어졌습니까?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망이 없어졌다고 근심을 하면서 뼈가 말라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겨우 그것을 말한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고 있고 그것을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믿음에서 떠났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휘장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가 죽으심으로 해서 휘장이 찢어 졌고 그것으로 해서 우리가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을 지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소망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휘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없으면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소망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멸절 되었다고 말 합니다

소망이 없는 이스라엘은 사실 멸절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그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를 않고 계속해서 율법주의로 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멸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비유의 말씀을 깨달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대언을 하게 하시고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은 들으라 너희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입니다 그들을 보고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과 같은 영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소경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덤을 열고 나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 역시 무덤을 열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덤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은 것으로 착각 속에 있으면서도 아니 심령으로는 근심을 하고 있어서 영생을 생각하면 뼈가 마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27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무덤을 열고 나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역시 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무덤에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성경을 보면서도 바리새인은 외식을 했어도 자기들은 외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깨우치지를 못하면 무덤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외식

겉만 좋게 꾸미는 일, 바깥쪽을 장식하는 것을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겉을 좋게 꾸미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리새인이 한 것은 외식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은 믿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합니까?

바리새인이 한 것은 외식이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외식이 아닙니까?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바리새인이 하면 외식이고 자기들이 하면 믿음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겉을 좋게 꾸미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많은 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은 외식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찬송가를 부릅니다.

겉을 좋게 꾸미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라 해도 역시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외식이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외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남의 눈에 아니 자기 눈에도 좋게 보이고 있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 해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외식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고 해서 그것이 외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나와야 합니다.

반드시 나와야 합니다. 나오지 않으면 우리의 뼈는 근심으로 마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외식의 무덤에서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지만 이 시대는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을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실제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우리를 하늘 천국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의 무덤을 열고 그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낼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내 백성들아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 우리는 이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이 무덤에서 나오고 보니까 이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같이 외식을 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살 때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무덤에서 나오고 보니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을 수 있게 되었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나와야 합니다.

무덤에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무덤에서 나옴으로 해서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덤에서 나온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덤에서 나온 자가 거의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무덤에서 나온 사람만이 내가 여호와 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여호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그가 지혜가 있다 해도 이 무덤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세상적으로는 얼마나 지혜가 있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외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외식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내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무덤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외식이 무엇이라는 것을 마태복음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마태복음의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외식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굳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외식에 무덤에서 나오는 것만 보아도 그가 성령을 받은 성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너희를 고토에 거하게 하리라

고토가 어디입니까? 이스라엘이 조상 대대로 살았던 가나안 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나안 땅은 천국을 예표로 하는 땅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고토에 거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여호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 죽은 몸을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육체는 썩어 없어지게 하시고 고토에 살 수 있게 우리에게 성령으로 난 영을 거하시게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산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이 모든 일을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모두가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루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 나온 것을 보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바리새인을 보고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외식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