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계명 강해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윤주만목사 2018. 9. 9. 11:20


제십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출애굽기 20:17절을 보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십계명입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우리는 가능한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십계명이 문자 그대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반드시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연결이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구원론은 심하게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자를 실체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림자라고 했으면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실체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림자는 그 안에 있는 메타포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죽었습니다.

만약 율법이 아직 살아 있다고 누구라도 주장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고 그 은혜가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십계명에 대해서는 더 특별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은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과 어떤 언약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무슨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맞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유대인이라고 칭하는 자들이 있는데 사단의 회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2:9, 3:9).

 

왜 이스라엘이 되려고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원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아무 친한 친구나 되는 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이방인인 우리를 아직도 개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 호의적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성경을 모르고 있고 또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같은 동류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과 같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이스라엘은 우리를 사람으로도 보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마치 형제나 되는 것같이 친근해 지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의 경륜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자기들도 이스라엘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이방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되려고 합니다.

아니 자기들이 이스라엘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남의 소유를 탐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이렇게 남의 소유를 탐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분복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니까 아무 상관도 없는 이스라엘이 왠지 부럽고 친근하게 대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럽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이 탐이 나니까 이스라엘이 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림자에 빠져서 참 빛을 못보고 있는 그들이 왜 그토록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탐을 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분복과 은사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9:9절을 보면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인생 헛됩니다.

우리 인생의 평생이 다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모든 영화가 들에 핀 백합화만도 못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탐하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헛된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 헛된 것을 탐하고 있고 심지어는 이웃이 가지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좋게 보이면 나도 갖고 싶어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왜 배가 아프냐면 나도 땅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인정하기보다는 사촌이 무엇을 가지면 나도 갖고 싶습니다. 그것을 견디지를 못하고 나중에는 자기 생명을 잃는 그런 불행한 일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다 헛됩니다.

내 눈에 그것이 정말 아름답고 좋게 보여서 꼭 한번 만 가져보고 싶어도 그것 역시 티끌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헛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헛된 것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탐을 내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 영혼의 생명까지 걸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습니다.

 

내 평생이 헛됩니다.

또 지금 이 세상에 보이는 너무 좋은 것도 다 헛됩니다. 아방궁이 어디에 있고 클레오파트라가 어디 있습니까? 역사를 바꿀만한 그런 미인이 내 이웃의 아내라 해도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육을 보기 때문에 그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고, 교회 안에서 더욱 그 헛된 것에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거지면 어떻습니까?

아니 생이 비참하면 어떻습니까?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예수님께서 왜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자는 오히려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서 천국의 모든 축복을 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재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분복을 주셨다면 당연히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종교인의 모습으로 부자가 되려고 하다가는 그 영혼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만 나오면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의 의나 은사를 자기도 자기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그것이 영혼을 망하게 하는 줄 모릅니다.

그것이 탐심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이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을 빙자해서 그런 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헛되다는 것을 모르면 결국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물질을 탐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의 의와 은사를 너무 탐하면서 그것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물질도 너무 탐해서 지금은 기복주의가 교회 안에 뿌리 깊게 파고 들어와 있습니다. 이 기복주의를 이제는 어느 누구도 뿌리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목사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분복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주신 분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예수를 믿어서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거짓 인가를 초대 교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대로 라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복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세상을 살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수고를 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서 내가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복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같은 주장을 한다면 이 세상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기복주의에 모두가 미혹이 되어서 마치 자기가 예수를 잘 믿으면 부자가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이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즐겁게 사기기 바랍니다.

내가 적든 많든 그것을 가지고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이 세상에 것에 그렇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가지고 즐겁게 사시고 내 이웃이 좋은 것을 가졌다 해도 그것에 대해서 탐욕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부자가 되면 뭐합니까?

그리고 최고의 성인이 되면 뭐합니까? 또 최고의 석학이 되면 뭐합니까? 또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의인이 되면 뭐합니까? 이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살만큼 선하게 살면 뭐합니까?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그저 이성이 없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탐하면서 살았지만 그는 짐승과 같이 이 세상에서 살다간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성이 있다고요?

만물의 영장이라고요? 그래서 이름을 남기면 뭐합니까? 그것은 다 헛된 것이 됩니다. 지구의 종말이 오면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는 음부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하는 그것이 그리고 의롭고 선하다고 하는 그것이 다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15절을 보면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모든 탐심을 물리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탐하고 있는 그것으로 생명이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탐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의롭고자 하는 것 내가 선하게 살고자 하는 것 내가 하나님을 위해 정말 헌신하면서 살고자 하는 이 모든 것이 다 탐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볼 때는 너무 좋은 그것이 바로 탐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여러분이 깨닫지 못하면 그 탐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탐심에 너무도 많이 빠져 있습니다.

 

복음 성가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참 가사 내용을 보면 너무도 은혜롭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살고 싶다고 하는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탐심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탐심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고백의 노래를 너무도 은혜롭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소유입니다. 그런 소유에 우리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닌데 교회에만 나오면 사람들은 그 탐심을 주체를 하지 못하고 그 소유를 넉넉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 역시도 사도 바울 못지않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사도 바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미 사도 바울이 얻을 축복을 나도 똑같이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고 그 행위를 따라 하면서 사도 바울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 똑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노력으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5:10절을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는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는 찬성을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그는 복음을 깨달을 수도 없었고 그저 이 세상에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탐심을 냈다면 절대로 이 은혜를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나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된다고 그 행위를 따라한다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고 또 의롭게 살고 있다 해도 그것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어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너무 이 소유를 탐하고 있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종교인이 되려고 그 소유를 넉넉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로 말미암은 자는 반드시 그 행위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하늘의 신령한 것을 얻었습니다. 천하 보다 더 귀한 것을 얻고도 그것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것은 탐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19:56절을 보면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내 소유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남종 네 이웃의 여종 네 이웃의 소나 나귀를 탐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내 소유는 이것이니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말씀하고 있는 소유는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자에게 있어 가장 아끼고 사랑스러운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소유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대가 아니라 성경이 기록되었던 시대에서는 아내를 소유로 취급을 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 가를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압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총무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이 그 집 소유의 모든 것을 다 요셉에 주관을 하게 했으나 자기 아내만은 못하게 했습니다.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주관을 하되 자기 가족들만 간섭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내는 남자에게 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남자에게 있어 가장 질투를 내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일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은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고 또 남이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얻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아내와 같은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교회 안에서 빛을 내기 시작을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은사를 가지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탐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그 은사가 내 눈에 너무 좋게 보이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집회에 참석을 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각각의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은사가 있습니다. 다만 누구는 그 은사가 더욱 빛이 나고 있고 또 누구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은사를 내가 기도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가 방언을 한다고 해서 내가 기도해서 또 안수를 받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감추어져 있던 은사가 기도나 안수를 통해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는 이미 내 안에 있는 은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것을 기어이 받으려고 탐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남의 소유입니다. 그 소유를 탐내면서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남의 소유를 탐을 내는 그 일로 진리를 알아가는 일에 너무도 게으른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종입니다

남종이나 여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소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으로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있고 자기도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종과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은혜를 말씀하고 있고 종은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종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너무도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아니 자기도 종이 되고 싶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소유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도 부러워하고 자기고 갖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들이 되면 더 좋은데 사람들은 그렇게 종이 되고 싶어서 그것의 소유를 탐내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그림자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 안에서 남의 아내를 탐하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종이 어디 있습니까? 또 도시에서는 소도 없고 나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농경 사회만을 생각하시고 십계명을 주셨습니까? 율법이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다 보시고 기록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서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이 세상에서 있는 일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율법에 의해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교회 안으로만 들어오면 이 율법을 너무 좋아하고 또 그것을 탐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그것을 먼저 가르치다 보니까 또 자기 눈에 그것이 바른 것으로 보이다 보니까 그것을 탐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율법은 원수입니다.

나를 죽이는 원수입니다. 율법은 내가 완전하지 않으면 반드시 핏 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그것이 너무 탐이 나서 모두가 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고 기뻐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고 모두가 그것을 탐을 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14절을 보면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를 않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기 보다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탐을 내고 있습니다.


사라집니다.

율법의 의는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노력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흩어 버리셨습니다. 은혜를 거절하고 이렇게 교회 안에서 종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그렇게 율법의 의를 탐을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진노를 부른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와 나귀입니다.

일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봉사도 하고 선교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너무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교회마다 초빙을 해서 전도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탐욕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소유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같이 나귀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있고 이들을 칭찬하니까 자기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소유입니다.

내 은사 소유입니다. 또 내 율법의 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교회 안에서 복음을 위해서 하는 일 또한 소유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재물에 대해서 탐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12절을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일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양식 먹는 것은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소유를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온갖 일을 다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치고 진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규모가 있게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 지나치게 일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허리가 부러질 정도가 되어도 계속해서 자기들의 소유를 많이 갖기 위해서 일을 만들고 있고 또 그것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양식을 먹고 있습니까?

이렇게 번잡하게 일을 많이 하는 교회 일수록 양식을 먹는 교회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내 생명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만 만들어서 자기 소유를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일을 많이 했어도 그것을 소유로 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탐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을 먹는 일에 탐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을 하니까 이 양식은 먹지를 않고 자기 소유를 더 많이 가지려고 이웃의 것을 탐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에 따라 분복을 주셨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가 그것을 너무 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부탁입니다.

일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생각에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 시켜서 또 가르쳐서 그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소유를 탐을 내는 악한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눈에 선하게 보여도 악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누가 일을 만듭니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보이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일을 만들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만드는 것보다는 양식을 먹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양식이 없어 모두가 굶주리고 있고 이단이 오면 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잠언 23:2-3절을 보면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

 

탐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식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와 그리고 율법의 의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여러 가지 일을 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모두가 탐식자가 되어서 그것을 가르치다 보니까 어떻게 하든지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이웃의 아내를 탐하고 있고 종을 탐하고 있고 또 소와 나귀를 탐하고 있습니다.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죽는 다는 것을 모르고 더 열심을 내서 탐식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도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게걸스럽게 탐식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자기도 갖고 싶어서 탐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목에 칼을 두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진찬을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볼 때는 아주 좋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또 율법을 잘 지키고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습니까? 먹기 좋은 진찬 보다 더 맛있어 보입니다. 그 진찬에 모두가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찬입니다.

진귀한 음식이나 맛이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 이런 음식을 내 보이면 모두가 부러워하고 그것을 먹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나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찬을 누가 주고 있느냐면 교회 안에 있는 간사한 자들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는 여러분은 반드시 교회 안에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게 되어 있고 또 네 이웃의 남종이나 네 이웃의 여종이나 네 이웃의 소나 나귀를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성도와 같이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23:20절을 보면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누구를 말씀합니까?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누가 술을 즐겨하고 있습니까? 이 술과 고기를 바로 율법의 행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것을 즐겨하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 안에 있다는 자체가 더불어 사귀고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입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기도한다고 안수를 받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대로 이 세상에서 그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진찬을 탐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5절을 보면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탐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도무지 그것이 무슨 말인가를 모르고 아직도 이스라엘과 같이 그림자로 보면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않고 이웃의 종을 탐하지 않고 이웃의 소나 나귀를 탐하지 않는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예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자기가 교회에 조금만 다니고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탐심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만 보세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먹기 바랍니다. 네 이웃의 아내 없어도 됩니다. 네 이웃의 남종 없어도 됩니다. 네 이웃의 여종 없어도 됩니다. 또한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려서 소나 나귀 없어도 됩니다. 이것이 다 영적으로 이 시대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탐을 내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적으로 은사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양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참 떡입니다. 이 양식을 성경을 통해서 내 평생 동안 먹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의 은혜를 입고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