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계명 강해

제8계명/도적질하지 말찌니라

윤주만목사 2017. 9. 25. 05:18



제팔은,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출애굽기 20:15절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8번째 계명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어서 도적질 하지 않고 있습니까? 또 기독교인들에게만 이 법이 살아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이 법은 살아 있습니다. 도적질을 한 사람을 어느 나라라도 그것을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다 압니다.

남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압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이 도적질 하는 것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도적질 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궁핍해도 비록 내가 굶고 있을지라도 도적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교회가 바로 안식일교회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십계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쓴 책들이 어느 새 교회 안에서 마치 진리가 되는 것으로 변질이 되어 안식일 교회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문자로는 죽었습니다.

그것이 그대로 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십계명 때문에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양심에 따라 그리고 법에 따라 도적질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인류에 국가의 형태가 갖추어졌을 때부터 가장 기본적인 법이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말 합니까?

그것은 소유에 대한 인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소유가 없다면 도적질을 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에덴에서는 모든 것이 아담이 원하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도적질을 하고 말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고 점점 그 소유에 대해서 집착을 하기 때문에 많이 가진 자들이 도적질을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 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십계명에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을 했습니다. 도적질을 하고도 그것이 도적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소유의 개념입니다.

먼저 문자적으로 이 도적질에 대해서 우리가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 각각의 분복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분복을 이해하기 보다는 욕심을 내고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적질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육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있고 또 너무 적으면 당장의 생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도적질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을 생각하면 이 도적질을 하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또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분복입니다.

이 세상은 각자에게 주신 분복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에 욕심을 내다 보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한 끼 식사를 위해 도적질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고루 분복을 주셨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을 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육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을 해서 어떻게 하든지 육에 속하게 만들어서 영혼을 도적질 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도적질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육의 것을 가지고 영의 것을 도적질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겠습니다.

도적질을 하면 어떻게 되는 가를 먼저 성경에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 가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2:1절을 보면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

 

도적질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법입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농사를 지었지만 그전까지는 주로 목축을 하다 보니까 이스라엘에서 가장 쉽게 도적질을 해 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같이 생각이 듭니다. 소나 양을 도적질해서 팔면 소는 소 하나에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넷으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적질 한 것을 팔았을 때의 법입니다.

소가 비쌉니까?

양이 비쌉니까? 아마도 제가 알기로는 소가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와 양의 가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가 더 비싸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소는 소 하나에 다섯으로 갚고 양은 하나에 넷으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갚는 것이 아니라 소를 도적질 했을 때와 양을 도적질 했을 때가 다릅니다.

 

도적질도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더 비싼 소를 도적질 했으면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배상하라고 한 것은 큰 도적에게 더 큰 죄를 묻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도적에게 더 많은 것을 배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더 큰 것을 도적질 하면 그만큼 그가 받는 벌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그것이 탐이 난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복을 주신 것으로 이 세상에서 자족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성도라면 이 세상에서 조금 어렵고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자족하는 것을 배워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남의 것입니다.

그것이 그냥 얻은 것 같아도 그 사람의 분복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도적질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갖고 싶다 해도 하늘에 보화가 있는 성도는 그것을 도적질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늘 도적이 있고 지금 이 시대도 가장 흔한 범죄인이 바로 이 도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22:2-3절을 보면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이면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도적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 소나 양을 도적질 해가려 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를 쳐 죽여도 죄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당방위가 성립이 안 되지만 미국에는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고 있습니다. 도적이 내 것을 도적질 하려고 하면 쳐 죽여도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이는 것도 해가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도적을 죽여도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해가 돋은 후에는 도적을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냥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도적질을 왜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면 물론 일반 도덕적인 것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도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나 양이 무엇입니까?

소는 일꾼을 상징하고 양은 성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어두움이 있을 때는 죽여도 피를 흘린 죄가 없지만 해가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는 도적을 죽여도 피를 흘린 죄가 없습니다. 그것은 율법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참 빛이 들어오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가 도적이라고 해도 판단하고 죽이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두울 때는 율법의 때입니다.

그러나 해가 돋았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때입니다. 어두울 때는 율법대로 하기 때문에 죽여도 피 흘린 죄가 없지만 복음의 때에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가 아무리 영혼을 도적질해 간다 해도 그를 임의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도적은 반드시 배상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육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겠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그것을 팔았을 때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이라도 팔아서 배상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면 배상할 것이 없으면 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2:4절을 보면

도적질한 것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무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잡히고 보니까 아직 살아 있고 그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이나 무론하고 갑절로 배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해서 팔았을 때는 다섯 배로 또는 네 배로 갚게 했는데 그것이 아직 살아 있고 그 손에 있으면 배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에 대한 법입니다.

만약에 십계명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으로는 안 됩니다. 다섯 배로 갚고 네 배로 갚고 갑절로 갚는다 해도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구속을 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도적질을 한 사람이 갚을 능력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팔려가야 합니다.

남의 소나 양이나 나귀를 도적질 했을 때는 그것을 배상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국 도적은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도 도적은 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종이 되어서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본 도적질에 대한 율법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은 나쁜 일이며 우리 속담에서도 아주 작은 것을 도적질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큰 것을 도적질해도 그것에 대해서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육적인 도적질이 결국에는 영적인 도적질을 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못하고 또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모릅니까?

도적질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교회에 안 나와도 십계명을 몰라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도적질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것을 굳이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그 기초적인 도덕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세상의 종교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십계명을 보고 도적질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말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 너무도 편하게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을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소나 양을 도적질 해 갑니다.

그것을 다섯 배로 또 네 배로 갚을 능력이 없으면 자기 몸을 팔아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한 가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면 그 도적을 알 수 있습니까? 육의 도적과 영의 도적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나는 목자요 너희는 양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자는 자기 생명을 걸고 양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면서까지 우리 양들을 지켜 주셨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그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양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성경에 사단을 사자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는 양입니다. 양과 사자는 싸우면 결과는 뻔합니다. 아니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가다가 결국에는 잡아먹히고 맙니다. 사단에게서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도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 도적이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의 도적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도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 그를 너무도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를 도적에게서 지켜 주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 도적에게 속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온 도적을 도무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분별이 안 되느냐면 그들의 눈에는 참 선지자로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적은 멸망시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 시대도 도적들이 들끓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적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눈에는 너무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과 같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도적은 양을 반드시 죽이고 멸망시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0:11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도적에게 자기 양들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영생을 얻어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초적인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도적의 소굴입니다.

아니 교회가 도적의 소굴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야 원래 사단이 잡고 있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교회가 도적의 굴혈이 되어서 양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7:11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도적의 굴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도적들이 숨어서 있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도적들로 인하여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도적이 그 안에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 성전이 얼마나 신성하고 또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도적이 숨어 있는 곳이 되었고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교회가 도적이 숨어 있어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도적입니다.

그러나 그 도적이 참 선지자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도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교회는 도적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세가 가까이 올수록 도적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적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해서 다 죽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어떤 도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에게 다른 복음이 전해지면서 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합니까? 마치 에덴에서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행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아닌 행위를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닌 율법의 행위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교묘하게 도적질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도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성도가 들으면 절대로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어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아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성의 눈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들의 말이 너무 다탕성이 있고 좋게 보이기 때문에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도적질하기가 얼마나 쉬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히 메타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해서 행위를 강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해석이 결국 사람들이 행위로 빠지게 만들고 있고 믿음을 저버리게 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5절을 보면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말씀을 도적질 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너희의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미음에서냐 묻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 같은 말씀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지키지 말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기초를 무너뜨리고 율법의 행위로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도적질을 해서 율법을 지키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게서 한 가지라도 율법의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믿음이 잇는 성도가 아닙니다.

 

말씀을 도적질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10가지를 바르게 말을 했어도 단 한 가지가 틀린다면 그것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가 있어야 하고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기초를 살짝 흔들어 버리면 전체가 다 흔들리게 되어 있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의 다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그것이 율법의 행위라고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 믿음에서 나온 행위라고 오해를 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그렇게 말을 도적질 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일반 교인들이 알 수 있습니까?

절대로 깨닫지 못 합니다. 그들은 성경도 안 보았고 또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을 도적질해서 가르쳐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이 그것으로 판단을 하면서 결국에는 다 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도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거의 교회 마다 이런 도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해서 자기들의 이성으로 가르치고 있고 그 말을 듣고 행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12절을 보면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정말 참 선지자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해서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 사단이 오면 다 도망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에는 자기도 죽고 또 양들도 다 사단에게 죽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 삯꾼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사단은 삯꾼을 키우고 있습니다.

마치 광명의 천사 같이 키우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또 그들을 통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여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은혜가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 도적입니다.

사람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그가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 같이 보여도 다 도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도적질 하고 있지 않은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도적을 믿고 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롭기 바랍니다.

자기 생명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도적들은 어떻게 하든지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적은 자기가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대다수의 도적들은 자기가 말씀을 도적질 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도적의 굴혈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교회가 도적의 굴혈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지혜로는 성도는 혹시라도 그가 전하는 말이 틀리지 않나 하고 그 말씀을 자기가 성경을 보면서 상고하고 있고 또 성령을 구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자기가 듣고 있는 그 말씀이 바른가를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도적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음이 가고 있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듣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1:23절을 보면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누가 도적입니까?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도적과 짝하여 다 뇌물을 사랑하고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고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도적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아를 위해서 신원치 아니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려고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오히려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고아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방백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오히려 방해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도적이 되어 고아를 위해서 신원치 아니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고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죽은 율법의 신부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누구의 신부입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기보다는 율법의 신부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과 예수는 두 남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말로는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도 실제 그들은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율법이라는 남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고 하는 과부를 오히려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율법의 신부가 되게 해서 그를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29:24절을 보면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

 

양을 도적질 합니다.

무엇으로 양을 도적질 하느냐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양을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과 짝하여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자기 영혼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이 분명히 도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에 너무 사람들이 포승과 같이 묶여 있어서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활이 교회로 되어 있어서 거기서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히 도적이 맞는데도 그 안에서 자기만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과 함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괜찮다고요?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요?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적과 같이 있으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도적이 여러분이 살 수 있게 그냥 둘 것 같습니까? 도적이 있는 곳에서 자기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49:9절을 보면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적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욕심이 차기 까지 다 멸합니다.

도적이 양을 한두 마리 죽이고 말겠지라고 하면서 나는 그 안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이미 사망에 빠뜨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몇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두가 다 죽었습니다. 도적에게 그렇게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모두 죽습니다.

사단은 양들을 모두 죽이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도적의 굴혈이 되어 있으면 거기서 나만 잘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자기 욕심이 차기 까지 다 멸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적과 짝하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도적질하는 방백들이 있고 또 그 도적과 짝하여 그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 모두가 사단이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 도적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고 또 지혜를 구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지 않고 있는가 내 영혼을 위해서 늘 성경을 상고를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10절을 보면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도적이 있습니다.

또 도적과 짝하여 있는 그 사람도 도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적의 굴혈에 있는 사람은 다 도적입니다. 이렇게 함께 도적질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도적만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짝하여 있는 그도 역시 도적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내 영혼을 위해서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만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해야 합니다. 늘 깨어서 이렇게 성령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는 도적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도적과 짝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