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십계명 강해

제9계명/거짓 증거 하지 말찌니라

윤주만목사 2017. 9. 25. 05:20

제구는. 거짓 증거 하지 말찌니라

 

출애굽기 20:16절을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찌니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거짓 증거를 함으로서 이웃이 그 증거로 인하여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도적질을 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이 다 증거가 있어야 죄가 성립이 되지만 당시에는 증거가 없어도 두 세 증인이 있으면 죄를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회가 발전이 되고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혁당 사건입니다. 이것을 혹자들은 사법 살인이라고 까지 하고 있습니다. 결국 권력에 의해서 사법당국이 증거를 조작을 해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 사건입니다. 그 당시에는 서슬 퍼런 권력에 의해서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 그도 똑같은 간첩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느냐면 바로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일반 국민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법에 의해서 거짓 증거를 해서 그들을 속전속결로 처리를 해서 판결이 나자마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거짓 증거입니다.

만약에 거짓 증거가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그렇게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법부는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증거를 내 보이면서 그들을 간첩으로 몰았고 결국 그들은 그 거짓 증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사형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사형제도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정말 100사람의 흉악범을 죽인다 해도 그 사형 제도로 인하여 무고한 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저는 반대를 합니다. 거짓 증거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또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간첩이 됩니다.

그리고 살인자가 되기도 하고 또 도적질을 한 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이 거짓 증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0명의 흉악범이 있어서 그들을 정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니 저도 그것에는 어느 정도 동감을 하지만 사형제도가 또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반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 증거는 너무도 무섭습니다.

아무런 물증도 없고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때는 결국에는 거짓 증거가 증거로 둔갑을 하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단편 소설도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느 청년이 군대에 갔다 와서 집에서 조금 쉬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아주 한적한 날에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가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뛰어 나오고 또 그 뒤를 이어서 경찰이 따라 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을 지목합니다.

집안에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이 청년을 살인자로 지목을 해 버린 것입니다. 청년은 졸지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가까운 현장에서 금방 일어난 사건이라서 빼도 박도 못하고 그냥 살인자로 몰려 결국에는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나중에 결국 진범이 잡혀서 풀려 나오지만 아까운 청춘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거짓 증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자기는 분명히 결백한데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지를 않는 일을 당해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 누군가에 의해서 거짓 증언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 되어서 그렇게 되고 맙니다.

 

그 파급 효과가 너무 큽니다.

거짓 증언으로 인하여 심지어는 자기 무고를 주장할 방법이 없으니까 생명까지 스스로 버리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 증거를 하게 됨으로 해서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5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한두 명이 짜고 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누군가 한 명이 거짓 증거를 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거짓에 동조를 하면 나머지 한 사람도 그렇게 믿게 됩니다. 더구나 거짓 증거를 한 그 사람이 세상 적으로 신뢰를 할 만한 사람이면 더욱 그 말을 믿고 거짓 증거가 참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게 됨으로 해서 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가 되고 생명을 끊는 그런 일이 있다면 결국은 살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힘이 세면 약자들은 굴복을 합니다.

누군가 힘이 센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매장 시키기 위해서 나머지 사람들을 위협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거짓 증거를 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더욱 무서워해야 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28절을 보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가 죽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육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인생이기 때문에 육체가 죽는 다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입니다. 육체의 인생이지만 이것도 단 한번 밖에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합니다.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면 인생들은 강한 자에게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실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 더 사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원입니다.

영혼의 죽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에게 이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이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을 보면서 두려워서 때로 강자 앞에서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거짓 증거를 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이 거짓 증거를 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 하다가 순교를 당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교를 당하는 끔찍한 일보다 자기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에 더 감사하면서 기꺼이 죽임을 당 했습니다.

 

세상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일 죽는다 해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아주 잠깐 지나가는 형적에 불과하다(고전7:31)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대단하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보일지라도 성경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4:14)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개입니다.

그런 것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 증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내일 죽는다 해도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길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믿는 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는 생명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육체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생명은 인생 누구나 죽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누가 알겠습니까? 그저 순교를 했다는 것을 알지 그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거짓 증거를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21:8-13절을 보면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 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포도원을 사려고 하는데 나봇이 자기 조상들의 땅이라 하면서 팔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일로 아합이 근심을 하는 것을 보고 이세벨이 그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세벨이 나봇이 사는 성에 있는 장로들에게 편지를 해서 거짓 증거를 하게 해서 그를 죽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에 두 세 사람이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19:15).

그래서 이세벨이 그곳 장로에게 율법에 있는 그대로 나봇에 대해서 저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를 했다고 거짓 증거를 하게 해서 그 백성들이 나봇을 끌고 가서 돌려 쳐 죽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서 장로들에게 편지를 하니까 장로들은 당시 권력자인 왕의 부인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으니까 나봇을 죽이는 거짓 증언을 해서 모든 백성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습니다.

언제든지 권력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거짓 증인을 세워서라도 그것을 얻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거짓 증거로 인하여 희생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봇을 신성 모독죄로 죽이기 위해서 장로들로 시켜서 거짓 증거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시 장로들이 거짓증거를 하니까 백성들도 다 그렇게 믿고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허망합니까?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 자기 것이기 때문에 팔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권력자가 그것을 얻기를 원하니까 거짓 증언에 의해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는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역시 이렇게 거짓 증거를 해서 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것이 그때 그 당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그림자로 보여 지고 있고 지금은 실체로 거짓 증거를 해서 이웃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거짓 증거가 나봇을 죽이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에 동참을 함으로 해서 함께 돌로 쳐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 19:15-21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위증에 대한 율법입니다.

세상은 언제든지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일에 대해서 증언을 할 때는 반드시 두 세 사람이 증인을 해야 그 일에 대해서 인정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세 사람이 증인을 했는데도 무고를 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자기는 억울하게 거짓 증언에 의해서 모함을 당하고 있을 때의 율법입니다.

 

재판을 합니다.

두 세 사람이 증언을 했는데도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이제 재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하고 보니까 두 세 사람이 거짓으로 증인을 섰고 위증을 당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형제에게 꾀하려 하는 대로 그대로 위증을 한 사람들에게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위증을 한 것을 하나님께서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증을 한 악을 너희 중에서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증 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는데 긍휼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위증 자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지 말고 내 눈에 보이는 데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 증거에 대해서 얼마나 단호한가를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 증거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거짓 증인을 했는데 그것이 생명에 관한 것이면 그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아닙니다.

악입니다. 죄와 악은 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죄도 악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웃에게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는 증인들에게 긍휼히 여기지 말고 거짓 증거를 한 그대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 율법을 통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혹시라도 거짓 증거를 해서 내 이웃의 영혼이 죽었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림자입니다.

육으로 이렇다는 것은 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해서 그 영혼이 죽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제하시기 위해서 반드시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거짓 증거를 했습니까?

마태복음 26:59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왜 하나님께서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거짓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거를 하는 위증 자들에 대한 율법을 정하시고 또 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과 거짓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사람들은 참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거짓이 이겼습니다. 표면적으로 분명히 거짓 증거를 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물론 그 일로 인하여 사단의 머리가 상하게 되는 일이 있었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사단이 이긴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악합니다.

거짓 증거를 할 때는 분명히 그 생명을 노리고 거짓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나봇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를 죽이기 위해서 당시 장로들을 선동을 해서 거짓 증거를 해서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였습니다.

두 세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데 동참을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악을 제하여 버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진노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법정에서도 죄를 찾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은 신성 모독이라는 죄로 십자가형을 받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더구나 십계명에 기록했을 때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거짓 증거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실 것을 아시고 그들을 향해 긍휼히 여기지 않고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스라엘이 말한 그대로 갚아 주셨습니다.

법정에서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자기와 자기 자손들이 그 핏 값을 받겠다고 한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대에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망을 시켜 버리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을 당했는가를 역사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이 되고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그 자손들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에 대해서 그대로 갚아 주셨습니다. 그 자손들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하나님께 자기 자손들이 피 값을 갚겠다고 한 그대로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짓 증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긍휼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갚아 주셨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은 거짓에 속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짓 증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거짓 증거가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거짓 증거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오히려 거짓 증거를 하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6절을 보면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였습니다. 거짓 증거를 해서 죄가 있는 것 같이 예수를 세상 법정에 세워서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누가 이 일을 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율법주의자들은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것 같이 거짓 증거를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지 말고 생명에는 반드시 생명으로 갚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거짓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 자체가 거짓 증거가 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이런 거짓 증거를 너무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다른 사람들이 안 지키면 이스라엘과 같이 정죄를 하고 있고 죄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습니까?

성도가 죄가 있습니까? 물론 도덕적으로는 우리는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들은 인생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통해서 죄를 찾게 만들고 있고 그 율법을 안 지키면 죄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죄인인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로 마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이 거짓 증거를 해서 정죄에 빠뜨려 사람들을 죽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생명에서는 생명으로 찾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말에 동조를 하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거짓 증거를 한 사람이 됩니다.

 

모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십일조를 안내면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교회에 이런 목사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못 내는 사람은 스스로 정죄에 빠져 죽게 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십일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 증인입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안내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고 거짓 증인을 서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면 십일조와는 상관없이 구원을 받아야 오직 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강조를 하면서 그것을 구원과 연결을 시키고 있고 마치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을 것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폐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율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거짓 증인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율법이 살아 있어서 거짓 증언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스스로 정죄에 빠져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죄입니까?

우리가 율법을 안 지키는 것이 죄입니까? 죄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고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안 지키면 마치 큰 죄를 짓는 것으로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6-7절을 보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안 지켰다고 그것을 죄라고 하면 그 사람은 거짓 증거를 해서 사람이 스스로 정죄에 빠져 죽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빼앗는 자는 반드시 생명에는 생명으로 긍휼히 여기지 않고 그 영혼의 생명이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 율법을 어기면 죄가 되는 것이지 이제 거기서 죽고 벗어났는데 어떻게 그것이 죄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죄로 여기면서 거짓 증언을 해서 사람들이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우리도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그 율법이 우리를 죄인으로 묶을 수 없는데도 이 시대 성경에 있는 율법을 가지고 죄인으로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 법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은 이단이라고 규정을 해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도덕법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율법에 대해서는 분명히 우리는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 교회 나왔어도 이 사실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은 사람은 이미 율법이 요구하는 피의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율법이 죄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증거자들은 이 율법이 죄라고 하면서 정죄를 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사형 판결을 받고 형이 집행이 된 사람입니다.

 

죽인 사람을 또 죽입니까?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번 법에 의해서 사형 판결을 받고 죽인 사람은 다시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짓 증거자들이 율법을 살려서 죄가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어서 마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할 때 모든 사람이 동조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찾아 다녔던 잃어버린 자들 빼고는 구원을 받을 자들 빼고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해서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로마서 8: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을 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악한 자들은 이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고 이 정죄로 말미암아 그들이 죽고 있습니다.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만약에 율법을 살려서 그것을 안 지키는 것을 보면서 정죄를 하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이 거짓 증인입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 율법에서 이제 우리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된 것을 부정하고 아직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고 또 그 말을 듣고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에게 거짓 증거를 해서 그 위증이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진노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4절을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의 계명은 너무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의 계명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거짓말 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3-4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누가 거짓말하는 사람입니까?

교회 안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무거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다 거짓 증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의 계명은 무거운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만약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정죄를 받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 거짓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으로 인하여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를 죽이는 일입니다. 거짓 증인이 되어서 율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가지고 나봇을 죽였습니다.

또 율법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이 죄가 되는 것 같이 해서 사람들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나 역시도 거짓 증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지 그림자 같이 사라지는 거짓인 율법의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죽입니다.

거짓 증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율법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짓 증인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생명에는 생명을 찾게 됩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인하여 진노에 빠져 다른 영혼이 죽었다면 반드시 내 영혼도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참의 증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늘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해서 영혼을 살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