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출애굽기28:40-43절을 보면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찌며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하늘의 별을 봅니다.
그 별에 대해서 우리 인생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빛을 보고 별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이 어떤 별에 대해서 연구를 할 때 빛을 보고 그 별의 상태와 그리고 별의 탄생 등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별에 대해서 안다고 하지만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빛을 보고 연대를 측정하고 또 저 별이 언제 사라지는 별인가를 알고 있고 또 그 별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그것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또 아주 작은 부분밖에는 알지 못하는 가를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 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만 그렇겠습니까?
들에 풀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고 그것이 우리 몸에 좋은가 나쁜가를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과학자가 아주 일부분에 대해서 알고 나서 그것을 발표를 하고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것을 알고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들에 피어 있는 들풀도 그럴 진데 우리가 감히 안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성경은 너무도 오묘해서 사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을 100독을 하고 또 300독을 한다고 해서 그 의미에 대해서 바로 안다는 것을 사실 불가능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공부를 해서 많이 읽어서 알 수 있게 하시지 않고 오직 택한 자들을 통해 성경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경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또 신학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서 성경을 통해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이스라엘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경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성경을 많이 묵상을 하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다 예수에 대해서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그저 표면적인 예수에 대해서 알 뿐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경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성경을 표면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인생의 생각으로 그 별에 대해서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안개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을 보면서는 더욱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구약이 안개로 보이는데 어떻게 신약을 보면서 바로 그 말씀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공부를 많이 해서 그리고 신앙의 연조가 깊어 처음 자기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상에 아주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리 같습니다.
처음 자기 눈에 보였던 것에 대해서 아주 집착을 하고 있고 마치 그것이 전부이고 진실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왔지만, 교회에 나왔지만 처음 자기 눈으로 본 그것을 다시 한 번 깨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눈으로 본 그것이 사상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눈을 빼 버리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에 대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 합니다
알을 깨고 교회에 나온 것은 육적인 일입니다
이제 겨우 육적인 이스라엘에 합류한 것이고 그 단계를 넘어 영적인 이스라엘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광야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이제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어야 합니다. 바로 죽음의 강 요단을 건널 때 나도 역시 그 강에서 죽어야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단을 안 넘습니다.
교회라는 광야에서 머물러 있고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마치 하늘의 별을 다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요단을 넘으면서 자기가 죽어야 가나안 땅이 보이는데 교회라는 광야에 머물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쳐서 더 이상 나가는 것을 겁을 내고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면 광야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너지 못하면 광야가 자기 발목을 잡게 됩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단을 건넌 사람에게는 광야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광야 생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요단을 건너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요단을 건넌 사람은 이제 자기 기업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너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자기 기업을 받기 위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요단을 건넌 사람 입장에서는 광야는 이미 지나온 길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광야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은 이제 가나안에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도 광야에서 있으면서 구약의 이스라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사실 광야입니다
내가 어디 있는가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가나안에 있는 사람과 광야에 있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치 하늘과 땅과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마치 밤하늘에 있는 별의 빛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일부는 맞을 수 있겠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는 모른다고 해야 맞습니다.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대충 아는 것으로는 나중에 낭패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고 광야에서 보는 가나안과 직접 들어가서 보는 가나안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광야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가나안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가나안에 있는가 아니면 광야에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현재 위치에 대해서 착각을 하고 있고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이 이 시대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예수 밖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예수 밖에 있는 것들이 너무도 잘 보이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아직도 구약의 율법과 규례에 매여 있어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이스라엘을 통해 구약의 대제사장의 규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규례를 통해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셨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아론의 아들들은 대제사장입니다
그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지만 구약의 아론의 아들은 우리와 똑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런 아론의 아들들의 제사를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죄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오직 의인의 제사만 받으신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아론의 아들들의 제사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럼 그들의 제사를 받으시기 위해서는 먼저 아론의 아들들을 의인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나타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죄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저 모양만 갖추어서 제사를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완전한 의인의 모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를 절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이방 죄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됩니다.
먼저 3가지가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속옷을 만들어서 입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8:39절을 보면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속옷은 가는 베실로 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는 베실은 흰색 실을 말씀합니다. 요즘은 다양한 색상이 나오고 있지만 예전에는 우리도 거의 흰색 계통의 속옷을 입었습니다. 이 흰색의 의미는 바로 죄를 가리 우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기도 합니다.
왜 속옷을 베실로 만들라고 하십니까?
사람들은 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지만 또 겉을 보고 그가 깨끗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심장까지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속이 깨끗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람의 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은 다릅니다.
누가복음11:39절을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인정하실 정도로 겉이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더러웠고 그들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속은 더럽습니다. 오직 그 속이 깨끗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나오는 말씀들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진리와 비 진리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고 또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신데 사람들은 그 마음에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기 보다는 겉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물론 겉도 깨끗하시지만 그 속에 거짓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깨끗하기 때문에 그 속에 나오는 말씀이 이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띠입니다.
이 띠는 수를 놓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색으로 수를 놓아 만드냐면 금색, 흰색, 청색, 빨강, 자색으로 수를 놓아서 띠를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색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색들입니다.
흰색은 죄가 없는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자색은 왕으로서 오신 예수님 빨강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종으로 오신 예수님 청색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그런 진리가 바탕이 되었을 때 구원을 상징하는 금실로 이 띠를 수놓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규례를 만드실 때 그냥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하나 말씀을 해 주시고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에베소서6:14절을 보면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진리로 허리띠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진리가 없고 그저 형식에 행위에 치우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이 드리는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을 보면서 진리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띠는 근사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리는 없었습니다. 진리가 없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 규례대로 대제사장에게 입혔을지라도 그들은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위로는 아무리 근사하게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이라고 믿을지라도 그들에게 진리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행입니다
진리가 없다면 더구나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이 진리가 없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서 행위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진리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은 관입니다
이 관은 부활을 상징하고 있고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히브리서2:9절을 보면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하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을 통해서 그 대제사장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를 보지 못 했고 역시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그런 규례와 율법에 매여 거기서 벗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구약을 마치 시체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규례를 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찌며”
거룩해야 합니다.
죄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받으실 수도 없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만이 거룩한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인 아론의 아들들이 설령 이것을 다 해 입었다 해서 그들이 거룩해 질 수 있겠습니까? 아론의 아들들은 어떻게 해도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아들들을 통해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7:26절을 보면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누가 거룩합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거룩하고 악이 없어 더러움이 없어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론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만든다 해도 그들이 진짜로 거룩해 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하신 것이지 그 속옷과 띠와 관을 쓴다 해서 그들이 정말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제사장은 오직 한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을 통해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들의 흉내를 내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그런 모양으로 거룩한 척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과 같이 사망의 길로 가겠다고 하는 악을 행하는 행위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하체를 가리는 고의를 왜 흰색으로 만들라고 말씀을 합니까?
죄를 지면 수치가 됩니다. 바로 그 수치를 가리는 옷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고의 입니다 이 고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임을 의미하고 있고 죄가 있는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행하려 하다 보니까 그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의를 흰색으로 지어서 입혀서 죄를 가리고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 이 고의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사를 단번에 받으신다는 것을 신약에서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우리와 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수치가 있어서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가 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그들의 수치가 보이는 아래 부분을 가리는 고의를 지어 입히게 하셨습니다.
하체를 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0장에서도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체가 보여서 죄가 보여서 대제사장이 죽음을 당할까 해서 하나님께서는 층계로 단에 오르지 못하게 하셨고 또 하체를 가리기 위해 고의를 만들어서 입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왜 흠 없는 제물을 원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양이 흠이 있고 없고는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 양이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양을 바꾸는 자들이 성전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2:14절을 보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은 늘 그랬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알기 보다는 형식에 매달렸고 자기들이 행하던 그 규례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걸었습니다. 양이 흠이 있으면 어떻고 비둘기가 흠이 있으면 어떻고 돈이 조금 더러우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흠 없는 양을 드리라고 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렇지를 못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전에서 매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규례를 따라 드리는 제사를 너무도 소중히 생각했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규례와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의미보다는 그런 행위에 집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실로 짠 고의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인생인 아론의 아들들의 수치를 가려주는 것이 바로 이 속옷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속옷과 같이 점도 흠도 없는 흰색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 그 십자가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제단은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그 거룩한 곳에서 죄가 있는 인생이 제사를 드리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그 친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을 아론의 아들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들이 그런 의미를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속옷과 띠와 관과 그리고 고의는 대제사장이 입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그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행위에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모형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고 또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보면서 예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이스라엘과 또 같이 멸망을 당하게 되고 또 행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발견하는 성도만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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