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2:14-21절을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저는 말씀을 보면 그냥 안 봅니다
그리고 신앙에 있어 의문에 생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면서 지혜를 구하기도 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고민을 해 오던 내용이기도 하고 최근에 조금 황당한 일을 겪게 되어서 이 말씀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설교로 작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사를 너무 맹신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과 은사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은사는 말 그대로 은사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는 표징이 될 수도 없고 그것을 보면서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오해를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은사가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아니 그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인다 해도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은사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쉽게 말씀을 드리면 집을 짓는데 있어서 필요한 연장과 같은 것입니다 목적은 집을 짓는 것이지 또 집을 다 짓고 나면 그 은사라는 것은 사실 아무 쓸모가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집을 짓고도 연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연장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처음에 땅을 파던 포클레인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땅을 다 파고 기초를 세우고 집이 다 지어 졌는데도 아직도 포클레인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있어야 집이 된다고 주장을 한다면 한 마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그렇게 주장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집을 약간 수리하는 정도의 연장만 있으면 됩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세우던 다림줄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샷시를 다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연장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집을 다 지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샷시를 달아야 한다고 연장을 가지고 있다면 좀 이상한 사람입니다
구약은 연장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이제 다 지어져 있는 집입니다
우리에게 연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으로 다 지어진 집에 들어가 살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이 보이는 연장을 가졌다면 신약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으로 보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지를 못 합니다.
아니 믿음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되어 있고 자기가 행하고 있는 일이 바른 가 틀린가를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직까지도 구약의 그것을 보면서 마치 지금도 그럴 것이다 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 사람들이 했던 것을 지금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한 마디로 다 지어진 집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겠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은사 다양 합니다.
그리고 은사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말씀보다 우위에 서 있다면 그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을지라도 성경말씀을 넘어서려고 한다면 그 은사는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황당해서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참으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꾼 꿈을 마치 성령의 감동으로 꾼 꿈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설령 성령의 감동으로 꿈을 꾸었다 해도 그것은 연장 질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집에 망치가 있습니다.
그 망치를 한 번 사용한 것이 바로 꿈을 꾼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진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렇게 망치질을 한 번 한 것에 불과한데도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꿈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서 어떤 때는 꿈대로 해석을 하고 어떤 때는 꿈과 반대로 해석을 하면서 어리석은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령 그 꿈이 성령의 감동으로 꾼 꿈이라 해도 그것은 망치질을 한 것입니다 그런 꿈을 너무도 맹신을 하고 있고 마치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계시나 되는 것처럼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섭리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전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이미 성경이 기록되어 있고 그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꿈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샤머니즘입니다
솔직히 뭐가 다릅니까? 이 세상 사람이 꾸는 꿈은 개꿈이고 자기가 꾸는 꿈은 성령의 감동입니까? 그런 편협 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은사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이 꾸는 꿈과 별로 다른지 않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꿈을 꾸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꿈을 꾸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시작부터 보면 반대를 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꿈을 꿔 왔고 또 꿈에 대해서 사모 했던 사람들이라면 자기가 꾸고 있는 꿈을 무시하는 글을 보면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이 문제는 분명히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설교로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꿈은 구약에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에는 단 세 번 사건으로 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꿈 하면 제일 먼저 야곱이 생각이 납니다.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난 후에 에서가 죽이려고 할 때 밧단아람으로 피난을 가다가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꾼 꿈 입니다 그 꿈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꿈 하면 요셉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요셉의 꿈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들어 왔고 그 꿈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꿈으로 보여 주신 것으로 인하여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또 다른 사람들이 꾼 꿈을 바로 해석을 해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창세기41:25절을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면서 더구나 그 꿈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인하여 신앙인들이 더욱 꿈을 사모하게 되어 있고 그냥 평범하게 꿈을 꾸는 것도 마치 그것이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로의 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로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바로의 꿈, 요셉의 꿈은 성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시고자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는데 또 그런 꿈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고 만약 그런 꿈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보는 이 성경은 매우 불완전한 것으로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다니엘의 꿈 해석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런 구약의 꿈은 그 꿈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야곱의 꿈, 요셉의 꿈, 다니엘의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하시고 있는 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꿈을 통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또 꿈을 꾸어야 하는 가 또 그 꿈이 정말 신앙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인가 하는 문제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약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럼 신약에 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신약에는 꿈에 대해서 딱 세 번의 사건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어떻게 되어졌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2:12절을 보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물을 가져와 예수님을 보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전에 헤롯을 만나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헤롯이 메시아를 만나거든 자기에게도 가르쳐 달라 자기도 경배를 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동방 박사들에게 꿈으로 말씀을 해 주셔서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해서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꿈은 예수님에 대한 꿈 입니다
만약 이 꿈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헤롯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셔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헤롯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꿈을 통해 동방박사들에게 지시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21-23절을 보면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 꿈도 예수님에 대한 꿈 입니다
예수님께서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가셨다가 헤롯이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을 통해 갈릴리로 가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7:19절을 보면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려 달라는 꿈입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꿈에 애를 많이 썼는데 예수는 죄가 없으니까 꿈을 꾼대로 살려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도 자기 아내의 말을 듣고 예수를 살려 주려고 노력했던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꿈대로 되었습니까?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살리기 위해서 꿈을 꾸었지만 그 꿈대로 예수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왜 살릴 수 없었느냐면 만약 예수를 살린다면 그것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살렸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죄인일 수밖에 없고 믿음의 대상이 없어지고 맙니다. 이 꿈은 그대로 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꿈 입니다
신약의 세 꿈은 모두 예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도 누가 꿈을 꾸었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왜 안 나오는가 하면 바로 성경이 다 기록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모든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의 꿈을 통해 계시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오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서 함께 은사가 같이 와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면서 큰 소리로 외치니까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저들이 술에 취했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그냥 되어 진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 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방언으로 복음을 전 했습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명절이 되어서 돌아와서 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마치 술에 취한 것과 같은 상태로 복음을 전하는데 한 사람이 말하는데 여러 나라의 방언으로 들려지니까 놀라워서 이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열한 사도가 말 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고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고 또 너희가 죽인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믿어야 너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복음에 대해서 강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지금이야 성경에 방언이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당시 처음 이 일을 겪은 사람들로서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더구나 그들이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학문도 별로 없는 사람들인데 성경에 대해서 거침이 없이 말씀을 전하니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후에 나오는 말씀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 하나 때문에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도 샤머니즘을 버리지 못하고 꿈을 꾸기를 좋아하고 있고 남이 꿈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해 가지고 그 이야기를 듣고 꿈 이야기가 마치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목회자들은 자기가 꿈을 꾼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그 꿈대로 안하면 안 되는 것처럼 은근히 겁을 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주변에서 그렇게 꿈을 꾸는 사람들을 너무 신뢰를 하고 그 꿈에 대해서 감히 반박도 못하고 꿈에 대해서 어떤 이견을 냈다가는 마치 큰일이 나는 것 같이 서로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꿈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꾼 꿈을 마치 성경보다 더 위에 두고 말하는 사람은 사상 적으로 아주 잘못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에게 미혹이 되면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지 연장을 가지고 망치질 한 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진리와 같이 취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말씀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꿈에 대해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또 자기들이 꾼 꿈을 마치 대단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 이 말씀 때문에 꿈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도 못하고 특히 자기보다 신앙의 연조가 깊거나 교회의 중직 자들이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꼴 같지도 않은 평신도들이 자기들이 꾼 꿈을 가지고 심지어는 목회자들까지도 은근히 겁박을 하면서 자기가 이런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성경 말씀을 이야기 하는데 자기가 꾼 꿈을 이야기 하면서 마치 자기가 꽤나 신령한 것 같이 주장을 할 때 너무도 기가 막힙니다. 솔직히 다툼을 하기 싫어서 더 이상 이야기를 안 하는데 자기가 대단한 꿈을 꾼 것같이 주장을 하고 옆에서도 그 꿈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말세에 성도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정말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안 되면 사도행전 2장을 한 백번만 읽어보면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을 너무 대충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누구에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까?
말세에 모든 육체입니다. 내 영이라고 하니까 마치 진리의 성령인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바로에게 꿈을 주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느브갓네살 왕에서 꿈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성도고 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꿈을 꾸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본다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성경은 모든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육체를 칭하고 있고 그들이 예언을 하고 자기들이 환상을 보고 또 꿈을 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영으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해 주시지만 이들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옵니다.
앞에는 모든 육체에 내 영으로 부어 주어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또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또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 종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모든 육체와 뒤에 내 남종과 여종은 분명히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는 모든 육체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될 수 있고 또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구원을 못 받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그들의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너희의 자녀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청년이 아니라 너희의 젊은이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도가 아니라 오히려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성경의 문맥상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내 영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데 뒤에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도 예언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사람들과 뒤에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요엘서에서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베드로를 통해서 앞에 사람들과 뒤에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해서 그 영을 따라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 해도 그들이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꿈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제 꿈은 망치질 한번 한 것과 같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꿈을 꾸어 놓고서 그 꿈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육체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부어 주어 그들이 예언도 하고 또 환상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지만 그들이 결코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도가 이런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면 그들이 예언을 하기도 하고 또 환상을 보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하는데 이 영이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가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모든 성경이 다 한 결 같이 번역되기를 모든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육체가 다 구원을 받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의 꿈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지금도 그와 같이 꿈을 꾸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신약에서도 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꾼 꿈이고 그 꿈도 빌라도의 아내가 꾼 꿈은 절대로 그대로 이루어 져서는 안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녀가 많이 애를 썼지만 그 꿈대로 이루어 졌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고 그럼 우리 이방인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멸망을 당해야 합니다.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세가 될수록 이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에 대한 예언을 할 것이고 또 그들이 환상을 보면서 자기주장들을 할 것이고 또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그 꿈을 가지고 성경보다 더 권위를 내 세우고자 합니다. 이 늙은이들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늙은이들을 바로 교회에 연조가 깊은 사람들 장로나 목사들을 늙은이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
지금 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저는 언급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일이 일어나는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말세가 언제인지를 알 수 있고 또 그 말세에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위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바로 그 때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그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행전의 말씀이 언제를 지칭하고 있는가를 냉정히 생각하시고 또 누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 뒤에 내 남종과 여종을 분명히 구분을 해 놓았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결론입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늙은이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꿈 많이 꾸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꿈으로 인하여 망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세에 꿈을 꾸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시대가 악하다 보니까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모든 계시를 다 해 주셨는데 아직도 꿈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물론 꿈을 통해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은사로서의 역할이고 그 꿈은 겨우 망치질 한번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도 행전의 말씀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고 마치 성도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으로 이 말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국어를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다면 전후 문맥만 주의 깊게 보아도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꿈같은 것에 미혹 당하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 영혼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예수 이름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아 천국의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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