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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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윤주만목사 2016. 2. 17. 21:03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빌립보서3:17-2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세상일에는 아주 신중을 기합니다.

혹시라도 그것이 잘못 될 까봐 밤잠을 설치면서 까지 확인을 해도 또 심사숙고를 하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수십 년을 공부를 하고 또 점검을 하면서 그 일에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에서 우수 기업들에게 벤처 자금을 지원해 줄 때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중에 2-3개 정도만 성공을 해도 국가적으로 볼 때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90여개 이상의 기업에다가 투자를 해 주고 있습니다. 거의 90%가까이는 사업에 실패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실패를 생각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처음부터 실패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거나 정부 자금을 받아 융통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실패를 하게 되면 오너 입장에서는 그것이 다 자기 개인 빚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그 자금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역시 대다수의 기업들이 실패의 쓴 잔을 맛보고 또 오너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을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사업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자기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에 온 정성을 다 해서 개발을 해 보지만 시장은 때로 냉혹하게 반응을 하게 됩니다 너무 시대에 앞선 제품을 만들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너무 품질이 좋은데 가격 경쟁이 안 되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또 홍보를 하는데 있어 자금력이 부족해서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볼 때 삶에 대해서 적응을 못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또 정말 이 사람만 하면서 간절히 사랑을 하고자 해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다가 때로는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온갖 정성을 다 들였는데도 상대가 그 마음을 안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설령 사랑에 성공 했다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이혼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막상 살다보니까 서로 맞지를 않아서 다툼을 일으키다가 이혼을 하기도 하고 둘이는 정말 좋아하는데 주변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아서 이혼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결혼을 하면서 이혼을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자기들만은 백년해로를 하면서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 합니다

아무렇게나 막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가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의 사람들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최선이라는 것도 인생에 있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실패의 쓴 잔을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인생도 그렇게 삽니다.

하물며 영생을 바라고 내세를 소망하는 교인들은 더욱 더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에 가고 싶어서 더욱 열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다수는 자기가 진리를 알고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또 먼저 믿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권하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영생은 물론 선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자만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칼뱅주의의 사상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바로 알려고 그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늘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릅니다.

한 사람은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의 규례를 따라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행하면서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니까 저 사람이 천국에 가면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의 규례를 따라 행하려 하기보다는 또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려고 하기 보다는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말씀이 이해가 안 되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위를 따라 가려고 하기 보다는 성경 안에서 진리를 알기를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면서 그 말씀이 맞는 가 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알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해석이 안 되는 성경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 100번이고 200번이고 읽으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전혀 뜻 밖에 일로 그리고 또 사람을 통해서 그 말씀이 해석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무작정 그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 설교를 작성하다 보면 해석이 됩니다.

 

심지어는 5-6장정도 작성을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전에 기록했던 모든 것을 다 지우고 다시 작성을 합니다. 물론 수고스럽지만 그래도 그 말씀이 바로 해석이 되었다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야고보서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언제나 제가 부족해서 지혜를 구할 때면 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제가 지혜가 부족할지 몰라도 저는 이 말씀을 제 마음에 새기고 있고 이 말씀 그대로 제가 지혜를 주시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내 주시기도 합니다.

사도행전8장에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하러 왔다가 예배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말씀을 놓지 못하고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가고 있으니까 주의 사자가 빌립을 감동시켜서 광야로 가서 그 내시를 만나게 해 주셔서 내시가 예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말씀을 동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세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 알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가 지혜를 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그냥 보지를 않고 그 말씀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사모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가라지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 세상 것을 구합니다.

교회에서 의롭게 살기를 구하고 또 선하게 살기를 원하고 또 재물을 통해 자기가 헌신할 수 있기를 구하고 있고 자기 행위가 바르게살기를 원하면서 구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사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그는 그런 이 세상 것을 구하려 하기 보다는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있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보아도 그 말씀이 이해가 안 되면 어떻게 하든지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간절하게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보지 마시고 또 어느 한 문장을 보지 마시고 전체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내가 혹시라도 잘못 알고 있지는 않은가를 늘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행위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보면서 사도바울이 행한 일들을 본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도행전을 하려고 합니다.

선교를 나가기도 하고 또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서 마치 자기들이 사도바울을 본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행했던 어떤 한 가지라도 하면 사도바울을 본받으라고 한 이 말씀을 자기도 행한 것으로 알고 마음에 뿌듯한 기쁨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도바울이 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단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단 한 사람 만드셨지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을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될 수도 없고 그가 행한 것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사가 다르고 또 내가 받은 은사가 분명히 다른데 어떻게 사도바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빌립보서3:9절을 보면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바울은 빌립보서3장에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신뢰할 만 하다고 하면서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자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그 태생으로 볼 때 흠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받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태생과 행위는 아무 쓸모없는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받으라고 지금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얻은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힘주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을 본받겠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본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점점 바리새인화 되어 가고 있고 그런 자신들을 보면서 사도바울을 본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따라 하려는 자는 사도바울을 본받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한 모든 행위를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8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행위를 따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랑입니다.

아니 훈장과도 같습니다.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을 하고 또 그 선교지에 단기 선교를 갔다 오고 하는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마치 사도바울이 된 것 같이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어떻게 의를 얻었는가를 본받으라고 하는 말씀인데 너무도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행하는 것을 오해 합니다.

꼭 몸으로 육체로 행하는 것만 행하는 것으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육체에 상관된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사도바울과 같이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가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로 난 의입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믿음으로 얻은 것 같이 나 역시도 사도바울의 믿음을 본받아서 그 의를 얻어야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본받아야 하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자기들이 지어낸 말로 신 사도행전을 써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도 잘 만들어 냅니다.

제가 선교를 하지 말고 선교사를 파송하지 말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할 수 있는 한 사도바울과 같이 믿음이 있는 자를 선교사로 파송을 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본받지를 않고 그저 행위를 본받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을 본 교회에 보고를 하고 있고 그 선교사를 후원하는 자들은 마치 자기가 사도바울을 돕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한 행위를 본받는 것 물론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의를 얻었는가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행한 모든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하나님께서로서 난 의를 얻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한 행위를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도 소중해서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바울과는 전혀 다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설물로 버려야 하는 것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지키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로 난 의를 얻는 방법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전제 조건이 내가 한 모든 행위 그리고 내 신앙의 연조를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본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사도바울이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진짜 복음을 아는 성도는 이 시대도 사도바울과 같이 눈물로 호소를 하고 있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또 다른 곳으로 전도를 하러 가면 어느 새 이단들이 들어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고 고린도교회는 은사주의에 빠져 혼란을 겪었고 거의 모든 교회들이 믿음으로 바로 서기 보다는 행위를 따라 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바울은 안타까워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그 복음을 듣고 처음에는 기쁨을 누리다가 변질이 되고 난 후에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의 행위의 의를 얻으려 하는 것을 지금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행하고 있는 그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오히려 행위에 대해서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자기 의로 간직하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하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모르면 원수로 행하면서도 자기는 잘 믿었다고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배설물로 버리지 못하고 또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의 결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지 않는 자들이 어떤 결과가 있는 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말씀을 해석할 지혜가 없어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땅의 일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다 땅의 일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일을 하늘의 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예배, 기도, 찬송, 봉사, 헌신, 사랑, 이 모든 것은 다 땅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땅의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행하는 모든 일은 다 땅의 일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행했던 아니면 세상에서 행했던 간에 모두가 땅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이 편지를 썼는가 하면 바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 교회 안에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도 그가 살아 있는 가운데 있는 그 교회도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성도는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육체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 당연히 땅의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우리나라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나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멸망을 하는 자는 땅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는 하늘의 일을 생각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연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자인가 아니면 땅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자 인가는 앞서 말씀을 드린 것을 상고해 보면 압니다. 내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 당연히 하늘의 일에 온 마음이 다 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우리나라 잘 되는 것을 바랍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고 미국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 자 인가를 냉정하게 분별을 하면 땅에 속해 있고 땅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고 또 재물을 얻기를 바라고 있고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은 내가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이라는 것을 믿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서 우리가 거기서 영원히 축복을 누릴 것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단할지라도 참고 또 참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시고 또 오시면 만물이 그에게 복종을 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형상을 입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우리가 연약한 육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벗어 버리고 하늘의 형체를 입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하늘의 영광의 형체를 입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 형체를 입는 것은 자기의 행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으면 자기와 같이 이런 믿음을 가지라고 본받는 자가 되라고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본받고 싶습니까?

사도바울의 태생과 또 그가 행위를 어떻게 했는가를 본받고 싶습니까?

그것은 땅의 일입니다 그런 땅의 일을 본받는 자가 되기보다는 하늘의 일을 생각하면서 자기 영혼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행위를 배설물과 같이 버린 사도바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자기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사도바울의 행위를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땅의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하면서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그 의를 얻기 위해서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지기 위해 본받는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하늘의 영광의 형체를 입고 영원토록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빌립보서3:17-2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세상일에는 아주 신중을 기합니다.

혹시라도 그것이 잘못 될 까봐 밤잠을 설치면서 까지 확인을 해도 또 심사숙고를 하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수십 년을 공부를 하고 또 점검을 하면서 그 일에 확신을 가지고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에서 우수 기업들에게 벤처 자금을 지원해 줄 때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중에 2-3개 정도만 성공을 해도 국가적으로 볼 때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 90여개 이상의 기업에다가 투자를 해 주고 있습니다. 거의 90%가까이는 사업에 실패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실패를 생각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처음부터 실패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거나 정부 자금을 받아 융통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실패를 하게 되면 오너 입장에서는 그것이 다 자기 개인 빚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그 자금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역시 대다수의 기업들이 실패의 쓴 잔을 맛보고 또 오너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을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사업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자기가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에 온 정성을 다 해서 개발을 해 보지만 시장은 때로 냉혹하게 반응을 하게 됩니다 너무 시대에 앞선 제품을 만들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너무 품질이 좋은데 가격 경쟁이 안 되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또 홍보를 하는데 있어 자금력이 부족해서 실패를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볼 때 삶에 대해서 적응을 못해서 실패를 하기도 하고 또 정말 이 사람만 하면서 간절히 사랑을 하고자 해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다가 때로는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온갖 정성을 다 들였는데도 상대가 그 마음을 안 받아들이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설령 사랑에 성공 했다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이혼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막상 살다보니까 서로 맞지를 않아서 다툼을 일으키다가 이혼을 하기도 하고 둘이는 정말 좋아하는데 주변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아서 이혼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결혼을 하면서 이혼을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자기들만은 백년해로를 하면서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 합니다

아무렇게나 막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가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의 사람들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최선이라는 것도 인생에 있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실패의 쓴 잔을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인생도 그렇게 삽니다.

하물며 영생을 바라고 내세를 소망하는 교인들은 더욱 더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에 가고 싶어서 더욱 열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다수는 자기가 진리를 알고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또 먼저 믿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권하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영생은 물론 선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자만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칼뱅주의의 사상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바로 알려고 그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늘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릅니다.

한 사람은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의 규례를 따라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행하면서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니까 저 사람이 천국에 가면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의 규례를 따라 행하려 하기보다는 또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려고 하기 보다는 그 마음이 감동을 받아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말씀이 이해가 안 되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위를 따라 가려고 하기 보다는 성경 안에서 진리를 알기를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면서 그 말씀이 맞는 가 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알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해석이 안 되는 성경 말씀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 100번이고 200번이고 읽으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전혀 뜻 밖에 일로 그리고 또 사람을 통해서 그 말씀이 해석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무작정 그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 설교를 작성하다 보면 해석이 됩니다.

 

심지어는 5-6장정도 작성을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전에 기록했던 모든 것을 다 지우고 다시 작성을 합니다. 물론 수고스럽지만 그래도 그 말씀이 바로 해석이 되었다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야고보서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언제나 제가 부족해서 지혜를 구할 때면 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제가 지혜가 부족할지 몰라도 저는 이 말씀을 제 마음에 새기고 있고 이 말씀 그대로 제가 지혜를 주시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내 주시기도 합니다.

사도행전8장에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하러 왔다가 예배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말씀을 놓지 못하고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가고 있으니까 주의 사자가 빌립을 감동시켜서 광야로 가서 그 내시를 만나게 해 주셔서 내시가 예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말씀을 동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세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 알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가 지혜를 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그냥 보지를 않고 그 말씀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사모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가라지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 세상 것을 구합니다.

교회에서 의롭게 살기를 구하고 또 선하게 살기를 원하고 또 재물을 통해 자기가 헌신할 수 있기를 구하고 있고 자기 행위가 바르게살기를 원하면서 구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사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그는 그런 이 세상 것을 구하려 하기 보다는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있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보아도 그 말씀이 이해가 안 되면 어떻게 하든지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간절하게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보지 마시고 또 어느 한 문장을 보지 마시고 전체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내가 혹시라도 잘못 알고 있지는 않은가를 늘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행위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말씀을 보면서 사도바울이 행한 일들을 본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도행전을 하려고 합니다.

선교를 나가기도 하고 또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서 마치 자기들이 사도바울을 본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행했던 어떤 한 가지라도 하면 사도바울을 본받으라고 한 이 말씀을 자기도 행한 것으로 알고 마음에 뿌듯한 기쁨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도바울이 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단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단 한 사람 만드셨지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을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될 수도 없고 그가 행한 것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은사가 다르고 또 내가 받은 은사가 분명히 다른데 어떻게 사도바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빌립보서3:9절을 보면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바울은 빌립보서3장에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신뢰할 만 하다고 하면서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자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그 태생으로 볼 때 흠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받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태생과 행위는 아무 쓸모없는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받으라고 지금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얻은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힘주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떻습니까?

사도바울을 본받겠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본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점점 바리새인화 되어 가고 있고 그런 자신들을 보면서 사도바울을 본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따라 하려는 자는 사도바울을 본받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한 모든 행위를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8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행위를 따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랑입니다.

아니 훈장과도 같습니다. 자기들이 선교사를 파송을 하고 또 그 선교지에 단기 선교를 갔다 오고 하는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마치 사도바울이 된 것 같이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어떻게 의를 얻었는가를 본받으라고 하는 말씀인데 너무도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행하는 것을 오해 합니다.

꼭 몸으로 육체로 행하는 것만 행하는 것으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육체에 상관된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사도바울과 같이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가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로 난 의입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행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믿음으로 얻은 것 같이 나 역시도 사도바울의 믿음을 본받아서 그 의를 얻어야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본받아야 하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자기들이 지어낸 말로 신 사도행전을 써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도 잘 만들어 냅니다.

제가 선교를 하지 말고 선교사를 파송하지 말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할 수 있는 한 사도바울과 같이 믿음이 있는 자를 선교사로 파송을 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본받지를 않고 그저 행위를 본받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을 본 교회에 보고를 하고 있고 그 선교사를 후원하는 자들은 마치 자기가 사도바울을 돕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한 행위를 본받는 것 물론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의를 얻었는가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행한 모든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하나님께서로서 난 의를 얻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한 행위를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도 소중해서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바울과는 전혀 다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설물로 버려야 하는 것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지키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로 난 의를 얻는 방법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전제 조건이 내가 한 모든 행위 그리고 내 신앙의 연조를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본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사도바울이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진짜 복음을 아는 성도는 이 시대도 사도바울과 같이 눈물로 호소를 하고 있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또 다른 곳으로 전도를 하러 가면 어느 새 이단들이 들어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고 고린도교회는 은사주의에 빠져 혼란을 겪었고 거의 모든 교회들이 믿음으로 바로 서기 보다는 행위를 따라 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바울은 안타까워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그 복음을 듣고 처음에는 기쁨을 누리다가 변질이 되고 난 후에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의 행위의 의를 얻으려 하는 것을 지금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행하고 있는 그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오히려 행위에 대해서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을 자기 의로 간직하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하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모르면 원수로 행하면서도 자기는 잘 믿었다고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배설물로 버리지 못하고 또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기를 구하지 않는 사람의 결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지 않는 자들이 어떤 결과가 있는 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말씀을 해석할 지혜가 없어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땅의 일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다 땅의 일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일을 하늘의 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예배, 기도, 찬송, 봉사, 헌신, 사랑, 이 모든 것은 다 땅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땅의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행하는 모든 일은 다 땅의 일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행했던 아니면 세상에서 행했던 간에 모두가 땅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이 편지를 썼는가 하면 바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 교회 안에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도 그가 살아 있는 가운데 있는 그 교회도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성도는 땅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육체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 당연히 땅의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우리나라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나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멸망을 하는 자는 땅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는 하늘의 일을 생각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연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자인가 아니면 땅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자 인가는 앞서 말씀을 드린 것을 상고해 보면 압니다. 내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 당연히 하늘의 일에 온 마음이 다 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우리나라 잘 되는 것을 바랍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고 미국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 자 인가를 냉정하게 분별을 하면 땅에 속해 있고 땅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고 또 재물을 얻기를 바라고 있고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은 내가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상이라는 것을 믿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서 우리가 거기서 영원히 축복을 누릴 것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단할지라도 참고 또 참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시고 또 오시면 만물이 그에게 복종을 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형상을 입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우리가 연약한 육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벗어 버리고 하늘의 형체를 입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하늘의 영광의 형체를 입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 형체를 입는 것은 자기의 행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으면 자기와 같이 이런 믿음을 가지라고 본받는 자가 되라고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본받고 싶습니까?

사도바울의 태생과 또 그가 행위를 어떻게 했는가를 본받고 싶습니까?

그것은 땅의 일입니다 그런 땅의 일을 본받는 자가 되기보다는 하늘의 일을 생각하면서 자기 영혼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행위를 배설물과 같이 버린 사도바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자기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사도바울의 행위를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땅의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하면서 본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그 의를 얻기 위해서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지기 위해 본받는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하늘의 영광의 형체를 입고 영원토록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