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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윤주만목사 2015. 7. 31. 18:59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고린도후서4:7-15절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믿음

성도는 이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위와 믿음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믿는다는 것이고 성도가 가진 믿음은 내가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입니다. 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면 자기가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종교를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믿게 해 주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믿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믿음이라는 뜻과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믿음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믿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적인 행위로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단이 나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자기가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성적으로 따져 보아서 믿는 그것이 다 이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이성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그것이 합당하면 믿는 그것은 다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합니다.

그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가 나를 믿게 역사를 해 주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 이성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자기가 믿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 기본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이 기본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열심히 믿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믿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종교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믿음이 없으면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해도 없으면 차라리 안 믿는 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입니다.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마치 자기가 믿는다고 생각하면서 열심을 내다가 이 세상에서 종교에 자기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또 주님께서 오실 때 철저하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는 무섭습니다.

개인이 종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개인의 지혜가 종교의 지혜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차라리 이 세상 죄인으로 살지언정 종교인은 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먼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을 못 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냥 두 번 죽으면 끝이 나지면 교회 안에 있으면서 믿음이 없으면 두 번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형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보고 불쌍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믿음이 없는 그가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은 그래도 자기 이성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없는 자는 종교를 위해서 자기 평생을 다 헌신을 했습니다. 자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그 종교에 십일조를 내고 또 시간을 내서 종교가 하는 모든 일에 열심을 다 해서 섬겼습니다.

 

그런데 불 못에 떨어집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세세토록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세상 죄인으로 살다가 최후의 심판에서 둘째 사망을 당하면 되는데 이 세상에서 기껏 하나님을 믿는다고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그 종교에 헌신을 하면서 살았는데 죽는다고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일이 있습니까?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그래서 육적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 다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다수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통 웃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정통입니까? 다수가 만들어 놓은 정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정통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아서 그들이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정통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이 시대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모르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종교적으로 믿는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얼마나 적은 가를 성경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이 믿음의 비밀을 알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도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 합니다. 그저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파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행위에 속한 것은 다 버릴 수 있는 그 사람만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정말 불행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 후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누군가 하면 이 시대 다수의 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다수의 교인입니다 이단은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단은 별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단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해서 세운 고린도교회가 은사주의에 빠졌고 갈라디아 교회가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정통입니다

사도들이 진리를 전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도 다른 복음이 들어와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이단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제 설교는 이단은 아예 이야기 대상도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미혹을 당해서 주님이 오실 때 버림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버림을 받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그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고 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닫고 고린도후서 13장의 말씀과 같이 내가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확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새 번역입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보배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 속에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흙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반드시 우리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 흙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고 또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라는 말씀은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질그릇의 의미를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이 육체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육체는 마치 질그릇과 같이 연약해서 죄를 안 질 수도 없고 그래서 한 번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죽어야 하는 질그릇에 보배를 주셨습니다. 이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육체의 생명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짐승과 같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서 잊혀 져야 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셔서 영생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그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질그릇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흙으로 돌라가야 하는 질그릇을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 질그릇은 한 마디로 버려야 하는 그릇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질그릇 같이 만들어 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배를 넣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보배를 어떻게 넣어 주시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넣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성도의 믿음입니다. 이 보배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성경의 지혜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믿음의 비밀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 질그릇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배를 넣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쳤다고 합니다. 아니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 말씀을 보면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무지 어려워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께 있어 우리 안에 보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배를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을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능력을 믿는다고는 말로 하지만 이 보배를 자기들의 노력으로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능력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 믿음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다른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로 이 보배를 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다른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믿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보배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믿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바로 보배를 우리 안에 간직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하나님을 무슨 도깨비 방망이 같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깨비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능력이 아닙니다.

이 보배가 우리 안에 있는 능력입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 보배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지라도 이 능력이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능력의 직분을 맡은 자로서 일을 할 뿐이지 실제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보배가 성도님들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이 우리 가운에 임하셔서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를 세상은 이해를 못 합니다 아니 세상이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어지는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합니다.

누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도들이 이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보여 주셨고 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도 정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이 핍박을 했습니다.

 

보배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진리는 비 진리에 의해서 항상 우겨쌈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세상으로부터 시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진리에 대해서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진리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누가 이렇게 답답한 일을 당했습니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답답한 일을 당했습니다. 왜 답답한 일을 당했는가 하면 예레미야 한 사람만이 진리를 전했고 모든 선지자는 다 거짓을 전했기 때문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예레미야20:9절을 보면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왜 답답합니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를 선포하니까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예레미야를 반대 했습니다. 전하니까 반대를 하고 있고 또 안 전하니까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는 것을 빤히 알기 때문에 너무도 답답한 것입니다. 바로 이 시대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하면 안 듣습니다.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합니다. 그래서 답답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답답하여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답답하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보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안에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정말 답답할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때로는 정말 벽에 대고 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때로는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조용히 성경이나 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안 전하자니 또 마음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습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핍박을 받는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때는 핍박을 받아서 버린 것 같이 보일지라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버린바 된 것 같습니다.

아미 사람의 이성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배를 넣어 주셨기 때문에 그 영혼이 절대로 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율법주의에 의해서 핍박을 받게 되어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핍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안에 보배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주의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있다면 확실하게 내 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그 보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가를 생각하시고 또 선지자들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보배를 가지고 있는 성도는 망하는 것 같이 보여 집니다. 아니 실제 초대교회를 보면 망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늘 그렇게 이 세상에서 율법주의에 의해서 거꾸러뜨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배가 있습니다.

그 영혼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육적으로는 우겨쌈을 당하기도 하고 또 답답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보배를 넣어 주셔서 우리 영혼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육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새 번역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말 복음을 전할 때 멸시를 받기도 하고 그 복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행하고 있는 모든 선한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는 예수의 죽음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 대단한 일을 했을지라도 자기를 죽은 자 같이 하고 다녔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너무 살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 있는 자들은 사실 그 안에 보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기 몸에 예수의 죽은 것을 짊어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려면 반드시 예수의 죽은 것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의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자기를 통해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그 정도로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마 이 시대 누군가 그렇게 했다면 그것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의 죽은 것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려면 반드시 예수의 죽은 것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가 너무 살아 있어서 예수의 생명이 전혀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조금 무엇이라도 하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정말 그렇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는 예수의 죽은 것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 같이 하고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 시대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예수의 생명을 감추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서 강한 능력이 나타나고 자기는 예수의 족은 것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아까워하지 않고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을 때 사망은 사도 바울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새겨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망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자기를 죽여야 생명이 그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역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를 죽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자기가 모슨 조그만 일만 해도 그것을 나타내느라 예수의 생명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자기가 살아 있습니다, 특히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의 생명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다 그렇다고 보면 맞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생명을 죽은 것 같이 했는데 너무 살아 있습니다,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라는 말씀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똑같은 믿음의 정신을 가지고 믿고 또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역시 똑같은 믿음으로 믿고 말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모두가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믿고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안 믿습니다. 예수를 안 믿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야 하는데 안 믿다 보니까 자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나타나고 있고 목사가 나타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역시 믿었습니다.

 

믿고 전합니다.

믿음이 없이 전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자기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전하니까 나는 사망에 있고 너희는 생명이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믿음의 비밀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믿음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역시 이 설교를 보면서도 또 행위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예수의 생명이 역사를 하고 있기 않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무엇을 믿습니까?

자기가 무엇을 믿는 줄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다시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사도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알기 때문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면 예수를 살리신 이가 자기를 살리실 줄을 알고 있었고 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살리셔서 그 앞에 서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저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생명이 아닌 것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종교적 믿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아무 것이나 다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믿고 것입니다

 

믿고 싶은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생명에 대해서 믿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것을 믿는 것은 그렇게 되기를 믿고 싶은 것입니다, 믿고 싶은 것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가지고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믿게 하시기 위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많은 사건들과 환상과 비유와 예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생명에 대해서 믿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은 생명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필요에 의해서 믿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입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생명에 대해서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역사를 하는 것이 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해서 믿어서 그 생명을 질그릇에 갖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마시고 오직 이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질그릇에 보배를 갖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자기들끼리의 영광이지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 아닙니다.

 

반드시 생명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믿는 고로 생명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또한 우리도 살리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믿으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구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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