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카데미 강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윤주만목사 2015. 7. 31. 06:56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4:1-8절을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주객이 전도됐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육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면서 그렇게 행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은 공부에 열심을 해야 합니다. 물론 학비가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 그것이 주가 아닙니다. 아르바이트로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해도 자기가 해야 하는 공부의 목표가 있는 학생이라면 우선은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돈이 된다 해도 학생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가 학위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해도 때로는 그것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고 또 신이 나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은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일은 그 두 가지를 다 병행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일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한 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자기가 생명을 얻었다고 하면서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는데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후자가 더 맞습니다. 생명을 이미 얻었다면 이제 그 생명의 일 말고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 그렇습니다.

물론 생명이라는 것은 단번에 태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단번에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번에 낳았다고 해도 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성도는 생명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자기를 확증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지혜롭습니다.

사람이 사단의 지혜를 이기지 못 합니다. 어느 정도로 지혜로운가 하면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이 아니 믿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성경을 가지고 사람이 꼭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해서 거의 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단의 미혹이 다 넘어가서 자기는 이미 성도가 되었고 이제는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점점 더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율법주의가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 좋게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주의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이렇게 지혜롭게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미혹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거의 다 이것에 미혹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주객이 전도됩니다.

그러니까 성도도 아닌 자가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아니 이성으로 볼 때 그것이 너무도 좋게 보이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로 보여 지기 때문에 다 거기에 넘어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삶 좋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먼저 구원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물론 단회 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역사는 분명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얻기 까지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생명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아는 것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말 생명을 얻은 성도라면 계속해서 성경에서 이것을 알기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성도라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이제 자기가 막연하게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이제 생명을 얻었으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성도와는 차이입니다.

관심부터가 다릅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자기가 성도가 이미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아니 서로 자기들끼리 성도라 부르면서 교회 안에서 행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고 또 그것을 나타냄으로 해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됩니다. 그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수고가 다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헛되지 않은 것은 오직 성도의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이 믿음이 나에게 있으려면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럴 때 내 안에 믿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며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데살로니가서는 종말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성도들에게 암울했던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고 있었고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행복이기 보다는 육체적으로 너무도 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그 자체로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던 때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모든 서신서가 그렇듯이 사도 바울은 영생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것으로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권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수고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종교적으로 권면하지 말고 영생에 대해서 권면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에 대해서 권면을 하면 너무도 잘 듣고 있는 그들이 영생에 대해서 권면을 하면 오히려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안 듣습니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영생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행위에 대해서 권면을 해 주면 그것을 너무도 잘 듣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왜 예수를 믿고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 보니까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권면을 잘 듣는 그들이 영생에 대해서는 자기가 이미 받았다고 하면서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권면합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의 행위에 대해서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권면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고 그저 종교에 빠져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어떻게 하면 더 행위를 잘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거의 다 행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모르고 그저 종교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4:1절을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 일군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를 바랍니다. 종은 자기 주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자기 주인이 누군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예수보다 율법이 더 주인이 되어서 그것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주님의 일군이고 또 주님을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율법의 모양이 없을 때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 역시 그대로 배웠고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입니다.

행위를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외에 교회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운 대로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믿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더욱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려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일에 더욱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행위로 자기들 스스로의 마음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누리는 기쁨을 마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이고 그것을 너희가 그대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것에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그 즉시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믿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정말 믿음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한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주일도 믿음이 있어서 지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믿음으로 한다는 것과 주일을 믿음으로 지킨다는 것은 주님께서 십일조를 한다는 것과 주님이 주일을 지키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을 이 시대는 말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행위입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권면을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성도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무슨 지시를 여러분에게 내렸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에 무슨 명령을 준 것을 너희가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은 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한 성도라도 더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성경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명령입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하지만 이 사단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이 명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열 처녀의 비유에서 보아서 알고 있지만 모든 처녀가 다 주님이 오시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왜 기다립니까?

자기가 명령을 지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기가 이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주님이 오실 때 가다리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다 명령을 지켰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들도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어서 주님이 오실 때에도 어리석은 자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많습니까?

슬기로운 처녀가 많습니까?

미련한 처녀가 더 많습니까? 그것은 비교가 안 됩니다. 슬기로운 처녀는 아주 적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미련한 처녀가 되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쫓겨납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행하는 율법의 모습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주님께서 도적 같이 오시는 그 날에 통곡하는 날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모양을 내고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내고 있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율법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명령을 알기 때문에 늘 깨어서 자기가 믿음에 있는가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이 있는가를 모르고 있고 그저 종교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종교를 만들어 놓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 거룩함을 어떻게 얻는 줄을 모르고 그저 율법주의에 빠져 자기 육체를 거룩하게 하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주일을 거룩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히브리서10:10절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이 거룩함은 주님께서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겉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 하나님으로 난 생명을 말씀하고 있고 거듭난 생명이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은혜로 주어지는 거룩함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이 거룩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를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거룩하지도 않은 것을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는데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하기 보다는 음란에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음란에 빠져 있습니까?

음란이 무엇입니까?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을 음란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남편이 되셔서 우리에게 거룩함을 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로 거룩해지려고 하는 그 자체가 음란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음란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음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 행위를 하고 있는 자는 교회 안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얼마나 음란에 빠져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좇는 거룩함이 아니라 스스로 거룩해 지려는 음란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음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란하지 말라고 하니까 육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성경을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음란함이 아니라 영적으로 음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의 음란함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을 때 다 가져가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다시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아내입니다

육적인 자기 아내입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육적으로 보고만 있습니다. 자기 아내는 실제 육적인 아내가 아니라 교회를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대하는 마음입니다

어디서 음란이 시작이 되는가 하면 다 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가 음녀로 변하면 그것이 음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를 대할 때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대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5:26-27절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음녀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로 인하여 음녀로 변하는가 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로 인하여 음녀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셔서 흠이나 주름이 잡히지 않은 교회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음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하지 않고 그 교회와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 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의 모든 종교는 다 음행입니다 다 율법주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율법주의를 좇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음행을 하는 자는 주님의 아내와 음행을 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에 분수를 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음행에 빠져 형제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와 음행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믿음이 없다고 하고 있고 형제를 해롭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음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방인보다 더 심합니다. 불교에서 자기네들이 만들어 놓고 불상이라든지 전을 보면서 그것을 깍듯이 섬기는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를 너무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음행의 대상이 되어서 마음껏 음행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으로 형제의 영혼을 해롭게 하고 있으면서도 모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교우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에도 말하고 경고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음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형제를 해롭게 하는 일입니다, 어느 정도 해롭게 하는가 하면 그 영혼을 죽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줬고 경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고를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주님의 아내와 깊이 음행에 빠져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를 만들어 놓고 색욕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오직 주님만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믿음이 있다는 말로 무슨 일을 해도 다 가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더구나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옳다고 생각이 들면 이방인들보다 더 심하게 색욕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경고를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이 경고를 듣지 않고 함부로 아내를 취하는 자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 아내가 아세라가 되어서 음행의 모든 근원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섬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탈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아내는 아내 그대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내에게 내가 잘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 친구의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에게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잘하고 싶어도 그 친구가 나중에는 원수 같이 대할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도 자기 아내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어디로 부르셨습니까? 혼인 잔치로 부르셨고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무형의 교회냐 유형의 교회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교회와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보이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구약의 아세라가 이 시대 교회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정케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지만 사람들이 아내를 자기들 마음대로 취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아내라는 것을 모르고 마치 자기 아내 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주님의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거의 교회에 나온 모든 사람이 이 아내와 음행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를 사랑하고도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도 어리석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 같으면 절대로 이런 일이 없는데 믿음이 없다 보니까 자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다 보니까 아내를 함부로 취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내에게 너무 잘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정함이 어디로부터 오는 가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아내입니다.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성도가 두 사람이 모이면 교회가 됩니다. 뗄 내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보니까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조심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나왔다가 교회에 의해서 음행에 빠져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경고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경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요 사람을 저버린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경고를 저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이 경고를 했을지라도 이 경고를 저버리는 자는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입니다

모두가 행위에 의한 종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가 지금 종교화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빠져 음란한 행위를 하게 되는 순간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또 교회에 대해서 바른 정립을 하시기 바랍니다.

 

경고입니다

그냥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고를 했을 때는 이 말씀을 어기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가한 줄로 생각하고 있고 악을 행하면서 음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