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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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윤주만목사 2015. 7. 31. 07:56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2:12-18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과 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사람들은 성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인이 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되는 것은 이 세상의 다수와 대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늘 외롭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저는 구분을 분명히 합니다.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을 성도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을 교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불행하게도 성도보다는 교인이 더 많습니다. 어느 정도로 많은가 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자기들이 마치 성도나 되는 것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교회 안에 성도가 적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성경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씀들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고 또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들을 보면서 성도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와 교인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오직 자기 영혼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은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제 구원의 문제는 끝이 났으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거의 모두가 교인으로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예표입니다

그리고 비유와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그에게 없다면 사람의 지식으로는 이 성경을 절대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을 초등학문으로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오직 자기 영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버렸고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을 따라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가 구원에 대해서 의심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구원을 못 받았다고 이야기를 해 준다면 화를 낼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 구원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압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확증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종교에 의해서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으로 인정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 성령이 오신 성도들은 다릅니다. 그 첫 번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은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생을 모릅니다.

사실 이 시대 교인들은 영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영생을 받았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가 되어서 마치 영생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로 보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영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자기들의 영생의 문제는 끝이 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단번에 주시는 은혜를 반대하고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분명히 성도는 단번에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영생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 역시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생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영생을 어떻게 얻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살은 생명을 얻는 참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살은 생명을 주는 참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 떡을 먹어야 합니다.

 

한번 먹으면 끝이 납니까?

그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성경에서 계속해서 그 살을 먹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떡을 먹는 것이 어느 정도로 계속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날부터 해서 죽을 때까지 이 떡을 먹어야 합니다.

 

설교를 들으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예수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난 후에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유머를 이야기 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예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면 그것은 떡이 아니라 독약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룩이라는 독약이 섞여 있는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과연 이 시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이는 설교가 어디 있습니까? 겉으로는 예수를 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전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밖에는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전하지 않고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를 말하고 있지 실상은 다 누룩이 있는 떡을 먹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51절을 보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생명의 떡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이 생명의 떡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명의 떡만 먹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떡을 먹고 있다고 말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의 떡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떡을 먹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는 생명의 떡도 있고 율법도 있고 성도의 삶도 있고 수많은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체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떡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것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평생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 이 성경 안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은 것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사십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 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율법도 있고 또 성도들의 삶도 있고 여러 가지 교훈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가르치고 있고 그 떡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떡을 먹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있습니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생명의 떡을 먹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보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생명의 떡을 먹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인을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살인이 아니라 영혼을 살인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한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살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아마도 제가 살인자라고 한다면 자기가 언제 살인을 했느냐고 하면서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도 생명의 떡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그것을 먹고 있으면서 생명의 떡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생명의 떡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내 살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살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먹어야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그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 뿐이고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표면적으로 나타내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살입니다,

그것을 먹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의 살이라는 의미도 모르고 있고 어떻게 먹어야 주님의 살을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먹고 있는 것이 또 무엇인줄을 모르고 그저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을 먹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주님의 살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살만 먹어도 구원을 받을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어도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을 성경이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주님의 살을 먹지도 않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살만 먹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주님의 살만 먹였는데도 그 안에서 율법주의자가 나오고 또 은사주의자가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주님의 살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만 먹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보장이 없습니다. 하물며 율법의 행위를 먹고 은사를 나타내고 하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도 어리석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를 증거 하셨는가 하면 바로 주님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이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그렇게 했어도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누룩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죽을 때까지 이 생명의 떡을 먹고 있고 가라지는 이 생명의 떡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듣고 있는 온갖 누룩이 섞여 있는 말을 들으면서 그것을 생명의 떡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 아직 구원을 못 받아서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지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구원은 단번에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하고 있고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몰라서 지금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정말 잘 생각해야 하는 말씀이며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있을 때는 성도들에게 오직 생명의 떡만을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사도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전도를 하러 떠나고 나면 그 안에 율법주의 은사주의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까? 아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빠 할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함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순종하였거니와 그 때뿐만 아니라 떨어져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자기 구원에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주님의 은혜로 거저 얻는 것인데 사도 바울은 자기 구원에 대해서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이 시대는 이 구원에 대해서 힘쓰고 있는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너무도 힘쓰고 있는 그들이 구원에 대해서는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안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도 쉽게 보고 있고 자기 구원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먹고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 시대는 거의 누룩을 먹고 있습니다. 그 독약을 먹고 있으면서도 자기 영혼에 대해서 느낄 수 없다 보니까 그저 먹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 같으면 독약을 먹으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모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1:8절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주 예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자기가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을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지 않다 보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이 너무 성행을 해서 이제는 이스라엘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구원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에 복종을 하라고 하니까 오히려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것을 먹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룩을 먹다보니까 자기가 그 누룩에 복종을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복종하지 않고 구원은 이룰 수 없습니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복음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내게서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행위를 잘하는 것으로 마치 복음에 복종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이 복음에 복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돌아보면 아니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성도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려고 성경에서 생명의 떡을 먹고 있습니다.

 

항상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늘 우리가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게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은 이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니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도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얼마나 복음을 복종하지 않고 있는가를 알고 정말로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주님의 은혜는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주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늘 돌아보면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기를 발견하기 때문에 아니 너무도 쉽게 행위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보면 정말로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기에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다릅니다,

물론 구원의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가 내게 있는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은 자인가 아니면 그저 교회에 청함을 받은 자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늘 이것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혹시라도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있는 행위들이 있는가를 생각하지만 교인들은 그저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성경에서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주님의 살을 먹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힘쓰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평생을 성경을 보아도 주님의 살을 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공동번역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기 우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가 하면 바로 구원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오직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도는 항상 복음에 복종을 하고 있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으로 해서 항상 복음에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기를 힘쓰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우리 마음에 일으켜 주시고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셔서 우리 마음을 감동해 주시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내 안에 정말 이 기쁘신 뜻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이 내 가슴에 와 박혀 있는가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들을 보고 안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안 믿고 있습니까? 믿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바로 율법이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입니다. 그런 것이 복음에 복종하지 않게 하고 있고 아들을 보고도 믿지 않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하늘에 대한 소원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을 해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종교의 행위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시비와 원망이 없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하늘에 소망을 주고 계시는데 이 일을 하는데 있어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하늘을 소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 원망을 합니다.

왜 원망을 하는가 하면 자기 육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로 실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원망하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비가 없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율법으로 인하여 시비가 없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동일하게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것을 잘 몰라 시비가 없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의 영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영혼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난 생명으로 탄생이 된 성도는 흠이 없고 순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육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새 생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1:7절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죄 사함을 받아서 우리는 흠이 없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잘 해서도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가 그 구속의 은혜를 입고 죄 사함을 받아 흠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고 순전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흠이 없을 수도 없고 또 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순전함을 주시고 있습니다.

 

정말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는 이 흠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해도 흠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구속의 은혜로 피를 흘려주셔서 십자가를 믿는 성도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쁘신 뜻을 두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감동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에 복종하지 않고 거스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으로도 우리는 순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 외에는 순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자기들의 마음에 두지를 않고 있고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이 세상에 두시고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서 빛을 나타나게 하시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빛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흠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이 나타나게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 생명의 말씀을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이 시대는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전해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흠이 없고 순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 원치를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니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만을 전했습니다. 그것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그 기쁘신 뜻을 마음에 두어서 감동을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달음질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방에 교회들입니다 바로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수고하고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의 수고와 달음질로 인하여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고 그 안에 구원을 받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사도 바울로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썼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성도들 역시 이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새번역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성도들이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수고와 달음질로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복음을 전파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을 받는 그 일에 순교를 할지라도 나는 기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했습니다.

실제 그는 나중에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 그대로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게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수고를 하고 또 달음질을 했습니다. 그 터가 있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소망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기쁜 일입니다. 정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자기를 관제로 드릴 수 있는 성도만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또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가진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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