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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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윤주만목사 2015. 7. 30. 18:46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2:11-18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대는 원수를 모릅니다.

자기 원수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원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절묘하게 원수를 사랑하는 교인들을 보면 그 말씀이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수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사랑해서라도 구원을 원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가 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 원수라 해도 그 역시도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 뿐 아니라 그를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비록 원수가 될지언정 하나님의 눈에서 보면 그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원수라도 사랑해서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원수라 해도 때로는 그를 사랑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도 반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육적인 사랑이라면 솔직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과는 너무 동떨어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이 1조 원 정도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1조원인지 아니면 추정치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1조원이 넘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웃 사랑을 자랑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한국교회는 복음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은 그런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육체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잘 보이기 때문에 육체를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통해서 자기들이 진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 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실제 그런 일을 보고 종교를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이 이 세상의 이성으로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해야 합니다.

꼭 복음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도 복음 안에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했는데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반드시 구원과 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랑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원수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원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원수가 너무도 좋게 보여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율법을 원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원수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 때문인지 이 율법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知彼知己]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우리에게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싸우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싸우기는 하는데 자기 적이 누군가를 모르고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을 바로 알고 싸워야 하는데 적을 모르고 그저 허공을 향해서 자기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형국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원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모르면 그 싸움은 무조건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싸워야 하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혈과 육에 대해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그런 싸움에서 조금 이기는 것을 보면서 마치 천국을 침노해서 얻은 것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기 육체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싸움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다 이긴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으로 하고 있는 싸움은 사실은 영의 싸움이 아니라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베소서6:12절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을 가지고 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마치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하여 싸우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의 싸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육의 싸움입니다. 그것을 영의 싸움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의 원수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십일조를 내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육의 싸움이지 영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치 그런 행위들을 하면서 그것을 영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인하여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싸움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육의 싸움은 자기 육체로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육체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싸움은 오직 믿음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고 이 싸움을 하지 않아서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영의 싸움에서 천국을 침노하는 성도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입니다. 성도는 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육의 싸움은 누구나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의 싸움은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이 싸움이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대적을 모르다 보니까 이 싸움을 아예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영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육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켜서 이기는 것같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영의 싸움에서 이미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잘 지키는 그것이 마치 영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원수를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육의 싸움이고 또 자기 원수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수를 사랑하는 그것으로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절대로 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것이 영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 영의 싸움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원수라는 것도 모르고 자기를 사망에 빠뜨리고 있는 원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정말 이 생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다고 자기가 생명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명은 반드시 영의 싸움에서 이기는 성도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기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기는 것은 혈과 육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영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성도는 반드시 그 싸움에서 이겨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이방인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될 수도 없고 또 이스라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어야 하겠지만 육적으로는 절대로 이스라엘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모르다 보니까 그림자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알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데 자기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10: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이스라엘은 육체에 할례를 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할례 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할례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시 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라 해도 할례를 했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율법보다 이 할례가 더 우선이 되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당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로 할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할례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할례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를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할례당이라고 하는 자들에게서 무할례당이라고 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할례를 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할례를 행해야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우리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육체에 할레를 행하는 이스라엘도 할례를 어디에 행해야 하는 줄을 몰랐습니다.

 

육체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할례당입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에게는 육체에 행하라고 하셨지만 그리고 또 율법에서 육체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육체에 행하는 할례는 할례당이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신명기에서 할례를 어디에 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당은 목이 곧습니다.

왜 목이 곧은가 하면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자기들의 육체에 할례를 행하면서 그것을 표징으로 삼았고 목이 곧아 졌습니다. 이렇게 할례당이라고 하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이방인은 무할례당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입니다

이방인이라 해도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면서도 할례를 받지 않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쳐서 이스라엘이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도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할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위해서 할례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있어 중요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해들은 이방인들은 할레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육체에 할례를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레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새번역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때에 우리 이방인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이방인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제외 되어서 약속과 언약과 무관한 사람들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입니다

그것이 누구에 대해서 기록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구원을 육체로 생각했던 것이 이스라엘이 성경을 잘못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할례 자체가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이었고 또 아브라함을 통해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라는 약속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이 모든 약속과 언약에 대해서 이방인들은 외인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저 이성에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짐승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짐승과 같이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쟁을 하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이 없는 이방인을 짐승과 같이 생각합니다.

 

실제 맞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짐승과 무엇이 다릅니까? 물론 이 세상을 살 동안에는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몰라도 어두운 것으로 간다면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이성에 따라 이 세상을 살다가 죽습니다. 그것은 끝입니다. 그것은 사실 짐승이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이와 같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던 교회 밖에 있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방인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 해서 마치 자기가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스라엘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이 없이 살았고 그 말씀은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새번역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무슨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 같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을 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까?

우리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혹시라도 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들이 자기가 무슨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멀리 있었던 이방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깝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약과 약속들에 대해서 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을 모르는 가운데서 살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서 말씀합니다.

이방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가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그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화평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피로 그 막힌 담을 허시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원수가 되었습니까?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왜 원수가 되었습니까? 왜 원수가 되었는가를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먼저가 할례입니다. 그리고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할례와 그리고 율법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표징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막힌 담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혀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담을 쌓고 있기 때문에 율법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는 도무지 복음이 안 들어가고 있습니다.

 

담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서로 담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담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이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화평을 이루시고 우리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던 담을 허셨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킵니다.

이 율법으로 우리 이방인과 이스라엘은 도무지 화평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기 육체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폐하심으로 해서 우리 이방인이 하나님과 가깝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원수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이 시대 교인들이 너무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아주 이상한 말을 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이스라엘에 막힌 담을 허시려고 자기 피로 원수 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우리와 이스라엘의 막힌 담을 허시려고 원수 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 율법을 너무도 많이 지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기는 율법을 폐했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모든 것에서 실제로는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율법을 그저 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율법을 폐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폐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수를 폐하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자체도 거짓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율법을 폐하시고 막힌 담을 허시고 주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를 원한다는 그 심정으로 알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믿습니다.

이 원수된 것을 소멸 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 안 믿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고 일주일에 예배만 해도 몇 가지나 되는 줄 모르겠습니다. 헌금의 종류가 20여 가지가 되고 있고 절기를 지키고 있고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안 믿습니까?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방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폐하신 그것을 믿지를 않고 교회 안에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더 이상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 중에서 삼가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고 또 그것으로 의가 되는 모든 것 중에 하나라도 지키고 있다면 절대로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그것을 소멸을 하셨는데도 그것을 지키고 있다는 그 자체가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다고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 죽습니다.

율법의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그는 반드시 죽습니다. 원수된 것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면 다 죽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어서 그것을 어느 누구도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멸시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말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어야 하고 그것에 따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까? 율법을 안 지키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 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면 율법을 안 지키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믿음이 없습니다.

그저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원수된 것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면 그에 따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서 그것을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알면 뭐합니까?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로 십자가에서 폐하신 계명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며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원수가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면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믿음의 증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안을 주고 있습니다. 원수 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소멸하셨기 때문에 율법을 보아도 연약한 우리가 평안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먼데 있는 우리 이방인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성도는 더 이상 무거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율법으로 정죄를 받지 않아도 돼서 평안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입니다, 이 둘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가 얼마나 적은가를 모르겠습니다.

 

한 성령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위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나 우리 이방인이나 다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십자가를 믿는 성도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와 이스라엘에 막혀 있던 율법의 담을 허물어 버리셨고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가까워 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구속의 일입니다. 이 십자가의 구속을 믿고 율법을 폐하여서 주의 복음에 복종하는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