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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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윤주만목사 2015. 7. 30. 08:19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디모데전서3:1-7절을 보면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교회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교회를 너무도 좋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치리하는 목사들을 너무 전폭적으로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이 있는 교회들은 언제나 타락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교회라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다 용납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세우신 참 교회보다는 사람이 종교적으로 세운 교회가 더 많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가나안에 들어 간지 불과 100여년도 안 되어서 그 교회는 타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초대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교회에 대해서 어떠한 징계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사람의 이성에 의해서 유린이 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그저 자기들이 이야기를 하는 정통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타락을 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교회라 해도 그 안에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타락한 교회는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타락을 해 왔습니다.

이미 313년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난 후로부터 급속하게 타락을 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언제 한 번도 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타락만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그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가 끊임이 없이 스스로 개혁을 해 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타락의 길만 계속해서 걸어왔습니다. 물론 지나친 것에 대해서 일부 개혁을 했을지 몰라도 그것은 보이는 것에 대해서 개혁을 했을 뿐이지 실제 진리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들은 그렇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교회 중에서 개혁을 해서 정말 진리를 전한 곳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의 큰 틀에서 보면 그 교회들은 전혀 진리로 개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타락을 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가 이렇게 타락을 해 있는 상태인데도 사람들은 교회는 너무 이상적으로 보려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했습니까?

그것은 말 그대로 종교개혁입니다, 종교화 되어 버린 교회를 자기들이 이성에 맞게 개혁을 한 것이지 그들이 진리를 따라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개혁은 있었으나 하나님께로 돌라가는 개혁은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종교개혁은 아무리 많이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속된 말이 있습니다.

걸레를 빤다고 행주가 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는 아무리 개혁을 한다 해도 그것은 종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걸레를 빤 그것으로 마치 깨끗해 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있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진정한 신앙의 전환점은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입니다.

그 교회들이 중세 천주교를 개혁을 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종교가 종교를 개혁한 것입니다. 그런 개혁으로는 절대로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습니다. 조금 바꾸는 그것으로는 절대로 성도가 될 수 없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가 탄생을 했습니다. 루터교도 그렇고 감리교도 그렇고 그 후에 성결교 침례교 등 많은 종교들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 그저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인위적으로 종교개혁을 했을 뿐이지 정말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종교와 교회를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종교에는 법이 있고 교회에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성경의 기본 교리 자체를 무시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바른 교리가 있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는 교회가 다 법에 의해서 귀속이 되어 있습니다.

 

다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이 있다는 자체가 이미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종교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어느 교회가 법을 만들었습니까? 이미 성경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법이 없어도 교회는 진리를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되어 버린 교회는 먼저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법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바로 목사입니다. 예전에는 장로라고도 하고 감독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니골라당이 되어서 자기가 교회를 치리하려고 하다 보니까 법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장로나 감독이 타락을 하면 가장 먼저 만드는 것이 바로 교회의 법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도 감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런 모든 것을 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라고 보면 맞습니다.

 

마태복음7:15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입니다.

사람이 이 거짓 선지자를 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를 삼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사람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니 지혜로는 그것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분별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진짜 선지자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 같이 보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 수 있습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자기가 참과 거짓도 분별을 하지 못할 것 같으냐고 말하면서 이단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거짓 선지자는 그런 이단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 안에 있는 선지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대 정통 안에 있는 목사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가능합니까?

절대 불가합니다. 그 거짓 선지자는 양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그들은 분명히 양입니다. 그런 양을 보고 어떻게 거짓인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이성을 따라 선지자를 보고 있고 그 기준에 합당하면 참 선지자로 믿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리입니다

겉으로는 분명히 양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을 것 같지만 실제 그의 말을 들으면 사망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목사는 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이성으로 볼 때는 양과 같이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다 죽습니다.

이 이리에게 붙잡히면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양보다는 이리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생명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 중에 몇이나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에서는 없다고 저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 교회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가 종교화 만들고 있습니까?

바로 이리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를 종교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종교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교회라고 하면 교회라고 믿어 버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종교는 이미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놓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교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설교를 보면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교회에 대해서 칭찬을 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선지자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에 보냄을 받아서 그 교회를 칭찬을 했습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이스라엘보다 더 진리를 알고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자기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방의 교회는 자기들이 믿는 신이 있었고 그 사상의 터 위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 사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복음을 듣다 보니까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책망은 기분 나쁩니다.

하지만 칭찬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실제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제가 설교를 작성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이미 종교에 깊이 빠져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교회를 비판하는데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해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비판하면 그들은 마음이 상합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서 기분이 나쁩니까? 그것이 아니라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를 비판을 하니까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설령 제가 교회를 비판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대하는 자세부터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아! 교회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비판을 나느냐고 하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교회라는 종교가 우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를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입니다.

그들이 잘못 배우면 교회는 그냥 타락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신학이라고 하는 학교들이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양의 옷을 입고 나와서 교회를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타락을 시키고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의 이성에 좋게 생각되는 것으로 교회를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목사가 참이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까말까 합니다. 하물며 목사가 참이 아니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알고 정말 내가 보고 있는 목사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분별하여 자기 생명을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새번역입니다.

이 말은 옳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옳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하는 것은 미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교회에 나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다 보면 자기도 감독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시대는 신학이라는 공부를 하고 노회라는 곳에서 안수를 받아서 이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신학이 있었습니까?

그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과 같은 그런 신학교는 생각도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교회도 거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조용히 예배를 하고 했는데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신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신학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이 종교화 되어서 초등학문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런 신학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필요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먼저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학에서 그가 아무리 공부를 마친다 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이 세상의 종교를 가르쳐지는 종교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합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목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당시 감독과 지금의 목사와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종교인으로서 직업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자기 생명을 내 놓고 하는 일입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감독으로 있는 다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감동을 누가 쉽게 하겠다고 했겠습니까? 지금과 같이 종교의 자유가 있는 시대가 아니라 그 당시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는 그런 때입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감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결단이고 선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출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거의 포기를 하고 이 세상에서 헌신을 해야 하는 삶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어려웠습니다.

지금과 같이 목사들이 월급을 받는 때가 아닙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자기 전 재산을 내 놓기도 하고 또 심지어는 가족까지 버리고 이 일을 위해서 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때에 감독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때는 감독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목사가 아닙니다.

그런 감독을 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선한 일입니까? 실제 우리가 성경에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감동이 없이는 감독을 하겠다는 것을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하는 때입니다 사람의 이성이 아닌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이 감독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일을 하겠다는 그들이 미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감독입니다

누가 감독이 되어야 하는 가를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와 초대 교회의 감독의 차이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신학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는 반드시 신학이라는 것을 공부를 해야 하고 또 거기서 일정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노회에서 안수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독에 대한 조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에 신학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문하에서 신학을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단지 사도들이 가르침을 받은 자들을 분별해서 감독으로 안수를 했던 것으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감독이 누가 되어야 하는 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육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책망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육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지금 신학에서 윤리를 아주 철저하게 가르치는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8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오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책망을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감독이 되려면 성령의 책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책망을 하시는 것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알아야 합니다.

죄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는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것이 의라는 말씀이고 심판이라는 말씀은 이 세상 임금 사단이 심판을 받은 것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 중에 이것을 아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이것도 모르면서 감독을 하는 것은 감독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율법적으로 짓는 것을 죄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죄라고 회개를 하라고 하는 사람은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의롭게 살라고 하는 사람은 감독의 자격이 없습니다. 의는 주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의입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죄를 진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감독으로서 가격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그가 참 목사인가 아니면 그저 종교인인가를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책망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세상의 죄를 가지고 죄라고 하고 있고 또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지고 의라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이 정해 놓은 것을 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내라고 하니까 정말 생리적인 아내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도 아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도 아내가 있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그것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 시대 어떻게 합니까? 목사 안수를 할 때 결혼 여부를 따지고 있는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 아내가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감독과 성도는 다릅니다. 감독은 교회를 치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의 남편으로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마치 아내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여자는 안수도 안 주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이 절제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가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제가 맨 마지막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합니까?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그는 육체의 모양을 내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무조건 사랑하면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8가지 열매가 나를 통해서 다 나타난다 해도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그는 반드시 그것으로 망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마지막 열매가 바로 절제입니다.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이라 해서 다 가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라 해도 그것을 절제 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을 하나의 행위로 변질이 되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 은사가 아무리 나에게서 넘친다 해도 그것을 절재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절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디도서2:12절을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정욕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절대로 근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정욕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세상입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라고 말씀을 할 때는 거의 교회 안을 세상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정욕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로 하는 것이 다 세상의 정욕입니다. 그 정욕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세상 정욕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자기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모든 일이 다 정욕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육적으로 단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가 너무도 화려 합니다 목사들이 거의 탤런트 수준입니다. 그런 육체의 모양을 내기 보다는 정말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라야 감독으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목사가 성경과 어떻게 다른가를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나그네를 접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그네입니다 그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또 공손히 대하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나그네를 대접해서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나그네에게 양식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저 예수 믿으라는 종교적인 감언이설이 아니라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대접을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감독은 정말 나그네를 잘 대접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여 그가 생명을 양식을 배불리 먹게 해야 하는데 교회에 끌어 들여서 율법주의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죽습니다. 감독이 하나 잘못 세워지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지금은 나그네를 대접해서 생명의 양식을 배부르게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5:42절을 보면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가르치기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망에 이르는 율법은 아주 잘 가르치고 있는데 예수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입에 바른 말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불교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보도고 가르칠 수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입니다.

성경에서 예수에 대해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예수를 잘 가르치지 못하면 그는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써도 아마도 자기 목사는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고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율법이나 은사나 행위에 대해서 하라고 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않습니다,

감독이 무슨 술을 마십니까? 바로 율법의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술을 너무 많이 즐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목사까지도 모르고 있는데 교인들은 말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정말 행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너무 행위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줄을 모르고 그저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행위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행위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얼마나 술을 즐겨 먹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술에 흠뻑 취해 있습니다.

 

구타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구타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구타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구타합니까? 율법의 행위로 때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구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로 구타를 하면서 교인들을 때리고 있는데도 그것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정말 안타까운 일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오직 관용하고 다투지 않습니다.

정말 복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 인하여 다투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얼마나 다투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야 한다 주일을 지켜야 한다. 하는 것으로 너무도 다투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돈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 행동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증을 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를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의 거의 모두가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간증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의를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목사로서 한 일에 대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 시대 얼마나 많습니까? 거의 다 라고 해야 합니다. 감독으로서 가격이 없는 사람들이 이 시대 목사를 하고 있고 그들로 인하여 교인들이 모두가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진짜 집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성도 모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나 디도에게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데 자녀가 된 모든 사람이 단정함으로 복종하게 해야 하고 이렇게 복종하게 하지 못하면 어떻게 교회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22절을 보면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복음에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감독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복음에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들로 복음에 복종케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볼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복음에 복종케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복종케 만들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복종케 할 수 있는 자라야 감독으로 가격이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케 하려면 반드시 그 역시도 복음에 복종을 하는 자라야 합니다. 그런 감독만이 교회를 돌아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율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감독의 자격입니다.

육적인 것이 아니라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자격을 갖추고 있는 감독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것과는 정 반대로 하고 있으면서 교회 안에서 목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독의 자격을 바로 알지 못하면 죽습니다, 잘못하고 있는 감독에게서 어떻게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새로 입교한 자도 안 됩니다.

이 시대 이 세상의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가 교회에 나오면 그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도 가르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세상의 이성을 이용해서 미혹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감독 잘 아시기 바랍니다.

내 교회의 목사의 자격입니다. 과연 이 시대 이 자격을 갖추고 있는 목사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목사가 아니라 그저 종교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라는 곳에서 신학을 배워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다만 그들이 필요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을 뿐이지 실제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잘못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목사가 자격이 없는데도 자기가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감성적인 생각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아시고 바른 목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로 많은가 하면 참 선지자를 찾기가 힘이 듭니다. 디모데전서를 통해서 목사를 바로 분별하는 성도가 되어서 자기 영혼이 미혹당하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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