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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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윤주만목사 2015. 7. 30. 07:21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3:1-5절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경입니다.

이 세상의 그저 좋은 책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석학이라 해도 성경을 사람의 지식으로 공부를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 세상의 책을 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글을 보면서 그것을 아는 것으로 마치 성경의 깊은 지혜를 깨달아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문자를 아는 것은 그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의 원어를 안다고 해도 별로 다를 것 없습니다.

 

성경은 도덕책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종교에 의해서 속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다 안다 해도 그가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어를 다 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대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알기 보다는 신학이라는 곳에서 그저 학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공부가 오히려 진리를 가리게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유식함에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헬라어가 무엇입니까? 영어에 그리고는 이태리어까지 이 세상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면 진리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비밀은 이것을 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우리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만 잘 보아도 구원을 받는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초등학문으로 가게 만들어서 성경에서 영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르면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에 모르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지고 마치 성경을 아는 것처럼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던 이스라엘을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누가 악한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악인과 의인이 있습니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를 의인이라고 합니다. 악인은 자기의 행위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악인입니다. 이 시대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의롭다고 하고 있고 그 율법의 행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행위가 나타나는 순간에 나를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자기를 자랑하는 악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악한 자가 자기가 한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자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지적인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까 자기가 스스로 성경을 보고 아는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헬라어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 영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교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 사람들 중에 한글 성경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한글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를 하고 있고 헬라어를 하고 있고 영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기 말도 모르면서 무슨 원어를 합니까?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들이 얼마나 잘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그저 아무데나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고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를 늘 확증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번지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서 감동을 해 주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2:21절을 보면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평생을 신앙생활 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버림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저 아무데나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은혜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해서 받았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말하면서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한 것으로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이 시대는 너무 국어를 모릅니다.

그저 지적인 머리는 높아가지고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있고 알고는 있지만 실제 국어의 뜻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은혜라는 뜻을 먼저 알고 은혜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하는데 은혜를 모르면서도 그저 남들이 은혜라고 하니까 은혜인가 보다 하면서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는 주님이 그저 주시는 것이지 내가 어떤 일을 한 것을 가지고 그것을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십일조를 내가 해 놓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은혜의 기본도 모르고 자기가 십일조를 하고 나서 은혜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예배를 드리고 은혜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예배를 드린 것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를 드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찬양을 부르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자기가 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지도 않은 것을 자기가 하면서 그것을 주었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나에게 와서 10억을 주어서 그 은혜에 감사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아주 멋 젓게 만들고 있고 또 오히려 멸시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은혜라고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자기가 한 것으로 스스로 높이고 있는 교만한 행위입니다.

 

지나친 겸손은 교만입니다.

또 지나친 감사는 상대를 멸시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가지고 마치 주님의 은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은혜라고 하는 것은 주 예수의 은혜가 아닙니다. 특히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주님의 은혜라고 하는데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라고 할 때는 주님이 주시는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무엇을 주시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단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무엇을 주고 있고 주님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에 대해서 말할 자격도 없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내가 영생을 얻었을 때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 때나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 것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왜 모든 자들에게 있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지막에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다른 것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가 영생을 얻으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마치 생명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었으니까 이제 주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생명을 얻지도 않은 그들이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안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정을 하시고 모든 구속의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상관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직 스스로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안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의 행위를 통해서 그 은혜를 나타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좋으면 은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은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내 마음에서 믿어져 영생을 얻는 그것이 은혜라는 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새번역입니다.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디모데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말세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는 우리가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로부터 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물론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그러한 고통의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종말의 때는 아닐지라도 말세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고통합니까?

이 세상을 사는 것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것도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신앙생활로 인하여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사로 잡혀서 고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자기가 어떻게 사단에게 붙들려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 보니까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가를 이제 뒤에 있는 말씀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 하나하나에 의해서 말세에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엇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고 싶은데 이런 일들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성도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한 모든 행위에 대해서 그것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기가 교회 안에서 한 행위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대 교인들이 모습입니다

 

고통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하는데 말세가 오면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미 교회가 타락을 하기 시작한 313년 이후로 계속해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했습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한 모든 행위에 대해서 너무도 사랑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돈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사용하고 있는 화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돈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16:13-14절을 보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두 주인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그리고 사람의 의입니다. 이것은 둘을 다 함께 취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의를 사랑하면 반드시 내 의를 미워하게 되어 있고 내 의를 사랑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미워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세가 오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너무도 사랑하고 그것을 심지어는 믿음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많아서 고통의 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 돈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는 성도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에게 그 돈이 악이라는 것을 가르쳐 줘도 모르고 있고 오히려 자기들의 믿음을 폄하를 한다고 하면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도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 시대는 너무도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긍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18절을 보면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무엇으로 자긍합니까?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셔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잘 나가고 또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알미니안 주의가 되었습니다.

장로교 신학에서는 칼뱅주의의 오대강령을 배우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순간 알미니안주의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학에서 칼뱅주의의 오대강령을 잘 배우지 못하고 또 성경적으로 그것이 정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알미나안 주의가 바로 주님의 은혜 플러스 자기의 믿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주님이 나를 지켜 주셔도 내가 거기에 답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플러스 자기의 의지입니다. 그 의지를 주장하는 자체가 이미 스스로 주님 앞에서 자긍하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자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이 시대는 장로교의 기본 교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오대 강령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들의 성경 해석을 보면 알미니안 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자긍하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의 이성을 생각하고 행위를 주장하는 자체가 은혜에 대해서 자긍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만합니다.

지혜가 없는데도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교만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지만 자기들의 행위로 마치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행세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마치 성도나 된 것 같이 교만해져 있습니다. 실제 사람이 교만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성도가 아닌 사람이 마치 성도가 된 것 같이 교만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교회 안에만 있으면 마치 다 아는 것 같이 교만하게 성도라 하고 있습니다.

 

은헤 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성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되지도 않은 그들이 교만해 져서 그렇게 자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 육적인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산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들이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가장 기본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 거의 다 훼방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의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심판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그저 이 세상의 이성적 생각으로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훼방이 너무 심합니다.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사람이 육체적으로 짓고 있는 죄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고 가셨는데도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의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데 교회 안에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의 문제는 정말 이 시대 교인들에 있어서는 무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다 성령을 훼방하는 일인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판도 모릅니다.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심판을 받았다고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 심판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훼방을 하는 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고 거룩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부모도 됩니다. 그러나 영의 부모인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치 아니하고 있고 또 거룩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얻었는데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행위를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거룩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거룩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지금 이 시대 말세에 고통이 따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다 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악을 행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무정합니다.

그리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생명을 얻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정하게 지내고 있으면서도 육적으로는 아주 정이 많은 것으로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원통함을 풀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원통합니까? 사단에 의해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바로 원통함입니다. 자기 영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모르니까 아니 사단에 붙잡혀 있는 줄을 모르다 보니까 원통함을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기가 성도처럼 보이고 있고 또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보니까 원통함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에 의해서 원통하게 자기 영혼이 죽는 것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다 보니까 이 원통함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기가 지금 어떠한 원통함을 당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소합니다.

무엇으로 참소를 합니까? 사단은 지금도 율법을 가지고 참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역시 교회 안에서 율법의 모양을 가지고 사람들을 참소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정해 놓은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해서 심지어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천국에 가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소하는 자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들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참소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 문제라든지 주일 문제 그리고 예배나 기도 같은 것으로 가지고 참소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참소를 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일어나는 일들이 지금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 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서 가장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9가지 열매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난다 해도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그 열매가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절제입니다

아무리 그가 사랑을 많이 한다 해도 역시 절재가 되지 않는 사랑은 오히려 그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 무조건 다 가한 줄을 알고 있고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납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사납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은 사납게 변합니다. 제가 십일조를 반대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반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그리스도편지 설교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게 아마도 그들이 얼마나 사납게 굴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기 보다는 악한 것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들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한 모든 행위는 다 악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신 모든 구속의 일들은 선합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한 모든 행위는 좋아하고 있지만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일들은 알지도 못하고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다면 그는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진리를 배반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도 인도를 하시고 있지만 이 시대는 진리를 배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행위로 빠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배반을 하고 있는 것인데도 이 시대는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자고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높아져 있습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너무 자고해 있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쾌락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의 어떤 쾌락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하고 있습니다.

 

쾌락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내가 하는 행위를 통해서 느끼는 기쁨입니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이 쾌락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려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통해서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말세에 있을 일이고 이것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고통입니다.

이것들이 지금 교회 안에 만연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것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해야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의를 얻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이런 말세의 일들이 고통스럽다는 말씀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모든 일들이 사실은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건의 모양들입니다, 그런 모양들로 지금 이 시대 교회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들로 이 시대 얼마나 경건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까?

 

경건의 모양입니다.

실제 이런 모든 일들이 교회 안에서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들 딴에서 그것이 경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일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모든 일들이 그저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런 일들로 경건의 모양을 얼마나 나타내고 있습니까?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경건의 모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경건의 모양을 내고 있는 사람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능력을 부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경건의 모양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을 내고 있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말 내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스스로 잘 살펴서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주님이 주시는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성도입니다 교회 안에서 모양을 나타내기 보다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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