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요한계시록14:14-20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환상과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사람들이 가장 실수를 하는 것이 있다면 마치 이 환상과 계시가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순서대로 되어 있는 환상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서가 아니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 해석이 됩니다.
순서대로 되어 있는 말씀이 아닌데 그것을 순서대로 보다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순서대로 보고 있다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순서대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앞뒤가 안 맞게 꿈을 꾼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것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요한계시록을 보아야 바른 해석이 될 수 있고 마치 요한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가 순서대로 기록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환상을 볼 때 마다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순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경은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일을 기록한 4복음서는 대부분이 그 순서대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라든지 구약의 거의 모든 성경이 순서에 따라 기록이 되다 보니까 사람들은 요한계시록도 당연히 그렇게 보려 하고 있습니다.
환상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때 보여 주실 때 마다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이 환상을 한꺼번에 다 보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밧모라 하는 섬에서 환상을 계속해서 보았을 것이고 그것을 볼 때마다 기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요한계시록은 순서가 아닙니다. 물론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불못과 천국에 대해서는 순서가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상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환상을 순서대로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증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또 보매
내가 보매 이런 말씀들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상을 계속해서 순서대로 본 것이 아니라 보여 주실 때 마다 그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환상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환상이 순서가 아니라 그냥 보여 주시는 대로 보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요한계시록을 해석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 늘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성경 그 자체로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인생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나 그리고 목사들이 요한계시록을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보고 있다 보니까 복음과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유입니다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을 비유로 기록을 했습니다. 그 환상의 비유를 바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어떤 환상을 보았다면 그 안에 있는 메타포를 분명히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해석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사도요한을 통해서 환상을 보여 주신 그것에 대한 메타포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자기가 해석을 했다고 하면서 마치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우리가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안에 있는 메타포는 우리가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메타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억지로 해석을 해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7:4절을 보면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상징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숫자들을 마치 자기들이 해석을 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인 맞은 숫자를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숫자가 마치 정확한 숫자가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숫자들은 사실 우리가 해석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다 싱징적은 숫자이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 맞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인 맞은 성도에 대해서는 해석을 하지 않고 그저 이 숫자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이 주장을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숫자들로 인하여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탄생이 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안식일 교회의 태동입니다
종말을 계산을 하다가 성경에 나오는 숫자를 일 년으로 계산을 해 보니까 그것이 종말의 년이라고 말을 해서 유럽에서 그 해와 다음 해까지 정말로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안식일 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종말의 때를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요한계시록을 해석을 하면서 그 안에 있는 메타포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가지고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숫자에 연연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대해서 바로 알면 되지 그런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숫자를 바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를 주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 해석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교만입니다 모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다 해석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환상들의 세세한 것 까지 다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또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잘못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람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성경을 이 세상의 어떤 책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을 때 까지 성경만 본다고 해도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다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보고 도무지 해석이 안 되니까 강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그 말씀이 구원에 관한 말씀이라면 반드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과 그렇게 문제가 안 되는 말씀이라면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정말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들이 그리고 신학자들이 너무 교만합니다.
성경을 보는 마음부터가 그들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주석이라는 책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과연 주석을 보는 것이 타당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참고를 할 필요성이 있겠지만 그렇게 모든 성경을 해석을 한 사람이 했다는 자체가 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입니다
늘 그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성령이 오신 사람은 분명한 것은 구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해석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신 성도는 오히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조심을 하고 자기가 이해를 못하는 성경은 절대로 억지로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을 모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를 본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지파들이 지금 이방의 사람들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메타포입니다
그것을 찾으면 되지 그 외에 말씀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성경을 해석하는 목사들을 보면 너무도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를 할 때 보면 그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아예 언급도 안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답답하기만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다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에 대해서 바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성경에서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모른다는 것은 곧 재앙이라는 것을 우리가 정말 명심하고 또 명심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의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내가 보니
이제 새로운 환상을 또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환상 중에 또 다른 환상을 보여 주시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성경에는 장절이 있어서 사람들이 더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순서대로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데 성경에는 장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입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인자 같은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이 선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인자 같은 분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환상을 보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인자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릅니까?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제자인데 예수님을 모르겠습니까? 이 문제는 제가 부활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했을 때 그 형상은 상상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형체를 우리가 사람의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도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를 못하고 인자 같으신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제자라도 이 세상에서 보았던 예수님과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도요한은 계속해서 인자 같으신 이라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인자 같으신 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형상을 보니까 인자 같다고 사도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추수를 상징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한 낫
아주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날이 선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추수를 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밭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알곡이 익어 주님께서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의 씨를 뿌리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 복음을 들은 성도들을 성경은 알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알곡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곡식이 다 익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때를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시고 난 후부터 주님께서 마지막 추수를 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알곡을 거두어서 하늘 곡간에 채우고 계셨습니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알곡들을 추수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3: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주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입니다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도는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있는데 알곡은 천국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세세토록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쭉정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는 알곡 보다는 쭉정이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다 알곡이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있는 말씀과 뒤에 있는 말씀은 알곡과 쭉정이를 어떻게 하시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알곡인지 쭉정이인줄을 바로 알고 분별을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자기가 쭉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알곡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곡식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떡덩이는 우리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떡덩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곡식이 거룩하니까 떡덩이도 거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 진 성도들을 사도바울이 이렇게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덩이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들어 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떡덩이인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거룩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합니다. 주님께서 이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두고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속제 제물로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해 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도가 곡식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 곡식 보다는 쭉정이가 더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땅에 곡식이 다 익었습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성도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성도가 없고 이렇게 주님께서 이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둬들여서 곡간에 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곡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4장 14-20절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종말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먼저 창고로 거둬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창고에 거둬들이는 성도는 복을 받은 성도고 또 다음에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 있지만 화를 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떡덩이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진 떡덩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는 절대로 떡덩이가 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말씀드릴 때마다 강조를 하는 것이 있는데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세상에 성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말씀을 하실 때 곡식을 뿌렸는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렸다고 말씀을 합니다. 제자들이 가라지를 뽑을까요? 말하니까 가리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힌다고 하면서 추수 때까지 그냥 두시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합니다.
추수 때가 되면 가리지는 불에 태우게 먼저 묶어 두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를 먼저 단으로 묶어 둡니다. 먼저 불사른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묶어 두기만 하고 불사르는 것은 나중에 불사르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라지와 알곡을 구별을 해서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두고 곡식은 주님의 곳간에 넣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복음의 씨를 가진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은 만유 보다 크시매 저희를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주셨습니다.
한번 구원이 작정이 된 성도는 어느 누구도 빼앗지를 못 합니다. 이 시대 이 말씀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 뿌려진 씨는 반드시 곡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의 씨를 뿌려 주셨고 이 시대 우리가 그 씨로 곡식이 되었습니다.
곡식을 어느 한 때에 거둬들이십니까?
물론 마지막 때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상이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모습과도 같이 보여 지기도 하지만 주님은 이 시대도 역시 곡식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모든 곡식을 주님의 곳간에 거둬들이는 것을 마지막 때에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이지 꼭 마지막 때라고 단정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이것이 마지막 때라고 한다면 그럼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혼이 피난처에 있다가 주님이 오실 때 그 영혼들이 다 깨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말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환상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냐 아니면 추수를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곡식이 되어야 주님께서 곳간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이한 낫을 가졌습니다.
앞에서는 인자 같으신 이가 면류관을 쓰고 이한 낫을 가졌는데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쳐서 주님께 이제 곡식이 익었으니까 추수를 해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환상을 보니까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한 낫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이한 낫을 가지고 계셨고 이제는 또 다른 천사가 이한 낫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곡식은 곳간에 다 넣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구원할 자를 다 구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제 종말의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둬들인 것은 종말이 있기 전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요한이 두 환상을 보고 있는데 전에 본 환상은 주님이 추수를 해서 곡식을 곳간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이 환상은 이제 곡식은 다 거둬들이고 남아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말이 오기 전에 먼저 이 세상에 성도를 다 구원을 하십니다.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먼저 곡식은 주님께서 다 추수를 해서 천국으로 인도를 하고 난 후에 일입니다.
잘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이미 곡식은 다 거둬들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만 남아 있는 것을 사도요한이 또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종말의 때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성도들을 다 구원을 하십니다. 이한 낫을 가지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사 알곡은 곳간에 들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교회 안에는 가라지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가라지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 가를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죄인이 될지언정 교회 안에 가라지는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다른 천사가 나옵니다.
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서 이한 낫을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포도가 익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의 악이 차고 넘쳤다는 말씀입니다
포도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또 이방의 교회를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악이 이제 다 찼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점점 더 악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악을 행하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의 머리가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이 시대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악을 행하는데 있어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면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을 텐데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너무도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선악을 분별을 못 합니다.
정말 이 시대를 보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악을 행하기를 열심을 냅니다. 얼마나 악을 행하는 데로 가느냐면 빨리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달려갑니다.
교회에 나와서 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것을 먼저 배우고 그것을 선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까 종말의 때가 와도 아니 자기가 죽어서도 악을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언제 깨닫습니까? 심판대 앞에 서면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이 왔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 익은 포도를 이한 낫으로 베어 버리는 때가 이 세상도 종말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환상입니다
그리고 비유입니다 포도송이가 다 익었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 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곳간에 들어가 있고 이제 남아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특히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모두가 한번은 죽습니다. 성도도 육체는 반드시 한번 죽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종말의 때가 되어서 휴거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번 죽는 것이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때는 이렇게 말씀하고 저 때는 저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성도든 아니든 모두가 한번은 죽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휴거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휴거는 없습니다. 휴거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번 죽는 것이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 휴거를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 세상에 성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 후에 종말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땅의 포도를 거두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지고 있습니다. 은사주의 역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성화주의 또한 율법주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들입니다
천사가 이한 낫을 휘둘러서 진노의 포도주를 먹던 자들을 이렇게 죽이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성도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를 하시고 난 후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있다 해도 성도는 하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종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천사가 이한 낫을 가지고 죽이기 시작을 할 때는 이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마음껏 휘둘러서 죽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없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 요한계시록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믿음이 그 안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경륜을 모르기 때문에 종말의 환상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교회에 악인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이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을 보고 분명히 천국에 갈 사람만 있는 것으로 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교회는 사람의 이성에 의해 그렇게 보여 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그런 교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종말의 때가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때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환상입니다.
저도 말굴레가 무엇인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니까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앞으로 있을 일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기록을 한 말씀입니다. 저도 스다디온의 거리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일천육백 스다디온은 약 296km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엄청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환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야지 이 숫자에 너무 연연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때에 천사에 의해서 모두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주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안심을 할 때 천사의 이한 낫이 휘둘려 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노의 포도주 틀입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특별한 형벌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이한 낫을 가지고 이미 거둬들이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고 주님의 창고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서 하늘의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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