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카데미 강좌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윤주만목사 2015. 7. 7. 06:43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13:8-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예표라는 것을 늘 잊지 말라야 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했으면 우리도 역시 똑같은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우리보다 더 어리석어서 악을 행했다고 하지 마시고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체질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것은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영적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들의 육적인 것을 보고 우리는 똑같은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지만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그런 우상을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교회 안에는 바알과 아세라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알과 아세라가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보이는 우상을 섬겼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은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알이 없습니까?

그리고 아세라가 안 보입니까? 그는 성경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바알과 아세라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의 일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 영의 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의 모습으로 바꾸어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상이 있는 한 진리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진리로 안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 안에 우상이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성도는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지만 가라지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우상의 제물에만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단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사람만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무엇을 구하고 있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그냥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주쳐야 소리가 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사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목사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아카데미 강의 때 말씀을 드렸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있으면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빛과 어두움이 있으면 어두움으로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빛이 전해지고 있지만 어두움이 한 점이라도 있으면 그 빛은 사라지고 어두움만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사라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어두움이 다 물러 갈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해도 그 안에 어두움이 있으면 빛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어두움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빛을 봅니다

하지만 어두움이 있으면 내가 보고 있는 그 빛은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반드시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어 있지만 교회 안에서는 반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빛이 사라지고 어두움만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두움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해도 그 어두움으로 인하여 점점 더 어두움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예수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진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똑같이 이 시대도 진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이 있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게서 율법의 의 은사적인 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때로 필요하겠지만 율법은 정말 한 모양이라도 있는 순간에 진리는 어두움에 묻히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6:23절을 보면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어두움으로 들어가면 어두움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워진다는 말씀입니다

빛이 아무리 전해져도 어두움에 있으면 그 빛이 사라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 보니까 이런 말씀들이 좀처럼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어두움이 있으면 반드시 빛은 사라진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 어두움이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 해도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그 빛은 사라지고 어두움만 더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의 깊은 어두움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성령이 감동을 해 주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상식과 반대가 되는 말씀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빛과 어두움만 해도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제 교회 안에 어두움이 있으면 그 어두움이 더해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빛만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빛만 보아도 빛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물며 어두움을 보고 있다면 그는 아무리 자기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것이 거짓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이런 말씀을 드려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진리만 보아도 구원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진리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고 어두움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성도입니까?

그럼 빛만 보고 있습니다. 율법은 안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안 본다고 하니까 마치 구약을 안 보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이지 율법을 기록한 말씀을 한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걷어 내야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자기 몸으로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을 하는 일인데도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내가 성도입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어두움이 있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진리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해도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성도인가 아닌가를 가장 쉽게 분별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그것이 분명히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것이 믿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고 하면서 지켰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도 믿음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사단의 지혜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믿음이라고 하면서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히려 율법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두움이 더 합니다

아주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믿음이 되어 버린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빛이 보이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진리가 사라진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진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면 맞습니다. 진리를 이야기 한다고 해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자기 이성적 지식으로 보려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 그 자체로 보려고 하지 않고 내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진리가 사라지고 어두움만이 더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이 세상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한 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성적 지식으로 보려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진리가 사라지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지식을 자랑하느라 바쁩니다.

 

진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능한 진리만을 보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성경을 볼 때 진리가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다 소경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소경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주님께서 오셨을 때 다 소경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늘 깨어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13:1-2절를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 시대도 역시 진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제외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예레미야가 예언을 말씀을 할 때 모두가 대적을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예레미야를 핍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핍박을 합니까?

그것은 진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는 예레미야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들에게 진리가 있었다면 예레미야가 하는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혀 듣지를 않고 오히려 핍박을 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왜 뜬금없이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라고 했는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에베소서6:14절을 보면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베띠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띠입니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라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론 말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진리를 사서 네 허리에 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합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에 진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것을 예레미야의 몸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하는 말씀을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고 오히려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일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예표는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단순히 이스라엘의 한 시대의 잘못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지면 어두움만이 거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진리에 있는지 어두움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진리를 버렸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똑같이 버리고 있으면서도 단지 예수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에 마치 진리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13:4-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브라데 강으로 가서 바위틈에 감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진리가 어떻게 사라졌는가를 예레미야 선지자의 몸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물가에 가서 자기가 산 베띠를 거기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진리가 감추어 졌습니다.

그것도 물가에 감추어 졌습니다. 이 물은 물론 말씀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 유브라데는 말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비 진리적인 말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비 진리적인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조차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진리인지 비 진리인지도 모르고 그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음녀의 심판에서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의 심판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가 아닌 말이 교회 안에 있게 되면 결국에는 진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사변적인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는 세상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텔레비전의 연속극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전해지고 있는 말입니다 수많은 예화가 전해지고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화를 듣고 나서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까?

인간적인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굳이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인간적인 감동을 받고 나서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사라지고 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물가에 두었습니다.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브라데 강가에 감추어 두었던 띠를 다시 찾아본즉 못 쓰게 되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띠를 띠고 있다 해도 아니 교회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듣는다 해도 유브라데 물가에 두면 그 진리는 못 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진리의 띠가 못 쓰게 되었습니다.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유브라데 물가에 두면 진리의 띠는 그렇게 못 쓰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예수를 전한다고 해서 그 안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갖다 놓으면 그 예수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도 이 세상의 말들을 교회 안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보혈의 피를 이야기 합니다. 정말 아주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기는 예수만 전한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유브라데의 물을 전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못 쓰게 되고 있는데도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미혹이 되어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말하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어떻습니까?

정말 똑똑히 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진리만 전해지고 있는 교회가 있는 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있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교회에서는 진리가 전해지고 있는 교회를 못 보았습니다. 다 유브라데 물가에 진리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더 이상 진리가 안 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고 왜 지금 이 시대를 못 봅니까?

그것은 그들의 육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육은 지금 우리의 영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그것이 다 보이는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감기어 졌습니다. 진리의 허리띠가 더 썩어 못 쓰게 되어 있는데도 전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것은 오직 예수만 전해져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말이 전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직 예수가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만 오직 예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실제 그들의 말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허리에 띠를 띠고 있지 않습니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고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진리가 드러나지를 않고 있는 교회 안에서는 사망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유다는 교만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전리를 전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이 시대도 이스라엘과 같이 너무도 교만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 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스라엘의 생각과 이 시대의 생각이 같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망했다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진리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교만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망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가르쳐 주고 있어도 그들이 왜 망했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못 지켜서 망했을 것 같으면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때가 오기도 전에 벌써 망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9:32절을 보면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망한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가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이 오셨을 때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해서 부딪칠 돌에 부딪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를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 사람들로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교만합니다.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있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을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율법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교만이 넘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진리를 버려 썩게 한 것같이 그들의 교만을 썩게 만들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진리를 버리고 행위에 의지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교만을 하나님께서 그들이 지킨 율법을 썩어 버리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심지어는 십일조를 믿음의 증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만한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을 그들이 믿음의 증표라고 한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썩게 만들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라는 행위에 의지하고 있는 이 시대 역시 부딪칠 돌에 부딪치고 자기들이 믿음이라고 한 그것이 모두 썩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해서 부딪칠 돌에 부딪친 것 같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과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들보다 더 교만해져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의지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빤히 보고도 이 시대도 역시 그 길을 따라가면서 얼마나 교만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행위가 쉽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내고 있는 십일조가 쉽고 그리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주일이라는 날이 너무도 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아담도 단 한가지의 율법에 지고 말았는데 이 시대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교만이 넘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

 

악한 백성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기를 거절을 했습니다.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율법을 따라 행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고 그에게 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버린 이스라엘에게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그렇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마음이 강퍅해서 행위를 따라갔습니다. 결국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하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한다고 하니까 예레미야를 반역자로 몰면서 대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만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까? 지금도 역시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저보고 이상한 주장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 망합니다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 것은 이 시대 교인들이 사단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포로가 되어서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바알이 없습니까?

아세라가 이 시대에 없습니까? 그것을 못 보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같은 소경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못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 것 같이 사단의 포로가 되어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복주의 바알입니다

율법주의 또한 바알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아세라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바알과 아세라를 못 보고 있습니다. 소경이 되어 있어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교회 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가 안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경이 되어서 안 보였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바알의 천지입니다

그리고 아세라가 꼭 붙잡고 있어서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떤 우상을 섬기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자기들은 우상을 절대로 안 섬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바알이 주는 것을 구하고 있고 아세라가 주는 것을 구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응답으로 받고 있으면서도 우상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 제가 교회를 비난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그 사람들에게 욕은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영혼이라도 거기서 구해 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되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서 구원을 하고 싶으셨는데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들을 사랑하셔서 선지자를 보내시고 또 보내시면서 오래 참으셨지만 듣지를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빠져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믿으라고 했지만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행위에 빠져 결국에는 부딪칠 돌에 부딪혀서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만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우선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을 바탕에 깔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복음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행위를 따라가지 마시고 믿음을 따라서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