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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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윤주만목사 2015. 7. 6. 19:40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신명기31:9-13절을 보면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종교화가 되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종교화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고 연구를 한다 해도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식화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특별한 행위를 하는 것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단성을 가지고 있는 아니 이단들은 자기들만의 특별한 행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통의 교회라고 해도 자기들만이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이 있다면 이미 종교화가 되어 있는 곳이고 그런 교회에서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우리 육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을 분별을 하지 못하고 또 영의 일과 육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자기들의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하나님을 우상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자기들만의 의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위해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과 같이 하나님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만들어 버리고 있고 그것을 섬기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회 모습입니다

 

출애굽기32:4절을 보면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이스라엘이 만든 것은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자기들의 생각대로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몰랐습니까? 자기들을 인도하여 낸 신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와 같이 각도를 새겨 자기들의 여호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도깨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자기들이 기도를 하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는 그런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깨비를 각도로 새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각도로 새긴 도깨비가 교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기도를 하면 마치 방망이를 두드리듯이 뚝딱하고 모든 것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십일조를 내면 창고에 채울 것이 부족할 정도로 채워 주시고 새로운 창고를 만들어야 하게끔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본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자기들 마음에 각도로 새겨 만든 도깨비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라면서 그것을 감사하고 있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눈으로 보이는 형상을 각도로 새겨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을 각도로 새겨서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지금 각도로 새겨 송아지를 안 만들고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지은 죄를 안 짓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상으로는 안 만들고 있을지 몰라도 이미 교회 안에 교인들의 마음에는 수많은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니 그런 형상을 지워 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얻어야 하는 단한가지는 구원이라는 것을 새기고 또 새겨서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내가 구하려고 하고 있고 또 얻으려고 하고 있다면 이미 그의 마음에는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성으로 알고 있는 그것을 각도로 새겨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형상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인들 마음에 얼마나 많은 형상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새겨서 간직하고 있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그것을 만들고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바로 조명을 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괴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사단을 믿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들어갈 수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왔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애굽의 강한 손에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라는 광야에 나와서 송아지를 각도로 새겨 자기들의 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교회에 나와서 그렇게 자기의 생각에 따라 각도로 하나님을 자기들의 마음에 새겨서 간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면 뭐 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이 얼마나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고 기적을 본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형상을 송아지로 만들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보이지 않는 형상이 되어 그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영과 육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각자의 마음에 형상을 만들어서 새겨 놓고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단을 믿게 되는 것이고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에 각도로 새겨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서 새겨 넣어 주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너무 오묘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 성도들이 그것을 연구를 해서 아니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로 안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로 조명해 낼 수 있는 은사를 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모든 성도는 성령을 받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이 성경을 보고 진리를 다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대해서 바로 전하는 가를 분별을 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성경에서 진리를 조명해 내지는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는 바른 말씀을 전하는 자를 만나는 것이 너무도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누구는 그렇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설교를 하게하고 있고 또 누구는 그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그것이 믿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다 각자의 분량에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한 성령 안에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전하는 자를 분별을 할 수 있게 하고 있고 또 진리를 바로 전할 수 있게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어 사람의 이성을 버리고 철저하게 성경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철저할 정도로 이성적이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는 그 이성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이십니다.

그 영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가 아주 조금 알고 살아가고 있고 그 조금 아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구약은 그림자로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자를 실체에 비춰 보아야 그림자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작별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게 하시고 모세를 통해 반포한 율법을 기록해서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에게 주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성경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성경을 마음 놓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 불과 100여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모세 오경만 기록하는 것은 사실은 대단한 일이고 이 성경을 기록해서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모든 장로들에게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 주었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주었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못 지킬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바로 성막을 만들어서 그들의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착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들과 언약을 한 이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했지만 그 율법을 모두 지킨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정의를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칠 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찌니"

 

안식년입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켰고 또 칠년에 한 번씩 안식년을 지켰습니다. 이 안식년에는 농사를 짓지를 않았습니다. 그 안식년을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 안식년을 통해서 율법주의에 깊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초막절이 무엇입니까?

이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대 속죄일이 지나고 나면 초막절을 지킵니다.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성막의 지성소 안에 들어가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의 죄가 깨끗해 져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가 없는 백성이 이 초막절을 지키고 하늘을 소망하면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절기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나올 때 지켰던 유월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십일이 지나면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초실절이라고 하고 또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을에 71일에 나팔절을 지키고 710일에 대 속죄일이 지나고 나서 초막절이라고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하는 마지막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 번씩 그 절기를 지켰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유월절은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이 되신 때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유월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이 지났습니다.

아직 오순절이 완전히 지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도 성령이 강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순절과 나팔절을 지나고 있는 시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아직도 임하고 있고 또 복음의 나팔이 이 세상에 퍼지고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이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매년 초막절에 이 율법을 백성들에게 읽으라고 하지 않고 매 칠년 초막절에 백성들에게 이 율법을 읽어서 온 이스라엘에 듣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안식년 매 칠년이 되는 해에 이 율법을 읽어서 백성들에게 듣게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듣게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듣게 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이 율법을 매 칠년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아직 안 왔습니다.

물론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 초막에 살아가고 있으면서 이 절기의 의미를 바로 알고 있습니다. 이 초막절은 수장절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의 모든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는 절기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나타내고 있고 이 초막절은 그 구속의 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 이 초막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속죄가 끝이 나면 이제 성도는 모두가 초막을 벗어 버리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초막절 매 칠년 안식년에 율법을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듣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성경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나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고 귀하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장로들만 가지고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칠년에 한 번씩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율법을 듣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누구로 듣게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너무 몰랐습니다. 지금도 자기들이 선민이라고 하면서 이방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일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 주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성안에 타국인을 모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우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이 율법을 듣게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을 통해서 이방인을 구원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율법을 들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살고 있는 이방인도 다 이 율법을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실제 하나님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룻기2: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은 이방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시모를 따라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보아스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한다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성도의 모임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기를 원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날개 아래 보호 받기를 원하는 모든 성도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최고의 상은 바로 구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상을 주시기를 원하고 있고 영의 이스라엘 성도의 모임에 들어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보호 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큰 상급을 은혜로 주시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다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까? 율법을 행하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가 바로 정립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율법을 행하면 절대로 여호와를 경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신명기에서는 율법을 행해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상호 언약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보아야 그 율법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죄를 알아야 성막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안 지키면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에 대해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왜 하나님께서 주셨는가를 또 율법의 그 무거운 짐에서 누가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인가를 알아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가 이유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율법을 지켜보아야 은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를 못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율법을 지키는 데만 열심을 다했지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죄가 발견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죄가 드러나면 성막에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 제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기들을 속죄 해 주실 것인가를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봐라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지 않느냐고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같이 망하는 길로 가는 길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야 성막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율법을 안 지켜도 이미 그 실체가 보이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굳이 율법을 안 지키고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다 보여 주셨는데 아직도 성막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다시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그림자를 바로 이해를 해야지 그것을 지금 이 시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셨는데 문자적으로 보고 율법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아니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 있다면 육적인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다가 못 지키니까 성막에 와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알아야 성막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죄를 모릅니까?

내가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며 또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한편 강도와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이 율법을 지키고자 하지 않고 또 율법을 통해서 성막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휘장이 찢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림자인 성막이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흔적조차 없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아직도 그 율법의 망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되기보다는 율법을 폐해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휘장 안으로 담대하게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왜 주셨는가 하는 그 의미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직도 율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 율법의 진노를 받기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15절을 보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진노를 받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구약은 그림자로서 율법을 지키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그림자인 성막을 통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성막이 하늘의 실체로 보여 졌습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진노를 받겠다고 스스로 자청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범함도 없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성막을 찾아가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 율법에 의해 모두가 진노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스라엘을 율법을 통해서 붙잡아 멸망에 빠뜨린 것 같이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통해서 교인들을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찌니라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주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감으로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로서 율법을 보아야 하는데 아직도 실체로 그 율법을 보고 있고 그 율법에 의해서 모두가 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이제 참 빛이 왔으면 그 율법은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그림자라도 빛이 비추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그림자의 망령이 교회 안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존재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임을 모르고 율법에 빠져 있습니다. 그 생명이 죽는데 무슨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 생명이 살아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것이지 생명이 죽은 상태에서는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입니다

생명이 구원을 받지 않고 경외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가 죽은 후에 무슨 효도를 할 수 있습니까? 살아 있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지 그 자녀가 죽는 것은 그 자체로 불효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그 자체가 경외를 하는 것이지 죽은 생명이 무슨 경외를 할 수 있습니까?

 

죽은 자는 경외할 수 없습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성막에서 은혜를 입은 성도만이 하나님을 경외를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 죄가 보이면 성막에 가서 행위로 양을 잡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모든 것을 깨달은 성도만이 하나님을 경외 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은 자만이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절대도 율법을 주신 의미도 모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성경에서 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그림자로 모세를 통해 반포하신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미로 주셨지만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한 모양이라도 지키면 죽습니다.

이미 그림자로서 그 모습조차 사라져 있는 그 율법을 자기 몸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그림자로서 참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악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참 빛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율법이라는 그림자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입바른 말을 하는 그들이 율법이라는 그림자로 참 빛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멸시를 하는 행위가 되는 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그림자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실체가 되는 순간에 우리가 보아야 하는 실체는 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입니까?

진토입니다 이 진토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셨습니까? 절대 아니라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그 율법을 통해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 의미를 모르고 문자적으로 보고 지키라고 하는 사람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참 빛을 보고 있는 성도는 그림자를 보기 보다는 그림자를 통해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