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8:1-7절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면서도 그저 종교성을 가지고 믿는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욥과 그 세 친구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인생들은 창조의 일도 모르면서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창조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인생의 안녕과 그 형편과 처지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인생은 자연스럽게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를 하시고 인생들을 지으셨다는 것은 성경을 보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를 하시고 난 후에 이 지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런 일을 알고 욥기를 보아야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욥과 그 세 친구와 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욥입니다
그가 재앙을 당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적이 쳐 들어와서 당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소와 나귀를 빼앗고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라는 인물을 성경학자들은 족장 시대의 사람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동 시대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사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적 환경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시는 강한 자들이 쳐 들어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 재해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환경을 알고 욥기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시대도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선진국들은 그래도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야 하고 그리고 지금과 같이 농경과 목축이 발달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귀하고 우리가 아브라함과 동 시대를 역사적으로 보아도 강한 자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빼앗아가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 재해입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과학이 발달을 하지 않아서 인생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신을 의지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종교성이고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당시 종교가 되어 있는 갈데아 우르라는 수메르 문명에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 재해입니다
욥이 당한 재앙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 아들들이 죽는 것을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입니다
당시 족장입니다. 그래도 이 시대로 말을 하면 지방 자치단체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이 이렇게 죽었다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자연재해를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도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바로 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의 안녕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는 재산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를 모르고 있었고 빈번한 자연재해 등으로 인하여 그가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그것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우리가 시대적 배경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우리 인생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더 심각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에 대해서 알 수 있게끔 욥과 그 세 친구의 대화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상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그리고 문명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많이 발달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충분히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철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사실 욥기 시대와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 사상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문명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을 해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인생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000년 전입니다
지금 이 시대와 비교도 안 된다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라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 시대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시대 사람들과는 배우는 것부터가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제가 더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4000년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문명의 발달과 그리고 학문을 배우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욥기 시대의 사람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의 교리의 기초가 언제 정해졌는가 하면 바로 2000년 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300년 대라는 것을 우리가 종교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1700년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종교의 교리를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명입니다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그때의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는 이렇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욥과 그 세 친구의 대화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욥기입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족장 시대면 역사적으로 하면 청동기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철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욥기 시대와 지금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때입니다
그때와 제가 같다고 하면 인생들은 반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때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지혜가 같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제가 하는 말에 반대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욥기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욥이 재앙을 당하는 일을 시작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재산을 저축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리고 사람이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풍부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 일상화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재해역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 사상입니다.
왜 성경에 바알을 많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 것을 원했고 그것이 바알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근동 지역에서는 수많은 바알의 형상이 출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전 시대부터 바알을 섬겼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바알 사상입니다
7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이 문자를 성경에서 보고 남의 집에 갈 때나 사업장에 갈 때에 이 문자를 새겨진 것을 가지고 가서 축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문자를 새겨서 집에나 사업장에 걸어 놓고 있고 사람들은 이 문자를 보고 아주 좋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바알의 대표적인 사상인데도 하나님을 왜 믿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입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을 보면 거의 이 말을 한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거의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이고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예화로 듣고 교인들은 종교인들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았습니다.
신석기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욥기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알의 사상에 빠져 있는 것과 첨단 문명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욥과 세 친구가 왜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욥은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재앙을 당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욥의 세 친구는 그런 욥에게 네가 알지 못하는 죄를 범했으니까 네가 재앙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괜스레 아무 이유도 없이 재앙을 주셨다면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하는 것이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였다.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다고 욥의 말에 대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변론을 하고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마치 게센 바람과 같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변론이라고 하면서 정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입니다
그가 죄를 지어서 지금 이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까? 아니 욥의 세 친구가 말을 하는 그런 죄를 지어서 욥이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욥의 세 친구는 욥의 변론에 귀를 기울이지를 않고 있고 아니 무엇보다 그들의 정죄는 너무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재앙입니다
우리는 이 재앙에 대해서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사단과 하나님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욥을 시험을 하는 것과 같이 욥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우리 인생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생의 철학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사단과 하나님이 대화를 하신다는 것 자체도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욥기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이 사단과 하나님이 대화를 하셔서 서로 거래를 한 것과 같이 그 결과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입니다
인생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치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자체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욥의 변론입니다
그 역시도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가 회개를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의 결론은 욥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를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욥의 세 친구 역시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회개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재앙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자연 환경 속에서 그리고 인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욥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이 시대도 일어나고 있고 정말 이제 갓 태어난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가 사고로 죽을 수 있느냐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라는 세상은 이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고 누구는 재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잘 믿지 못하고를 떠나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내리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욥은 자기가 재앙을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그 말을 듣고 욥의 세 친구들은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7장17절부터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의 친구입니다
욥이 변론을 하니까 한술 더 떠서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면 누군가 재앙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을 보면 역시 똑같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가 찾으려 하신즉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이미 정의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들 만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라고 묻자 주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죄도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을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가 당한 재앙은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인데도 인생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욥의 변론입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변론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의 죄와는 상관이 없이 사람이 이 지구라는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것은 정말 우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닷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죄를 지어서 그가 재앙을 당한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청동기 시대에 살던 빌닷만의 생각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기보다 잘못된 일을 당하면 역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베드로전서2:23절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사도 베드로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고 그럼으로 해서 생명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 육체의 형편과 처지를 보고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을 하는 것이 인생들이 그것이 청동기 시대나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이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창세 전에 있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입니다
빌닷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누가 인생으로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까 그렇게 재앙을 당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것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도서3:11절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빌닷입니다
그는 욥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죄를 하고 있는가 하면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재해를 당한 욥의 아들들을 보고 그 아들들이 자기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죄 값을 물어서 그들이 죽은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식들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친구라는 사람이 쉽게 말을 해서 염장을 지르고 있습니다.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육체를 보고 정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육체를 보고 얼마나 정죄를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까지도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정죄에 같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정죄를 하는가 하면 죄를 지었다고 그러니까 욥이 알지 못하는 율법을 범했다고 하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종교인들이 하고 있는 정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도 자기도 모르게 정죄에 빠지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정죄를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면서 아무 거리낌이 없이 정죄를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입니다
그리고 그 세 친구입니다. 그들의 변론은 어느 누구도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어리석은 변론이 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조심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종교와 어느 정당이 결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을 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인들이 정죄를 하는 것을 그 정당이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얻은 태초에 있는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정말 세상의 하찮은 것으로 인하여 죄에 빠져 그 영생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와 종교가 결탁이 안 되어 있다면 이런 말씀을 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그들의 정죄가 얼마나 죄를 짓게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에 속한 자가 종교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종교인들입니다
정말 욥기 시대와 이 시대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 빌면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샤머니즘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기초적인 말씀을 주님께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빕니까?
죄를 회개를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까? 그것을 종교인들만 그렇게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내가 진 죄를 용서를 받기 위해서 기도를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면 늘 하는 기도가 죄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눈물까지 흘려 가면서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로는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런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창조의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을 믿지를 않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성경은 기도를 해서 죄를 씻어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종교적 샤머니즘에 빠져 죄를 비는 기도를 해서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보기 위해서 진리의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그런 그들이 인생의 철학에 빠져 있고 내가 빌면 기도를 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이 세상 종교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6,“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의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의롭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이 성경적 정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체입니다
제가 죄를 지으라는 말씀입니까? 이 세상에서는 국가의 법에 따라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단 하나의 목적은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마치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그 육체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잘 살면 하나님께 복을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다 바알의 사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형통합니까?
그러면 사도들은 다 죄인입니까? 초기 교회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다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까?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의 철학이 이 시대 종교에 그대로 있고 그들은 자기 육체의 안녕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7,“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고 특히 바알의 사상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을 했지만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도 이 말씀의 문자를 새겨서 집이나 그리고 사업장에 걸어 놓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바알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여자에게서 난 자 중에서 제일 큰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빌닷의 말과 같이 그 육체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했습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알지만 헤롯에 의해서 그는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는 단 한 번의 설교를 하고 유대인들에게 의해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빌닷의 말대로라면 스데반 집사는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이 말씀을 문자로 새겨서 집에 사업장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도 육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는데도 이 시대 종교인들은 그 무익한 육이 창대하기를 바라면서 생명의 도를 모르니까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습니다.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에 수많은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은 성도들은 비록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역사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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