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3:1-3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그것을 경계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종교의 사상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라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아마도 이 설교는 제가 15년 정도도 더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갈라디아서 강해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설교말씀들을 새로 쓰는 과정에서 너무 오래 된 말씀들은 강해가 있다고 해도 다시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쓸 당시입니다
저 역시 정확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기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당시에 해석을 했던 말씀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씀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를 계속해서 남겨 두려는 마음이 있고 설교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종교에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리고 질문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전하면 아주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고 심지어는 사소한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때 저 역시도 조심을 하고 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생입니다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고 스스로를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때로는 설교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스릴 수 있는 부분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흐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입니다
분명히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이 영생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강조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문자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주장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에 대해서는 이 시대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종교인조차 영생을 얻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본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목적이 바로 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생을 얻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남의 일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 일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종교를 만들고 있고 그 종교는 하나님이 명령을 인생들이 행할 수 없게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같이 만들고 있고 그것이 종교인데도 인생들의 철학이라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아는 지식이 바로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과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되었고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 안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종교성을 갖게 하는 것을 보고 서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방인들이 이렇게 종교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가 무엇인지를 인생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초기 교회에 그러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그때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 갈라디아서의 시작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전체는 다른 복음에 빠지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의 종교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초기 교회에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율법의 행위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만약에 물론 그런 일도 없겠지만 율법이 없는 종교가 있다면 설령 그 종교가 일시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에 반하는 종교는 그 자체로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이 바로 율법을 잘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철학과 종교와 그리고 국가는 다 율법의 행위를 주장을 하고 있고 그 사회를 유지를 하기 위해서 인생들은 당연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국가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에 법이 없다면 그 자체로 어떠한 일이 있다는 것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들은 국가에서부터 법을 지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이 종교에서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만약입니다
법이 없는 국가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 나라에서는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인생들은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복음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화입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다 이루셨고 그 일에서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먼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바알의 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싶은 마음 자체가 바로 이 바알의 사상에서 믿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바알 사상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종교는 마귀의 권세를 받아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고 나자 마귀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세상의 재화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마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천하만국의 영광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것이 바로 바알 사상으로 눈이 감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천하만국입니다
세상의 지식도 그리고 세상의 재물도 그리고 세상의 의로움과 선한 일도 다 마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 인생들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미혹을 해서 경배를 하는 것과 같이 그것을 원하게 해서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적 사상이 바알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갖는 것을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바로 이 종교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세상 재화도 원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2: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의 기초에 대해서 갈라디아서2장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국가는 다 율법을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정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그들이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일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분명히 사람이 의롭게 되는 일은 율법의 행위입니다 .
쉽게 말을 합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이 날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고 있고 그 날에 여러 가지 의식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들의 그런 행위를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에게 누군가가 그들이 하는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는 야고보서의 인생의 언어를 하는 것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네가 주일도 한 번도 안 지키고 그 날에 예배도 한 번도 안 드리고 그리고 전도도 하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의롭게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말씀이 바로 그런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서 그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입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는가 하면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듣고 믿음으로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대로 사는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으로는 그가 욥과 같이 산다고 해도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인생들이 자기 철학으로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고 그 말씀을 듣고 믿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그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율법으로는 그가 아무리 잘 지킨다 해도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우리 육체는 율법으로는 그가 아무리 잘 지킨다 해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 피조물의 육체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해서 듣고 믿음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들이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일이라는 날을 안식일이라는 날을 지키는 것이 율법이고 그 날에 의식적으로 행하는 육체의 행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이 그대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지금도 아버지와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은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고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날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 날에 인생들이 하는 행위가 율법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그런 행위를 해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입니다
인생들은 율법주의가 본성이기 때문에 그 철학에 따라 의롭게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장 마지막 절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바로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업겁의 시간 속에서 윤회를 하고 또 하면서 자기가 쌓은 업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때 극락왕생을 한다고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결국에는 다 같이 내가 얼마나 의롭냐에 따라 내세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인생들이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화를 이루시는 일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생들은 자기가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불교는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업을 쌓으라고 하고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인생이 생각을 하는 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서 의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의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에서 의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의입니다. 이렇게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로부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와서 그들이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에게 다시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을 지키라고 하니까 의를 생각하는 인생의 철학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이 우리에게 의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의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교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고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이방인들이 종교가 되고 그들의 의식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인생들의 철학이 율법주의라서 사도 바울이 하는 말씀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2.“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공동번역입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입니다
사도 바울이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켰다면 여러분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방의 종교는 진리의 영인 이 성령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어서 제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에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지도 않고 있고 위와 격에 대해서 비유라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데도 인생들은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봐도 갈라디아서는 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일을 율법의 행위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일로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문자의 기본도 모르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을 비유로 해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그 유대교인들 가운데서 제자들에게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에서 택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14장부터는 주님을 파는 가룟 유다도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면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키게 한다고 말씀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나를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일도 그리고 절기도 송구영신예배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종교 의식을 따라 행하는 모든 행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를 교회 안에서 평생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 정의는 인생이 자기 육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 안에서 그런 행위를 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입니다
그가 나를 증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그 자체가 그가 성령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로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묻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빌립보서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입니다
그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지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자랑을 하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증이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배설물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것이 이방의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율법의 행위를 하느냐고 이제 이방의 종교인들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면서 그날에 온갖 행위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너희가 듣고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다른 곳으로 떠나가니까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 까닭에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기초입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과 그리고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교를 해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우리가 원하는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그가 나를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육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율법의 행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서 믿는다고 했는데 이제 다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장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율법주의라서 더욱 더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이 시대 날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지 않는 종교가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그 본성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도 소경이 되어 구덩이로 가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성경을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말씀과 같이 실제 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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