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91-2,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윤주만목사 2025. 1. 28. 09:07

갈라디아서5:6-9절을 보겠습니다. (30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부르셨습니까?

막연하게 나를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누구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막연하게 믿으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세뇌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막연하게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누구를 부르셨는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자기를 부르셨다고 하면 부르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부르신 자가 누군가를 찾으려 하지 않고 막연하게 자기를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그러니까 부르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있는 성도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내는 것이나 내지 않는 것이나 아무 효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나를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런 것이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마치 구원에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효력이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효력이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효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효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들이 정해서 지키는 것으로 그리고 안 지키는 것으로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무엇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것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하면 그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영의 일이 믿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역사를 합니다.

어떻게 역사를 합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1장에서 이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보면 믿게 되고 그것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역사를 해서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믿음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들을 보는 사람들까지도 이 믿음을 깨닫지를 못해서 다시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진리에 순종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진리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역사하는 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인도함을 받은 그가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진리에 순종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하니까 진리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 율법주의가 들어오니까 진리에 순종을 하던 그들이 율법에 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불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부르신 자가 누군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부르심을 받은 자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알곡도 있지만 가라지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보이는 교회 안에는 거의 가라지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라지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자기들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까?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적은 누룩이 아니라 많은 누룩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를 부르셨습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누룩입니다. 나에게서 누룩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부르심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자가 아닙니다. 누가 불렀겠습니까? 사단이 불러서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사단의 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있습니다. 사단의 사람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사람을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면서 그가 말하는 것을 거의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적은 누룩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있으면 그가 부르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룩이 율법이라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권면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 권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속는 자도 모릅니다. 그뿐 아니라 속이는 자도 모르고 있습니다. 속이는 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속는 자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 속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반드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막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주님이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하지만 그 부르심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9:13절을 보겠습니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부르심을 받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봐도 자기들이 이로운 쪽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과 꿰어 맞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좋은 의미는 다 자기들이고 나쁜 의미는 세상 사람들과 이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들부터가 성경의 좋은 의미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고 나쁜 의미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누가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청함을 받은 것이지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를 하게 해서 그가 천국에 가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다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의인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지가 200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세상 죄를 가지고 자기가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 입니다.

우리는 세상 죄라도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세상 죄로 의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보면서 정죄를 하기도 하고 있고 자기들은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자기들은 주님만을 믿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참 그럴듯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죄인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이 시대 역시 죄인이 없고 다 의인만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내가 반드시 죄인이어야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아마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죄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느 이단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면서도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죄인도 아닌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죄인이어야 합니다.

어느 죄인이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를 진 죄인이어야 합니까? 아니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죄가 더한 곳이 은혜가 넘친다고 하니까 일부러 죄를 짓습니까? 죄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면 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그들이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십계명을 지키지 않은 사람과 비교를 하면 의인입니다. 그렇게 의인이 되어 있으면서도 성경에서 주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니까 무조건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떤 죄인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남들이 죄인이라고 하니까 아니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하니까 자기 죄도 모르고 무조건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진 사람이 죄인이지 죄를 안 진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반드시 죄를 지어야 죄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도 똑같이 묻고 계십니다.

부자 청년에게와 같이 십계명을 말씀하면서 묻고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의 그 청년과 같이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아니면 제가 일부 지키지 못한 것이 있지만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키면서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지켰습니다.

그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성경을 보고 십계명을 지켰으면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가증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어느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가 하면 십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십계명 중에서 어느 한 가지 죄를 진 사람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십계명 전체에 대해서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은 십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겼습니까?

나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섬겼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습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습니까?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까? 살인을 했습니까? 간음을 했습니까? 도적질을 했습니까?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했습니까? 이웃의 집을 탐하였습니까? 여러분이 이 모든 죄를 짓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부르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십계명에서 다섯 개를 지켰습니다. 그러면 다 못 지킨 사람보다 의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십계명에서 하나를 지켰습니다. 하나도 못 지킨 사람보다는 의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아마도 제가 이 십계명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면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중에 하나를 범해서 죄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중에 하나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이미 설교로 다 올려 드렸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자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주의에 있을 때 십계명의 어느 계명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의미를 알고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 십계명의 어느 계명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주님께서 부르신 죄인이 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의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어느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까? 십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죄인이 될 수 있고 그 사람을 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죄인인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결코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부르셨다고 하니까 부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죽습니다.

아니 의미를 모르면 반드시 죽습니다. 자기가 어떤 죄인인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부르시는 것은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도 아닌 사람은 마태복음에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어려서부터 이 십계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들이 이 십계명의 어느 계명도 지키지 못한 죄인이지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되어서 부르신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십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서 주님이 부르셨습니다.

디모데후서1:9절을 보겠습니다. (343)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행위입니다.

율법을 행하면서 믿음이라는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했던 율법으로 지켰든 그것은 다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과 행위를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 행위로 하면서도 그것을 믿음으로 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입니다

행위의 종교가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부터 이미 종교가 들어오기 시작을 했고 행위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행위에 빠져 드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도 행위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부르셨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구원해 주시기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구속의 일을 성경에서 보고 믿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안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그들이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행위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대로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대로가 아니라고 하는데 행위를 하면서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분명히 행위대로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있고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은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육체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성도를 예수 안에 있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부르심은 이 생명이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약속의 씨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의 씨가 있어야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의 씨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씨가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의 씨가 반드시 있어야 부르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르심을 입은 자인가를 반드시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주님을 기다리다가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5:10절을 보겠습니다. (382)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는가 하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이 영광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런 영광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영광입니다. 내세의 일이기 때문에 다른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어서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리고 부활입니다. 내세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언어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성경은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어떠한지는 저 역시도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주신 믿음으로 이 영광을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을 왜 부르셨는가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이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이 땅에서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런 영광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푯대입니다

성도는 다른 것을 안 보고 있습니다. 왜 안 보는가 하면 자기를 부르신 이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 영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잠깐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에 대해서는 로마서8장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성도입니다. 물론 우리 육신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고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깐 고난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제까지 기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고난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고난을 받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고난을 주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잠깐 고난을 받습니다.

그 잠깐이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가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 우리에게 믿음이 온 이후로는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누구나 받는 그런 고난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난은 세상 사람들도 받는 고난입니다.

사도들입니다

선지자들입니다. 누구에게 고난을 받았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역사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어서 그들은 고난을 받는 자가 아니라 고난을 주는 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고난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너무도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고난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고난입니다

성도가 고난을 안 받은 시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있은 후에는 이단이라고 하면 종교재판을 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역사를 통해서 천주교에 의해서 고난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문 기구들이 속속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고난이 왔을 때 배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순교를 당하는 그 자리에서 배교를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깐 받는 고난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은 고난이 없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권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않고 있지만 만약에 우리가 율법주의자에게 이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믿기 때문에 행위를 하지 않는 그 자체도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위를 하면 쉽습니다.

우리도 좋은 건물에서 예배를 하고 또 기독교와 같이 모든 행위를 하면 좋을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 육체에서는 끊임이 없이 소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육체의 소욕을 참고 인내를 한 것 역시도 고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을 내 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은 영의 생명이기 때문에 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자체가 고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잠깐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소욕과의 싸움이 고난이기도 합니다.

영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정말 무미건조합니다. 이 무미건조한 것을 오직 믿음으로 내 안에 역사를 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고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심으로 잠깐 받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견고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6절을 보겠습니다. (264)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고린도전서의 말씀이 그대로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이런 자들을 자기들이 교회 안에 끌어 들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또 그런 자들을 통해서 자기들이 전하는 성경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특히 교회 안에 유명한 공인이 하나가 들어오면 그를 아주 잘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인은 자기의 재능을 교회 안에서 보이면서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많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꼭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복음은 그런 사람이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교회 안에서 자기 지혜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능한 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자기 능력을 나타내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벌 좋은 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해서 이 무미건조한 영의 일을 믿는다는 것을 참고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셨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들을 이렇게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주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서 누구를 부르시는 가를 알아야 내가 부르심을 받은 자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를 통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보았을 때 분명히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이 부르신 자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next 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