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30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아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 전 부터 예정을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아신 자들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영으로 부활을 하는 성도를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우리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과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으로 되는가 하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았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가 아닙니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입니다
그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표현입니다. 이 세상의 왕도 취임을 하고 또 왕으로서 행사를 할 때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세상 왕은 기껏해야 60년 정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으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 왕 노릇하는 것을 천년 동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년입니까?
아닙니다. 실제 천년이 아닙니다. 천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더 이상 셀 수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형상과 같이 화해서 천국에 들어갈 때는 영원히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이 영광에 참예를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미리 정하신 자가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시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로 살아가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알았습니까?
칼뱅이 알았습니까? 웨슬레가 알았습니까? 루터가 알았습니까?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몰랐습니다. 아니 이 시대 역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들 역시 모르고 있습니다. 수만 명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그리고 수십만 명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정말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교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를 만나 보지를 못 했습니다
은혜입니다
달리 표현할 말씀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니까 이 은혜를 너무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입니다
정말 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만만의 천사입니다
그리고 천천의 천사입니다. 그것은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얼마나 많은 천사가 있는 줄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을 하면 그 천사들이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우리의 판단을 받는 그런 형상으로 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이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것으로 그들은 자기 육체의 생명까지 빼앗기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영의 일을 가르쳐 줌으로 해서 위로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부르셨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 부터 우리를 예정하셔서 부르셨습니다. 누구를 부르시고 있는가 하면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부르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인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청함을 받은 자가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다고 하니까 막연하게 자기들을 부르신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되어야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영이 구원을 받기로 정해진 자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정하셨습니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 미리 정하신 자가 누군가 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147:4절을 보겠습니다. (구 909쪽)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가 두려워할 때에 하늘의 뭇별들을 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하늘의 뭇별들과 같이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미리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별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별과 일곱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을 받는 성도들을 별들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부터 미리 우리를 정하셨습니다. 그 정하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의 수효를 계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신기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아주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을 받을 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라 하시기 전부터 정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하시고 그 수효를 계수하시면서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어떤 이름입니까?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름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요한계시록에서 그 이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언제 정하셨습니까? 창세 전 부터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리 창세 전부터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이 시대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누가 정하신 자입니까?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정하신 자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미리 아신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는 그렇게 미리 정하신 자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지금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적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흔적도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지으실 때입니다
그 전부터 우리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이 시대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는 복음을 우리가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신 자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부르셨습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자를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부르셨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부르신 자를 또한 의롭다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야고보서2: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 의롭다 하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로마서를 통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다 그렇게 합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입니까?
우리 육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모르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자기 육체가 의롭다 함을 받아서 그 신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기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반드시 의롭다 함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고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한글로 번역을 해 놓았는데도 그것을 헬라어보다 더 어렵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헬라어를 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한글개역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를 보는 것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글을 헬라어를 보는 것과 같이 보고 있어서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미리 정하신 자입니까?
반드시 그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입은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고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죄인의 자리에 서 있지 않은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자는 죄인의 자리에 서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죄인입니까?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죄인의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왜 또 의롭다 하심을 받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까?
야고보서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무슨 행함입니까?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깨닫지를 못해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나를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까? 그럼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거짓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행함입니까?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아니 이제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교회는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으면 그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아니고 그는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고 그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미리 정하신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교회를 보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인 교회가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서를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거꾸로 해석을 해서 도리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말씀을 다른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보아도 그 뜻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거꾸로 해석해서 이 시대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성경에는 분명히 알곡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막연하게 나는 알곡이고 나와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누가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인가 그리고 누가 저주를 받을 자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럼 누가 저주를 받습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이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저주를 하셨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저주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하시고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실 때는 분명한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내 스스로 말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니 우리 목사가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 뭐 합니까? 미리 정하신 자도 모르고 부르신 자도 모르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도 모르는데 막연하게 교회 안에 있다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다고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됩니까?
사도행전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91쪽)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순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늘의 뭇별과 같이 그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 이름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는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고 또 영화롭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입니다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 영화롭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가 된 우리 역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입니다.
성도의 구원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리 정하셨습니다. 언제 정하셨는가 하면 이미 창세전부터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은 창세전부터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또한 그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까지 우리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한 것이 있습니까?
나를 미리 정하시고 영화롭게 하기 까지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수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너무 맹목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실체도 없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객기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서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경륜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는다고 하면서 객기만 부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세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르면서 성경에 좋은 의미로 기록이 되어 있으면 다 자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시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고난을 받고 있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고난을 받고 있는가 하면 율법주의자에게 그리고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31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그런즉,
8장에서 이제까지 성도가 구원을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가 감동을 받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마 이제까지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지금 우리나라보다 복음을 전하기 좋은 때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교리적인 싸움이 치열해서 지금 하나가 되어 있는 교회가 서로 이단이라고 공격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기독교총연맹이라는 단체가 있어서 비록 배우고 있는 교리는 다르더라도 서로 정통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법입니다
이제는 많이 약화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지만 세상 법이 강하다보니까 교회가 법을 안 지킨다 해도 정죄를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우리 복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평안한 시대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초대 교회로부터 해서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다 고난을 받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국가의 권력이 강해서 그 안에서 종교도 치리를 받다 보니까 종교가 함부로 이단을 정죄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만약에 그렇지가 않았다면 그리스도편지는 벌써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들이 이단이라고 해서 두려울 것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 시대는 고난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한다 해도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고난을 줄 수 없고 만약에 고난을 주면 나라의 법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모르셨겠습니까? 이런 환경이 되어서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더 어렵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종교가 더욱 거대해지다보니까 이제는 복음을 전해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시대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간섭을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이 시대 또 우리를 부르셔서 복음 안에서 교제케 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되게 하시고 그 영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고 주님이 오실 때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까지 하나님께서 경륜을 하시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영의 일, 내세의 일은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우리의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는 그런 곳입니다. 우리는 진토라서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살기를 원하셔서 우리 진토인 인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죽어야 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배운 신학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비밀로 감추어 두시고 오직 믿음을 주시는 성도에게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일입니다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말로는 참 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잘 하지만 실상은 그 일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아무 것도 관여를 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절대로 은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올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 100%로 모든 사람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아니 그가 유명한 신학박사라 해도 역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는데 그것조차 인지를 못하기 때문에 빠져 있는 상태로 살다가 손을 내밀어 보지도 않고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인 면이 도리어 진리를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거기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도 없고 아니 자기가 빠져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입니다
거기가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곳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 손을 내 밀어서 건져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빠져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들을 건져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손을 내 밉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율법주의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모두가 그렇게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빌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빌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빌 바를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에 대해서 빌어야 하는가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심으로 우리가 빌 바를 알고 간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미리 정하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화해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우리 인생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모르지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았다면 놀랍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빌 바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일을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알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빌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교회에만 나오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늘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만 빌 바를 알아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욕에 빠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다른 것이 기적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 복음을 알고 교제케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는 이 일이 기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미리 정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지혜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들보다 하나님을 더 진심으로 믿어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정말 짐승과 같이 살았습니다. 아니 개 끌려가듯이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자라는 것을 성령을 보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성전을 짓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은혜 외에는 다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안에 양자의 영이 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구원에 확신이 있다고 힘주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는 천국은 따 놓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싸움만 되고 있습니다. 말을 해 주고 싶어도 얼마나 세뇌가 잘되어 있는지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 아들과 같은 형상으로 우리가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내가 관여를 했어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이것이 육의 일이라면 우리가 할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은 우리가 할 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는 자기들이 할 말이 많아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을 가지고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next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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