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2:8절을 보겠습니다. (신 311쪽)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이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로마서8장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고 또한 부르셔서 부르신 자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러나 무엇이 은혜가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그들이 정작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신 그 일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영의 일을 아는 성도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은혜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구원을 받기 싫다고 해서 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으면 우리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기까지 모든 일이 창세전에 이미 예정을 하셨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누가 이루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에 빠져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죽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은혜를 거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이 문자를 모든 교인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일도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어떠한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는 그들이 은혜라는 말을 남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물입니다. 선물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선물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선물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선물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의 가치가 얼마나 큰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대단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별들을 그 수효대로 계수를 하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별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받는 성도를 어느 것과도 바꾸시지 않습니다. 이 지구라는 별과도 바꾸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이 그만큼 귀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하셨는데 천하보다 더 귀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늘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의 가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경륜을 알고 있다면 정말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말 못합니다.
사단이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누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구원을 받은 성도는 더구나 할 말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를 미리 정하셨고 우리를 미리 아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신명기20:1절을 보겠습니다. (구 292쪽)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자기 육체로 싸움을 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이제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영적인 싸움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에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로워서도 아니고 그들이 정직해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정말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토착민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으로 싸우지 않고 이제는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그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와 같이 육적으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 안에서 영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이기는데 그 이김이 믿음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일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누가 대적을 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일이라면 대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다 이기셨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기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승리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싸우고 이기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육체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육체가 싸워서 이기는 때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싸워서 이기신 그 싸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서 이기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이는 대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대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하나님이 이기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육적인 일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한복음16:33절을 보겠습니다. (신 177쪽)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한 의인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우리 인생 모두는 사단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우리 인생 모두는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저주입니다
우리는 다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이제 사단이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놀랍게도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사단은 우리를 잘 보호해 두었다가 주님에게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사단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사단도 우리를 더 이상 대적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단은 우리를 보호를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에게로 갈 수 있게 보호해 주라고 율법에 정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싸워서 이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씀을 보고 육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던 모든 일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육체의 일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대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목표도 없이 그렇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씀을 가지고 돈키호테처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 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면서 육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앞에서 어떤 말씀을 했습니까?
고난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면서 육적인 고난에서 싸워서 이기려고 세상과 같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그들이 아니라 고난을 주고 있는 그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싸우려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세상과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이 세상과 싸워서 이기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더라도, 고난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있어서 우리는 이미 싸움에서 믿음으로 이긴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위하시는 줄도 모르고 이 시대는 자기 육체의 일을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조금 이기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시고 있다고 하면서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 싸움에서 이기는 순간 아니 그 싸움을 하는 순간 그는 이미 진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싸워야 하는 대적도 모르면서 사단이 조금 이기게 해 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이겼다고 교회 안에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시대는 자기 대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기초가 되는 것도 모르고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그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모두가 대적에게 사로 잡혀서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그것은 곧 율법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까? 사단이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게 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 율법으로 나는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너무 모릅니다.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저주받게 하고 있는 그 율법을 이 시대 모든 교인들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화를 내고 있습니다. 자기를 저주 받게 하는 그 대적을 위해서 대신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것을 믿는 우리 성도를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심으로 그 영을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영이 거하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이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못 합니다. 율법은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이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절대 못 합니다
이미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영의 일을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율법이 대적해서 저주를 받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이 일이 만세 전부터 예정이 되신 하나님의 경륜입니다0 이 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율법이 우리를 대적합니까?
절대 못 합니다. 우리 육체는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대적하지 못 합니다. 왜 대적을 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율법을 완전히 지킨 깨끗한 영이기 때문에 율법이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육의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면서 육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율법이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거스리고 대적하는 그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율법이 거스리고 대적을 하게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할례를 받은 너희에게 증거 한다고 하면서 할례를 받은 너희는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으면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데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대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지금도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자기들을 대적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골로새서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소경이 되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사도 바울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적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합니까?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는 율법의 저주를 받아 반드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 육신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양자의 영은 율법을 온전히 지킨 영이기 때문에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객기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객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육체의 일로 생각하면서 객기를 부리다가 화를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32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육체를 보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깨닫고 있는 성도는 당연하게 믿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지만 그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율법이 절대로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 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고 있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만 알고 있지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하셨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없는가 하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의인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우리가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입니다
우리 인생도 아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들을 누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하여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가신 일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주님은 죽지 않아도 되는 의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으로 살아가서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하는데 그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내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영의 일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만이 죄가 없고 의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불의한 자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예정이 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주님은 부활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영으로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신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내어 주셨습니까?
단지 우리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 영이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입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왜 주님을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는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볼 때는 그 의미까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바다 모래 같은 사람이 있다 해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남은 자가 누군가 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성도입니다.
베드로전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7쪽)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아끼지 아니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어 주신 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부활입니다
이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 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주님도 육체로 부활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이 육체로 부활을 하시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육체로 부활을 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없게 됩니다.
영의 일입니다
반드시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까지도 육체로 부활을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육체로 부활을 하시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거듭날 수도 없고 산 소망을 가질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하고 우리 성도가 거듭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거듭남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영이 탄생이 되는 성경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는가 하면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듭난 영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거듭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하는 이 말씀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고 그 영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 영이기 때문에 율법이 대적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으로 살리셔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함으로 해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에베소서3:6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그 아들과 함께,
성경에는 이 함께 라는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 세어 보지를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실감이 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영의 일은 내세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먼 내세의 일보다는 현실에 매달려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가 될 수밖에 없고 기복적인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하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그것이 아직은 먼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떡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떡이기 때문에 당장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율법주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입니다
그곳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천국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한 표현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자기 신랑을 위해 단정한 것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천국에 대한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거하게 하셔서 주님과 함께 천국의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를 하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열 고을의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니까 마치 진짜 열 고을의 권세를 얻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열 고을 다섯 고을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천국 그 자체입니다
저도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분명히 이 세상과 같이 그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래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가 하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의 비밀을 알아 천국에서 모든 것을 함께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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