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78-2,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윤주만목사 2024. 12. 14. 11:12

디도서1: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8쪽)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선을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가 세상에서 그 어떤 선한 일을 했다 해도 그는 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정말 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깨끗한 자입니다

누가 깨끗한 자입니까? 율법의 행위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줄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의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속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행위 자체가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율법의 더러운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고 있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더럽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더럽게 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깨끗한 자들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깨끗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으로 성경을 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율법의 행위를 보고 더럽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죄를 짓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도 인정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의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은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자입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가 배제가 되어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가 없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깨끗한 자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행위가 먼저 배제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도 아니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도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을 다 한다 해도 그것은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육체의 더러움만 쌓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의 교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 합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합력하고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입니다

우리 성도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통해서 선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는 영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의 더러운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2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도입니다

정말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청함을 받은 자가 많다 보니까 이 영을 일을 너무 쉽게 그리고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만 이 성경을 볼 수 있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고 있고 당연히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들이 세상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다보니까 구원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지만 그때는 정말 핍박이 너무 심해서 오히려 구원에 대해서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신체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 신체가 행한 어떤 행위도 천국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 신체에 속한 정, 마음, 혼 등 이러한 모든 것은 신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니까 교회 안에서 그 신체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는 이 세상 책을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니 세상 책은 나를 저주 받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못 보면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진노를 누가 받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책은 저주를 받지 않을 수 있지만 성경은 잘못 보는 순간에 저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입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성경을 자기의 이로운 쪽으로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의미도 모르고 하나님이 미리 아셨다고 하니까 막연하게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다 그렇게 보다가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뜻도 모르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아마도 로마서를 보고 있는 그들은 다 같은 말을 합니다. 자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신 자라고 하면서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 합니다. 그런 정도는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성경을 보는 사람이 다 말할 수 있는 초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모르고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4: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디모데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문자를 아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고 또 누구나 그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능력을 자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그 말씀만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가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율법을 다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니까 자기들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저주를 받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문자 자체로는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누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막무가내로 내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스스로의 지혜가 웅덩이를 만들어서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가 있습니까? 그것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으로는 안 되니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는데 자기 지혜로 아는 것을 가지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성령을 받은 자인가를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도 않은 그들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만약에 성령을 안 받았다고 하면 그 자체가 모순이 되니까 성령을 받은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샤머니즘을 행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알면 뭐 합니까? 또 천한 초등학문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등학문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습니까?

그 사람은 천한 세상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가 들어왔습니다. 그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할례를 가지고 와서 할례의 타당성을 이야기하면서 할례를 받게 해서 할례를 자기 몸에 한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를 가지고 말씀을 했다고 이 시대 자기들은 교회 안에서 할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이 무식해서 천한 세상 초등학문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것을 대표로 해서 할례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에게 사도 바울이 천한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바 되었습니까?

그러면서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천한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입니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이 나를 미리 아신 자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목사가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너희를 미리 아신 자 되었고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고 있다고 하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 되어서 은혜를 받았으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모두가 정신이 혼미해 져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하면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천한 세상 초등학문에, 율법에 종노릇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기들 스스로 아무리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삼가 지키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다 율법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믿음이라고 해도 성경이 율법이라고 하면 율법이고 천한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면 그런 것이며 거기에 종노릇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로마서의 말씀만 보고 아니 설령 이 말씀을 보더라도 불의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에서 떠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1장에서 이 불의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불의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의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은 이 불의에서 떠나 있습니다.

못 떠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불의에서 떠나라고 하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공항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과 같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감히 불의에서 떠난 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게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믿는 것을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금 믿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지만 미리 아신 자가 아니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막연하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기들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도로서 산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대통령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다 대통령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아는 사람은 자기가 그를 알기 때문에 그에게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내가 압니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대통령을 아는 것도 그런데 하나님을 자기가 안다고 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쓰레기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소경이 되어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가 누군가를 알 수 있는 눈이 안 떠져 있습니다. 그렇게 소경이 되어 있는 사람은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 빠져 죽게 됩니다.

고린도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89쪽)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형상을 입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과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도 목사들이 기독교 조직신학 책에서 모두가 그렇게 배우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교회를 세우고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그가 성경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의 눈에 보이는 성경은 다 신체의 부활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신학이라는 세상 초등학문에 매여 있는 그가 성경을 아무리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됩니까?

설령 성경에서 자기가 영의 부활을 보아도 어떻게 합니까? 그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영의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는 이단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에서 배운 교리가 목사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아니 거기서 벗어나면 이단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혹시 자기 마음에서 그런 감동을 받았다 해도 그것을 지우려고 애쓰고 신체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찾아서 그 타당성을 자기 안에 확인을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신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목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크면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이단이라고 하든지 마이웨이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애써서 수백 명을 만들었는데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면 자기가 이제까지 쌓아 놓은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 합니다. 작은 교회는 다 노회에 소속이 되어서 도움을 받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상으로 화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형상입니다

우리 성도의 부활입니다. 어떠한 형상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할 때는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형상이 어떤 형상인가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본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저와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합니다. 우리의 신체가 부활을 해서는 절대로 저와 같은 형상으로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게 부활을 하는 줄도 모르고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부활절이라고 하면서 종교의식으로 성대하게 치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입니다

저와 같은 형상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주님을 본 형상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부활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육체에 정에 매여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와 같은 형상입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부활을 합니까? 주의 영으로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양자의 영이 있어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주와 같은 형상으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가 되고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으로 되었는가 하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주의 영으로 거듭나는 것을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이 영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듣지를 못하면 자기가 성경을 보고서라도 은혜를 구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도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의 일을 전혀 모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는다는 것으로 저주를 받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입니다

우리 신체의 형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만납니까?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도 만나고 사도 바울도 만나고 주님도 만나고 또 교회 안에서 같이 신앙생활 하던 사람도 만나고 내 형제도 만나도 내 부모자식도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니까 그런 이상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생각에 사로 잡혀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한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오직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일이 믿어지는 역사가 자기 안에서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하는 일이 얼마나 영광이 되면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영광에 참예를 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이 시대는 겨우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영광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썩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입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것이 무엇으로 되는가 하면 주의 영으로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에게 없으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 성도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으로 이미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마다 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 미리 정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사로서 살아가고 절에 스님으로 살아가는 것이 다 정해진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그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지금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정하신 것으로 되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에 나갑니까?

그리고 열심을 다 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셔서 하고 있는 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입니다

우리라고 하니까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우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를 미리 정하셔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뜻을 따라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입니다

육신을 보고 우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양자의 영을 보고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은 자들을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부활의 형상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부활을 해서 영광을 받는 그 영을 우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우리 육체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들을 미리 예정을 하신 것이지 우리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썩어 없어지는 진토입니다. 그런데 이 진토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만세 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우리를 예정을 하셨습니다.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예정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도 자기 아들이 태어나면 얼마나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하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들을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있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양자의 영을 받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입니다

그 영을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아니라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예정을 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 하나가 회개를 하고 탄생이 되면 하늘에 있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영의 일을 알아야 이 구원을 조금이나마 희미하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을 모르면 막연하게 구원을 생각하다가 사망이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희미하게라도 이 영의 일을 깨닫고 믿고 있습니다.

희미합니다.

왜 희미한가 하면 내세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희미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희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희미하지만 우리에게는 든든한 믿음이 있습니다. 요동치 않는 믿음이 있어서 이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이 시대 이 복음을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셔서 우리가 지금 이 시대 이 복음을 교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정하셨기 때문에 아주 적은 무리지만 이렇게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만세 전부터 예정이 되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히브리서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54쪽)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영의 일은 정말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내세의 일이고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는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입니다. 다 하나에게서 나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해서 천국에 가면 어떠한 일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기도 합니다. 물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형제라고 부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또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정말 영의 일을,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영이 탄생이 된 것을 말씀할 때는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말씀할 때는 또 형제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맏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때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 것을 말씀할 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세의 일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해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양자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뤄 주심으로 해서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그 영을 보내 주셔서 우리도 그와 같은 형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 많은 아들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next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