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5:4절을 보겠습니다. (신 290쪽)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왜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를 하시고 있는가 하면 우리가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닙니다. 로마서8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생명이 있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성령만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신 성도는 이 기도를 하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죽습니다.
그러나 이 피조물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서 이 피조물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성도는 늘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그 구원을 위해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에만 나오면 구원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더 이상 탄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구원을 받아 영광을 받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깨닫고 있는 성도라면 늘 이 구원에 대해서 탄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 같이 샤머니즘 적인 행위를 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탄식할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습니다.
빌 바를 모릅니까?
그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분명하게 빌 바를 알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이 탄식하는 것을 알면 뭐 합니까?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 합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이 하시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빌 바를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려고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이 탄식할 정도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로마서8:27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제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독교는 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문자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 시대 사람들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구약을 보면 많은 말씀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문자적으로 율법을 폐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어떻습니까?
율법을 폐하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율법을 폐할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율법을 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느 말씀을 따를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자기들이 지키기 어려운 율법은 폐하고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율법은 지키고 있는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용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실 때도 많은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을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용을 한 말씀만 인용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인용을 했다는 말씀이 없어도 다른 성경을 인용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비유라고 말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만 비유입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비유라고 하지 않았어도 비유인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도 비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비유라는 말씀이 없다보니까 그것을 비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유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정말 잘 분별을 해야 합니다. 비유와 인용을 모르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는 순간 그 사람은 잘못된 지식으로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비유라고 되어 있고 인용이라고 되어 있는 말씀만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지 존칭을 쓰셨다는 것으로 그리고 의인화를 해서 말씀했다는 것으로 마치 성령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주님께서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이라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는 순간 영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되고 그것이 성경을 보는데 있어 어느 기준이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은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성령의 일을 자기들이 체험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다가 교회가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영의 일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있는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11:4절을 보겠습니다. (구 810쪽)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입니다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안목이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감찰하시는 줄을 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은 영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 가를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계시다는 말씀을 사실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과학이 발달을 해서 우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을 했다 해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데 어느 하늘에 계시는 줄은 아무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을 갔다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갔다 왔다고는 하지만 그곳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셋째 하늘에 갔다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셋째 하늘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아주 먼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씀을 알면 또 깨달아 질 수 있습니다. 아니 내 안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영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감찰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살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이 말씀에 대해서 이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감찰하시는 줄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그 영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감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는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를 감찰하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던 성전이 이제 어디로 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에 와서 그것을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감찰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왜 성전이 되었는가 하면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 자체가 성전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성전인 주님을 알 수 있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있는 우리를 보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에 오셔서 우리가 성전이 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맞는다고 할 수 있지만 분명히 성전과 성령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를 하심으로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마음을 감찰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조사하고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살피십니까?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살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성령을 다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인화를 했다고 해서 이 시대는 성령을 이야기를 하면서 인격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사람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영으로 알면 됩니다. 다만 이 영은 우리가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진리의 영으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거기서 더 나가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삼위일체라는 이상한 신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73쪽)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에 대한 기초가 되는 말씀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에 대해서 어떠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이것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기초가 되는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상입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을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성령을 받지도 못했고 성령을 알지도 못 했습니다.
세상입니다
교회는 세상입니다. 지금 목사들이 마치 교회를 구원의 방주와 같이 은근히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교인들은 자기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주 교묘하게 스쳐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하는 그것에 교인들이 다 미혹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세상을 모릅니다.
교회 밖도 세상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는 세상이 저를 받지도 못하겠다고 저를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제 천국으로 가시면 보혜사를 보내 주시는데 그가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세상은 저를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계속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더구나 그 하나님을 내가 받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이 가장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성경을 보면 마치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것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입니다
정말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영은 진리를 알 수 있게 감동을 해 주는 영입니다. 사람들이 그 이상을 생각하다가 삼위일체라는 신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가 받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은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진리의 영을 우리가 받음으로 해서 이 영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그 영을 주님께서 존칭을 쓰고 의인화를 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의 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은 세상이 받지도 못하고 세상이 알지도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밖에 있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라는 세상이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5: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진리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 진리의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영에 대해서 존칭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을 우리가 받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성전이 지어져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기 때문에 존칭을 쓰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보니까 이 영생에 대해서 별로 실감이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영생을 얻었는가를 아는 성도는 내가 받은 영생을 생각하면 정말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꿈과 같은 일이 나에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은혜가 되어 넘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그가 무엇을 합니까? 나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증거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증거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를 하십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증거를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가를 증거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것으로 증거를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자의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 자의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리의 영을 보내 주실 때는 이 성령의 생각을 알고 보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령이 자의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또 성령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과 성령의 생각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음과 성령의 생각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고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가 성령의 감동으로 마땅히 빌 바를 알고 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어떻게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까? 우리 마음을 성령이 어떻게 감동하시는지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지 못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고 도리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성경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고 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비는 가를 보면 그에게 성령이 오셨는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6:40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의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릅니다.
아들을 보고 믿으라고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아들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속의 일을 알고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면 요한복음의 아버지의 뜻은 교회에 나와서 율법도 지키고 아들도 보고 믿으라고 기록되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글을 모릅니까?
아버지의 뜻도 모르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도 모르는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친히 간구를 하시는데 아버지의 뜻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의 뜻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 말씀이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영생에 관한 말씀이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저주 받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감성적으로 듣기에 좋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실 이 로마서의 말씀도 오해가 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그가 무엇을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를 해 주시고 있습니까?
누가 간구를 해 주십니까?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아들을 보고 믿을 수 있게 간구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고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영생을 위해서 성령이 간구를 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것을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시는 것을 성령이 간구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2:16절을 보겠습니다. (구 912쪽)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언2:20절을 보겠습니다. (구 913쪽)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지혜입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혜를 성령과 마찬가지로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우리를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잠언에서는 우리를 부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부른다고 생각합니까?
잠언의 말씀을 보고 지혜가 부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자를 통해서 지혜를 전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성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도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도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나를 음녀에게서 그리고 이방 여인에게서 구원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합니까?
나를 지혜가 구원을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구원을 하시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그 지혜로 깨달아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고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누가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까? 우리가 성막에서도 보아서 알겠지만 분향단에서 주님이 간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금향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누구를 증거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성도를 위해서 누가 간구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영입니다. 진리의 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의인화를 해서 말씀을 한다고 해서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이해를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그것입니다. 아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성막에서 분향단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분향단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기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누가 간구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간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고 사도 바울은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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