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4:32-37절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성경입니다
우리의 육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이 시대 성도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유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우리 성도들의 삶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이용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이용을 하면서 마치 공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실제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4장입니다.
거의 20년 전에 설교로 해석을 해서 말씀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잘못 해석을 한 말씀이 있습니다. 헌금에 대해서 강조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성도가 헌금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고 헌금에 대해서 어느 정도 타당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헌금입니다
제가 헌금을 반대를 하면 이 시대 종교인들이 반대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인들 뿐 아니라 교인들까지도 자기들이 하나님께 하는 헌금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하는 옳은 행위를 반대를 한다고 해서 저를 도리어 이상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율법주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헌금을 하는 것이 믿음에서 떨어지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편지에서 이제까지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했고 다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다 헌금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유사한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헌금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말씀을 해도 인생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 성도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은혜에서 끊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인생의 철학이 그렇다 해도 말씀을 바로 해석해서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이 시대 역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더 바로 성경을 해석해서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거의 다 비유로 해서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성경을 보는 인생들에게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한다고 해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리어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을 한다고 하면서 반대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저는 단 한 사람이라도 제가 전하는 복음을 보고 들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저 역시 헌금을 하는 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저는 인생입니다. 더구나 저는 거의 20년은 넘게 골방에 박혀서 성경을 해석하는 일을 하고 있고 적은 숫자이지만 우리 성도들과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삶으로 볼 때는 저 역시 교제를 하는 성도들이 헌금을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반대합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제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못 이기는 첫 하고 헌금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차라리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성경적으로 정의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 인생은 그가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고 해도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성경을 보게 되어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문자는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인생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을 하게 하셨지만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깨달아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저 역시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고 그때 있었던 일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초기 교회에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 율법을 보고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만든 법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자기들이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그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행위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게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그 율법이 이 세상의 철학에 따르는 함무라비 법전이 아니라 생명의 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모세의 율법을 생명의 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고 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다 지켜 행하겠다고 하면서 언약을 하고 있고 이방인들 역시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율법은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32,“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기 교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을 했고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4절에서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그들이 그 말씀을 한번 듣고 믿었다고 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미 씨를 뿌려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기초를 세우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어떠한 삶을 사는가를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시 말씀을 하지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보아다가 사라지는 그 안개가 무엇을 한들 그것이 남아 있겠는가를 먼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인생 중심에서 보면 당연히 무엇인가가 남아 있겠지만 그래서 내일 지구가 멸망을 당한다 해도 한 구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인생의 철학입니다.
기초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를 먼저 기초로 세우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기초가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가 아무리 성경을 본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입니다
이렇게 기초를 세우고 보면 초기 교회에 성도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듣고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듣고 믿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이 한 마음으로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에서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렇게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마음으로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한 마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이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대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고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한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같은 마음으로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뜻입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이렇게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물건을 서도 통용하였다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도 공동으로 사용을 하였다는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건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우리 성도의 삶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을 했다는 말씀을 보고 공동 소유의 관념을 가진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당시 초기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고 그리고 기근과 가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비유로 해서 무슨 물건을 서로 통용을 했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큰 음녀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이 가증한 물건은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입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느 특별한 문자를 이용을 하는 사람들이 종교인들 중에서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복음18:24-25절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재물입니다
초기교회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있었던 육의 일을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그들이 한 일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재물입니다
주님 앞에 찾아온 사람이 십계명을 말씀을 하시니까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고 나서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재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비유로 초기 교회에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이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킨 율법을 보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제 재물을 제 것으로 여기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당시 유대인들이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설령 자기가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재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지 않는 행위의 표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해도 그것을 자기 재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는 누군가 무슨 일을 하면 광고까지 해 주면서 그 사람의 재물로 만들어 주고 있고 그러한 일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물건을 서도 통용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믿는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게 되고 있고 그렇게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 재물로 그러니까 자기의 의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사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권능입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러니까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부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죽음 후에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들이 말을 하는 부활은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말을 하는 부활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면서도 무엇을 말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성경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 하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과 같은 생명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부활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증거를 받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역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주 예수의 부활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얻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는 일을 아브라함도 부활을 했고 믿음의 선진들도 부활을 했고 그래서 자기도 죽으면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 예수의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죽으면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부활을 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는 첫째 부활을 말씀을 하는 그 부활이 있기 전에 누가 부활을 했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첫째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믿음의 선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마치 사람이 죽으면 바로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로 지금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모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부활을 믿음으로 해서 그가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은 생명을 얻은 자 이고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생명으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첫째 부활에 참예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4,“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야고보서2: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초기 교회입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당시 성도들의 삶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성경을 인생의 철학을 가지고 이해를 하려고 하면서 이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사람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이용을 하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의 일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물론 당시 사람들을 비유로 하고 있지만 실제 물질의 가난함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부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도 주님께서는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그의 부요하심을 알고 그가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알고 믿는 우리 성도 역시 주님에게 꾸어 부자가 되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율법의 의로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은 자 되었다는 의미에서 가난한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비유입니다
물론 실제 사도들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치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는 성도들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이런 말씀을 이용을 하는 종교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디도서3:14절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필요입니다
이 단어의 사용을 성경에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의 열매를 맺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은 영의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성경에서 그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마치 이 문자를 아는 대로 행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교인들을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성경입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이용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더 유익하지 종교가 되어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지식으로 이용을 하니까 그 안에 들어온 인생들이 마치 그것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인생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레위인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보이는 성전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레위인에 대해서 알고 있고 레위인이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보이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바로 바나바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를 통해서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를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성경에 기록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나바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치 종교인으로 신앙심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를 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영생을 얻었다고 믿는 바나바가 레위인으로서 모든 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상징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실제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레위인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바나바가 깨닫고 나서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4장입니다
우리 성도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기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부활을 듣고 그의 은혜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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