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23:29-35절(구936)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잠언입니다
종교인들이 오해를 하는 성경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전혀 뜻 밖에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번역이 될 때 잠언으로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이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잠언의 시작입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닫게 하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이 가장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지혜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성경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더구나 현대 교회에 와서는 각 교회의 권세가 크다 보니까 교회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비유입니다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잠언을 마치 유대인들의 탈무드와 같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같은 종교의 사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종교만의 아주 독특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보는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가 모두 연결이 되어 있고 하나의 주재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영생이라는 말씀이고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삶입니까?
그리고 종교인으로서의 삶입니까?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보는데 그렇게 보이고 있다면 아직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입니다
저는 이것을 든든히 세우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일관성이 있게 성경을 볼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어 영생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본성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그 종교는 율법주의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지만 인생은 종교성이 있고 그것이 율법주의기 때문에 종교에 빠져 종교인으로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종교입니다
23장의 말씀도 역시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종교를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창조하신 일은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서 보니까 인생들이 종교가 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음녀로 비유로 해서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 전체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니까 그들이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에 의해서 인생들이 사망을 당하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음녀를 마치 세상의 음녀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이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는 다 이루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 음녀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서 지혜를 구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세상에 사는 부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음녀입니다
종교는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파를 보아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곳은 제가 아직까지는 못 보았습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마치 남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순간 그는 세상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율법을 지키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을 대표로 해서 한 부자라고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인생들은 종교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들은 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보다는 종교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한 부자가 되어서 성경의 문자를 가지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개들은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있는 종교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면서 그 날에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가 아무리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르치는 자를 비유로 해서 부자가 되라고 한다는 것을 율법을 지키라고 한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잠언 2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본성이 율법주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는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대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입니다
누가 주님을 대적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인들은 이방의 종교인들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한 그대로 이방의 종교인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창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를 먼저는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치는 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종교가 되어 음녀로 변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 안에 들어가는 인생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29절부터의 말씀에서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29,“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음녀입니다
종교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를 음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음녀를 비유로 해서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인생들을 보니까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이 음녀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혜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분별할 수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인생의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 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는 지혜나 불교에서 스님들이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는 지혜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절에 있는 스님들로 성경을 강해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의 말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비유로 해서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종교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잠언에서는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은 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철학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말을 해야 철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그런 기초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8:3-4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바벨론입니다
성경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다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바벨론에 대해서 이 나라가 무엇을 비유로 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디서 불러내셨습니까? 갈데아 우르입니다. 이 갈데아 우르가 바로 고대 바벨로니아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르라는 도시가 있고 거기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바벨론은 종교를 대표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종교를 대표로 하는 나라를 비유로 해서 성경에서는 바벨론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다시 그 나라가 생겨난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를 비유로 해서 큰 음녀로 그리고 바벨론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그 본성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고대 바벨로니아에는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것이 지구라트라고 하고 있고 거기서 그들은 종교를 통해서 신탁을 하고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그것을 바벨론이라고 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을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종교가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잠언에서 예언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 그들이 재앙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앙입니다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에게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서 종교를 상징하는 나라 바벨론이 재앙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의 의를 비유로 해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렇게 부자라고 말씀을 해도 인생들은 율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도리어 종교 안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렇게 부자가 되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비유로 해서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해도 그들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바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인생의 철학에서 벗어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인생입니다.
안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안 됩니다. 아니 지혜가 있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1만 명이 모여서 성경만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본성이 율법주의기 때문에 거시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뉘게 있느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는 너희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것을 유대인들만 보아도 쉽게 인생들의 철학을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이 시대 종교를 보아도 그들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제사법이라고 시민법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에게서 폐하여졌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정말 상식 밖에 이야기를 하는데도 인생들은 그 본성 때문에 그들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습니다.
30,“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음녀입니다
그리고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를 비유로 해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있습니까?
술에 잠긴 자에게 그리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있다고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에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종교인들입니다
정말 어린아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초등학문에 빠져 있습니다. 술이라는 단어를 진짜 세상에서 마시는 술로 보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어떻게 보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고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이용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는 이 말씀을 종교인들은 또 포도주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마신 술입니다
그것은 진짜 마시는 술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먹는 술이 아니라 비유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술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진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포도주와 술은 다르다는 정말 무지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음녀가 포도주에 취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는 것이라고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재앙을 당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술에 잠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술 취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성령이 오실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성령이 오실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혼합한 술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듣고 그들은 율법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본성에 따라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잠언에서는 혼합한 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골로새서2:20-21절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비유입니다
음녀라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인생들은 종교가 되고 이렇게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지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입니다
율법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쳐다보는 순간 율법을 지키게 된다는 것을 만지는 순간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그럼으로 해서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순간 우리는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에는 너무도 좋습니다. 마치 술에 취하는 것과 같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인생들은 술을 먹으면 점점 더 많이 먹는 것과 같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2,“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뱀입니다.
그리고 독사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를 하는가를 그래도 성경을 보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세상에서 그냥 사는 것이 그에게 그 주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됩니까?
부자가 되는 사람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자가 되는가 하면 종교라는 음녀에게 빠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한다고 그러니까 인간 전체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인생들은 성경을 보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33,“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성경입니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우리 인생의 일을 통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언의 거의 모든 말씀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음녀만 보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교회라는 건물을 얼마나 거대하게 그리고 찬란하게 짓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만 보이게 되어 있고 그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만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경계입니다
아니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것에서 보니까 우리 인생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해도 역시 인생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녀의 깊은 구렁에 빠져 거기서 술만 찾고 있다는 그러니까 율법만 지키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성경은 절대로 이렇게 기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자 중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4,“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를 지켜도 율법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를 부자로 비유로 해서 그리고 개들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을 술에 잠긴 자가 되고 혼합한 술을 찾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닙니까?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잠언에서 비유로 해서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입니다
비유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음녀를 비유로 해서 많은 물 위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지만 마치 바다 위에 있는 것과 같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둥둥 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5,“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입니다
율법을 비유로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세상에서 마시는 술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의 본성이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철학이라고 하는 모든 사상이 다 율법을 잘 지키고 사람답게 사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더욱 더 율법주의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우리 인생의 율법주의를 아주 신랄하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4:19절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초기 교회입니다
이미 그 안에 율법주의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율법의 의를 더럽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더럽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에는 그것이 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들은 더욱 더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잠언에는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입니다
그것으로 율법주의에 빠지는 일을 그리고 종교가 되어 있는 음녀에 깊이 빠진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서 받음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 하는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백성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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