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5:1-6절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 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성경입니다
인생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인물을 보고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는 것은 성경의 문자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데 인생들이 기록이 되어 있다 보니까 그 인물 중심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입니다. 그들 역시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으로 그리고 다윗이 인생으로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성경을 인생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믿음이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다윗의 믿음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믿음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삶입니다.
그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철학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가 왕으로 살았다 해도 역시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시편에서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윗이 한 시대를 다스리는 왕으로 살았다 해도 역시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왕입니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정말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다윗이나 이 시대를 가난하게 사는 나나 사진 한 컷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성경은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행위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행위입니다. 다 사진 한 컷에 불과합니다. 그가 의롭게 살았느냐 아니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죄인으로 살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얻는 일을 사도 베드로는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를 하실 때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의 말씀은 창조하실 때부터 이 우주가 사라질 때까지 세세토록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우리 인생은 마치 들의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고 믿는 복음을 아브라함에게 먼저 전해서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정하신 일로 그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주님께서 오셔서 처음 듣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시고 그가 믿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인생의 역사적 시간에 따라 기록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창세전에 가졌던 영화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사건입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는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 있어서 우리에게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보고 우리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제가 부정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을 알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조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통해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서입니다
사사 사무엘과 그리고 사울 왕과 또 다윗 왕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그들 역시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그들에 대해서 우리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 왕입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국기가 다윗의 별로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로만 보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릅니까? 그들 역시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마치 이스라엘과 형제나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유렵의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듯이 성전이라고 하면서 십자군 전쟁을 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 쓸데없는 일을 인생의 철학에 따라 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지입니까?
성경 어디에서 이스라엘의 땅이 성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에서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비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대로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십자군 전쟁을 몇 차례나 했던 것이 유럽의 역사고 지금까지도 그 땅에 성지라고 하면서 순례를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성령을 구하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1,“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
압살롬입니다
역시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지만 그러나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는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압살롬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교회 안에 있는 영적인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기도 하고 선지자이기도 하고 또 한 인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을 통해서 이 세 가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다윗이라는 인물로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보고 있지만 그것도 아주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다 생각을 하면서 사무엘서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어느 특정한 비유 한 가지만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전체적으로 생각을 하고 또 그 안에서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복음의 씨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듣는 말씀을 비유로 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씨를 뿌려 주시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씨를 뿌리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성령을 받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땅은 우리가 복음을 듣는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만 듣지 않는 것을 돌밭 가시떨기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복음을 전하면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는 성도를 비유로 해서 좋은 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복음을 전해서 듣는 것을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이 적습니다.
왜 적은가 하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이 인생의 철학에 반대가 되기 때문에 좋은 땅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도 사람들이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땅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내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가 좋은 땅이 되고 그런 그가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입니다
그는 다윗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건입니다. 왜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인생 다윗이 그 신하들이 전쟁을 나가 있는 상태에서 밧세바를 취해서 얻고 그 충성된 신하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하고 밧세바를 취해서 하나님께서 너는 은밀히 했지만 나는 백주에 이 일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다윗입니다
그가 잘못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업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창조가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분명히 다윗이 업보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창조는 이미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기 때문에 그 말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업보가 아닙니다.
그리고 인과응보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 다윗이 죄를 진 일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의 비유로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교회라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업보로 압살롬이 이제 왕을 선포를 하고 그 후처들을 백주에 간통을 하는 것은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5장입니다
압살롬이 어떻게 반역을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압살롬에 대한 사건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의 일로 인하여 결국에는 반역을 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이 사건은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4: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다윗입니다
교회의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 전체에서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교회가 있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자기가 왜 있는지를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입니다. 그리고 남편입니다. 당연히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면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자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그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자랑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이 시대 여자들이 오해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남녀를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더 낫다는 것을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말씀을 그대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입니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압살롬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하는 다윗 왕에게 반역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렇게 반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이렇게 압살롬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고 그들이 다윗 왕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표면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압살롬과 같이 자기를 위하여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의 율법입니다
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압살롬이 발과 병거를 자기를 위하여 두었다는 것은 쉽게 말씀을 해서 애굽으로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이렇게 압살롬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비유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세상의 초등학문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애굽으로 돌아간 교회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세상 초등학문으로 돌아갔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2,“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비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압살롬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했는가를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인생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단순히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종교가 되는 과정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야 하는 교회에 압살롬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남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왕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말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누구를 전하고 있는가 하면 인생들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자기들의 교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68:5절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기초 중에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기초를 세우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재판입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재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에 대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입니다
고와와 과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버지가 없고 남편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입니다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자기 인생의 철학으로 재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판을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자기가 인생의 철학으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느 사람이 형과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게 해 달라고 하니까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떠한 재판을 했는가를 종교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압살롬과 같이 재판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서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재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만 나는 아무도 판단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모르고 압살롬은 자기가 재판을 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2,“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새번역입니다
“압살롬은 그에게 "듣고 보니, 다 옳고 정당한 말이지만 그 사정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이 왕에게는 없소" 하고 말하였다. 압살롬은 늘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하였다.”
이스라엘입니다
교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윗이라는 왕과 그의 아들 압살롬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다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고아와 과부의 재판장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듣고 보니, 다 옳고 정당한 말이지만 그 사정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이 왕에게는 없소" 하고 말하였다. 압살롬은 늘 이런 식으로 말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이 영생의 문제를 다윗 왕에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방의 종교가 이렇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단순히 압살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방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4“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야고보서4:12절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압살롬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스스로 재판장이 되려고 하는 것을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스스로가 공의가 없으면서도 공의로 판단을 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가 이렇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이 시대를 보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재판하시는 분이시고 공의로 판단을 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종교는 인생의 철학에 따라 자기들의 지식으로 이 세상의 일을 판단을 하고 있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판단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간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동성연애에 대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아와 과부를 재판하시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인생의 철학에 따라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재판장입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압살롬이 그렇게 한 것과 같이 이방의 종교인들이 역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누구만 할 수 있습니까?
다윗 왕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과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한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 일은 세상 일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5~6,“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압살롬의 재판입니다
인생의 철학에 따라 그렇게 재판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인생들은 그 철학에 따라 듣는 재판이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그 마음을 빼앗기고 있고 그것을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입니다
누가 도적입니까? 주님께서 유대교가 되어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사람들이 도적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입니다
그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그런데 왕 앞에 재판을 하러 온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다윗 왕입니다
그는 만왕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입니다. 우리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고아고 과부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다윗에게 찾아오는 것을 압살롬이 자기가 재판을 해 주겠다고 하고 있고 그 재판이 무엇인가 하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을 함무라비 법전과 같이 보고 재판을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입니다.
백성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압살롬과 같이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아라는 것을 그리고 과부라는 것을 먼저 알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받아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71,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 | 2024.12.15 |
---|---|
1170,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1) | 2024.12.14 |
1169,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1) | 2024.12.11 |
1168,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3) | 2024.12.08 |
1166,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1) | 202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