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1:25-30절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우리 인생들에게는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 문자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에 대해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정의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해도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희년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율법에 희년이라는 것을 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희년을 은혜의 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되어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있는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단 한 가지도 지키는 것을 용납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증거를 했고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이 주님께서 완전케 하시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일을 증거를 받아 율법을 지키지 않았는데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들은 조상 대대로 율법을 지켰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 안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날을 지키지 않고 절기를 지키지 않고 해를 삼사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날을 그리고 절기를 해를 삼가 지키면서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기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두려워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했는데 사망으로 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그들이 어떻게 율법주의로 가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는 인생들은 그 철학적 사상에 따라 율법주의로 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이 성경적 정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이 바로 우리 인생들에게는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에게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계신 분이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나타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나타내신 일이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인생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나타내신 것으로 인생들은 자기 철학으로 마치 인생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으로도 그리고 하나님으로 생각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까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지 않는 성자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교만함입니다.
자기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생과 같이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이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하나님까지도 자기들과 같이 폄하를 하고 있고 그것이 이방의 종교의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셨지만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까지도 자기가 죽을 때가 되어서도 믿지를 못하니까 제자들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들에게는 없습니다.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자가 누군가 하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그러니까 육체의 병을 비유로 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실제 육체의 병이 치유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우리 인생은 진리에 있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 있어서 우리는 다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보고 있지만 우리 인생은 자기 철학으로 보기 때문에 마치 소경이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9장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표적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대표로 해서 우리 인생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다 소경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소경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9장 마지막 절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표적을 나타내 보여주시면서 우리 인생들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다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당시 종교인들이 자기가 소경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앉은뱅이입니다
우리는 걸어갈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따라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지만 그 길을 보고 믿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앉은뱅이면서도 성경에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문둥병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적으로 다 문둥병이라는 영적인 감각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는지를 그리고 설령 누군가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그것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문둥병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귀머거리입니다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인생의 철학으로 누군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생에게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지만 자기가 귀머거리라는 것 보자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그런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하신 일이 영광을 모르니까 그저 인생의 철학으로 자기들이 그런 병이 걸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치 남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0-21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비유입니다
어린아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실제 어린아이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종교 안에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들을 비유로 해서 그 종교 안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입니다. 주님께서 유대라는 세상에 오셨는데 그들이 주님을 영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비유로 해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고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영생을 얻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냐고 당시 유대교인들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전파를 하시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역시 유대교가 되어 있는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에서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로 해서 그들이 듣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자들이 듣는 것을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서 이미 가르치는 자들은 듣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자들을 비유로 해서 어린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세상으로 보았을 때는 지혜 있는 자들이 들을 것 같지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는 도리어 배우는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미 종교가 되어 있는 이방인들 역시 듣지를 않는다는 것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 아이입니다
실제 어린 아이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마태복음에서 보면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가르치면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복음을 듣고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누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성경을 보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역시 모른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버지의 뜻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면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그렇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을 영접을 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을 요한복음6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요한복음에서도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런 그들에게 숨기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을 해도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역시 율법을 생명의 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으로 보고 그것을 자기들이 지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종교인들이 모른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으로 스스로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7:2-3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신 목적도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살리시는 일이 바로 영생을 얻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인생들이 오해를 해서 바알의 사상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영생을 얻는 자들을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뒤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어린 아이와 같은 우리 성도들에게 아버지의 뜻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뜻은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를 아는 자입니다
이 시대 아마도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면 바리새인들보다 더 비웃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다 아버지 안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압니다.
아들이 아버지이심을 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만이 아버지를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는 일을 이사야 선지자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이심을 믿는 자가 누가 있습니까?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보면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방의 종교도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교도 역시 아버지가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들의 소원입니다
아들이 택한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시다고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아예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이방인들은 인생의 철학에 따라 성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택함을 입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과 같이 지식의 형상으로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무거운 짐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가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시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성을 가지고 종교인으로 사는 것을 보고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유대교인들과 같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수고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갈라디아서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나의 멍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본성적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사상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인생의 철학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주님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지키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멍에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을 배우면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배우지 않으니까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면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헛되게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쉬지를 못 합니다. 그런 그들이 주일이라는 날에 안식일이라는 날에 온갖 일을 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면서도 종교성에 의해서 마치 그것이 가벼운 것과 같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배우시기 바랍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함무라비 법전이 아니라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생명의 도를 우리에게 전하신 일이고 그 일을 배우면 생명을 얻은 자 되어 가볍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려면 우리는 너무 무서운 짐을 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종교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표로 하는 것이 유대교인들이고 바리새인들을 비유로 해서 이 시대 종교인들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율법을 지키는 일에서 인생의 철학은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멍에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보고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볍습니다.
왜 가벼운가 하면 율법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일을 배우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이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가벼운 짐을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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