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4절을 보겠습니다. (신 179쪽)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들과 같이 육체를 입고 오신 목적은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영생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나타내주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그렇게 증거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거대한 종교가 그들의 교리로 세운 것이 있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이 든든히 서 있기 때문에 영적인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어 주신 일은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더 이상 표현을 할 수 없어서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은혜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두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믿을 수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믿음은 든든하게 서서 이길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드론 시내는 구약에서는 약 10회 정도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신약에서는 요한복음에서 단 한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드론 시내입니다
어두운, 혼탁한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실제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시냇물의 색깔이 흙빛인데서 유래했으며 검은 여울이라고도 불리워졌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시내의 색깔을 따서 그런 뜻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이제 유월절을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율법주의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해서 그들이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의 모든 것을 이 시내에 내어버린다는 역대상의 말씀도 비슷한 의미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이 시내에 던져 버리는 것과 같이 되고 제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 자들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이 시내를 지나서 동산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표적을 보이시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때 그 역시도 다 보았고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편에 예언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을 파는 자가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복음에서 스스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불쌍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주님을 파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그는 처음부터 영생에는 관심이 없었고 도적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더구나 주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고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을 파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가룟 유다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고도 주님을 파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누가 악인인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이방의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자기들이 왜 악한 자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 악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악인이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은 철학이 율법주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우리 인생을 진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악에서 돌이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가 왜 악한가를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면서 더욱 더 악한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면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들은 본성이 율법주의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헛된 말이라고 치부를 해 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우리의 생각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더욱 더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본성입니다
인생들은 그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헛되게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렇게 종교가 되어 있는 그들은 죄악을 더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종교에 빠져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를 믿고 있는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자기가 유대교에 있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옳은 것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들은 하나도 깨끗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그들의 사상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닥쳐올 일을 모두 아시고,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유대교만 종교입니까?
그것은 이방인들의 예표입니다. 이 시대 이방인들의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두 종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두 짐승을 보여주시면서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같습니다.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 역시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유대교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을 했는가 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들이 제사를 드리는 성전에 오지도 못하게 했고 그들과 마주치는 것까지도 부정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을 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찾아가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셨고 그들이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종교인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믿는 성도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십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이 주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일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되는 일을 아시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그 당할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라도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 제도를 보아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이미 번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 예언이지 실상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감성적으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영화로 또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종교적인 감성으로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고 있고 그런 것들은 다 상업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감성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공개를 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종교에 빠지게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에서는 그런 것을 조장하고 교인들에게 그런 것을 보게 함으로 해서 감성에 빠지게 하고 있고 그런 것이 종교를 더욱 더 샤머니즘으로 가게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이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고 있고 그것을 우상과 같이 보이는 교회에 상징으로 걸어 놓고 있고 교인들은 여러 가지 장식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면 가장 높은 곳에 이 십자가의 형상을 만들어서 세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교회 안에도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기구들에는 이 십자가가 형상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아세라입니다
구약의 아세라가 그렇게 이 시대 종교에 그대로 내려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만 아세라를 섬긴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교회도 역시 이세벨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세벨이 결국에는 아세라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인의 집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집에도 이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형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안다는 것으로 십자가의 형상을 그렇게 만들어서 걸어 놓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말을 그것도 빨간 색으로 써 놓은 것을 볼 때는 아주 섬뜩한 생각까지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알고 있지도 않으면서도 자랑스럽게 그것도 큰 글씨로 써 놓은 것을 보면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교인들입니다
보혈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찬송가를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찬송가를 부르지 않기 때문에 거의 잊어 버렸습니다. 예전에 종교에 있을 때에 그런 찬송가를 많이 불렀던 기억에 나고 마치 그런 찬송가를 부르면서 내가 그 피로 제 육체가 씻음을 받은 것과 같이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노래입니다
그런 노래를 집단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 의미도 모르고 그저 보혈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이 시대도 역시 보혈의 찬송가라는 것을 모아 놓고 그것만 듣는 것도 있을 정도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지에 가까운 종교인들이 그런 노래를 만들고 있고 그러면 종교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보혈입니다.
인류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보혈이라는 단어도 역시 종교에서 만들어낸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베드로전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하는 거듭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전서1장을 보면 알겠지만 사도 베드로 역시 우리 육체를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서 말을 하고 있는 신체를 깨끗케 하는 보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래입니다
저는 찬송가라는 말도 쓰기도 싫습니다. 무엇을 찬송합니까? 그런 노래들이 주님을 찬송하는 노래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종교에서 만들어서 종교의 집단 행사를 위해서 사용을 하고 있는 노래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과는 그리고 찬송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 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종교인들이 가장 오해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들이 죄를 진 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우리 육체가 깨끗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상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주님께서 흘려주신 피를 보혈의 피라고 하고 있고 그 피로 자기들이 씻음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얼마나 모순된 말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우리 육체가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절대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씀입니다
분명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죄입니다.
우리 육체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시작하면서부터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깨끗한 생명을 얻는 일을 상징적으로 우리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제자들에게 잔을 주시면서 이 잔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언약의 피라는 말씀입니다.
그 죄 사함입니다
우리 육체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상징적인 말씀이고 이렇게 주님께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거룩하신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는 일에서 죄 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가 무슨 피 인가 하면 종교에서 말을 하는 보혈의 피가 아니라 언약의 피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언약의 피의 결과가 죄 사함이고 그 죄 사함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피조물들을 위한 언약의 피 이기 때문에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셨습니다. 만약에 이 피를 흘려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죄 사함을 얻을 수 없고 죄 사함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이 되어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언을 하고 있고 또 여러 선지자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그 죄 사함의 결과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 되고 그 생명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나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히브리서10장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과입니다
온전케 되는 일의 결과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할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육체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종교에 의해서 이 일을 당하심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당할 일을 아신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를 하실 때 이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나타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할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온전케 되는 일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17장5절에서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있고 우리는 그 일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5:4절을 보겠습니다. (구 826쪽)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창조.
우리는 이 창조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가 되었습니다. 창조주와 창조가 된 것은 전혀 다릅니다. 창조가 된 것은 창조주가 만들어 낸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은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창조주가 계시를 해 주지 않으면 창조주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창조주는 그 세상 밖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우리 피조물로서는 창조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을 하시는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약에서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문명을 가지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창조를 말씀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게임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제가 이 시대 문명을 보고 창조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혀 새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게임을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저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교를 한다는 것은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 시대 문명을 가지고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츄얼리얼리티입니다.
그 안의 세상이라면 게임 속에 세상과 우리 우주가 버츄얼리얼리티라고 하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게임을 만드는 것은 그 한계가 분명히 있고 지적인 능력이 없고 컴퓨터를 작동을 했을 때만 게임 속에 모든 것이 실행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 제작자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물론 한 사람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일을 함으로 해서 지금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이 만들어 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회사들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단순한 창조입니다
그 제작사 측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알고 있는가 하면 그들은 만들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보아도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이 상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에 다 아시지 않는다면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보여 주실 수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그것을 느낄 수도 없고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한계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말씀으로 사도 베드로가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요한계시록까지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다 나타내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 나타내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성경 말씀은 세세토록 있고 우리는 그 말씀에서 들의 풀의 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언어적 표현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이제 세세토록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이 시대도 역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면 마치 들의 풀의 꽃과 같이 그렇게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의 성경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루시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샤머니즘에 빠져 하나님이 개입을 하시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믿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이제까지 요한복음을 강해를 하면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충분히 말씀을 했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 말씀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도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서 알고 있고 그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시작과 끝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실 수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피조물 입장에서는 그것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한계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문명이 발달을 해서 비유로서 말씀을 할 수 있어서 저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이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다. 우리가 신이라고 하지만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는 성경을 보고 있지만 가늠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고 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너희가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에 곧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도 우리 인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증거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우주를 본다고 해서 빛으로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피조물의 한계이기 때문에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풀리지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아무리 보아도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까지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고 믿음으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영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로 예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일을 하고 있고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의 철학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이방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아마도 이방의 종교에 주님께서 나타내셨다고 해도 역시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교리 때문에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찾는다는 것을 유대교를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찾느냐
주님께서는 17장에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제자들에게 아니 우리 성도들만이 아는 일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영생을 얻는 일을 모르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유대교를 대표로 하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 당할 일을 다 아십니다.
그분은 그것만 다 아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분이 아시는 것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시편에서 예언을 하고 있고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니까 주님의 육체의 생명을 죽이기 위해서 찾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시편의 예언과 같이 그들이 주님을 실제 십자가에서 죽이는 악을 행했지만 그 일로 오히려 우리 성도가 영생을 얻는 일이 되었고 종교가 낭패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종교를 대표로 하는 유대교는 주님의 육체의 생명을 찾기 위해서 군대와 하속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육체의 생명이 죽고 장사 되는 일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자기들의 뜻대로 인생의 철학에 따라 되었지만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심으로 해서 그들이 계획한 일이 낭패한 일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인생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시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분을 모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자기 철학으로 종교가 되어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찾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일이 유대교만의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유대교가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찾았고 이방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찾아서 죽였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증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종교인들이 어떻게 한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종교가 하는 일을 보여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 예언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next 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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