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요한복음 강해

112-2강, 갈3:25~26,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윤주만목사 2021. 12. 12. 23:51

갈라디아서3:25-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아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교회 안에 있는 나를 보고 아들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성도의 육신을 보고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것을 구분하지 않고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지 실상은 우리 인생은 그가 아무리 성령을 받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해도 그래서 그의 영이 거하신다 해도 육체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죽습니다. 

그리고 썩어 없어지면 사라지고 맙니다.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육신을 가지고 아들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저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율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을 보고 자기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고 자기가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다고 해서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그래서 나도 따라 부른다 해서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아들이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 성경은 안 보고 그저 감성에 젖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를 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 참 내 제자가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제 뒤에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이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으로 비춰주셔도 그 빛을 보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에서 누가 아들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음은 아는 것에서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무당이 하는 말을 듣고 믿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은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된 증거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몽학선생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선생 아래 있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선생입니다. 

24절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아는 것을 몽학선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태초의 생명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저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몽학 선생 아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해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온갖 행위를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도 모르는 그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 둘이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에 들어와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온 이후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교회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닙니다. 

믿지도 않는 그들이 어떻게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자기 행위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믿음이 온 후로는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내가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든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면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들이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들입니까? 

주님께서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가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있는 생명을 보고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들이 된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거한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체인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생명의 빛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태초의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야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그 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종입니다. 

그리고 아들입니다. 누구를 두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가르치실 때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이 누구고 아들이 누군가를 말씀을 하시면서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종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에게 좋은 것으로 성경을 보면서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보면서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담의 자손은 죽으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 인생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신학적으로도 그렇게 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해도 우리의 육체는 다 그렇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들입니까? 

주님께서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이 있는 자가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태초의 생명을 보고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체를 보고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그리고 그저 교회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아니 종교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소자는 거대한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자기가 아들이 된 줄로 알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면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넘어져서 영원히 거할 수 없는 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평생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육체로 알고 있습니까? 우리 육체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는데 알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인생의 이성은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어서 자기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고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신론자도 좋은 것으로 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종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아들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자기가 종인지 아들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종교에서 모두가 자기들이 아들이라고 하니까 소자는 자기도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을 따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썩어 없어지는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얻는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다수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종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다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치 마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에 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몽학선생 아래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 종교는 그 교리 자체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두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인가 아니면 교회 안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기초가 바로 그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로 행위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종입니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가 너무 많아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각이 없어서 아니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도 안 봅니다. 

솔직히 성경만 상고를 해도 자기들이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영생을 사모하고 있는 성도라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성령을 먼저 받아서 진리를 전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사야9장6절의 말씀을 알고 있고 그분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진리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들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아들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은 교리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교리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평생 어두움에 다니다가 결국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거대한 종교입니다. 

제가 감히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지켜온 교리 전체를 뒤집어 버리는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들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자기들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인 존재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시대 종교에서 배우고 있는 모든 교리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첫 번째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니까 종이 누군지 아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거대한 종교가 되어서 사람들을 마치 블랙홀과 같이 빨아들이고 있고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하고 지혜가 있다 해도 소자가 되어서 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나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종교에서 하고 있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열심이 너무 강해서 지금도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면서 교인 하나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열심입니다. 

자기 혼자서만 죽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들의 열심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만 들어가면 모두가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 하나를 데려오면 그들을 칭찬해 주고 있고 그것이 다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교인들을 거리로 내 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다 죄를 범함으로 해서 종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 역시 다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어두움에 다니고 있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죄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본성이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은 다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유대인들을 보아도 그렇고 이 시대 종교인들을 보아도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주님에게 넉넉히 꾸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또 율법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정해 놓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율법에 다 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니까 자유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해가 왔는데도 종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고 율법에 종은 도망을 가라고 정해 놓았는데도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도망을 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면 우리는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으면 이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서 우리가 자유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신 성도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루신 일을 알고 믿는 성도는 절대로 종의 멍에를 메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께서 자기들을 자유케 하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 안에서도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굳세게 서서 ~

믿음이 있는 성도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알았습니다. 그 아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쉽지 않고 굳세게 설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굳세게 설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유를 주셨는가를 갈라디아서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소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내 육체로 행위를 하는 모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 잘 믿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하는 내 육체의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소욕이라는 나쁜 의미의 단어의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에 빠져 있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초기 교회 안에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성경에서 알아 믿는 성도가 있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자유를 주셨습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자유를 하라고 해서 우리가 자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함으로 자유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합니다. 

어떻게 자유를 주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 의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믿음으로서 거룩함을 입으면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명확합니까? 

율법에서 자유를 주셨다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엇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까? 

율법에서 우리는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우리를 율법의 포로에서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분명히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거대한 종교는 그들의 교리로 만들어 놓고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소자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면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자유 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에서 자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자유하게 못하게 사람들을 자기들의 교리로 포승으로 묶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포승으로 묶을 필요도 없이 인생의 본성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게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기 스스로가 종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율법을 다 지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그 의를 꾸어 달라고 하면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을 정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을 누가복음에서는 은혜의 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이 되었으면 이제 종에서 벗어나라고 율법에 정해 놓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다시 우리를 잡아 종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 희년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망을 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망을 가도 다시 주인에게 돌리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니까 진리를 모르니까 주님께서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그러니까 다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해도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자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스스로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직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진리를 알 수 없고 자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이 오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진리를 알고 믿음이 있는 성도는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으려면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그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다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율법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합니까? 

주님이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물로 부자가 아니라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서 그 의가 부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부요하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율법을 다 지켜서 의를 얻을 수 없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의를 얻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심으로 우리 인생들이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신 율법의 의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을 진토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리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진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도 그것을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우리가 저주를 받을 자 처럼 말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가 우리 성도를 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우리를 보고 율법을 모르는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고 그렇게 행동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케 하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알고 믿음으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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