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8: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다수입니다.
그들은 늘 종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본성에 따라 성경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들의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이방인들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율법을 늘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체질이 진토입니다. 그 진토는 흙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진토는 정말 단단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고 어느 진토는 마치 비를 맞은 것과 같이 부서져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단단한 진토는 비를 맞아 부서져 버리고 있는 진토에게 압박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원수가 되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을 하게 되어 있고 비를 맞은 진토에게는 그것이 압박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참으로 연약하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강한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 연약한 자는 자기가 강해지고 싶어도 강해 질 수 없습니다. 또 한 번 비를 맞아서 일부가 부서져 버린 진토는 다시 스스로가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강한 자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왜 부서져 있느냐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 간음한 여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여자는 그 부분이 부서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 여자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면서 율법을 보고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돌로 쳐 죽이겠다고 하면서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강한 자를 찾아다니시지 않았습니다. 정말 비를 맞아 다 부셔져 버린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만나로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당신이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비에 바람에 부셔져 버린 인생도 있고 단단하게 강하게 살아가는 육체도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불쌍히 보이시겠습니까?
인생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모입니다. 그 중에 자식이 몇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부서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는 부서진 자식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고 심지어는 그 자식을 위해서 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인생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죽 하시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유대인입니다.
특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형체를 너무도 잘 보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진토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진토를 보고 비에 맞고 바람에 부서진 진토를 보면서 그들이 성경에 있는 율법을 문자로 보고 압박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압박을 당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죄를 지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그냥 일부러 진다고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비에 맞았기 때문에 바람에 부셔져 있기 때문에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비에 젖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서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죄를 짓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압박을 당하는 것은 이 세상에 이성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저 역시 그들이 압박을 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들이 죄를 짓고 압박을 당하고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압박당하고 있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에 있어서입니다.
우리가 얻는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해 주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러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로마서11:3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6쪽)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판단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판단할 것에 대해서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그런 기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정과 섭리는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언어로는 다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희미한 그림자만 보고 그것을 깨닫고 있고 성령이 진리로 인도하심에 따라 아주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라는 말씀이 더 가슴에 와 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11장도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어떻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강해에서 이미 한 번 들었지만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늘 느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한 귀를 주셨다고 함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왜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압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다윗은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밥상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고 있는 것을 저희 밥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해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상 대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와 비유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버림을 받은 것을 말씀을 하면서 우리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로 삼으셨습니다.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된 것은 그것을 보고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를 삼아 우리가 이스라엘과 같이 되지 않고 복음을 듣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마찬가지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모든 예표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신약 성경을 주셨지만 역시 유대인들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우리 인생들의 본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본성을 가진 인생들이지만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들의 본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우리가 영생에 있어서 본성을 거스리는 돌감람나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그런 우리를 찍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깊도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참으로 우리 인생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판단할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판단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압박당하는 자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약하게 지음을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에 제가 강했다면 저는 이 복음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 사람은 강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나 욥을 말씀할 때는 긍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강한 율법주의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를 해 주신 것은 긍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도 구원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형을 받은 강도도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이 욥과 같이 율법을 너무도 잘 지킨 사람도 긍휼을 주심으로 해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누구를 구원해 주시는가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없고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의 길은 찾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누가 영생을 받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꼭 압박당하는 자만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는 압박을 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방의 사도로 그를 세우셔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어찌되었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압박을 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판단할 것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판단을 쉽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판단입니다.
측령치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겨우 성경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경이라도 다 알면 그나마 주님의 은혜가 넘치고 있을 텐데 그렇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주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파를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성도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어 본성을 거스리는 참감람나무에 접붙혀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이 시대 우리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하셨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7:28절을 보겠습니다. (구 474쪽)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나를 보내신 이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동안에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됨으로 취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성도들을 또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생들을 지으셨는가 하면 바로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진토이기 때문에 아니 영이 아니기 때문에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셔서 당신의 마음대로 죽이시고 또 너무 엄격하게 율법을 정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율법을 지킬 수 없게 하시고 구원을 받는 것을 참으로 어렵게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 인생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없어도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스스로 영원히 계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죄를 짓게 하고 또 그런 우리 인생들에게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하게 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를 해서 지옥이라는 것을 자기들의 상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주님께서는 다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그래서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원을 받는 자가 교회 안에서만 바다 모래 가운데서 적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옥에 빠뜨려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세의 일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자기가 지옥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내세를 갔다 올 수도 없고 설령 보았다 해도 그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들이 네 증거는 참되지 않다고 말을 하자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어두움에 다니고 있는 인생들에게 생명의 빛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실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일에 있어서 참된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참되신 분이신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윗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볼 때는 인생 다윗과 그리고 그 예표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윗이 자기를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자기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네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비유로 해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그리고 나라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입니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고 다윗을 통해서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과 같은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그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나라입니다.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네 위가 그러니까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미 구약에서 모든 말씀을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이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그 말씀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영의 말씀을 다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성경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은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을 영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은 참되시다 고 하는 말씀도 그저 그 문자를 알고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니까 참되시다 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참 되십니까?
그것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저 막연하게 성경에 참되시다 고 기록이 되고 있으니까 참되다고 한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그 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성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성경에서 율법을 문자로 보고 그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행위를 잘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우리 인생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참되시다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도서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48쪽)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을 그대로 성경에 기록을 하면서 이 태초에 생명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3장에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가 주님 앞에 찾아와서 말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선생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역시 이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거하셔야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왜 지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안에 있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당신을 믿지 않는다 해서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그의 피조물입니다. 그것을 마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들을 지으시고 그들의 거의 전부를 지옥에 보내서 그들이 영원히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으셨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 이상하신 분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하찮은 인생의 부모라도 제 자식에게 그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영원히 고통을 주면서 살게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잔인합니다. 아마도 내 자식이 저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하면서 원망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 나를 낳으라고 했느냐고 따진다면 저는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장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것과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를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장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7장입니다. 세상의 행사가 악하다고 증거를 하시면서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의로 판단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율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세상에서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성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 합니까? 그에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없다면 어두움에 다니고 있었다면 그는 그저 이 세상에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 오신 목적이 바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문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를 아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도 극락을 말을 하고 있고 좋은 곳을 말을 하면서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생명의 빛은 그런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까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바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영생에 대한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이 무엇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고 증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27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서 말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는 평생을 교회 안에서 무익한 일만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영생을 얻었는가를 성경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거울을 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이 얼마나 영생을 얻는가를 알 수 있게 성경에 기록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도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그에게 들은 것을 세상에게 말하신다고 하지만 그에게 들은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 줄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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