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2:12-16절을 보면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 교회의 사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교회는 당시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교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마치 말세의 일로만 치부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환상은 환상으로 보아야지 그것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이 거의 다 환상으로 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실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환상이다 보니까 말씀을 바로 풀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환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요한계시록을 보고 이상한 말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종교 안에 있는 소자들에게 겁을 주기도 하고 종말론을 이야기를 하면서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자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것도 모르는 소자들은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할까봐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포로가 되어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사랑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계시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보다는 마치 진노를 하고 형벌을 주심으로 해서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도 않는 지옥에 대해서 자기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하면 소자들은 더욱 더 겁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우리 피조물들에게 진노를 하기 위해서 그 진노하시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기초로 두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일곱 교회를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면 우리에게 경계를 주고 있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는데 이 교회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환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의 사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특정한 사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환상을 통해서 어느 교회의 사자가 무엇이 진리에서 벗어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내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의 사자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교회의 사자가 잘못했다고 해서 그에게 진노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 마지막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환상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들을 귀를 가지고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환상들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으로 모든 성경을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입니다.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인자를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이생과 내세에서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그 말씀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 걸림이 되고 넘어짐이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일곱 교회입니다.
그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고 잘 믿지 못하는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에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바로 깨닫고 모든 지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교회와 어느 교회를 비교를 해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오시고 있는 때입니다. 그때에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임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는 이 말씀을 보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고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마음대로 풀어서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16장에서도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성경이 오시셔 세상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도 불행하게도 이 시대 어느 누구도 바로 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장에서 말씀을 하는 성령의 책망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진리에 가깝게 푼 사람은 제가 배운 신학교의 학장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그 근처 가까이 라도 가는 사람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 했습니다.
기초입니다.
그 기초의 말씀도 바로 풀지 못하면서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사상누각을 짓고 있는 것과 같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서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당입니다.
거의 무당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진리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샤머니즘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종교에서 절대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2절,“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환상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내세의 일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도 사람들은 실제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어느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하면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고 만왕의 왕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다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1장에서 주님을 환상으로 본 것을 지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환상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환상이고 사도 요한이 우리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 어느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환상은 마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로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우리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비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표현을 하는 것이지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은 볼 수도 없고 설령 본다고 해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환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요한복음입니다
그 시작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용이 되어야 하고 그 인용이 되는 말씀이 서로 일치가 되어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있는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성경이 서로 인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 그 자체입니다
말씀이라고 하니까 성경말씀의 문자를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 역시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는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서로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환상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이렇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일곱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깨닫고 회개할 부분이 있으면 해야 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좌우의 날선 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비유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에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해서는 안 되고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하신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깨달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3절,“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입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는 왕좌, 보좌 라는 헬라어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버가모 교회의 사자가 사는 곳이 어딘가 하면 사단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우리는 사단을 볼 수도 없고 사단의 왕좌가 있는 것을 볼 수도 없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다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지만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13:4절을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환상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문자를 보고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의 문자에 집착을 하고 있고 그 문자를 자기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풀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문자로 보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경을 문자로 본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거의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자로 보고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비유로 하셨다는 말씀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입니다.
요한계시록12장에서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을 하는 사단은 용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용입니다.
그 용이 무슨 일을 하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장에서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용은 사단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짐승은 무엇인가 하면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든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이 종교의 권세가 얼마나 강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종교의 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일이지만 영의 일로도 성경에서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모든 사람이 그 짐승에게 경배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입니다.
그가 어디에 있습니까? 종교에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령을 받은 사람도 이 말씀과 같이 종교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신학교를 졸업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에 이제 그 종교에서 나왔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진리를 전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이 종교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종교가 이렇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 안에 있는 자기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13장의 말씀과 같이 그에게 경배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배하다, 예배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의 교리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실상은 그러한 행위들이 다 무엇인가 하면 짐승에게 경배를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인생들은 종교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이미 이방의 종교가 생기기 전부터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고 이 말씀 그대로 종교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14:25절을 보면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히브리서12:1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
성경에서 단 한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이 안디바라는 인물은 환상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실제라고 하기보다는 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보고 경계로 삼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진실한 증인.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안디바는 잠언의 말씀을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안디바라는 사람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성령을 받았으니까 당연히 거듭난 자가 되었고 그렇기에 그는 충성된 증인으로서 생명을 구원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의 실상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할 것인가를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 이스라엘이 종교가 되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이방의 종교 역시 자기들의 교리에 반하는 말씀을 전하면 종교 재판을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안디바.
늘 말씀을 하지만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디바라는 특정 이름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실제 이방의 종교에서 자기들이 정한 교리에 반하는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사단의 회입니다.
종교를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에서 종교 재판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를 전승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은 그들이 누군가 하면 충성된 증인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났고 그 생명을 전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의 교리입니다.
그들은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는 것을 거듭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증입니다.
이 사람의 생명을 구원합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종교 재판을 해서 자기들의 이성적 교리와 다르다고 하면서 도리어 이단이라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였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방의 종교는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대표성을 갖는 인물로 안디바를 말씀을 하고 있고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오직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장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다 말씀을 하고 난 후에 히브리서12장 1절에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선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증인들이 이방의 종교 안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고 실제 이방의 종교가 탄생이 되고 난 후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들이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종교는 너무도 큰 이질감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고 그 종교 안에서 악한 일만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소가 푸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가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종교는 그렇게 성도들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이 짐승에게 경배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2:21절을 보면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성경말씀이 무색해 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있어야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도 베드로의 말씀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해당 사항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의의 도를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거룩한 명령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도 없어서 이런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는 것도 무색하기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누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저를 욕해도 좋고 비난을 해도 좋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를 못 했습니다. 믿어야 믿음을 저버리고 말 것이 있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말씀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14절,“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일곱 교회는 지금의 종교와 같이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곱 교회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종교는 짐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깨닫지 못할지라도 저는 성경대로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발람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보고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재물이 욕심이 나서 결국에는 발락에게로 가고 나귀의 입을 열어서 발람을 책망하시지만 발람은 발락이 준비한 재물을 다 가지고 옴으로 해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발람이 재물을 가져오면서 발락에게 모압의 여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로 행음을 하게 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게 했습니다.
비유입니다
여자는 교회를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의 집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행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어 따라하게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시면서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중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들은 거의 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고 그것이 교회와 행음을 하는 행위가 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우상의 제물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행음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이 없습니다.
환상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진리를 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진리를 따라 행하지도 않으면서 종교가 되어 우상의 재물만 먹으면서 교회와 행음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라는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 교회에서 행한 일이 지금 이 시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비유의 말씀의 의미를 모르니까 그저 우상의 제물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행음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은 그런 것을 안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5절,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실제 있는 일곱 교회가 아니라 일곱 교회를 비유로 해서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교회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럴지라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당.
사실 니골라당이라는 것은 특별히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니골라라는 이름의 뜻을 통해서 니골라당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는 헬라어의 뜻으로 백성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다 한 형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선생은 하나시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골라라는 이름은 그 뜻이 백성의 지배자이고 교회 안에서 지배자로 있고 그런 당을 그러니까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로 니골라당을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종교입니다. 그 형태를 보시기 바랍니다. 니골라의 뜻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인들의 형제라고 하기 보다는 지배자로서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굳이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이 시대 종교나 교회를 보면 그렇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그들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이 지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지배를 하게 되면 그들이 하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그 교회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여지게 되어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 의해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먹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16절,“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회개하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브올의 아들 발람이 발락에게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면서 어느 누가 지배자로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굴복이 되어서 교회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도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개를 하고 싶어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습니다.
그리고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행음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렇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까지 말씀을 하는데 모르고 있다면 그가 어떻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6:17절을 보면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내 입의 검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 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도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검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종교가 되어서 충성된 증인 인디바를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17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복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시는 이 환상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추었던 만나입니다.
저 역시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흰돌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역시 모르겠고 그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말씀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새 이름입니다.
저 역시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사단의 회가 어디인지를 그리고 우상의 제물도 먹지 않고 행음도 하지 않고 니골라당의 행위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next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강,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0) | 2021.06.23 |
---|---|
05강,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1) | 2021.06.23 |
04강,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1) | 2021.06.23 |
02강,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0) | 2021.06.23 |
01강,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0) | 2021.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