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02강,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윤주만목사 2021. 6. 23. 19:22

요한계시록2:8-11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환상입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실제 이런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환상을 통해서 사도 요한에게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시고 있고 실제 교회들이 이 일곱 교회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입니다

종교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지금의 기독교나 천주교가 진리를 전하고 있었다면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기독교나 천주교나 기타 다른 종파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죄송하지만 아니 저를 비난해도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요한계시록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일곱 교회를 환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성경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 외에서 주장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이 시대 삼위일체라 해도 그렇고 부활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는 문제라 해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고 지키는 성탄절이라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있습니까?

저는 받아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교가 거대해지다보니까 그 종교에서 하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할 바에는 저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를 하고 말겠습니다. 아니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는 그런 것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원어입니까?

그리고 번역이 되는 과정이 있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번역에 잘못 되었다면 그것 역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되지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못 번역하게 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을 내가 믿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헛것이고 종교일 뿐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막연한 것을 말씀을 하면서 믿으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믿어서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저는 이 세상을 더 이상 살 가치도 없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가 하면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너무 막연하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때는 이렇게 말을 하고 저때는 저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아니 듣기에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그 심리를 아주 잘 이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대해서 말씀을 하지 않고 있고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유대교를 말씀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타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종교를 비유적으로 음녀로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교회는 우리가 보는 그런 유형의 교회가 아니라 무형의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교회를 말씀할 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 등으로 그 지역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보이는 건물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는 어느 건물을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이 시대는 자기들이 건물을 지어 놓고서 그것을 교회라고 하고 있고 그 교회에 심지어는 이름까지 붙여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5:32절을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가 무엇인가를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그리고 교회를 그의 아내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이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대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자기들이 건물로 짓고 그 이름까지 지어서 붙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나 어머니라고 데리고 와서 그 어머니의 이름까지 붙이고 부르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이 세상에 어느 나라와 종교도 자기 어머니를 그렇게 하는 곳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창조주시고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내를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비유로 해서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있습니다.

사라를 어떻게 불렀겠습니까? 당연히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라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니 사라라고 하는 것 까지는 그래도 이름이니까 인정을 할 수 있지만 이삭이 자기가 좋은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라도 아닙니다.

자기가 이름까지 만들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순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듣든지 안 듣든지 해야 할 말씀이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은 듣지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그러한 일이 무슨 짓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를 말씀을 하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는 이성적으로도 참 무지한 자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니도 자기가 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도 자기가 지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면 참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무지한 것입니까?

아니면 용감한 것입니까? 저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아들이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렇게 하고 있고 오히려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입니다.

잠언에서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녀 역시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지어서 부르기도 하고 그 부녀와 간음까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일입니까?

세상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저는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해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육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인생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진리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해서 이런 기초조차도 되어 있지 않는 그들이 무슨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21:6-7절을 보면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서머나 교회입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굳이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이요 나중입니다.

요한계시록21장은 이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에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말씀하면서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이 누구신가 하면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 종교는 그분을 어떻게 믿습니까? 성경에도 없는 성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삼위일체의 한 위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입니까? 성경 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의 한 위의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그냥 남들이 믿으라고 하니까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 근거를 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저 남들이 믿으라고 해서 믿고 있고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믿는다면 무당이 하는 말을 믿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없는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없는 것을 어떻게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감동을 받습니까?

무당이 자기가 모시는 신이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감동으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감동이라는 단어를 제가 성경에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고 이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감동 받습니까?

그러면 성경은 왜 봅니까? 아니 또 감동을 주실 것 같으면 우리에게 왜 성경을 주십니까? 그냥 편하게 감동을 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되지 이 두꺼운 성경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이제 다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성경이 다 기록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마지막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이것들 외에 더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삼위일체를 더해서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감동이라는 고상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다 기록이 되어 있는데 또 감동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만들었습니까?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아타나시우스라는 사람이 제안을 해서 그때 모인 교부들이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수에 의해서 그렇게 하자고 만든 것입니다. 그들이 선지자입니까? 선지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것들 외에 더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더하게 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니케아 공회입니다. 325년입니다. 그때는 아직 신약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이 되지도 않은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후에 397년에 일단 정경으로 채택이 되었는데 그것도 서로 주장들이 달라서 그냥 임시로 정해져 있다가 1400년대에 지금의 성경으로 인쇄가 되었습니다.

 

무당 짓입니다.

아직 성경도 다 채택을 하지 못한 때에 자기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삼위일체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미 다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도 보지도 않고 아니 일부의 성경만 보고 당시 헬라 사상에 빠져 있던 교부들이 만든 것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믿고 싶습니까?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고 있는 삼위일체라는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까?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해도 종교에 있는 사람들은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교리의 포승으로 묶여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이 되지도 않은 때에 공회에서 건의를 해서 당시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인간 예수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다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성경을 보면 되지 않습니까?

 

성경을 왜 봅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이 되지 않은 때에 교부들에 의해서 공회가 개최가 되고 그때 제안이 된 삼위일체를 믿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러나 종교는 안타깝게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삼위일체의 교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요한계시록 21장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만 보아도 그리고 요한계시록2218절의 말씀만 보아도 삼위일체라는 것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삼위일체의 모순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수많은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 외에 더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이 되기 전에 당시 종교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교부들이 모여서 이 결정을 했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내가 믿는 신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신입니다.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십계명의 제 일계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저주를 받는다 해도 저는 삼위일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차라리 무당 집에 가서 무당이 하는 말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낫지 무슨 근거로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들은 이 교리 하나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고사하고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여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은 다 기록이 되었지만 아직 지금과 같이 편집이 되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수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평생에 성경 한번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이 그냥 기록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창조주시고 처음과 나중까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시고 있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아닙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아들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 세상에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자가 어디 있습니까?

성부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들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제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는 인생들이 만든 신입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믿으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서머나 교회의 사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실제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들이 어떻게 될 것을 아시고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고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 경계를 삼아야 합니다. 그냥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서 영의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네 환난과 궁핍입니다.

우리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저 문자를 아는 것에 그치고 있고 영적인 의미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20절을 보면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신명기15:8절을 보면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성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 안에 그의 생명이 거하시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어느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비유의 말씀으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모세의 율법에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인생들이 모세의 율법을 보고 자기가 지키겠다고 하면서 의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 부자는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래서 한 부자와 같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모세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일을 알고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인생 자체가 율법주의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환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가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환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결의를 하고 죽이려고 하고 결국에는 소동이 나서 로마의 법정에 서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당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가 없으니까 거지 나사로가 됩니다. 그래서 궁핍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다 가난한 자이고 궁핍하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그것이 무엇으로 가난한지를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상입니다.

우리 가난한 성도의 실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부자이신 주님에게로 가서 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에 정해진 대로 주님께서는 그 손을 우리에게 펴서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의를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넉넉한 의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율법을 지키셔야 합니다. 주님은 부자이시기 때문에 그 손을 우리에게 펴서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대로 하면 실상은 우리는 부요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8: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유대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 유대인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도들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도들이 육체적으로는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될 때 유대인들 중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실상은 거짓 형제라는 것을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이 가만히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왔다는 것은 정말 이제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지 아니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라는 율법이라든지 어느 한 가지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온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칭 유대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와 같이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게 함으로 해서 종교가 되어 있는 사단의 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회입니다.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장에서 보면 짐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이렇게 교회는 종교의 도전을 받게 되고 그들로부터 훼방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고난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고난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종교에 의해서 그리고 세상에 의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옥입니다.

물론 헬라어의 뜻은 감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실제 옥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옥에 갇히는 것과 같이 마귀로부터 고난을 당한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영의 싸움을 옥에 던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진짜 옥에 갇히는 것과 같이 내 마음 안에서 심한 갈등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 동안입니다.

사람의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 전체를 비유적으로 십일 동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늘 이 세상의 이성과 진리와의 싸움으로 고난을 받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17절을 보면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사단입니다.

그는 종교를 만들어서 권세를 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는 성경을 문자로 보게 하고 있고 또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평생을 그렇게 산다는 것은 보통의 충성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므나의 비유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우리 성도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죽도록 충성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종교와 표현의 자유가 있어서 그렇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종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종교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가 이 모든 것을 지킨 것으로 단정을 지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이라는 부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앞에 있는 조건을 이루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지 마치 서머나 교회의 사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것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앞에 있는 조건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쉽게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머나 교회의 사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그렇게 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깨닫고 우리 성도는 가난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꾸어 부요한 자가 되어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이 면류관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받을 수 있는가 하면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난한 자로 살아감으로 해서 유대인들로부터 그리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죽도록 충성해서 므나의 비유와 같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되어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은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말씀이고, 그 해를 받지 않는 성도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가 되라고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진리를 바로 깨달아 믿음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하나님나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