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강, 요한복음 3: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믿는 자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주님께서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왜 심판을 받지 않는가 하면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는 날에 그 생명이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자 믿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또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모릅니까?
아니 거듭나는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이 있는 자를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내가 이 생명에 대해서 몰랐다면 정말 성경을 깊이 상고를 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생명도 모르면서도 천국에 간다고 하면 그는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면 바로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저가 한 일을 그러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그의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거듭나는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생명이 믿어지지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리 주여 주여 하고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하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해서 이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기에게 생명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생명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리는 그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영이 처음부터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면서 장사를 지내고 나서 주님을 좇겠다고 하자 주님께서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생명이 없는 자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든 이방에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든 거듭나는 생명이 없는 자는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생명이 없으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어야 거듭날 수 있는데 이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이고 그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는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도 거듭나는 것을 믿지 않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거듭날 수 없고 그렇게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에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입니다
그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우리 인생은 벌써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육으로 난 것은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까?
우리 인생은 벌써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벌써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인생을 보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벌써 심판을 받아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하시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이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있는 자는 영생을 얻음으로 해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에 대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이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육으로 난 생명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영생을 함으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모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은 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거듭나지 않으면 영의 생명이 없으면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남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어야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 일을 알고 믿어야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구원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기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예정을 하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예정이 되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저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자기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를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없는 자는 거듭나지 않은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벌써 심판을 받는 정죄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심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정죄는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주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도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빛입니까?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사람들에게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구속의 일이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주님께서는 이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구속의 일이 다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빛을 보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고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빛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는 아니 이 우주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생명만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을 어디서 봅니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요한복음1장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 빛은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볼 수 있고 그 빛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거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해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우리가 빛을 보고 있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서 우리가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빛을 못 보고 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에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셨는데 그 빛을 성경에서 보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빛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고 그럼으로 해서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을 못 보는 사람은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보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모두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빛을 못 보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모르고 그는 빛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할 수 있고 그 영은 주님과 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의 영이 율법을 다 지킨 영이 거하는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빛을 보고 있는 성도는 주님을 보고 있고 주님께서 하신 일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모르는 사람은 이 일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누군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한다 해도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소경이 되어서 더 이상 그 빛을 볼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6:5절을 보겠습니다. (구 8쪽)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알아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서 그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성경에서 이 빛을 못 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이 빛에 거하게 되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게 됨으로 해서 그가 구원을 받아 영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그 구원은 육으로 난 것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주님께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분명히 정의를 내려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세상 적으로 학문을 깊이 연구를 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부터 신학을 공부를 하고 성경을 연구를 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 빛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세상의 학문적으로 깊은 사람이라고 해도 성경을 깊이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성경이 보이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 이제까지 기독교 사를 통해서 그 많은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성경 자체를 모릅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본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자기들이 신학교에서 배운 교리가 우선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성경입니다
신학서적 중에서 아무리 좋은 책이 있다 해도 성경보다 권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조금만 공부를 해도 성경의 권위를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시대 한글개역성경을 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신 사람들이 이 성경을 번역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은 빛에 대해서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빛을 보고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아마도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방언의 은사를 무시를 하고 또 성경의 번역에 대해서 의심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성경에서 빛에 대해서 볼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이 빛을 보고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 우리도 역시 이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저 역시도 주님이 말씀을 하신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경을 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저 역시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입니다 그때는 아담의 계보를 따라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때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우리는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저 역시도 이 사람은 그렇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고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으면 설령 내가 구원을 받아 내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 해도 내 겉 사람은 그렇다는 것을 성경말씀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그랬어도 자기들의 마음의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했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믿지는 못해도 그래도 노아 시대에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그림자와 예표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그렇게 했으면 이 시대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다 모래 같이 많이 있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역시 죄악이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주님의 말씀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말씀과 주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하나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도 틀리지가 않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우리가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노아 시대에 사람들에게 대한 말씀을 보고 그들이 그랬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주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셔도 그것 역시 이스라엘의 문제로만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사람들의 행위는 항상 악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악하지 않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악하지 않습니까? 내 마음의 생각은 악하지 않습니까? 내 행위는 악하지 않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행위는 다 악합니다. 설령 내가 구원을 받아 내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 해도 내 행위는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아니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래서 내 행위는 악하지 않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 중에는 나 역시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저 역시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을지라도 겉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행위는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 빛이 무엇인가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빛도 모르고 있고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7:19-2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우리 인생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노아 시대에 있던 사람들의 생각만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만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이 악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님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설령 들었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밖에 말씀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7장 강해를 할 때 이 악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그렇게까지 말씀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까?
그가 누구입니까? 이방의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는 살아 있는 순간까지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그런데 로마서에서 그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 사도 바울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속에 죄가 있고 그 죄가 악을 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헛것과 그림자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헛것과 그림자라는 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이 하고 있는 행위 그러니까 우리 육으로 난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다 헛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삽니까?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하나님을 믿었고 정말 진심으로 그들도 역시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의 행위가 다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에 대해서 기본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악한가 하면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육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단 한 가지 그것을 부탁하셨기 때문에 긍휼을 입은 우리 성도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선을 행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나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정말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 속에는 내가 원치 아니하는 죄가 있기 때문에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헛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헛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를 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양이라도 버리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데살로니가 있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마치 악을 행하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는 것은 로마서를 통해서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행하는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분명히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자기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서 살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로마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그가 인생의 이성으로는 실제 악을 행했다고 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이 악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과 같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그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하신 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악만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빛에 비췸을 받고 있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이 있습니까?
한 모양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의 행위가 바로 어두움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3:12-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8쪽)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기초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초가 되는 말씀이 흔들리지 않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기초의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성경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빛을 사랑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만 명이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도 모르면서 그저 다수를 따라 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성경이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성도들에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겉 사람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겉 사람이 행하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악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자기 행위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치 않습니까?
누가 악을 행치 않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악을 누가 행치 아니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바다 모래 같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다모래 같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은 자가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사람들이 남은 자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이 남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인구가 75억 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약 20억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75억 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20억 명을 남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75억 명 중에서 20억 명을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언어의 문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이것은 남은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의 4분의1입니다 그것을 보고 바다모래 같이 많은 중에서 남은 자라고 한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사용을 해서는 안 되는 문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 뜻대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모래입니다.
우리가 셀 수 없는 숫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남은 자라고 하면 그 남은 자가 얼마나 적은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억 명이라고 하면 그 중에 한 천명 정도 되면 남은 자라고 해도 될 수 있습니다. 만 명 만 되도 사실 바다모래 같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고 하는 것도 문법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남은 자만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악을 행치 아니하는 자가 빛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을 사랑을 하는 자를 주님께서 거듭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을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남은 자입니까?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남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남겨 두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는 곤고하고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자입니다
누가 곤고한 자입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선과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육신을 보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를 곤고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곤고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아니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있는 성도만이 자기가 얼마나 곤고한 자라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이 듭니다.
영생에 대해서 보니까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곤고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곤고한 자를 남겨 두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곤고한 자가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주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면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입니다 율법의 의가 없는 자를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게 되면 그는 가난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곤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악을 행치 아니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에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을 모르니까 그것을 버릴 수 없고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빛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어두움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은 어두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와 지식은 다 어두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2쪽)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고린도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사람의 행위가 악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많은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씀을 보고도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인생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곤고한 자와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곤고한 자와 가난한 자를 비유로 해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다 의가 되고 있습니다. 의가 되는 것은 재물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돈과 재물을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내 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혹 이를 미워하고 혹 저를 사랑하거니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내 의가 됩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의를 행하는 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의입니다
하나는 내 의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내 의가 나타나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재물이 없어서 가난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까?
내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믿음에서 떠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행위를 하면 그것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재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부 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수많은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겸하여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하신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사랑합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그들은 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있는 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를 악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선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껏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주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돈이 아닙니다.
사람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의가 되고 있고 그것이 마치 재물과 같이 돈과 같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그 행위를 보고 자기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부자가 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까?
돈을 사랑합니까? 교회 안에서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다 믿음에서 떠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악을 행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구원과는 얼마나 반대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빛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입니다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이 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부자를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을 개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가 되는 모든 행위가 다 악하다고 주님께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인간의 이성에 따라 좋은 행위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람들은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행위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의인으로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거룩한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 영이 거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부탁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세상이 화목하게 되는 말씀을 부탁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우리의 의가 되고 있고 돈을 사랑하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믿음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말고 가난한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다 의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런 사람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누룩이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 그리고 지키고 있는 율법이 다 악하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악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악한지를 모르는가 하면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지키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것을 보고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으면 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괴악합니다.
그리고 악독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기독교라고 하는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교회는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저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못 보았습니다. 그들은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누룩 없는 떡으로 먹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을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이방인들은 그들이 지키는 제사법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제사법 중에서도 자기들이 지키고 싶은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법은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이라고 명하는 것도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만 지키고 있습니까?
새로운 율법을 만들어서 또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속해 있는 순간에 그들이 만든 교회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회 법, 총회법이 있고 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주의 만찬을 성찬식으로 그리고 물세례를 율법으로 만들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어느 사람들의 행위가 악한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행위가 악한지도 모르고 있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그들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19절 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에베소서 5: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생명을 얻으려면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행위를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진리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우리에게 비취는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보다는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빛이 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어두움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는 다 어두움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내가 빛을 사랑하는 가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둘을 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을 사랑하는 자는 어두움에 있지 않고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는 빛을 믿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 둘을 다 사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면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시는 분입니까? 주님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거듭나는 생명인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신 일을 믿음으로 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사람들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빛을 못 보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을 빛으로 보고 있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온 청년입니다
그가 영생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십계명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청년은 자기가 지킨 십계명을 자기의 의로 가지고 있으면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물을 버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제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지만 이 청년은 도리어 부자라서 근심을 하며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재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근심을 하면서 주님을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움을 더 사랑합니까?
그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둘을 다 함께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둘을 두 남편으로 비유로 해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을 다 사랑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음행을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음행을 하는 자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는 자가 되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입니다
그는 어두움에 있는 자입니다 열매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열매가 그에게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약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이 빛에 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사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빛을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4:19절을 보겠습니다. (구 915쪽)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물론 지금 계속해서 니고데모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 개인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두움에 있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깨닫지를 못 합니까?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가 하면 사람들의 행위가 악한데 그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은 거쳐 넘어져도 자기가 왜 넘어졌는가를 깨닫지 못해서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는 악을 행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죽을 때까지 악만 행하면서도 천국에 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가 주님이 오실 때 버림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악을 행한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거쳐 넘어져도 구원에서 떨어져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율법주의에 빠져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갔고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주의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빛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모든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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