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강, 요한복음3: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밤에 찾아와서 만나서 주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그는 진리를 쫓아 빛으로 와서 거듭나는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의 생각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믿고 그저 성경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니고데모는 처음 주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선생이었고 성경을 많이 보았지만 주님의 말씀은 그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구약에서는 거의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생명이라고만 말씀을 하고 있지 그 생명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구약 성경을 보고는 알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우리는 이제 신약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주님을 만나기 전에 니고데모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목사들이 그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사실 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영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영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썩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생명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거듭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음으로 해서 물과 성경으로 날 수 있는데 진리를 좇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보면 진리를 전하는 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진리를 좇지 않으니까 빛으로 올 수 없고 빛으로 오지 않으니까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거듭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말씀을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진리를 좇아 빛으로 와서 물과 성령으로 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은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빛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서 우리가 영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내세의 일, 영의 생명에 대한 일을 우리 인생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진리를 좇아 빛으로 옴으로 해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일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셔서 죽을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정말 놀라운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샤머니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그런 생명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듭남입니다.
이 설교를 마치면서 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얼마나 헛된 것을 구하고 있는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그 종교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입니다
그들의 교리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리가 우선인 사람들입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들의 교리에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아주 굵은 포승으로 묶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전하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이성으로도 알 수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 일이 있는가 하면 진리를 좇아 빛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이 후입니다
니고데모를 만나신 후입니다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제자들과 유하시면서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례는 4장2절에서 주님이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친히 세례를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이 시대 문제가 참으로 많은 말씀입니다 이 세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도 아니고 또 당시 제자들이 세례를 준 것은 앞으로 있을 성령 세례에 대한 예표라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 역시 사람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는 절대로 성경을 일관성 있게 풀 수 없고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행위를 하게 됨으로 해서 우리가 빛의 자녀처럼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위입니다
우리는 늘 이 행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아니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하다는 것을 그리고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주님이 하셨다 해도 내가 하는 행위는 그렇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 악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기초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를 선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의 이성을 따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도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참 빛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을 수 있게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영생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를 보고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5:28절을 보겠습니다. (신 214쪽)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15장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 까닭에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사도들과 이 율법의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난 후에 결론적으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그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형제가 와서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게 하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율법을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있는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문자를 본다면 빌립과 나다나엘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그 이를 그리고 여러 선지가가 성경에 기록한 그 이를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봅니다.
우리는 반드시 빌립과 나다나엘이 율법을 본 것과 같이 성경을 보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성경을 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도 성경을 그렇게 안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기독교인들 역시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15장을 우리가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파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리가 사도행전 15장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바리새파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입니다
성경을 보이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이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기 때문에 이 율법의 문제를 가지고 사도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왔습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인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의 제자들도 역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나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성경은 계속해서 문자적으로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세례라고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 모든 기독교인들이 세례를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제가 이 세례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이 세례를 주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는 행위라고 하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사도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다고 사도들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짐입니다.
그 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의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가한 줄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례에 대한 결론은 그러니까 물로 세례를 주는 우리의 행위로 나타나는 세례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그 결론을 내려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까?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 옳다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문장을 이해하는 지식이 있다면 당연히 이 말씀은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 옳다는 말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세례를 주지 말라는 뜻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 요한이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준 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아니 자기 스스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전까지는 세례를 주었지만 이제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을 옳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입니다.
세례 역시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삼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은 물로 주는 우리가 하는 행위로 하는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왜 이 성경이 안 보이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목사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교리에서 세례에 대해서 배우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장을 아무리 보아도 그 교리에 가려서 소경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세례를 안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성경이 보이지도 않고 있고 기독교의 교리를 배운 그들이 물로 세례를 주는 행위를 교회 안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빌립입니다
그도 성령을 받은 후에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성령을 받은 후에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을 통해서 세례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이방에 보내셨습니다. 물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복음은 안 전하고 물세례를 주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인 하나가 들어옵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그들이 물과 성령으로 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물세례를 주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물세례를 주고 난 후에는 그것이 포승이 되어서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어두움의 일이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에 비췸을 받아 생명을 얻은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3: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왜 세례를 주었는가는 이미 요한복음 1장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31절에서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게 하려고 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제 사역을 시작을 하셨는데 세례 요한이 아직까지 세례를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서마다 약간씩은 다르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세례 요한도 알게 되지만 요한복음을 보면 주님이 오시고 사역을 하시는 과정에서도 세례 요한은 주님을 완전히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다른 제자들과는 조금 다르게 성경이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요한복음 3장의 상황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입니다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렇게 성경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누가 맞다 틀린 다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다보니까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도 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님 앞에 와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세례를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주는 일을 그가 옥에 갇히기 전까지 계속해서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물들이 많음이라
장로교에서는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례교나 오순절 계통에서는 침례를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침례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 한글개역성경을 번역을 한 사람들이 세례로 번역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도 물이 많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이 많더라는 이 말씀에는 침례를 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문자적으로 직역을 하면 침례라는 단어가 맞는 것으로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교에서 보는 성경에서는 다 침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가 맞느냐 침례가 맞느냐를 논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그것은 1장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침례도 맞지 않고 세례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세례 요한과 주님이 제자들이 침례를 주었다고 해도 그것 역시 사람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침례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한글개역성경은 세례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까? 만약에 육체적으로 진짜 우리가 세례나 침례를 해야 한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는 침례를 행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한글개역성경은 세례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침례라고 하는 것보다는 침례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성령세례가 더 맞기 때문에 저는 세례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로 진짜 세례를 받아야 한다면 침례가 맞지만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 것은 성령세례이기 때문에 세례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물들이 많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은 당시 분명히 침례를 주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침례가 맞습니까?
세례가 맞습니까? 그것을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침례를 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우리가 받을 성령세례를 예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아는 것으로 한다면 굳이 침례로 번역이 되는 것보다는 세례로 번역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고 그 영이 영원한 생명이며 주님이 오실 때 그 영이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 성도의 영의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논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장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세례냐 침례냐 하는 것은 어리석은 논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그런 의식이나 행위를 잘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보고 앎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3:24-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왜 물이 많은 곳에서 세례를 주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준 세례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는 물들이 많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침례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한다고 하면서 이 시대 일부 교단에서는 침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례를 받은 것으로 자기들이 더 나은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성경대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아무리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한다 해서 성경대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위입니다 그것으로는 어느 것을 한다 해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도리어 그런 종교적인 의식이 악한 행위가 된다는 것을 성경을 보고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문자를 보고 기독교라는 종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반드시 세례를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그것 역시 우리의 행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세례도 행위라고 하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반대를 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라는 것은 우리가 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주님이 부활승천 하시고 난 후에 사도 요한이 쓴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세례 요한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다 알고 기록한 성경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서 옥에 갇히게 되고 결국에는 그 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사도 요한이 성경에 기록한 것과 같이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님 앞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헤롯에 의해서 목이 잘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은 정말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그 일을 충분히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결례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몇 번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전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미 2장에서 사도 요한이 한번 사용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가나 혼인에 유대인의 결례에 따르는 돌 항아리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거기서 이미 이 결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더불어서 결례에 대해서 변론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결례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에 어떻게 해야 결례를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요한복음 2장에서 혼인에 온 사람들이 돌 항아리에 든 물로 결례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복음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 바리새인이 식사를 청해서 그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실 때 주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왜 당신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그러니까 손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음식을 먹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례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의미는 맞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식 자체를 볼 때는 씻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세례 요한이 주고 있는 세례가 마치 정결 의식과 같이 보여 졌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서 결례에 대해서 변론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장로의 유전을 따라 손을 씻고 먹을 때 씻는 행위를 하는데 세례 요한은 몸 전체를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고 씻는 것으로 보고 이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결례가 맞느냐고 변론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무엇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유전을 지켰고 그것은 자기들이 먹는 것이 깨끗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외식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2: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45쪽)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결례에 대해서 변론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이 변론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그것으로 깨끗하게 될 수 있느냐고 하는 변론이 유대인과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행위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우리의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를 하면서 믿음이라는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행위를 가지고 지금 서로 변론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입니다
물론 깨끗하게 하는 의식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결례에 대해서 논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정말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세례를 합니까?
세례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논쟁을 하는 것 자체도 사도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도 행위입니다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변론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이 알고 있는 결례와 세례 요한이 주고 있는 세례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왜 변론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세례 역시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행위를 왜 합니까?
제가 세례 요한이 주고 있는 세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세례를 베풀면서 그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판단하고자 하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를 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세례 요한은 그림자로서 했다 해도 그것을 사도 요한은 분명히 행위이기 때문에 유대인과 결례에 대해서 변론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이렇게 변론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변론입니다
행위에 대한 변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으로 변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이런 행위를 가지고 수많은 변론을 해 왔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들의 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들은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종교가 되어 있는 기독교로 와서는 어떻게 변했는가 하면 침례가 맞는 가 세례가 맞는가를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변론을 했고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어느 교단은 세례를 주고 있고 어느 교단은 침례를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의 변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이러한 변론이 얼마나 쓸모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런 변론을 하고 있고 그 변론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시대는 신학에서 교리서를 배우고 있고 그 교리서가 사람들을 포승으로 묶어서 사망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천번제라는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변론은 아직 끝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이 다 이렇게 변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일입니다
우리는 영의 일을 성경에서 알고 믿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행위를 가지고 변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들 모두가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을 보고 변론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 해도 그것은 선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아무리 그것이 옳게 생각이 된다 해도 역시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변론을 할 가치도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왜 이 말씀을 기록했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나 유대인이나 다 영의 일을 모르고 쓸데없는 일로 변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로 변론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변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례 요한이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앞에서 유대인과 변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례를 세례 요한만이 주었는데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니까 사람들이 다 그리고 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왜 그가 세례를 주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유대인과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하고 나서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요한의 세례입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세례를 준 것은 주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성령 세례를 예표하는 세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우리는 이 물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세례 요한이 와서 이 물세례를 주었는가 하면 죄 사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예표로서 물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받는 물세례를 회개의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고 있는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회개의 세례입니다
이 회개의 세례를 주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 역시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를 세례를 베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세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침으로 해서 그러니까 그가 성령 세례에 대한 예표로서 물세례를 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이 이 물세례를 주는 것을 그냥 용납을 하시고 있습니다. 용납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이 세례를 준 사람보다 더 많았다고 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표입니다
그 예표의 세례를 주님의 제자들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1장에서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을 때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지금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해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과 같이 우리도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어떻게 일으키셨는가 하면 영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영으로 살리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역사를 하고 있고 그것이 성령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 성령 세례를 주실 분입니다
누가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었다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성령 세례는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승천하시고 주시는 세례이기 때문에 이때는 주님께서 직접 물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는 그런 세례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분명히 이 물세례는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성령 세례를 예표를 하고 있는 세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아직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스스로 이스라엘에 나타내시려고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는 것을 용납을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세례를 줌으로 해서 이스라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했고 제자들 역시 물세례를 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세례는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예표로 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에서 함께 죽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아나심을 믿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죽은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입니다
1장에서 이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물세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직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고 이제 주님께서 막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고 있는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주님이 세례를 주신 것으로 알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장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세례를 주었는가 하면 사도 요한이 1장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그 말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령 세례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신 것을 믿는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해서 주님의 날에 부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이제 세상에 자기를 나타내시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와 같이 주님의 제자들이 준 세례 역시 주님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2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간다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세례 요한이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말에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요한은 지금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그 시작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주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주는 목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례에 대해서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물세례입니다
그러나 이 물세례는 이 성령 세례를 예표를 하고 있는 세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령 세례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물세례를 주게 하셨는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세례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가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반드시 알고 아니 내 마음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반드시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바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기 위해서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제자들이 요단강 저 편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에게 물세례를 주었는데 이제 주님의 제자들도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주신바 되었기 때문에 주고 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준다 해도 하늘에서 주신바 되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에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과 같이 요단강 저 편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준다고 해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신바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 로서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로 보고 있었습니다. 실제 다른 복음서를 보면 주님과 바리새인의 대화에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까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온 선지자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주님께서 세례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사도들은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증거를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물세례를 주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물세례를 세례 요한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주신바 된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 성령을 우리 스스로가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물세례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구속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영으로 부활하시고 난 후에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백이십 여 문도가 기도를 하는 중에 오순절이 임하매 성령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이 영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내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26:15절을 보겠습니다. (구 302쪽)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후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것을 보시고 그것을 무너뜨리시고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해서 여러 종족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 자손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갔다가 포로가 아닌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로 들어와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에게 네 자손이 애굽에서 사백년을 종살이를 한 후에 이 땅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대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시고 광야 사십 년을 보낸 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가나안은 그곳을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육체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영으로 부활을 해서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께서 오셔서 물과 성령으로 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그 모형으로 가나안에 육체로 들어갔지만 우리는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신 영이 거하고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주신바 되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장정만 육십만 명이 나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라는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해서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이제 사십 년이 지난 후에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장정만 육십만 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바 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히브리서 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유다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를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사람이 다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은 고로 저희가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았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세례를 받으면 안 됩니다 이 물세례에게 대해서는 1장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제는 물세례가 아니라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성령을 받는 것이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충분히 말씀을 드려서 우리 성도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령 세례를 예표를 하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주님이 오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늘에서 주신바 되어야 우리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은 것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성령 받으라고 노래를 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를 하던 주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례 요한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세례 요한은 그들이 세례를 주는 것에 대해서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세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고 있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물론 세례를 주는 자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면서 이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너희 죽은 몸을 함께 일으키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세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주신바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세례 요한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의 종교 의식으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 세례입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세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세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아직까지 물세례를 하고 있고 그것을 받으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주신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3:2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세례 요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보고 모두가 선지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역시 선지자로 알기 때문에 그를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마지막 선지자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선지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기보다는 미리 안 자로서의 선지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미리 안 자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자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에 와서는 미리 안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복음을 미리 안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스스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을 보고 그가 세례를 주고 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왕으로서의 예수님,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 그리고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셔서 왕으로서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선지자로 오셔서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요단강 저 편에서 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또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세례 요한이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물세례는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는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를 주었습니까?
그것 자체로만 해도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1장에서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가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세례가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없고 그러면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세례입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세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이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이기 때문에 그림자로서 물세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자가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주님의 제자들이 주었지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증거 하시던 자도 물세례를 주고 있다는 말은 선생님을 따라하고 있다는 말과 같고 그것은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누가 그리스도인 줄을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증거를 하시던 자가 물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 말에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고 다시 확인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면 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1장에서는 그가 오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요단강 저 편에서 세례 요한과 같이 물로 세례를 주고 있고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는 것을 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비록 내가 증거를 하던 자가 물세례를 준다 해도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다시 말을 하고 나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너희가 증거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0:3절을 보겠습니다. (구 1014쪽)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무엇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하면 분명히 세례 요한은 나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물론 주님의 제자들이 물세례를 주었지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직접 물세례를 주시는 것으로 알고 세례 요한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한 그가 물세례를 주고 있다는 그 말에 세례 요한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가 물세례를 주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가 분명하다고 말을 하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것에 대해서 증거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누가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도 역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세례 요한은 자기가 직접 그 제자들에게 말을 하면서 너희가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증거를 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거를 하던 그가 물세례를 준다고 해도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말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보내신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광야에서 외치면서 이스라엘에게 물세례를 베풀면서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을 평탄케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냄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증거를 했습니다.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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