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강, 요한복음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에 빠져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자기가 영생을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겠습니까? 더구나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말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살았지만 그는 영생을 얻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영생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주님께서 거듭남에 대해서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그래도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지만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니고데모가 묻는 이 말씀을 묻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거듭나는 것으로 알고 종교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니고데모도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로 하면 목사와 같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종교인은 아무리 그가 선생이라고 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믿으라고 해서 니고데모는 믿었지만 이 시대는 아예 성경을 보면서도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세상에 있다가 교회에 나온 자기의 종교생활을 보고 거듭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이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듭났습니까?
이 시대 누가 거듭났습니까? 어느 교파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거듭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거듭나는 것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거듭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로 함께 살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일을 믿음으로 해서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도 주님과 같이 영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사셨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장대 위에 있는 놋 뱀을 보고 산 것과 같이 우리도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일을 보고 믿음으로 해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믿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일을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영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와 같을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을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같습니다.
신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떻게 부활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영생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받는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영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저는 상상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이 영생을 생각하면 정말 앞에 있는 즐거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받아 주님과 더불어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영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이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상상이 안 되는 영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 해도 그 영광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영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더욱 더 이 영생을 취하려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저 우주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받을 영생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바다 모래 같은 사람 중에서 우리 남은 자가 받는 영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영생이 주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생명이 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할 때는 이사야 9장6절의 말씀을 생각하고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라는 자기들이 만든 신을 믿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 삼위일체는 인간이 지식으로 형상으로 만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인정을 해서도 안 되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요한계시록 마지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고 그런 자가 받을 벌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니까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심판에 대해서 많은 말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제 뒤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말씀을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을 했습니다.
누구를 심판했습니까? 이 세상 임금을 심판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담입니다
그는 이 세상 임금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단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미혹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아담은 사단에게 지고 결국에는 그에게 사망이 찾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임금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의 정부가 수립이 되면서 혼란기를 겪게 되면서 나라가 안정이 되지 않아서 독제의 기간을 빼고는 거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이 될 때에는 거의 왕정국가였습니다.
왕을 모릅니다.
우리는 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만 해도 왕이 곧 국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왕이 지면 그 나라 백성은 모두가 종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선의 왕이 일본에 항복을 함으로 해서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강점이 되어서 거의 종과 같이 살았다는 것을 근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수백 년 전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전입니다 그때는 나라의 왕이 전쟁에서 지면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은 거의 다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단은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영의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아담은 사단과의 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이렇게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사단의 종이 되었고 이 세상은 사단이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할 때 사단이 나타나서 나에게 경배를 하면 세상 모든 영광을 보여 주면서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입니다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면 사단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사단에 의해서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은 사단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단은 왕이기 때문에 자기가 주고 싶은 자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비유는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다 인정을 하고 있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도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은 자가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율법으로 죽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사단의 머리가 상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더 이상 우리를 죽게 할 수 없게 된 영적 일에 대해서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 율법을 반포를 하신 이유는 우리 인생들에게는 그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은 반드시 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대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고 그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완전케 하신 율법의 의를 꿀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율법을 지키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물론 스스로 의로운 자가 되셔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을 하시려면 반드시 율법을 다 지키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주셔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사단의 머리가 상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으로 인하여 우리 죄인을 죽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 임금인 사단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우리 인생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주님께 꿀 수 있게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꾸면 주님은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는 대로 손을 펴서 넉넉히 꾸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꾸면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생은 이제 주님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율법의 의를 꾸기만 하면 주님은 율법에 정하신 대로 꾸어 주셔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으로 사단은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키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 임금입니다
사단도 역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은 이렇게 하나님이 지키시고 또 사단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 율법대로라면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죽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죽으심으로 해서 이 세상 임금은 더 이상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이 세상 임금인 사단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의 의를 우리가 꿀 수 있게 율법에 정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킨 자가 됨으로 해서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깨달으면 됩니다. 그리고 율법을 하나님과 사단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정하시고 지키심으로 해서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러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도 역시 주님과 같이 부요한 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줄을 모르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사단이 더 이상 율법으로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없게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렇게 완전케 하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율법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렇고 사단도 그렇고 모든 것을 율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면서 마치 율법도 마음대로 변경을 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법대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도 역시 법대로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죽으실 때 이 세상 임금인 사단이 심판을 받아 더 이상 율법으로 우리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법을 완전히 지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이 세상 임금인 사단도 심판을 받지 않고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냥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임금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심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실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람하신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6쪽)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심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이미 그를 죽이심으로 해서 세상을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시대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도 노아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표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노아의 홍수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자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단 두 명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방에 포로가 되어 가면서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든지 심판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 마다 오래 참으셨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참으시고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겠습니까?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림으로 해서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습니까?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만세전부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든 일을 이루시기로 예정을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씀을 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물과 성령으로 나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일을 이 세상에 하고 싶어서 믿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구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구원에 대해서 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우리 성도는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예표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물론 비유와 예표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보고 있는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라면 지혜를 구하고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왜 성경을 그렇게 어려서부터 보았는가 하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이방인들 역시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의 이유는 바로 구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왜 보아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예언의 말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것이 다 비유와 예표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비유와 예표를 못 보고 소경이 되어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고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믿을 수도 없었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그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성경에서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신 일을 알아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역사함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거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모르고 있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그 말씀을 보고 믿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절대 믿을 수 없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복음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육으로 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믿어야 합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그 믿음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이 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으려면 먼저 성경을 보아야 하고 그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막연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그저 사람의 이성에 따라 막연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미 창세기부터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것이 예언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에 대해서 예언을 하시고 그 예언이 성취가 된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고 알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이 성경을 보는 것과 같이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성경에서 아는 것이 기초가 되어서 그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저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그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성경을 보아서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경을 보았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고 믿음으로 해서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도 없고 만약에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성경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알레고리하게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쪽)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로마서8: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목적입니다 만약에 이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알고 믿음으로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믿음에 대해서 모르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역시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무리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을 보아도 진리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진리를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 그들이 영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니고데모도 이스라엘의 선생이지만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4장에서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러 오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면서 너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도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기독교는 교리로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난 영이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이 있는 성도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영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신체의 구원이 절대로 아닙니다. 신체로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신체는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육으로 난 것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로마서를 통해서 바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분명히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죽습니다. 그리고 그 죽는 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죽으면 썩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썩는 것이 다시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신다고 하니까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저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죽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저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죽을 몸을 살리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은 그렇게 죽지만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종교인이 된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는가 하면 영으로 다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요한복음에서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분명하게 거듭남을 말씀을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나 이 시대는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죽어서 썩어 없어지고 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이라는 것을 저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의 구원을 말씀을 하는 저 역시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저는 이 영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는 성도들의 안에서 역사를 하는 믿음으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진리를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치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휴거가 있는 것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것이 사람의 이성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습니다.
신체의 구원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신체의 구원을 받는다면 굳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세상 샤머니즘도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심판을 받고 선을 행하는 자는 좋은 곳으로 악을 행한 자는 나쁜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는 생명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으로 육의 생명이 아니라 신령한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이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아니 분명히 니고데모가 두 번 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니고데모가 대답을 잘못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른 대답을 했고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영의 구원입니다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을 몸에다가 영으로 결합을 해서 살리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죽는다는 것이 성경의 기초입니다 그 죽을 몸을 그러니까 몸은 죽고 영으로 살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의 영이 거하시면 그 영으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는 성도가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면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교는 막연하게 구원에 대해서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 역시도 자기가 구원을 받는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너무도 놀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니고데모의 생각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니고데모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만 본 니고데모로서는 막연하게 하나님이 구원을 해 주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생각을 합니까? 물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것은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영으로 살으심으로 해서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가 있고 그렇게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다시 살아나셔야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그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을 너희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마도 이 시대 기독교인 전체가 다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자기들만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교회에 있는 사람은 구원을 못 받을 수 있어도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가 어떻게 해서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줄을 모르면서 막연하게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3:1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다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에 대해서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보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빛에 비췸을 받으면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믿으면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역사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저를 믿는다는 것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성경을 보고 앎으로 해서 우리가 그것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종교적인 행위는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믿지를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일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재능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을 알아서 믿는 것을 재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성경을 보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고 또 그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성경을 풀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 어느 누구라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을 하면서 재능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까?
초대교회에 성도들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가 교리를 세우고 170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종교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에 세뇌가 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이 감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베뢰아 지방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그 말씀이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 말씀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신사적이어서 성경을 상고를 하면서 다시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였지만 그는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영생을 몰랐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고 더구나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입니까?
그들은 말 그대로 종교인입니다. 이 시대 스스로가 다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속해 있는 어느 교단에 어느 교회에 다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인을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 주님을 만나서 나서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놀라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주님이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입니다.
그 빛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거해야 그를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없는 자는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을찌라도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이 생명이 있을 수 있고 이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입니다
저를 왜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십자가에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살아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하시는 역사가 있고 그 영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에 이 생명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아도 이 생명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육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영의 생명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를 믿는 자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저를 믿습니까?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멸망치 않는가 하면 영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왜 심판을 받지 않는가 하면 우리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음으로 해서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거하기 때문에 그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지금 우리 인생은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저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하시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입니다
막연하게 저를 믿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주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생명이 그에게 거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 생명에 대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만세 전부터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없는 자는 저를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여 주여 합니까?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이 다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불법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상을 섬기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저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지금 계속해서 니고데모에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3: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6쪽)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거듭나는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경에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심판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생명의 빛을 나타내 주셨고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믿는 우리로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창조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처음부터 이렇게 예정을 하시고 창조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에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본을 보여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예정을 하셨고 성경은 이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광야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고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는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아니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하나님 나라를 예정을 하시고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는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지 못한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심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심판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셔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셨는데 믿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거듭나는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했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으로는 표현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셨는데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을 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은 우리 인생이 감당하지 못하는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광야의 교회를 예표로 말씀을 하시면서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영광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은 생명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가 얻는 생명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를 믿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셔서 모든 일을 이루셨는데 그 이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더욱 실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는데 그 이름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생명으로 그 나라에 들어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주님께서 말씀을 하는 심판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next
'요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강, 요3:20,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0) | 2019.12.01 |
---|---|
33강, 요3:19, 믿는 자입니다 (0) | 2019.11.24 |
31강 요3:15,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입니다. (0) | 2019.11.11 |
30강, 요3:13,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0) | 2019.11.04 |
29강, 요3:11, 물과 성령으로 나는 일입니다 (0) | 2019.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