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강, 요한복음 3: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늘에 올라간 사람도 없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며칠 전에도 우연하게 목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천국에도 갔었고 지옥에도 갔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짓 환상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있어서는 저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말씀을 알면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인생의 상상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으면 됩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니까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에 너무도 쉽게 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마음이 간절해서 상상하는 것을 꿈으로 환상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초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세를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한다고 해서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다보니까 그런 상상력을 발휘를 하고 있고 자기가 상상한 그것을 착시 현상으로 보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 나라인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말에 대해서는 우리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상상을 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교회에서 그런 간증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자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입니다
성경 외에 것으로 저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 외에 것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습니까?
신학자라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르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중요하게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해서 신학교에서부터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오역이 심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잘못 번역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잘못 번역이 되어서 이 시대 기독교가 되었습니까? 그럼 히브리어를 조상 대대로 사용하고 있고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본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히브리어를 몰라서 주님을 죽였습니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그들이 한번이라도 예! 라고 대답을 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어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헬라어를 안다고 하는 그들이 신약 성경을 보고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이성으로 마음대로 상상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 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23절을 보겠습니다. (신 123쪽)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비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실제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실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이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까? 만약에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고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 스스로가 거짓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치 아브라함이 하늘에 올라가 있고 그 품에 거지 나사로가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 간 자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없고 아담도 없고 사무엘도 없고 다윗도 없고 어느 누구도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때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저때는 저렇게 말씀을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내세의 일은 이 영의 생명의 일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꼭 비유라고 명시가 되어 있어야 비유가 아니라 그 말씀이 의미를 하고 있는 뜻을 알고 있으면 그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가복음의 말씀을 비유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육으로 난 아브라함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육으로 난 아브라함이 천국에 가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성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으로 난 아브라함이 천국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죽어서 썩어 없어졌습니다. 우리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헛것과 같이 죽어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천국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도 죽으면 아브라함과 같이 이렇게 천국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거의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에서 첫째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에게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생명은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으면 마치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특히 교회 안에서 장례식을 하면 목사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까?
나사로입니까?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천국에 갔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입니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주님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상상을 한다고 해도 상상이 안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마음대로 상상을 하면서 자기가 천국을 갔다 왔다고 지옥을 보고 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2장2-4절을 보겠습니다. (신 298쪽)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를 보았다는 말씀이 아니라 환상으로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본 요한계시록의 말씀 역시 다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에녹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삼백년을 동행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입니다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비유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에녹이 세상에 없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 해서 그 문자를 보고 마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 간 자가 없습니다.
에녹도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도 하나님 나라로 승천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 거듭남은 다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서로 반대가 되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강조를 합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그 생명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면 당연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초가 되고 에녹의 말씀 엘리야의 말씀 그리고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말씀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이 다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그래도 갔다 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은 성경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기초에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이 기초가 흔들리는 순간에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자신을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르거니와
사도 바울이 지금 낙원에 갔다 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서 가히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낙원을 보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가히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낙원에 갔으면 보았다고 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날 텐데 사도 바울은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몸 안에 있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몸 밖에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 간 자가 없기 때문에 몸 밖에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낙원에 이끌려가서 그곳을 본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성도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내 의를 다 버리고 종교적인 행위의 기쁨을 다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비유로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는 아담이 살았던 에덴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것은 알고 있지만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를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낙원이라는 곳을 갔다 온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나는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서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사도 바울은 이성적으로 알 수 없고 그것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성적으로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사도 요한과 거의 비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갔다 왔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 이상을 상상해서 말할 것이 두려워서 그만 두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만 아신다고 한 그 말씀이 맞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성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면 사도 바울이 실제 갔다 온 것이 되지만 하나님만 아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도 요한과 같이 환상 비슷하게 경험을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심으로 해서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14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예표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속의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선지자들이 약속한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 일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땅에서 이루어진 일도 이 시대는 모르기 때문에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늘의 말을 말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땅의 일이 믿어져야 하늘의 일이 믿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입니다
주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바로 주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의를 주실 수 있게 되고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영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할 수 있는 영의 일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영의 일이고 우리 안에 그 영이 거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성도 역시 그에게 붙은 자가 되어서 한 떡이 되어서 영의 생명이 거하게 되고 그럼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럼으로 해서 그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사실 조차도 믿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생명과 하나님 나라는 영의 일입니다 이 영의 일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일을 말씀을 했습니다. 이제 그 하늘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했으니까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그것을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을 했고 실제 그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우리가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일에 대해서 안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이 일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인용을 해서 비유로 되어 있는 말씀을 바로 풀면 알레고리하다고 하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풀어야지 그렇게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 드립니다.
이런 주장들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이 죽고 난 후에 불과 150-200년 사이에 이미 교회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주장들을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었고 이 시대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은 반드시 그렇게 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기반이 되어서 우리가 이제 신약에 와서 영의 일에 대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모든 일을 이루신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성경을 보고 알면 됩니다. 그러나 영의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전에 주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들림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그 영의 생명이 우리에게 거할 수 있음으로 해서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 이 일을 알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알았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영의 일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제가 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늘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께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두 번째 나는 생명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21:5절을 보겠습니다. (구 231쪽)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고린도전서10:10절을 보겠습니다. (274쪽)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광야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이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천국을 가는 것을 예표와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들이 우리의 경계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입니다
반드시 광야라는 교회를 우리는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면서 원망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어 죽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불 뱀을 보내셨습니까?
그것을 민수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로 나왔습니다.
실제 일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마도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가는 가나안까지 가는 날짜를 생각을 하고 양식을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면서 가나안으로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입니다
교회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나안까지 들어가려고 가지고 온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질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입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먹으면 질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육적인 일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고 있는 식물은 실제 식물입니다 그러나 이 식물은 영적인 의미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망입니다
그냥 고린도전서를 보면 막연하게 원망을 한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는 분명하게 그들이 식물과 물이 없는 것을 가지고 원망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가 하면 박한 식물을 먹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박한 식물을 먹는 것으로 원망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식물입니다
무엇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식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라는 곳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광야에서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식물을 못 먹고 있습니까? 지금 배가 고파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원하는 식물이 아니라 박한 식물을 먹는 것을 가지고 원망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가 실제 음식을 먹어도 그렇습니다.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거칠고 맛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투정을 부리게 되어 있고 실제 먹고 있는 식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우리는 어느 식물을 먹어야 하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먹고 있는 식물은 박하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먹고 싶어 하는 식물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먹고 있는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 뱀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물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불 뱀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물어 죽였는가 하면 그들이 분명히 식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원하는 식물이 아니라 박한 식물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의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입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하면서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하면서 원망을 했는데 고린도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계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경계가 된다는 말씀은 고린도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23:6절을 보겠습니다. (구 936쪽)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
히브리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광야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광야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교회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알 수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이 당한 것이 우리에게 경계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해야 합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예표입니다 그들이 당한 일이 그대로 이 시대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원망을 했으면 이 시대도 원망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진짜 식물을 가지고 원망을 했고 그것은 영적으로 교회 안에서 듣는 말씀을 가지고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식물을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식물이 없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식물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한 식물을 먹고 있는데 그 식물은 싫고 자기들이 먹고 싶어 하는 식물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그 음식을 먹지 말고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자가 누구인가를 이제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우리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을 악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실제는 자기들이 먹고 싶어 하는 식물이 없는 것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식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박한 식물을 먹고 있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식물이 없다고 하면서 그들이 원망을 해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그들을 물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했습니까?
진찬을 탐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본성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주의입니다 그 본성에 진찬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 뱀의 사건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에 대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냥 불 뱀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식물을 가지고 원망을 하는 것을 들으시고 불 뱀을 보내셨습니다. 식물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원망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먹고 있는 식물이 박하다고 하면서 싫어서 원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식물을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식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분명히 식물을 먹었지만 자기들이 원하는 식물이 없다고 원망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잠언에서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입니다.
지금 무슨 식물을 원하고 있습니까? 악한 자의 식물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한 식물을 먹고 있는데 그것이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너무도 단단해서 그들이 먹을 수 없으니까 싫어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천국에 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의 단단한 식물을 주셨는데 그것을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박한 식물이라고 하면서 싫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들이 어떤 식물을 먹고 있는가 하면 진찬을 탐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단한 식물을 싫어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의 말씀과 같이 때가 오래 되었으면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이 식물이 없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자기들이 먹고 싶은 진찬이 없다고 하면서 원망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박한 식물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단단한 식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교회 안에서 진찬을 탐하고 있고 그 진찬을 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편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진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호화로이 연락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박한 식물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거듭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니고데모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고 나서 바로 민수기의 말씀을 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서 이스라엘이 산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우리 성도가 영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산 것과 같이 우리가 사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산 것과 같이 인자도 들림으로 해서 영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찬을 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본성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더라도 이스라엘도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왔고 이방의 기독교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왜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원하는 식물이 인생의 본성으로 원하는 식물이 바로 율법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그들을 물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제 그 박한 식물 그러니까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말씀을 분별하는 자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을 원망을 했기 때문에 불뱀을 보내어서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고 이 시대 역시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젖만 먹고 진찬을 탐하는 자는 그렇게 불뱀에게 물려 죽는다는 것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인생들이 얼마나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가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자 말자 우리가 그것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께 피의 언약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고 인생들이 교회 안에서 먹고 싶어 하는 식물이어서 이 시대 역시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에게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비유입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은 다 불뱀에게 물려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실제 자기들의 육체로 당하니까 너무 아프고 고통이 있으니까 하나님께 구했고 지금은 영의 일이다 보니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뱀에게 물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육체로 당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단에게 물려 있으면서도 죽은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단에게 물려 죽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박한 식물입니다
단단한 식물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성도는 이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영의 일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그 식물을 먹기 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교회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여름에는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고 겨울에는 온풍기가 나와서 따뜻한 가운데서 그 예배에 참석을 하고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21:8-9절을 보겠습니다. (구 231쪽)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골로새서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불뱀입니다
뱀은 사단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진찬을 탐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찬을 먹게 되면 그러니까 너희가 원하는 식물을 먹게 되면 이렇게 뱀에 물려 죽는 것과 같이 사단에게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단입니다
이 시대는 사단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모세에게 율법을 반포를 하신 것이 우리에게 지키라고 반포를 하셨습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켰습니까?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에게 이제 뒤에서 주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단이 자식이라는 말씀이며 그들을 민수기에서는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킵니까?
불뱀에게 물려 있는 자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비유와 예표이기 때문에 진짜 불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이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마귀의 자식이 되어 있으면서도 불뱀에게 물려 죽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불뱀에게 물려서 죽어 있는 자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율법을 지킵니다.
인생들은 본성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아무리 보고 있지만 역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을 민수기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말씀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말씀입니다 너무도 박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민수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셨다는 말씀은 사단이 그들을 미혹을 해서 뱀이 물어서 죽게 하는 것과 같이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뱀을 든 것과 같이
모세가 왜 뱀을 들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식물을 탐하다가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서 그들을 물어 죽게 하자 그들이 범죄 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자기들을 물어 죽게 하는 불뱀을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고 그것을 쳐다본즉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뱀에게 물린 자들이 그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를 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 놋 뱀을 달아 장대에 단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장대입니다
하나는 불뱀이 달려 있습니다. 그 불뱀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의 진찬을 탐하는데 그것은 사단의 미혹이고 그 놋뱀을 만들어서 달으니까 그것은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의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박한 식물을 먹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식물을 먹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이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놋뱀으로 장대에 달게 하심으로 그것을 보고 살게 하셨는데 그것이 의미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입니다
물론 사단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를 든 것은 실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땅을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의 일이 무엇인가 하면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하다가 진찬을 탐하다가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장대 위에 달게 하심으로 해서 그것을 쳐다본즉 살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물과 성령으로 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죽는 것을 살리기 위해서 뱀을 장대에 달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듭나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7쪽)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있고 그들이 당한 일이 우리에게 있어 경계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민수기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사실 광야의 불뱀입니다 아주 맹독이 있는 독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불뱀에게 물리면 죽습니다. 그 불뱀에게 물리는 것은 우리가 사단에게 물리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물림으로 해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을 잊고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을 굽게 하는 미련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까?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광야는 우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도 역시 불뱀에게 모두가 물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원함으로 해서 불뱀에게서 물려 죽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그 불뱀이 의미를 하는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보고 살게 하셨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입니다
불뱀에게 물리니까 고통이 너무 심하고 죽어가니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서 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하니까 쳐다보고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고통이 너무 심했으며 실제의 상황이고 그 육체가 죽어가니까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입니다
아무 감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뱀에게 물려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을 원망을 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고 살았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음으로 해서 그러니까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보고 그들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해서 너희가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너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모세가 장대를 든 것을 보고 산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데 이 일을 알고 믿으면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불뱀에게 물려 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라고 말씀을 하시고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았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 불뱀은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보고 산 것을 의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습니다.
그와 같이 주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보고 산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살아서 하나님 우편에 앉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고 그것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나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믿음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서 그것을 보고 산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믿음의 주를 바라보면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왜 인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까? 그렇게 죽으심으로 해서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사건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그 말씀을 믿은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살아나심으로 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생명이 거하는 역사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듭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나서 살려면 반드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 일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너희에게 거듭나는 생명이 거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4:9절을 보겠습니다. (신 392쪽)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습니다.
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을 살게 하기 위해서 모세는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왜 주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와 물과 성령으로 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단에게 물려 죽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은 죽는 생명이라면 그리고 썩는 생명이라면 굳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고 썩지 않는 생명이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영광이라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저도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대통령이 취임을 하는 왕이 취임을 하는 그런 영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광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왕 노릇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입니다
이 생명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너무도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되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 생명으로 다시 산다면 저는 사는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형상을 보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언어는 다 비유입니다
아니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생명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귀한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인자도 들려야 하는가 하면 우리에게 그 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자도 들림으로 해서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라면 저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다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는 것이라면 굳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삶이라면 이 세상과 무엇과 다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천사도 우리가 부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저는 그것은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이 세상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사는 것은 상상 그 이상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주입니다
저 우주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은하만 해도 저 우주에서는 그저 작은 불빛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하늘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 광대함과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우주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 일이 십자가의 사건의 정점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당하시고 그렇게까지 하심으로 해서 우리를 살리시는데 신체의 부활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신체로 어떻게 영생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신체를 하나님께서 전능하셔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것 역시 신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신체가 부활을 하면 그곳은 더 이상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생각만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단 것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육체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육체의 일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거듭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예표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예표를 바로 보고 성경을 풀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시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우리가 성경을 풀 수 있게 하시고 또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이것을 정의를 내리려고 해서도 안 되고 이것에 대해서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은 내세의 일은 우리 언어로 표현도 할 수 없고 상상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기 위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도 들려야 합니다.
왜 인자가 들려야 하는가 하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가 이 일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거하는 역사가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육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 육의 일을 보고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스라엘이 우리의 거울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은 이스라엘의 일로 치부를 해 버리고 있고 우리의 일은 따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없습니다.
거듭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입니다
그것은 의문에 쓴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으로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며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들리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살았지만 우리는 영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거듭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형상으로 만들어서 교회에 걸어 놓고 또 여자들은 그것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서 사용을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살으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그의 생명이 거한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에게 이 생명이 거하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3: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0쪽)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저와 함께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살아야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면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가 죽는 것을 보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그럴진대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가 죽는 것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입니다
그냥 사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영의 일에 대해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막연하게 자기들이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고 말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살리신 이유는 주님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주님이 어떻게 살으셨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을 하고 부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고 부활절을 지키고 있지만 주님께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살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영으로,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으로 살으셨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와 함께 살리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성도를 그와 함께 살리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셨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 영이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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