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강,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18-21절을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세상지식과 성령의 감동은 다릅니다.
만약 세상 지식을 그대로 성령께서 가르쳐 주고 있다면 우리는 굳이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지식으로도 충분한데 구태여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고 열심히 세상 지식을 습득을 하면 됩니다.
세상에서는 죄 입니다
물론 성령께서도 그것을 죄라고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의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것을 의라고 하기 보다는 죄라고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정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의에 대한 정립이 되지 않다 보니까 자기는 의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악을 행하는 자가 되어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버림을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버림을 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 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모하면서 누가 보기에도 참 신앙인 같아 보이는 그가 나중에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수차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버림을 받을 때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버림을 받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아니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이 세상 사람이라면 슬피 울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는 너무 진실 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과연 교회에서 대충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대충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모든 것을 다 받쳐서 충성을 했는데 버림을 받았을 때 슬피 울게 됩니다.
너무 억울한 것입니다
모르면 억울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울대를 나오고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고 그 지역의 유지였는데 자기 사업장에 유지 보수를 하려고 하는데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와서 얼마 안 되니까 그냥 쓰라고 해서 썼습니다. 그런데 이자를 주려고 해도 그 사람이 몇 년 동안 나타나지를 않아서 못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고의가 전혀 없었습니다.
늘 이자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언제든지 원금과 이자를 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법원에서 고발이 들어와서 결국 자기 사업장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지역의 유지도 신용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법을 몰라서 결국 당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사람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도 너무 사람을 믿고 있다가 법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가 나중에 자기 영혼을 빼앗기는 일을 당하게 될 사람이 교회 안에 다수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닌 가 늘 내 영혼을 위해 스스로 진리를 알기 위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이 사람은 죄를 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이자와 원금을 주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내 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가는 언젠가 이 사람과 같이 자기 영혼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기 죄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죄를 보면서 의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자와 원금을 갚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당합니다.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죄를 짓고 있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 법으로 들어올 때는 꼼짝을 못하고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태평하게 자기는 죄를 짓고 있지 않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자기는 참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죄로 나타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들이 과연 그것이 죄라고 생각했습니까?
만약 그것이 죄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에서 자기는 빠지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할 때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가 절대로 죄라고 생각을 하기 보다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선을 행한다고 하는 그 일이 죄가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신성 모독이라는 것은 돌에 맞아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안식일을 범한 사람을 돌로 쳐 죽일 때 단 한 사람도 그것이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돌을 던졌습니다.
물론 그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도 그들의 마음에는 죄라는 생각을 조금도 갖지 않고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만약 스데반집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그것은 율법에 의해 당연히 받아야 하는 판결 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게 되면 자기가 의를 행한다고 하는 그 일이 죄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성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중생, 거듭남)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성도라 합니다.
성도가 죄를 짓습니까?
안 짓습니까? 여기 분문의 말씀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안 짓습니까?
저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는 것을 확증하고 있지만 매일 사는 것이 죄 입니다 만약 죄를 안 짓는다고 한다면 저는 구원을 포기하고 차라리 세상에서 편하게 살 것입니다 저는 죄를 안 짓고는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보다 죄를 많이 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또 저 보다 죄를 많이 진다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가 짓는 죄나 여러분이 짓는 죄나 저울에 달아 보면 입김보다 경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입술로는 모두가 죄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무슨 죄를 짓고 있는 가에 대한 것은 잘 모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으며 사는 동안 늘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순간순간이 모두가 죄라고 생각을 하면 맞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죄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인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덕적으로 짓는 그런 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두 지고 가셨기 때문에 사실 죄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평생의 죄의 값이 1만 달란트라고 하면 그 일만 달란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갚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5천 달란트의 빚을 졌다면 앞으로 질 죄는 5천 달란트입니다 그 오천 달란트까지도 예수님께서 갚아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데서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른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죄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믿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다.
바로 그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다 갚아 주었다는 것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하고 있는 성도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짓고 있느냐면 자기 영혼을 사망이 빠뜨리는 죄 입니다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고 전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이 죄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바로 영적인 죄 입니다
자기는 영적인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을 아주 합당히 여긴 것같이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죄는 신앙생활에서 절제를 하지 못하는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너무 좋게 보이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 죄라고 가르쳐 주면 공격을 합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한 것 같이 지금 이 시대도 성령의 책망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열심에 사로 잡혀서 죄를 지면서도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죄를 분별을 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육적인 죄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죄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 합니다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안 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영적인 죄를 안 하면 오히려 믿음이 없고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죄라고 생각을 하면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죄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는 헌신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사도 바울과 같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지극히 합당한 일로 생각합니다.
내 영혼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 태평하게 죄를 짓고 있습니다. 죄를 지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꿈에서라도 생각을 못 합니다. 왜 죄가 아니냐면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선하고 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선하고 의롭게 보이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영혼을 잃어버리는 죄를 짓고 맙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어떤 죄를 짓지 않느냐면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 죄는 내가 짓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늘 이 죄를 짓고 있지만 성령께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늘 절제를 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내가 죄를 안 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모두가 그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죄는 깨닫지 못 합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자기가 영적인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죄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영적인 죄는 세상에 속한 자는 절대로 깨닫지를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영적인 죄를 지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교회도 세상입니다
교회가 세상이 아닌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을 말씀할 때는 이 세상도 물론 세상이지만 교회도 포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만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가 광야에서 사십년을 보냈지만 그 중에 믿는 사람은 불과 두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장정만 육십만이 나왔지만 믿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천만이라는 교인들이 있지만 교회 안에는 믿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숫자만이 있다는 것을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다수를 따라간 이스라엘은 결국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4:14절을 보면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에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오직 믿음을 가진 성도만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행위와 믿음 이 두 가지를 함께 속하려 하는 자는 바로 음행을 하는 자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해 있느냐 믿음에 속해 있느냐 두 가지를 대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믿음에 속해 있으면서 율법도 행하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행을 하면서도 모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영적인 죄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율법에 속해 있던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죄 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반드시 영적인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교회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마치 믿음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에 있는 것임에도 마음에 있는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고 보려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영적인 죄이며 간음하는 행위입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모든 종교와 사상은 다 율법주의에 속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과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동일합니다. 도적적인 것을 보면 동일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도 살인하지 말라 하고 도둑질하지 말라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이 세상의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것을 행해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도덕적인 삶을 이 세상 사람보다 더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이 속한 것임을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속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지 내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하게 사느냐 하는 것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 세상사람 모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도덕을 논하는 것은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누가 더 깨끗하냐는 것을 논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모르는 것이 죄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죄를 성도는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니까 어떤 도덕적인 죄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그 죄를 범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서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고 나를 아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알고 나니까 돌아 왔습니다. 만약 그가 아버지를 몰랐다면 그는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며 그는 영원히 죄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며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 그의 안에 있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렇게 영생을 얻은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선하고 의로우면 뭐 합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제일 큰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는 무지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잘할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는 어떻게 하면 잘할까 늘 고민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배우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은혜, 은혜라고 한 마디 하면 다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기 죄를 대속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십자가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의미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죄 입니다
이 성경은 내게 대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서 그리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신약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발견을 하고 있습니까? 무지에 가까운 사람들은 구약을 보면서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구약을 보면서 율법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예수를 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면 예수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예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기 남편인 예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남편 율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각이 없는 자이며 참 된 자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구약을 보면서 율법을 보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한 것을 뻔히 보고도 이 시대도 역시나 구약을 보면서 율법을 보고 그 율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있는 형국입니다
21절,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예수 이외에는 모두가 다 우상입니다
교회도 우상입니다 주일도 우상입니다 사람도 우상입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행위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영적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참 된 자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그 우상들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외에 마음을 주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만 우상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 더 많은 우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자기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말 것입니다
나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키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전하는 말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내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 영혼을 우상으로부터 지켜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육적인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두 갚았습니다.
이제 성도는 그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안 진다고 해서 안 질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영적인 죄를 안 질 수 있게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부터 지켜 보호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우상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 선하고 의롭다고 하는 그 행위도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늘 성경을 묵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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